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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4. 간삼봉전투를 회상하여 - 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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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16 12:02 조회2,3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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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삼봉전투를 회상하여

최 현


항일무장투쟁시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진행된 수많은 전투들가운데서도 1937년 6월 30일에 있은 간삼봉전투는 바로 몇해전 일마냥 나의 머리에 생생히 떠오른다.

보천보전투가 있기 얼마전 우리 제4사부대들은 두만강을 건너 무산지구에 진출하여 일제군경놈들에게 타격을 주었다.

우리들의 이와 같은 국내진출은 1937년 3월 양목정자밀영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주신 전투과업수행과 관련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이미 국내진출에 대한 전략적계획을 제시하시고 우리 부대를 무산지구로 진출하게 하시였다.

이와 함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 진출하면 일제놈들이 더 발악적으로 덤벼들것을 미리 타산하시고 놈들을 격파하기 위하여 제2사부대와 제4사부대로 하여금 곰의골밀영에 집결할것을 지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신 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그렇듯 흠모하여마지않던 그이의 곁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우리의 발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벌써 멀리 곰의골밀영에 가있었다.

우리들이 목적지에 도착한것은 6월하순이였다. 밀영에 도착하던 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친히 밀영어귀까지 나오시여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밀영지에 도착한 이튿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제6사, 제4사 제2사부대의 지휘간부들의 회의가 있었다.

나는 이 회의를 통하여 보천보전투에서 패배의 쓴맛을 본 적들이 참패를 만회하고저 《대토벌》을 작전하고있다는것과 바로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이미 얻은 승리에 자만하지 말고 놈들의 발악적인 기도를 분쇄하기 위하여 력량을 집결해가지고 적극적인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것을 잘 알게 되였다.

회의가 끝난 후 2~3일이 지나서 밀영에 집결된 각 부대에는 출발명령이 하달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600여명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서강고원 간삼봉지역에 도착하였다.

당시 일제는 보천보전투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기 위한 소위 《대토벌》을 서둘렀다.

중국동북에 주둔하고있는 부대들로써는 도저히 조선인민혁명군에 맞설수 없다는것을 보천보와 구시산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을 통하여 톡톡히 맛본 일제는 라남 제19사단소속 함흥 74련대의 2,000여명의 정규군을 동원하였다.

일제의 주구인 김석원이란자가 인솔한 74련대는 근 100대에 가까운 트럭에 나누어타고 혜산과 신갈파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다.

김석원은 혜산에서 《대일본제국군인의 전투적기개를 보여준다.》고 호통을 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뒤따라 간삼봉방향으로 행동을 개시하였다. 간삼봉은 바다속의 섬과도 같이 태고밀림이 우거진 평평한 고원지대에 솟아있는 3개의 봉우리로 되여있다. 6월 30일 새벽 사령부는 보초로부터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를 받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곧 간삼봉지역에서 적을 섬멸할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세우시고 산아래 경사진 릉선에 각각 부대들을 배치하시였다.



우리 제4사부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휘하고계시는 고지가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손등같이 생긴 밋밋한 밀림지대 릉선 서남방향에 진지를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활한 지휘밑에 적을 삽시간에 섬멸할수 있는 전투진이 간삼봉일대에 펼쳐졌다.

6월 30일, 이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짙은 안개가 밀림을 뒤덮고있었다.

날이 훤히 밝기 시작했을 때 보초대가 매복한 곳에서 기관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산골짝을 뒤흔들었다.

이어 보초대가 적을 쓸어눕히면서 돌아왔다. 보초대가 있던 곳을 빼앗기면 아군의 전투행동은 매우 불리하게 된다. 안개를 리용하여 기여든 적들의 선발대가 코앞에 다가오고있었다. 정세는 위급하였다.

뒤로 물러설수도 없었으며 다만 적을 족쳐야만 했다. 지체하지 않고 나는 돌격명령을 내렸다. 대원들은 온 산이 떠나갈듯이 함성을 지르며 적진으로 육박하였다. 놈들은 혼비백산하여 뒤로 도망쳤다. 이 돌격에서 우리는 보초대가 차지했던 지점을 다시 찾았다. 이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정황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우리 련대로 련락병을 보내시였다.

나는 그 련락병을 통하여 정황을 보고하고 이미 차지한 진지를 고수할 결심을 말씀드렸다.

잠시 골짜기가 조용해지자 정면 숲속에서 푸른 신호탄이 올랐다. 우리는 사령부에서 지시한대로 놈들과 같은 색의 신호탄을 올렸다. 그러자 적들은 공격신호탄인줄 알았는지 이쪽저쪽에서 신호탄을 올리고 눈먼 사격을 시작하였다.

적들의 진공로를 혼란시키려던 우리의 기도는 들어맞았다. 또한 사방에서 오르는 신호탄으로 하여 우리는 적들의 배치정형과 동태를 손금보듯이 꿰들수 있었다.

놈들은 어리석게도 3개 방향으로 이른바 포위진을 치면서 우리를 공격하고있었다.

