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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8. 혁명의 길 -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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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24 12:02 조회2,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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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길

박 경 옥

 
흐르는 내물은 굽이쳐내리고

혁명의 길에는 곡절도 많고나

굶주려 죽은 자 총칼에 상한 자

묻노라 동무여 그 얼마이던가



나는 때로 《혁명의 길》이라는 이 노래를 조용히 불러보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간고했던 나날들을 회상하여보군 한다.

아래에 적으려는 이야기는 우리의 유격활동에서 가장 어렵던 1939년 겨울에 있은 일이다.

내가 속했던 부대 40여명의 대원들은 이해 말경에 《토벌》이 집중되는 요하부근 산림을 떠나 호림쪽으로 행군을 개시하였다.

밀영을 떠날 때부터 눈보라가 일기 시작하였다. 바람은 수풀을 쓸어눕히고 눈발을 몰아오며 이악스럽게 불어왔다. 맵짠 눈보라때문에 우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허리를 넘는 생눈길을 물결을 거슬러올라가듯이 헤쳐나갔다.

밀영을 떠난지 2~3일만에 우리는 적의 대부대와 맞다들었다. 우리는 적을 뒤에 달고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높은 곳으로 오를 때마다 바람은 어찌도 세차게 불어대는지 앞으로 한걸음 내딛고는 두세걸음씩 뒤로 밀리우군 하였다.

거기다가 한번 뒤로 밀리울 때마다 집채같은 눈이 무너져 내려와서는 우리를 파묻어버렸다. 사람들은 눈속에서 얼마동안 꼼짝 못하고있다가 다른 동무들이 와서 손을 이끌어주어야 거기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

적들은 수량상의 우세를 믿고 총을 쏘아대면서 시시각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온몸이 땀으로 미역감다싶이 되여 산마루에 올라섰을 때 적들은 우리가 지나온 릉선에서 허우적거리고있었다.

우리는 숨도 돌릴새없이 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겼다.

그날 밤 우리는 어느 한 깊은 골자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였다. 그러나 눈보라가 어찌도 갈개는지 우등불을 피울수 없었다.

우리는 눈에다 굴을 파고 그속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땀과 눈에 젖은 옷은 소가죽처럼 꽛꽛해지고 바늘같은 찬기가 사정없이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추위와 피곤보다도 참기 어려운것은 배고픈 일이였다. 이때 벌써 우리에게는 식량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렇다고 적들이 둥지를 틀고있는 집단부락으로 식량을 구하려고 내려갈수 없었다.

적들의 끊임없는 추격을 피하여 보마정자어귀를 지날무렵에는 대원들이 사흘이상이나 맨눈을 삼키며 걸었다.

이제는 허리가 구부러들고 몸에 지닌 모든것이 귀찮을 정도였다.

한걸음이 천근 무쇠덩어리를 옮겨놓는것 같고 걷는다는것이 한자리에서 답보하고있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때도 누구하나 괴롭다는 말한마디없이 《기운을 냅세. 저 숲속에는 바람이 잠잠할걸세. 숯구이터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을것이네.》하고 서로 용기를 돋구어주면서 걸었다.

이렇게 행군하다가도 우등불을 피우고 쉴수 있게 되면 동무들은 불곁에 주저앉기가 바쁘게 코를 골았다.

허기증을 참다 못하여 어떤 동무는 손에 끼였던 개가죽토시까지 불에 구워먹었다.

이럴 때에는 나도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것 같고 손가락하나도 놀리기가 어려워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고만 싶었다.

그러나 파리한 입술과 움푹 꺼져들어간 얼굴들을 볼 때 나는 그냥 누워있을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미릅나무껍질을 벗겨다가 초롱에 끓였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간씩 동무들과 나누어마셨다.

그러면 동무들의 눈에는 다시 정기가 떠오르고 입술에 피기가 도는것이여서 내 마음은 무척 기뻤다.

간고한 행군은 계속되였다.

어느날 우리는 도중에서 우리를 앞질러간 세사람의 발자국을 보았다.

그 발자국은 눈보라 이는 벌판을 가로질러 멀리 숲속으로 종적을 감추고있었다.

그것은 가다가 이리저리 헛갈리기도 하고 때로는 쓰러진 자리와 뒤섞이더니 마침내 두 사람의 발자국으로 되여버렸다.

