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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5.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 - 리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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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18 08:02 조회2,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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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

리  명  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르며 잊혀지지 않는 1937년에 겪은 일들을 더듬어보게 된다.

(1)

락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10월말이였다. 그때 나는 조선인민혁명군 제2사 정치위원이 책임지고있는 소부대에 속하여 화전현 이도록하일대에서 활동하고있었다.

우리는 모두 20명이였는데 그중에는 녀동무도 2명 있었다. 우리 소부대에 맡겨진 임무는 무송, 화전지방을 류동하면서 정치공작을 진행하는 한편 무송현 삼도하자막치기에 자리잡고있는 후방밀영성원들의 월동용 식량과 피복을 사들이는 일이였다.

우리의 사업은 어려운 형편에서 진행되였다.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의 혁혁한 승리로 하여 적들은 극도로 당황하였고 이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최후발악을 다하던 시기였다. 놈들은 장백, 무송일대에도 집단부락을 강제로 설치하였고 유격대에 대한 계속적인 《대토벌》작전을 감행하여나섰다. 적들은 이처럼 군사경제적인 《봉쇄》로써 조선인민혁명군과 인민들의 련계를 단절시키려고 발광하였다. 심지어 적들은 유격대의 그림자만 보았다 해도 피눈이 되여 집요한 추격전을 서슴없이 감행했다.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의 소부대공작원들앞에는 많은 난관들이 조성되였던것이다. 식량을 구할길이 없어 며칠씩 굶지 않으면 안되였고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은 지칠대로 지쳤다. 그중에서도 제일 어려운것은 적들의 집요한 추격과 포위속에서 벗어나는 일이였다.

우리들은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이런 난관들을 뚫고나가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그리고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려고 지혜를 짜고 힘을 모았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화전현지방의 일부 지방조직원들과 비밀리에 련계를 맺을수 있었고 그들을 통하여 구입한 적지 않은 피복이며 식량들을 비밀장소에 매몰할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우리는 이도록하의 수림속을 행군해가다가 독립가옥을 발견했다. 독립가옥앞에 우뚝 솟은 둔덕우에 보초를 파견한 정치위원동무는 우리들에게 휴식명령을 내렸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휴식이였으므로 우리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지친 다리를 폈다.

어떤 동무들은 방안에 들어가서 어느새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나는 당시 정치위원의 련락병이였으므로 그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어서 휴식하기만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정치위원동무는 좀처럼 쉴 차비를 하지 않았다. 그는 대원들이 피곤한 몸을 펴고 잠잠해졌을무렵에야 나에게로 조용히 다가와 《명선이도 눈을 좀 붙여야지.》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네.》하고 대답한 나는 정치위원동무가 어서 자리에 눕기만 기다리였다.

그러나 그는 달콤하게 잠자는 대원들의 모습을 한참동안 살피고 서있더니 이윽고 나에게로 눈을 돌리며 갈길이 먼데 걷자면 잠시라도 몸을 쉬여야 한다고 하면서 나를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야말았다. 그리고 자기는 집울안에 열린 떡호박을 따기 시작하였다.

대원들을 위하는 정치위원동무의 그 뜻에 감동된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함께 호박을 따서 가마에 삶았다.

아궁앞에 앉아 불을 지피면서 그는 나에게 떡호박의 맛을 아는가고 물었다. 나는 그전에 먹어본 일이 있으므로 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서 무척 단 음식이라고 하였다. 푸짐히 삶아진 떡호박은 여간만 구미를 돋구는것이 아니였다. 나는 정신없이 곤히 잠자는 동무들을 향해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잠에 취했던 동무들이 이 소리에 화닥닥 일어나 어느새 출발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은 삶은 떡호박을 먹으라는것인줄 알자 의아한 눈초리로 정치위원동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마침내 벙글거리며 무어라고 한마디씩 하고는 한자리에 빙 둘러앉았다.

우리가 푸짐한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때 수림속의 정적을 깨치는 요란한 총성이 울리였다. 우리 보초가 적정을 알리는 총소리였다.

우리는 급히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사태가 험악하다는것이 짐작되였다. 사방에서 자지러지는 총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생포해라.》라는 놈들의 괴벽한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던것이다. 우리는 집벽들을 의지하여 잠시 적정을 살피였다. 이때 《유격대의 불벼락을 받아라.》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분노와 격분에 떨리고있었다. 보초를 서던 달성동무의 목소리였다.

적들은 이날 울창한 나무숲에 숨어 보초가 모르게 우리의 턱밑까지 기여들수 있었다.

