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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7. 리신금동지에 대한 회상 - 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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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22 12:02 조회2,3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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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신금동지에 대한 회상

임  철


리신금동지는 1915년에 함북 어랑의 한 빈농가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유년시절에 부모를 따라 훈춘현 동강자로 이사해왔다.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신금동지는 학교란 생각도 못했고 아직 잔뼈가 굳기전부터 부모를 도와 묵밭을 허비지 않으면 안되였다.

굶주림과 한숨속에서 암담한 소녀시절을 보내던 신금동지는 1930년대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조직전개되기 시작한 혁명의 불길에 접하게 되였다.

당시 신금동지는 혁명투쟁에 나선 일가친척들의 영향을 받아 1931년 가을과 이듬해 봄의 추수, 춘황투쟁때에는 벌써 부녀회원으로서 솔선 군중의 선두에 서서 싸웠다.

그리고 유격대가 조직된 후에는 그의 원호사업에 발벗고 나섰으며 유격근거지가 왕청현 금창으로 옮기게 되자부터는 부녀회의 책임자로서 군중들을 지도하면서 더욱더 헌신적으로 일하게 되였다.

그는 1935년 요영구회의에서 제시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에 근거하여 우리 유격대가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게 된 때에도 계속 부대를 떨어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 간고한 투쟁의 길에 올랐다.

부대가 그 첫 행로를 로무허즈쪽으로 택하고 행군을 계속하던 어느날이였다.

식량공작을 나갔던 우리가 밤이 으슥해서 집결지점에 당도하니 우등불앞에 앉은 리신금동지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품에 있어야 할 어린애는 없고 그대신 총이 안겨있지 않는가.

의아한 생각이 든 나는 다른 녀성동무들에게 사실을 물었다. 나는 그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내막을 알수 있었다.

이날 신금동지가 따라가던 4중대는 어느한 골짜기로 올라가다가 그만 내려오는 적들과 조우하게 되였다. 중대는 전투를 진행하면서 오른쪽 산릉선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때 적들은 이미 높은 봉우리에 오른 때였다. 지형이 불리한데다 대비할수 없는 많은 적이라 중대는 적을 감당해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우선 무장이 없는 신입대원들이 안전지대로 후퇴하기까지는 그자리를 견지하여야 하였다. 이 신입대원들은 유격근거지 해산시에 받아들인 대원들이였다.

한쪽으로 빠지는 기미를 눈치챈 적들은 우회하여 후퇴하는 대렬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눈판을 미끄럼타듯이 굴러내려온 신금동지는 개울을 건너 가파로운 산기슭에 달라붙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산비탈을 어린애를 업고 달리자니 여간 힘겹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부르쥐고 기를 쓰며 달렸지만 뒤에 떨어지고말았다.

적들은 그를 생포하려고 계속 추격해오고있었다.

그런데 신금동지는 어린애 요가 허리아래로 처져내려와서 뛸수 없게 되였다. 사태는 실로 위급해졌다.

그는 얼른 요의 띠를 풀어 어린애를 안았다. 돌아다보니 벌써 적 두놈이 30m 거리에 접근하고있었다. 어린애를 안고 뛰다가는 분명히 얼마 못가서 붙잡힐텐데 그렇게만 되는 날엔 두 목숨이 다 죽게 될것이 아닌가. 혁명을 위해서는 한사람이라도 살아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찌 차마 어린것을 버릴수 있으랴.

모진 마음을 먹으려던 그는 저도 모르게 어린애를 더 힘있게 가슴에 그러안은채 그냥 산판을 달려올라가고있었다. 비록 달리고는 있었지만 이러기도 힘들고 저러기도 어려운 갈림길에 나선 그의 가슴속에서는 모닥불이 타번지는듯하였다.

얼마 못가서 신금동지는 산중턱에서 엄호사격을 하는 대원을 만났다. 그는 후퇴하는 신입대원들을 호위해오는 대원이였다. 이때부터 신금동지는 그 대원의 엄호를 받으며 달렸다. 그러나 신금동지가 산마루 턱밑에 이르러 숨을 돌리며 돌아다보니 뒤로 퇴각해오던 그 대원은 그만 적탄에 맞아 이깔나무옆에 쓰러졌다. 귀중한 혁명동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신금동지는 얼른 어린애를 내려놓고 도로 달려내려갔다.