우리는 그 발자국을 따라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다가 문뜩 진대나무밑에서 멈춰서고말았다.

유격대원 세동무가 굶어서 쓰러진것이였다.

그들의 몸은 이미 돌같이 굳어져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숨이 져갈 때 분해하여 쥐여뿌린듯한 보총의 부속품들이 널려져있었다.

그앞에서 우리는 치받치는 심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장승처럼 서있었다.

서로 억세게 그러안은 굴함없는 모습, 이제라도 금시 일어서서 행군을 계속할것만 같이 걸어가던쪽으로 얼굴을 돌리고있는 장렬한 그 모습, 진정 이들이야말로 그 어떤 시련과 준엄한 환경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오직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이 길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운 용사들이 아닌가.

그들이 지녔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되여 이글이글 타올랐다.

우리는 무거운 침묵속에서 저마다 주먹을 틀어쥐고 이를 갈았다.

그리고 적개심에 타오르는 가슴을 부여안고 그들이 다 못간 이 혁명의 길을 이어 허리띠를 조여매면서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여 우리앞에는 요하와 호림땅계선의 하늘을 막아선 신정산, 피극산의 산발이 바라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저 산줄기만 넘어서면 우리의 행군은 끝나는것이였다.

동무들은 환성을 올렸고 전에 없는 새 힘을 팔다리에 걷어모으며 신바람을 냈다.

그러나 적들의 끊임없는 추격을 피하여 어려운 길을 뚫고나가는데서 동무들의 힘은 진할대로 진해갔다.

게다가 올리막길이 시작되고 갈수록 눈이 깊어지였다. 거의 모든 대원들이 눈구뎅이에 빠져서 운신을 못할 때도 있었다.

지휘부에서는 부득불 행군을 중지하고 하루동안의 숙영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는 뜻밖에 지휘부에서 오는 통신원을 만났다. 오래간만에 지휘부의 소식을 듣게 된 우리의 기쁨은 한량없었다.

이날 밤 지휘성원들은 지휘부의 지시를 토의했고 대원들은 다른 우등불가에 둘러앉아있었다.

바람은 잠자고 우등불이 와작와작 소리를 내면서 타번지고있었다.

나는 통신원이 따로 나에게 전하는 글쪽지를 불앞에 펼쳐들었다.

불빛에 어리여 이글이글 타는듯한 종이우에는 《박경옥동무앞》이라는 글자가 씌여져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부대장동지의 필적이였다.

나는 그의 편지를 받아쥐고 내리읽기 시작하였다.

편지에는 나에 대한 문안과 가사 한수를 지어보내니 동무들에게 보급하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사실 나는 얼마전에 지휘부통신원으로부터 부대장동지가 사업에서 과로한 나머지 병석에 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물며 이러한 뜻밖의 글을 받게 되니 어쩐지 뜨거운 눈물이 끓어오르는것을 억제할수 없었다.

(우리에 대한 생각이 오죽하였으면 이처럼 병석에서까지도 노래를 지어보냈으랴.)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혁명의 길》이라는 제목의 가사를 동무들에게 전하였고 한소절한소절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힘없이 누워있던 동무들이 일어나 앉고 멀찍이 앉아있던 동무들이 나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타오르는 우등불을 바라보면서 이 노래속에서 자그마한 그 무엇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는것이였다. 



울창한 산림과 눈덮인 벌판은

우리의 피땀에 젖어있는데



높고낮은 곡조를 타가며 조용히 울리는 내 노래소리는 분명 동무들의 가슴속에 그 어떤 파문을 일으켰던것 같았다.

우등불옆에 맥없이 떨어져있던 그들의 눈길은 차츰 헤아릴수 없는 상념을 담아안고 하늘가에 빛나는 별빛에로 향하기도 하고 흘러가는 구름을 등진 나무머리에로 쏠리기도 하는것이였다.

우리에게는 어느덧 지나간 날, 조국의 하늘에 검은 구름이 뒤덮였을 때 두손에 총칼을 틀어잡고 유격대로 떠나던 그때가 회상되였다.

그리고 더위를 이기고 추위와 싸우며 원쑤들과의 육박전에로, 간고한 행군의 길에로 서슴없이 나가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멀고 어려운 혁명의 길을 우리는 걸어왔던것인가.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갔던가.