그리하여 때늦게 적을 발견하게 된 달성동무는 총성을 올리여 우리에게 신호한 다음 적을 유인하면서 집 반대쪽으로 달리였고 원쑤를 무찔러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적들은 우리가 들어있는 독립가옥을 포위하고 일체 화력을 집중했다. 적탄이 비발치듯 날아들었다. 우리 전우들의 눈에서는 불꽃이 타번지는듯 했다. 우리는 치렬한 화력전을 전개하면서 구들장을 뜯어 의지할데를 구축했고 어떤 동무들은 집주위에 움푹 패여진 물홈에 뛰여들어 결사전을 했다. 적들은 몇백명에 달하였다. 그놈들에게는 기관총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한놈의 적이라도 더 많이 잡아야겠다는 일념뿐이였다. 적들은 우리의 불벼락앞에 무더기로 쓰러지군 했다. 그러면서도 간악한 원쑤들은 자기들의 시체를 넘어 검질기게 달려들었다.

우리의 전우들도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였다.

그들은 《동무들, 끝까지 싸워달라.》,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
한 녀성동무는 최후의 순간에 《녀성해방 만세!》를 목이 터지라 불렀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가슴은 끓어번지였고 동지들과 혁명의 이름으로 저주로운 원쑤들을 반드시 복수하리라는 일념에 불탔다. 어떤 동무들은 피흐르는 가슴팍에 수류탄을 품고 적진속에 뛰여들어가 복수의 불벼락을 터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그때의 준엄하고 비장한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뜨거워진다.

전투는 낮 12시경부터 시작되여 저녁 5시경까지 계속되였다. 적들도 과반수가 녹아나자 살아남은 놈들은 기세가 꺾이여 허우적이였다.

《돌격하라!》고 소리치며 발악하던 일본지도관놈도 입에 거품을 문채 어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그때 우리는 20명중 8명밖에 남지 않게 되였다. 싸우는 우리 전우들의 눈들에서는 원쑤에 대한 증오와 격노의 불꽃이 이글거리고있었다. (죽더라도 원쑤를 갚고야 죽으리라, 피값을 하리라.) 이렇게 우리는 결의를 다지면서 한알의 총알이라도 헛되이 쏘지 않았다. 이러한 순간이였다. 머리에 부상을 당한 한 동무가 구들장밑에 엎디여 싸우다가 피흐르는 머리를 뒤로 돌리며 띠염띠염 호소하듯 말했다.

《정치위원동무, 우리에게는 지금 탄알이 떨어져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총창으로써 포위망을 뚫으렵니다.》하고는 정치위원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키는것이였다. 이윽고 그는 동지들을 향하여 《우리에게는 죽음도 투쟁이다. 삶도 투쟁이다. 우리 5명은 삶의 길을 뚫는 전위대가 되자. 세진동무와 명선동무는 정치위원동무를 위험속에서 구출해달라.》라고 말했다.

그 엄숙한 부탁을 들으며 우리는 서로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조국을 찾자는 슬기로운 뜻을 간직하고 우리는 오늘까지 싸우고 싸워왔다. 그러던 우리 전우들이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부닥치자 한사람이라도 살아남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굳은 각오를 가슴에 품고 서슴없이 죽음의 길, 투쟁의 길을 택하였다.

정치위원은 억제할수 없는 의분을 누를길없어 《동무들의 심장은 조국의 심장이다. 우리는 마지막순간까지 그 심장, 그 량심대로 싸웁시다.》고 말하고 싸창을 든 손을 높이 추켜올리며 결연히 방안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5명의 전우들이 《정치위원동무.》하고 부르며 그의 앞을 막아서더니 《꼭 살아주십시오.》하는 마지막 부탁을 남긴채 총창을 번뜩이며 적진속으로 뛰여들었다. 원쑤들의 주목이 그들에게 집중되는 틈을 탄 우리들은 정치위원동무와 함께 피눈물을 삼키면서 독립가옥 뒤산등으로 뛰여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적탄은 우리들이 뛰여오르는 산릉선의 풀뿌리들을 뒤집어엎으며 기승을 부렸다. 산중턱에서 세진동무가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정치위원동무는 그를 부둥켜안고 《세진아, 세진아.》라고 목메여 부르고있었다.

세진동무는 자기의 싸창을 정치위원에게 내맡기며 《원통합니다. 원쑤를 갚지 못하고 죽는것이 원통합니다. 이 총으로 원쑤를 갚아주십시오.》하고 그만 숨을 거두었다.
적들은 우리를 생포하라고 웨쳐대며 집요하게 추격해올라왔다. 놈들은 벌써 200m 가까이에 접근하고있었다.