그런데 불행히도 가슴에 흉탄을 맞은 그 대원은 벌써 숨을 거두고말았던것이다.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오른 신금동지는 어린애를 품었던 가슴에 희생된 전우의 총을 힘껏 붙안았다. 그리고는 접근해오는 적에게 사격을 가하며 산판을 달려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이때 산등성이에서는 벌서 에돌아올라온 적들이 고함을 지르고있었다. 신금동지의 앞길이 막혀버렸다. 이제는 옆으로 빠져나갈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쑤들이 차지하고있는 그 지점에는 두고내려온 어린애가 있지 않는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애가 있는 산우로 몇걸음 더 톺아올라갔다. 그 순간 그의 머리속에는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린애가 더 귀한가? 혁명이 더 귀중한가? 그의 심장은 준엄한 고민속에 고동치였다.

어린애를 구원하려면 투항하든가 죽든가 하는 두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수는 없었다. 혁명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키며 산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어린애를 잃은 신금동지는 어린애대신 희생된 전우의 총을 품고 우등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있었던것이다.

어린 딸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가슴쓰리고 아픈 일이 많다 하여도 이보다 더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우등불에 비치는 그의 얼굴에서는 다름아닌 피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으며 잡고있는 총은 비분과 증오로 하여 떨리고있었다.

그후 그는 이 원한과 복수가 어린 총을 들고 북만으로 들어가 목단강 북쪽 산림철도습격을 비롯한 여러차례에 걸친 전투들에서 보복의 명중탄으로 수많은 적들을 무찔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어느 한 전투에서 손목에 부상을 당하였다. 중대장은 그를 밀영에 남도록 일렀지만 그는 종시 듣지 않고 계속 전투부대를 따라다니며 작식대공작을 수행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고된 행군뒤에도 우등불곁에서 밤깊도록 대원들의 옷을 기웠고 하루이틀 휴식이 있을 때면 의례히 대원들의 빨래를 해주군 하였다.

리신금동지가 그 얼마나 자기 맡은 혁명임무에 헌신하였으며 충실하였는가 하는것은 1938년 여름 삼도령을 넘는 행군시에서도 여실히 표현되였다. 이 고난의 행군에서 작식대원으로서의 신금동지의 역할은 실로 컸던것이다.

당시 경박호수력발전소를 습격하고 뒤따르는 적들을 격멸하면서 액목현에 진출한 우리 부대는 앞길을 가로막고있는 적들의 력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3개 방향으로 갈라지게 되였다.

그때 신금동지는 나와 한부대에 배치되였다. 우리 부대는 적들이 행적을 찾을수 없게 삼도령 무인지경을 돌파하며 행군을 계속하였다. 비상용량식으로 가지고다니던 미시가루마저 떨어지고말았다. 아직 햇곡식이 나오지 않은데다 무인지경을 행군하다나니 도중에서 량식을 구할수도 없었던것이다. 모두 풀을 뜯어먹으며 강행군을 계속하였다. 무더운 여름날 물자루가 되여 행군하자니 헐하지 않았다. 나무그늘에 앉으면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행군명령이 내리면 모두 입술을 깨물고 비칠거리며 일어서군 하였다.

이렇게 간고한 행군이 계속되던 어느날이였다.

1주일동안이나 굶은 대원들은 나무그늘에 누운채 정신을 못차렸다. 행군명령이 내렸지만 일어나는 사람은 불과 몇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는수없이 그 자리에서 좀더 휴식하게 되였다. 나도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잠시 나무그늘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이때 신금동지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산판을 기여내려가는것이였다.

그후 신금동지로부터 들어서 안 일이지만 이때 신금동지도 그처럼 고난을 이겨내려고 애쓰던 전우들이 지칠대로 지쳐서 맥을 놓고 누워있는것을 보자 그는 작식대원으로서 마치도 그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것만 같은 그러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더 행군할것 같지 않았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가? 하고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으나 이렇다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누워만 있을수는 없었다. 그는 힘을 가다듬고 무엇인가 찾아볼 생각으로 산비탈을 기여내려갔다. 산비탈을 거의 내려갔을 때 그는 어디선가 시내물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게는 어렸을적에 가재를 잡아먹던 일이 얼핏 떠올랐다. 그는 저 시내에 가재라도 없을가? 하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기여갔다.

개울바닥에 있는 돌밑에는 가재들이 우글거리고있었다. 순간 신금동지의 눈앞에는 기력을 회복하는 전우들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그러자 그에게는 어디선가 새로운 힘이 솟는것이였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물우에 엎딘채 가재를 잡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물이 얕은 곳이여서 그는 한말가량의 가재를 잡을수가 있었다. 그는 웃옷을 벗어서 그속에 가재를 넣어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우글거리는 가재를 삶으려고 할 때 비로소 동무들은 모든 사실을 짐작하고 눈물이 글썽하여 신금동지를 쳐다보는것이였다.