오로지 혁명의 최후승리를 믿어 우리는 매사에서 용감하였고 언제나 조국을 생각하여 한걸음 앞으로 더 나아갔다.

우리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자기의 동지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것을 잊지 않았으며 오직 혁명의 길앞에서 한걸음도 주저함이 없이 모든 고난, 모든 슬픔을 이겨나아갔다. 또한 승리에 자만하거나 실패에 락망하지 않고 원쑤와의 최후결전에 한사람같이 내달았다.

문뜩 정숙한 분위기를 흔들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회의를 끝마치고 돌아와 우리 사이에 끼여앉은 정치지도원의 목소리였다. 깊이 주름잡힌 이마밑의 불타는듯한 눈으로 한동안 대원들을 돌아보던 그는 이렇게 천천히 말을 떼였다.

《우리는 멀고 먼 길을 온갖 난관들을 이기며 걸어왔소. 실로 우리는 영웅적인 용감성으로 험한 준령들과 간악한 원쑤들을 굴복시키며 싸워왔소.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은 멀고 간고하오. 우리앞에는 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을것이고 가슴아픈 희생도 있을것이요.

그러나 무엇인들 두렵겠소. 우리에게는 혁명을 위해 몸바칠 불굴의 투지와 필승의 신념이 있소. 바로 부대장동지는 그것을 더 불러일으켜주기 위하여 이 노래까지 보내주었소.》

정치지도원의 목소리는 우리들 마음의 구석구석을 울리였다.

우등불에는 나무가 더 지펴지고 열기를 뿜으며 타오르는 세찬 불길마냥 동무들의 얼굴에는 화기가 넘치여났다. 그리고 잠잠히 가슴으로만 노래를 익히던 동무들의 목소리는 차츰 높고 요란히 주위를 흔들기 시작하였다.

노래소리는 마침내 우렁찬 합창으로 바뀌여졌다.



때리여라 부시여라

제국주의 그놈들을

무찌르고 건설하자

조선인민의 새 정부를


그 노래소리는 성난 파도와 같이 우리들의 가슴속에 투쟁의 격랑을 불러일으켰고 밀림과 어두운 밤을 뒤울리면서 멀리까지 메아리쳐갔다.

동이 훤하게 터올무렵 우리는 새로운 신심,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숙영지를 떠났다. 그리고 지난밤의 그 노래소리마냥 그 어떤 사납고 험한 길도 거침없이 넘고 지나며 오로지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여 우리는 신정산에 다달을수 있었다.

《신선》이 살고있는 막바지라고 하여 신정산이라 일컫는가?

하늘중천에서 눈사태 무너지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면 산마루는 별이 반짝이는 곳에 닿아있는듯 쳐다보기만 하여도 아름이 찼다.

우리는 단단히 마음을 다잡으면서 산기슭에 붙었다.

그러나 온 겨울 녹지 않고 쌓이고쌓인 눈은 첫 발자국을 디디자마자 모래산처럼 무너져버렸다.

작은 나무아지를 찾아서 휘여잡으려고 하여도 이미 깊은 눈속에 파묻혀버리고 없었다.

우리는 가파로운 기슭을 몇길씩 뒤로 미끄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눈속에 빠지기도 하면서 우로 톺아올랐다.

목에서 겨불내가 나고 숨이 찼다. 우리는 머리를 눈속에 틀어박은채 눈을 삼키면서 배밀이로 기여오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혁명의 길》을 소리높이 불렀고 쓰러진 세 동지의 일을 생각하면서 기어코 산마루를 정복해야 한다는 불타는 결의에 넘쳤다.

우리가 이 령마루에 올라선것은 그날 밤 삼경이 훨씬 지나서였다. 우리의 기쁨은 마치 난공불락의 적의 요새를 점령했을 때와 같았다.

어둠속 멀리 펼쳐진 호림땅을 굽어보는 우리들에게서는 걷잡을수 없는 환호성들이 만세소리와 뒤섞여 터져올랐고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적시였다.

우리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한동안 감개무량하여 서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총가목을 더욱 튼튼히 틀어쥐고 승리자의 기세높이 마지막행군의 령길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모두의 얼굴마다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항일혁명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갈 굳은 맹세가 비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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