이 위급한 시각에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우들의 부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위원동무를 위험속에서 구출해야 한다. 이제 그를 보위할 사람은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한시라도 지체할수 없다.)나는 그 자리를 차마 못떠나는 정치위원을 재촉하여 가파로운 산판을 톺아올랐다. 숨이 목에 닿는것 같았다. 산마루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또 비통한 일이 벌어졌다. 정치위원이 적의 흉탄에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정치위원동무.》나는 그를 부축하며 다급히 불렀다. 그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추격해올라오는 적들을 저지하면서 그를 껴안고 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정치위원은 완강히 거절했고 나에게 타이르듯 말하는것이였다.

《명선이, 내 걱정은 마오. 동무만은 살아 돌아가야 하오. 혁명가는 그 어떤 난관앞에도 주저앉을 권리가 없소. 뜻을 굽히지 말고 끝까지 싸워주오. 나는 승리한 그날을 보지 못하고 죽지만 명선이는 그날을 반드시 볼것이요.》

나는 정치위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속으로 마음다졌다. (내 혼자 살아서는 무엇하랴. 정치위원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 마음을 알아차린 정치위원은 엄격히 말했다.

《명선이는 가야 하오. 그리고 우리 소부대가 해놓은 사업에 대하여 부대에 보고해야 하오. 여기서 싸우다 죽기는 헐하지만 부상을 당한 동무가 적의 추격을 받으며 살아서 돌아간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요. 혁명가는 어려운 난관앞에서 물러서서는 안되오. 혁명을 위하여 동무는 우리 소부대전체를 대신해서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하오.》

그리고 그는 자기 손에 쥐였던 싸창 2정을 내 손에 쥐여주고나서 눈을 감았다. 전우들이 다 희생되고 마지막으로 그처럼 믿어오던 정치위원까지 잃었다. 이때 나의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나는 정치위원의 마지막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적들의 화력이 다시금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먼지를 일으키는 탄우속을 뚫고 달려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산등성이 턱밑에서 그만 기관총탄에 맞아 복부와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나는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했고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것이다.

나는 가까스로 산마루에 올라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산을 내리달리다가 벼랑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는 가랑잎들이 쌓인 웅뎅이에 박혀있었다. 옆에는 쓰러진 참나무가 가로놓였는데 잡목들이 빼곡이 들어선 언덕배기는 어둑어둑했다. 어디선가 적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핏 피묻은 흔적이 나지 않았는가 념려되여 언덕 웃쪽을 살폈다. 다행히 피흘린 흔적은 없었다. 상처를 어루만져보니 옷이 축축했다. 나는 각반을 풀어 우선 상처를 동여매였다. 그리고나서 넘어진 참나무밑에 들어가 락엽으로 몸을 가리웠다.

이윽고 적들은 내가 숨은 옆을 지나 산기슭으로 내려갔다. 한 50명가량 되여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은 무어라고 지껄이며 되돌아 올라왔다. 놈들은 내가 숨어있는 참나무주변에서 휴식하려들었다. 나는 싸창을 틀어잡은채 놈들의 동태만 살폈다.

담배를 붙여물고 진대나무우에 걸터앉은 적장교놈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참나무뿌리의 흙덩이들이 가랑잎우에 떨어져 부스럭소리를 내였다. 그 소리에 질겁한 그놈은 노루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격으로 《이건 또 무슨 소리야.》하며 사방을 두루 살폈다. 옆의 놈들이 무어라고 쑹얼대자 그제야 그놈은 낯을 찡그리며 《제길. 그놈이 어느 때든지 뒈지긴 뒈질거야.》하고 뇌까렸다. 이때 나는 속으로 (네놈들을 쳐부시기전에는 절대로 나는 죽지 않을것이다.)라고 소리쳤다.

나팔소리가 울리자 적들은 이리떼 몰려가듯 사라져버렸다. 그날밤 달이 떴다. 달빛이 나무잎들사이로 흘러내리고있었다.

그것을 벼랑턱 웅뎅이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의 눈앞에는 전우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리여 견디기 어려웠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벼랑우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길로 나는 희생된 전우들의 시체를 찾아보았다. 정치위원동무와 세진동무의 시체를 발견한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듯 했다. 그들의 시체를 그러안고 나는 피눈물을 흘렸다.

코를 찌르는 연기내가 산등판에 자욱했다. 간악하기 그지없는 원쑤들은 나머지전우들의 시체를 집안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던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승보다도 더한 악귀같은 이놈들아, 내 살아있는 한 네놈들을 그냥 둘줄 아느냐. 내 피의 마지막 한방울이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네놈들을 찌르고찔러서 죽이고야말리라.)

이처럼 결의를 다지고다진 나는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주변의 가랑잎을 그러모아 두 전우의 시체를 덮어주었다. 그랬어도 차마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나는 한잎이라도 더 많이 가랑잎을 모아서 전우들의 시체우에 덮어주었다.