나도 목이 메도록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끓어올라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을수가 없었다.

나와 동무들은 마침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격동된 마음으로 신금동지의 손을 힘있게 잡아흔들었다.

동지들을 위한 신금동지의 열렬한 헌신성에 감동된 우리는 당장 팔다리에 새힘이 솟구쳐오르는것을 느꼈다.

우리는 주위에서 나무를 거둬모은다, 불을 지핀다 하면서 신금동지의 일손을 거들어주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전우들이 기운을 내는것을 바라보자 신금동지는 그자리에서 다시 시내가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다른 동무들도 하나둘 그의 뒤를 따랐다.

개울가로 내려간 우리들은 밀가루포대로 두포대나 가재를 잡아가지고 올라왔다. 가재를 삶아서 나누어먹은 우리들은 모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할수 있었으며 신금동지는 행군총화에서 지휘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행군을 마치고 횡도하자 남쪽에 있는 로송령밀림속에 다달은 우리 부대는 비로소 제대로 휴식을 하게 되였다.

그러나 이때 전혀 뜻하지 않던 일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어느날 아침 보초선에서 신호총소리가 울렸던것이다.

여기저기 초막을 치고있던 우리들은 얼른 배낭들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대원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피하였다. 이때 신금동지는 최일정치지도원이 인솔한 7~8명의 대렬을 따라 곧장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그런데 적들은 이미 그 산등성이에도 매복하고있었다. 그러나 이제 방향을 딴 곳으로 돌릴수는 없었다. 놈들은 벌써 사면으로 우리를 포위하고있었던것이다. 놈들은 올라오는 그들을 발견하자 곧 사격을 퍼부었다.

적탄은 비발치듯 그들의 앞뒤에 와 떨어졌다. 이리하여 적의 매복선을 돌파하는 육박전이 벌어졌다. 아군의 혈로를 여는 이 육박전에서 최일지도원과 기관총대 서병섭분대장동무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그들은 자기 몸으로 아군의 위기를 구출하였던것이다.

그곳을 빠져나온 그 대렬은 적의 추격을 저지하면서 서쪽 산비탈에 붙었다. 그런데 적아간에 육박전이 벌어질 때 그만 신금동지는 그 대렬에서 뒤떨어지게 되였다.

적들은 그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사태는 그야말로 위급했다.

이때였다.

신금동지는 다른 대원들에게 《내가 엄호할테니 동무들은 어서 저쪽 산비탈에 붙으세요.》하고 웨치면서 달려드는 적들을 맞받아나가며 사격하기 시작했다.

다른 대원들이 말렸으나 신금동지는 들은체도 않고 계속 사격하면서 내달릴뿐이였다.

그이상 지체할수 없게 된 다른 대원들은 하는수없이 숲속을 꿰뚫고 저쪽 산비탈에 붙었다. 그들은 그곳에 의지하고 신금동지가 빠져나올수 있도록 엄호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벌써 가까이 접근해온 적들은 사방에서 신금동지를 포위하고 조여들고있었다. 신금동지는 이때 이미 움직일수 없게 부상을 입었었다. 그는 계속 맹사격을 하면서 포위망을 조여드는 적을 향하여 마지막수류탄을 힘껏 던지였다. 원쑤들은 무더기로 쓰러지면서도 계속 기여들었다. 어찌할수 없게 된 신금동지는 총에서 격발기를 뽑아들자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혁명 만세!》하고 소리높이 웨치며 달려드는 원쑤의 면상을 맞받아 던지였다.

그와 동시에 원쑤들이 란사하는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리였다.

그 총소리에 뒤섞이여 그의 만세소리가 온 산중에 울렸다.

리신금동지는 이렇게 자기의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바쳤다.

신금동지의 이러한 열화같은 혁명적열정과 투쟁에서의 고귀한 희생성은 그후 무장투쟁과정에서 어느 때나 우리에게 크나큰 고무로 되였었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날과 더불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전사였던 신금동지의 모습은 더욱더 생생하게 우리에게 안겨오고있으며 그가 지녔던 숭고한 정신은 오늘 번영하는 조국의 품에서 헌신하고있는 우리의 가슴속에서 드높이 고동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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