적들은 제법 돌격소리를 지르면서 총창을 들고 덤벼들었다. 우리는 달려드는놈들에게 명중탄을 퍼부었다.

제6사부대가 차지한 진지에서도 백열전이 벌어지고있었다. 강을 건너 등판을 오르기만 하면 놈들은 우리 총에 맞아 쓰러졌다. 기껏해야 사격거리가 200~300m내외라 명중률은 대단히 좋았다.

무리로 쓰러지는놈들을 본 우리 대원들의 전투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그러나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놈들은 죽어자빠진 제편의 시체를 넘어 아득바득 기여들었다.

어떤 때는 썩어 넘어진 진대나무를 사이에 두고 창격전까지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치렬한 격전이 벌어졌다.

그럴수록 적에 대한 대원들의 증오는 열화같이 불탔고 싸움에서 그들은 용감무쌍하였다.

《바로 네놈들이 우리의 조국산천을 강탈하고 부모형제를 못살게 구는 원쑤들이다. 어디 복수의 불벼락을 받아봐라.》

녀성유격대원 허성숙동무는 이렇게 웨치며 놈들에게 명중탄을 퍼부었고 그리하여 수많은 적들을 쓸어눕혔다.

총을 한방도 쏴보지 못한 신대원 김윤경동무까지도 이날 유격대원들의 용감무쌍한 투쟁에 고무되면서 수많은 일본군놈들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예상치 못했던 대실패를 만회해보려고 놈들은 동쪽강기슭에 배치하였던 병력까지 돌려세워 제6사부대와 제4사부대 정면에 투입했다.

이러한 정황을 판단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대원을 우리에게 보내시여 진지를 끝까지 고수할데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주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그때까지 네번째로 만나뵙기는 했으나 이렇게 그이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큰 전투에 참가한것은 처음이였다. 더우기 직접 그이께서 3번이나 사람을 보내주시고 고무해주시는데서 더욱 힘을 얻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싸울것을 다짐하였다.

새벽에 시작된 전투는 한낮이 되면서 더욱 치렬하여졌다. 부대 우익을 담당한 제2중대에서는 악전고투하고있었다. 나는 응원소대를 거느리고 제2중대쪽으로 갔다. 제2중대를 한창 지휘하고있을 때 나팔수인 김자린동무가 나를 불렀다.

《련대장동지, 저 맞은편 숲속을 보십시오.》하는것이였다.

그가 가리키는곳에서는 누런 군복을 입은 적들이 한군데 몰켜서서 우물거리고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일본도가 흔들리는것이 장교놈들이 분명했다.

나는 적탄통을 재우고 한방 쐈다. 맞은편 숲에 불이 일더니 몇놈인가 쓰러지는것이 보였다. 또 한방 갈겼다. 그러자 거기에서 우물거리던놈들이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기승을 부리며 발악하던 놈들은 자기들의 지휘관이 죽은것을 보자 뒤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우리들은 놈들의 등뒤에 명중탄을 퍼부었다.

위기에 처했던 제2중대는 구원되였다. 내리덮인 구름장에서 비방울이 떨어지더니 얼마 가지 않아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전투는 비내리는 가운데서 더욱 치렬하게 전개되였으며 적들은 계속 쓰러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작전계획과 침착하고 령활하신 전투지휘에 의하여 놈들의 《삼면포위공격》기도는 완전히 분쇄되였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전개된 전투에서 적들은 된타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당황한 나머지 살아남은놈들은 무기와 배낭을 모조리 내던지고 달아났다.

그러니 골짜기에 무데기로 쌓인 시체를 끌고가는데 대하여서는 엄두도 낼수 없었다.

전투정황을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체 부대에 이미 지정한 집결장소로 철수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대토벌》을 꿈꾸던 함흥 제74련대의 유생력량 1,500여명을 살상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날 적장교 김석원은 왼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간신히 도망쳤다.

호언장담하면서 함흥역을 떠난 제74련대는 1937년 7월 얼마 안되는놈들만이 백골상자를 목에 메고 함흥역에 내렸다.

지금도 간삼봉부근일대에 사는 인민들속에서는 그때 일본놈부대가 몽땅 녹아난 가지가지의 이야기가 전하여지고있다.

당시 일제는 항일유격대에 의하여 섬멸당한 시체가 너무나도 많았으므로 몸뚱이는 내버리고 머리만 떼여서 실어갔다 한다.

놈들은 목딴것만을 운반하기 위하여 장백현에서 농민들의 달구지를 강제로 동원했다.

그때 동원된 농민들이 뻔히 알면서도 한놈에게 《이 마대안에 든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더니 그놈은 《호박》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있다.

간삼봉전투의 대승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직하시고 그를 강철의 혁명군으로 육성단련하고 항상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령활한 령군술을 다시한번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보천보전투의 련속이라고 볼수 있는 이 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위력을 남김없이 시위하였으며 조선인민에게 승리의 신심을 더 굳게 하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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