쩔룩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나의 마음은 오로지 복수의 일념에 사무칠뿐이였다.
그렇다. 복수의 길을 향하여 나는 가야 하였다.

(2)

목적지까지 기어이 가기 위하여 나는 참나무가지를 꺾어 지팽이를 만들어 짚으며 한걸음두걸음 발길을 더듬어나갔다. 이 밤중으로 내가 가야 할 곳은 고령감의 집이다.

그는 우리와 련계를 맺고있는 로인이였다. 그 집까지는 10리가 잘되였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밝기전에 그 집까지 가닿을 작정으로 더딘 걸음이지만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나 평탄한 길도 아닌 산판을 걸어가자니 마음과는 달리 길이 전혀 축나지 않았다. 온몸을 쑤시는 상처의 아픔도 참아내기가 곤난했다. 그렇지만 이런것은 문제가 아니였다. 참을래야 참을수 없는것은 목이 마른 그것이였다. 목에서 불이 일고 쇠내가 입에서 풍겨나오는듯 하였다. 나는 너무도 목이 마르므로 손에 휘여잡히는 나무가지를 꺾어 거기서 방울지는 즙물을 감빨군 했다. 물기를 맛보니 더욱 참기 어려웠다.

나의 발길은 저도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골짜기를 찾아 옮겨가고있었다. 바람소리며 밤새소리가 모두 물흐르는 소리 같았고 내리비치는 달빛마저 여울물로 여겨졌다. 실로 갈증은 참기 어려웠다. 나는 이때 《물. 물.》하고 헛소리처럼 정신없이 중얼거리며 산비탈을 내려가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정말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부리에 채워 엎어지기도 하고 딩굴기도 하면서 물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다.

시내가에 다달은 내가 엎드려 물에 입술을 대는 그 순간이였다. 나의 머리를 무섭게 때리는것은 물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였다. 이때 나의 눈앞에는 지난날 부상을 입은 전우들이 갈증을 참지 못하여 물을 마시고 귀중한 목숨을 잃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던것이다.

나는 입안의 물을 도로 뱉고 몸을 일으켰다.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나는 이 말을 몇번이고 되뇌이며 두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며 물가에서 물러났다.

내가 비틀거리며 고로인의 초막집에 당도한것은 밤이 어지간히 깊어서였다. 닫혀있는 초막문을 두드리던 나는 힘이 진하여 그만 쓰러지고말았다. 고로인은 나를 방안에 업어다 눕히고나서 흔들어깨웠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어찌된 일이냐고 놀라와했다.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수 없어 혼자 공작을 나왔다가 이렇게 되였다고 대답할수밖에 없었다.

상처가 위급하다는것을 직감한 그는 아편을 상처에 붙이고 단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찢어 싸매주는것이였다. 그리고나서 로인은 남비, 좁쌀, 기름 등을 광주리에 담아들고 나를 부축하면서 집을 나섰다.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다가 한곳에 이르니 초막이 나타났다. 로인은 나를 초막에 눕히고 불을 지폈다. 나는 고로인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이 초막에서 며칠을 묵게 되였다. 고로인은 나를 친자식처럼 위해주며 상처를 돌보아주었다.

그는 50이 넘도록 장가도 못든 가난한 로인이였다. 원래 이 로인은 지주의 머슴살이에 진절머리가 나서 인가를 등지고 이 산간에 들어와있었다. 그간 우리와 련계를 맺은것은 얼마전의 일이였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로인에게는 완벽한 고집이 있었다. 멸시만 받아온 그는 사람을 사귀려들지 않았다. 로인의 이러한 비뚤어진 옹고집을 바로잡으려고 우리 유격대공작원들은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던것이다.

한번은 내가 로인에게 나의 가족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가까운 일가중에서 혁명대오에 13명이 참가했는데 그중에서 지금 살아남은것은 나하고 삼촌뿐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들은 고로인은 매우 흥분되여 나의 손을 덥석 잡더니 《당신은 바로 그런 사람이였구만.》하고 눈물이 글썽해지는것이였다.

고로인의 지성어린 구완으로 나의 상처는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자리에 누워있는것이 마치 바늘방석에 누운것 같았다. 10일이면 돌아가기로 부대와 약속한 기일이 되였기때문이였다.

나는 로인에게 밀영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로인은 펄쩍 뛰면서 지금 《토벌대》들이 사방을 싸다니는데 성한 몸도 아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어찌 그런 엄두를 내는가고 하며 몹시 나무라는것이였다.

로인의 심정은 충분히 짐작할수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서 밀영으로 가야할 중대한 임무가 있으므로 한번 다진 마음을 돌릴수는 없었다.

《로인님마음을 몰라서 그런건 아닙니다. 그러나 벌써 부대로 돌아가야 할 날자가 지나서 그럽니다. 물론 힘들긴 하겠지만 혁명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물불을 가릴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런 대답을 듣고나서야 로인은 나를 더 나무라지 않게 되였다.

후방밀영이 있는 무송현 삼도하자의 막치기까지는 100여리가 훨씬 넘었다. 그리로 가자면 강을 건너야만 했다. 고로인은 나를 이 강까지 넘겨주고 돌아가겠다고 하며 나의 뒤를 따라나섰다. 강언덕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지팽이에 의지하여 걷는 나의 발걸음은 빠를리 없었다. 우리는 저녁무렵에야 겨우 떼목가에 도착했다.

떼가 강기슭에서 미끄러져나가는 바로 그때였다. 강굽인돌이를 주시하던 나는 흠칫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토벌대》놈들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약 300m가량 되는 산모퉁이를 감돌아내려오는중이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로인은 나를 업고 물에서 첨벙거리며 강기슭으로 달려나왔다. 우리를 발견한 《토벌대》놈들은 고함을 치고 총질을 하며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둘 다 놈들에게 붙잡힐 우려가 있었다. 그러자 로인은 나를 강기슭에 있는 소나무숲속에 내려놓으며 《내가 달려가면 적들은 그리로 쫓아올테니 당신은 여기 숨어있소.》하고는 강을 따라 아래쪽으로 몸을 피했다.

나는 소나무가지들을 꺾어가지고 바위틈에 몸을 숨기며 위장을 했다. 적들은 내가 숨은 바위옆을 지나 로인의 뒤를 쫓아 내려갔다. 자지러진 총소리들이 강변을 온통 뒤집는것만 같았다. 그 소리에 나의 가슴은 죄여들기만 하였다. 원쑤를 족칠수 없는 처지에 놓인 나는 로인이 무사하기만 바랐다.

캄캄한 밤이였다.

바람에 소나무숲이 우는 소리와 강물흐르는 소리는 여전히 소란했다. 나는 바위틈에서 기여나와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조심스레 그 로인을 몇번이고 불러보았다. 그러나 물소리와 바람소리뿐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로인이 잘못된듯 싶어 나는 치가 떨리고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였다.

나는 강을 따라내려가며 소나무숲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기척은 찾을길이 없었다. 숲속을 뒤지기에 지친 나는 다시 떼목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그 지점에 거의 이르러 나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삽을 어깨에 멘 륜곽으로 보아 고로인이 틀림없었다.

《아바이.》하고 내가 로인을 부르자 그는 선자리에 못박혀있었다. 그는 내가 죽은줄만 알았다는것이다. 그런 몸으로 살아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었다는것이다. 그래서 나의 시체라도 찾아내여 묻으려고 집에 들어가 삽을 가지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로인은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로인은 나의 등을 어루만지며 《김일성장군님의 유격대는 강철과 같다.》라고 몇번이고 외우는것이였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당신의 사상은 강철과 같다.》라고 하였고 구국군 같았으면 벌써 투항한지 오랬을것이라고 말했다.

로인은 그길로 자기 집으로 뛰여가 도끼를 들고왔다. 떼를 뭇자면 나무를 찍어야 했기때문이다. 저녁에 있던 떼목은 강물에 떠내려가고 없었던것이다.

로인은 땀을 철철 흘리며 강기슭의 소나무를 찍어서 떼를 무었다. 몸을 쉬여가면서 하라고 했지만 그는 지금 그럴 짬이 없노라고 하면서 쉬임없이 떼를 뭇기만 했다. 로인의 그 모습이 지금도 내 눈앞에 선하다.

우리는 날이 새기전에 떼를 무어타고 강을 건너 안전한 수림속에 가닿을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고로인과 헤여졌다.

단 하루라도 함께 걷자는것이 로인의 마음이였다. 그러나 심히 쇠약해진 로인의 귀중한 몸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할수 없는 일이였고 또한 나혼자서도 갈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 헤여지기를 극력 주장했던것이다.

내가 쩔룩거리며 수림속을 멀리 사라질 때까지 로인은 이마에 손을 얹고 흰머리칼을 바람결에 날리며 나의 앞길이 무사하기를 념원해마지 않는것이였다.

(한평생을 학대와 고역으로 살아온 로인,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모르고 암담한 그늘밑에서 지난날을 보내온 불쌍한 아버님, 부디 오래오래 살아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다시 목적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다그쳤다.

(3)

고로인과 헤여져 목적지까지 이르는 동안의 가지가지 일들을 일일이 다 이야기할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는 그동안에 내가 겪은 몇가지만을 적는데 그치려고 한다.

혼자 남은 나에게는 무기와 아편, 봇나무껍질에 싼 딱성냥 그리고 1kg가량 되는 강냉이떡 한덩이가 있었다. 이것을 가지고 나는 100여리를 가야 했다. 처음 며칠동안은 하루에 쉬염쉬염 10리도 갔고 5리남짓이 간 날도 있었다. 그러던것이 사흘이 지나자부터 몸이 천근같이 무거워만 지더니 점점 날이 갈수록 상처의 아픔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나는 아픔이 혹심할 때마다 아편을 조금씩 먹기도 하고 상처에 붙이기도 하였다.

이를 악물고 며칠동안은 이렇게 걸어갈수가 있었으나 그것도 한도가 있었다. 나는 걸을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기기 시작하였다. 길없는 길을 헤치며 산길을 기여간다는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였다.

여러날을 이렇게 기고보니 두무릎이 온통 벗겨져 벌겋게 살이 드러나고 피가 흘렀다.

나는 피나무껍질을 벗겨 그것으로 무릎을 감싸고 또 기군 하였다. 이렇게 피나무껍질을 갈아대며 나는 필사적으로 한치한치를 기고 또 기여나갔다. 온종일 기여서 1km를 가면 다행이였고 어떤 날은 벼랑진 산언덕을 톺아오르다가 낭떠러지아래로 굴러떨어져 그자리에서 안타까이 뭉갠 일도 있었다. 먹을것이란 강냉이떡 한덩이가 있었는데 그것도 10여일을 조금씩 뜯어먹고나니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될수록 아끼면서 풀잎이나 나무열매 같은것으로 끼니를 에우군 하였다.

하루는 수림속을 기여가다가 버섯따는 사람들이 지은듯 서까래 4개를 마주 무은 다 허물어져가는 초막 하나를 발견했다.

초막안에 들어선 나는 잠시 누워있었다. 그런데 이때 못견디게 오한이 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일어나서 주변에 널려있는 마른 나무가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쉴바에는 우등불도 피우고 불이나 뜨뜻이 쪼이며 쉬여가자는 생각에서였다.

빠작빠작 타오르는 우등불곁에서 나는 지친 몸을 쭉 펴고누웠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한 나는 싸창 한자루를 손에 쥐고 다른 한자루는 옆에 놓고 누웠다.

막상 잠을 청하려드니 온몸을 쑤시는 아픔으로 눈을 붙일수 없었다. 신음소리를 내지 않자고 입을 악물어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또 아편을 먹었더니 잠이 들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내가 숨막힐듯한 불기운에 놀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초막이 온통 불속에 싸여있었다. 우등불의 불꽃이 튀여 초막에 불이 붙었던것이다.

불밖으로 기여나온 나는 옷에 붙은 불을 끄려고 땅바닥에 딩굴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불기운이 살에 닿을 때마다 숨이 칵칵 막히였다. 나는 혀를 가로물고 그냥 딩굴면서 불을 껐다.

불을 끄고나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기 하나는 내 손에 쥐여져있었으나 다른 무기가 불속에 잠겨있기때문이였다. 나는 생각할 여지없이 다시 불속에 뛰여들었다. (그게 어떤 무기냐. 혁명동지의 숭고한 념원이 담긴 무기이다.) 이 한가지 생각으로 불속에 뛰여들어가 그 무기를 찾아가지고 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육체의 고통보다도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고난의 나날은 다시 흘렀다. 불에 타번지여 걸레처럼 된 옷을 몸에 대수 걸치고 산속을 기여가는 나에게 있어 가장 안타까운 문제는 두손에 입은 화상이였다. 다른곳에 입은 화상이라면 얼마든지 견디여낼수 있었으나 손바닥을 데였으니 그런 손으로 어떻게 기여갈수 있었겠는가. 앞을 내짚으며 기여나갈 때마다 나는 뼈속을 에여내는듯한 아픔을 느끼군 했다. 그렇다고 하여 가만히 앉아 있을수도 없는 형편에서 나는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기여보자는 결심밑에 전진을 계속했다.

고로인과 헤여진지 20여일만에 나는 겨우 무송현 삼도하자어귀의 등판에 당도했다. 실로 가깝고도 먼길이였다. 이곳은 지난날 우리 유격대의 밀영이 있었던 곳이여서 쓰러져가는 몇개의 초막과 우등불을 피었던 자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이곳에서 목적지인 밀영지까지는 아직도 50리를 더 가야 했다. 그러나 이곳까지 와서 나는 힘이 진하고말았다. 정신은 똑똑한데 몸을 움직일수 없었다. 거기에 유일한 식량이던 강냉이떡마저 떨어지고보니 좀체로 맥을 추세울수 없었다.

11월의 동북추위는 보통이 아니였다. 더우기 산속인데다가 입을것을 못 입은만큼 나에게는 이 역시 곤난이 아닐수 없었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더 기여갈 생각을 못하고 잔디밭우에 누워있었다. 맑은 하늘을 쳐다보는 나에게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고향생각도 났고 어머니, 아버지생각도 났다. 그리고 일편단심 혁명을 위하여 싸우다 희생된 가족들의 모습들이며 《네가 나갈 길은 한길뿐이다. 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는 길이다.》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주름잡힌 얼굴모습도 눈앞에 선히 안겨오는것이였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는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고 놓지 않은것은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혁명동지들에 대한 생각이였고 고로인에 대한 생각이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뜨거워지기만 하였다.

그리고 밀영에서 안타까이 소식을 기다리고있을 전우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더구나 일제놈들을 더 잡지 못하고 혁명의 길에서 잠시라도 물러서게 된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통분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지쳐서 누웠다가 혹 놈들에게 발견이라도 된다면 어찌하랴싶어 나는 몸서리쳤다. 그것은 바로 적들앞에 무릎을 꿇는것이며 또한 혁명을 배반하는 길이 아닌가. 차라리 그럴바에는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기만 못하지 않는가.

허지만 다음순간 나의 눈앞에는 정치위원동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의 이런 말소리가 귀가에 들려오는듯하였다.

《혁명가는 난관앞에서 물러서서는 안되오.》

나는 주먹을 부르쥐고 일어나보려고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마음뿐이지 옴짝할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참으로 나는 미칠것만 같았다.

나는 앞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았다.

(…역시 인젠 별수 없구나, 이러다 적들에게 잡히기보다는 차라리…)

이리하여 나는 있는 기운을 다하여 우등불을 피웠던 자리에서 숯검덩이를 얻어쥐였다. 그리고 초막기둥에다 글을 썼다.

《우리 동무 20명은 모두다 용감히 싸웠다. 나는 밀영지를 찾아오다가 여기서 죽는다. 이 원쑤를 갚아달라. 1937년 11월 리명선.》

이것이 나로서는 혁명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싸창 하나만 남기고 다른 한자루는 칼로 땅을 뚜지고 파묻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땅바닥에 누운채로 싸창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때의 내 심정을 어떻다고 말했으면 좋으랴. 슬펐다고 할가, 두려웠다고 할가, 미칠듯한 마음이였다고 할가.…

모진 마음을 먹고나니 나는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였다. 나는 그때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마음으로 푸른 하늘이며 설레는 숲을 다시 바라다보았다. 나는 이때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처럼 주위의 풍경에 심취되여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조국땅의 포근한 품에 영원히 안기는듯한 그러한 마음, 그러한 감회속에 잠겨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총부리를 이마에 가져다대였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후의 일을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의식을 회복하였을 때는 아침해살이 나무숲사이로 비단결처럼 흘러들고있었다. 나는 지난 일을 곰곰히 마음속으로 더듬어보았다. 모진 마음을 먹던 일이 기억되자 나는 소스라쳐놀랐다. 그 순간 나는 손에 그대로 쥐여있는 싸창을 발견하였다. 전신은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괴이한 생각이 든 나는 싸창의 격발기를 당기여 퇴탄해보았다. 불발탄이였다. 무기를 지니고 기여오기도 하고 물을 건느면서 딩굴다보니 습기로 말미암아 탄알에 녹이 쓸었던것이다.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 혁명의 길에서 물러설수는 없다.》

나는 이때처럼 생에 대한 애착을 억세게 느껴본적은 일찌기 없었다.

이런 생각은 살아서 싸우는 어려운 길을 버리고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한 나자신을 뉘우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느냐, 혁명앞에, 인민앞에, 선렬들의 고귀한 이름앞에 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을 저질렀느냐.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이에 대하여 뉘우쳤으며 눈물을 흘리였다.

살아서 끝까지 싸우기 위해서는 먹을것을 구해야 했다. 내가 도랑물을 찾아낸것은 그날 저녁무렵이였다. 어떻게 도랑물이 흐르는곳까지 기여갔는지는 잘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물속에 들어가 가재를 잡아냈고 그것을 날것으로 혹은 불에 구워서 먹었다.

그날밤은 도랑물가의 참나무곁에서 잤다. 날이 밝을 무렵이였다. 나무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얼핏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노루 3마리가 나있는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2마리는 새끼노루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할것인가? 저것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그놈이 달아날수 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그러나 눈만은 가늘게 뜨고 노루가 오는쪽을 주시했다. 드디여 노루 3마리가 내가 누워있는 참나무곁을 지나려고했다. 순간 나는 두손으로 한놈의 노루다리를 끌어잡았다. 새끼노루였다. 내 손에 붙잡힌 새끼노루는 손에서 빠지려고 죽을듯이 날치였다. 잘못하다가는 놓칠것 같았다. 어떻게나 버들쩍거리고 뒤트는지 나는 그놈에게 끌리여 퍼그나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는 노루와 죽기내기로 싸웠다. 노루란놈은 내 손에서 빠져나려고, 나는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러다가 내가 허리에 찼던 치도로써 그놈의 엉치를 쿡 찔렀을 때야 노루는 비칠거리였다. 나는 우선 급한김에 엉치살을 날것으로 베여먹었다.

《노루야 고맙다. 네가 나를 살려주는구나.》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기를 씹어먹느라니 빈속이라 이내 취했다.

다음날부터 노루고기를 조금씩 구워먹으며 다시금 앞으로 기여나갈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목적지까지 20여일간에 걸친 이야기는 그만두겠다.

나는 다만 난관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신심을 잃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혁명가는 그 어떤 난관앞에도 주저앉을 권리가 없다고 하던 정치위원동무의 말을 상기하면서 고로인과 헤여진지 47일만에야 드디여 목적지인 삼도하자 막치기에 자리잡은 밀영지까지 이를수 있었던것이다.

삼도하자 막치기의 산등성이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나무도 돌도 우물가로 내려가는 오솔길도 모두가 낯익은 옛친구마냥 나를 반겨주는듯했다.

《내 이곳을 잊지 못하여 오늘 다시 여기로 찾아왔노라.》고 골짜기가 떠나가게 목청껏 웨치고싶었다. 몸은 비록 볼꼴없이 되였으나 의지와 량심을 굽히지 않았으니 그 보람이 컸다. 나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밀영지의 귀틀집에로 갔다. 그런데 귀틀집은 비여있었다. 서운하고 억울하고 목이 메였다. 나는 나머지귀틀집들을 모조리 돌아보았으나 모두다 텅텅 비였다. 그런데 한집의 부엌에는 가마 하나가 걸린채로 있었다. 나는 그 방의 구들을 만져보았다. 온기가 있었다. 집을 비운지 며칠 안되는것이 분명하였다. 여기서 희망을 잃지 않은 나는 우리가 있을 때 묻어두었던 감자움에로 기여갔다.

움에는 감자가 얼마간 있었다.
(이것을 가지러 언제든지 오긴 오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나는 감자알을 몇알 쥐고 귀틀집에 들어와 그것을 가마에 넣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 나는 방안에 들어가 누워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부대에서는 약속한 날자가 지나도록 우리가 돌아오지 않으니 필경 잘못된것으로 알고 밀영을 딴데로 옮기는중이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었다. 나는 잠결에 《딱.딱.》하고 나무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암호였다. 나는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고 문턱으로 기여나가며 그게 누구냐고 고함쳤다. 그러나 모기소리만 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들을리 만무했다.

저쪽에서 《어느 부대냐?》하고 물어왔을 때야 나는 그 소리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수 있었다. 우리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정아바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기뻤고 다만 기뻤으므로 달려드는 전우들의 품에 안기여서도 아무 말을 못하였다. 나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다.

그날밤 전우들은 나를 에워싸고 앉아있었다. 정아바이는 목메인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명선이가 이렇게 살아와서 그 사람들의 뜻을 전해주니 더 할말이 없네.

우리는 울지 않을것일세. 우리는 힘을 놓지 않을것일세.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불보다 뜨겁고 철보다 굳센 애국의 량심과 혁명의 절개를 넘겨주었네. 우리는 그 량심 그 절개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조선이 광복될 때까지 굴함없이 싸워나갈것일세.》

한 녀동무는(재봉대원) 자기 남편인 정치위원의 무기를 받아쥐고 울음을 터치였으며 흐느끼면서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운다고 저를 욕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알고있어요. 울음으로써는 이 원한을 풀수 없다는것을 …저는 남편의 원쑤를 갚고야말겠어요. 전우들의 원한을 풀어주고야말겠어요. 저는 이것을 동무들앞에 굳게 맹세해요.》

우리들은 모두 원쑤를 갚고, 조국을 찾기 위하여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살아서 끝까지 싸우리라는 가장 엄숙한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리하여 준엄한 그해의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의 새봄을 맞이한 우리는 복수의 길을 찾아 싸움의 길로 나아가게 되였으며 1938년 8월 그렇게도 그립고 뵙고싶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의 참다운 뜻을 투쟁을 통하여 알고있습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허물래야 허물수 없는 이 신념의 길을 따라나가기때문에 반드시 승리할수 있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 가리키신 그 길을 따라 조국이 광복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일심전력 굴함없이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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