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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28. 대황구에서 - 김좌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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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09 01:02 조회3,41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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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황구에서

김좌혁    


적군을 내부로부터 동요시키고 와해시키며 그들을 우리편에 의거시키는 사업은 항일무장투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시 적군와해공작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항일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로동자, 농민, 인테리 및 기타 각계각층 인사들을 반일통일전선에 집결하여 항일구국운동에 총궐기시킬뿐만아니라 놈들의 기만과 강제에 의하여 징모된 적군내부 특히 위만군내 하층병사들에 대하여서도 대대적인 와해공작을 진행하여야 합니다. 위만군 하층병사들은 그 절대다수가 빈농민 혹은 그들의 자제들로써 구성되여있습니다. 수많은 빈고농들로 구성된 병사대중을 우리 편에 쟁취하는 문제를 홀시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총탄으로 적을 죽이는것만으로써는 승리할수 없습니다. 전체 조중인민은 물론 적군내 병사대중까지도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쑤인 일제에 대한 증오심과 항일구국사상을 가지도록 선동하여 그들로 하여금 항일구국위업에 총궐기할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적군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며 그들을 의거케하는 사업은 우리의 반일민족해방투쟁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와 동시에 적군와해공작에 대한 실천적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교시하시였다.

견결하고 용감하고 총명하며 기략에 능한 동지들을 선발하여 대담하게 적군내에 침투시켜 공작케 할것.
로동자, 농민, 인테리출신인 위만군병사와 하급군관들에게 편지를 전달할것.

신문, 포스터, 혁명서적 등을 그들에게 보내여줄것.

적 하급군관 및 병사들의 가족과 친척 및 친우들을 리용하여 선전공작을 진행할것.

그리고 그들과 교전하게 될 때에는 《너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가?》, 《너희들의 조상은 중국사람이 아닌가?》, 《우리는 중국사람을 치지 않는다.》, 《무엇때문에 일본놈의 총마개로 죽는가?》, 《총을 바치면 목숨을 살려준다!》, 《조중인민은 단결하여 공동의 원쑤일제를 타도하자!》등의 구호를 사용할것.

이러한 방법으로 진행된 적군와해공작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35년 8월 15일에 위만군 제2군구에서 정부에 보고한 서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최근 만주국군에 대한 김일성의 활동은 상당한 주효를 가져와서 병사들은 물론 일부 만인장교들까지도 동요하고있으며 기회를 보아 병변을 일으키고 전기 김일성이와 합류할 위험성이 농후하며 … 지난 7월 5일 화전현 제 5구국군 병사 350명은 련장(중대장)외 장교 8명을 살해하고 체코식중기관총 2정, 경기관총 6정, 보병총 220정, 권총 12정, 탄약 51,786발을 휴대하고 남방으로 도주하여…》

이것을 보더라도 적군와해공작이 적들에게 심대한 위협과 타격을 주고있음이 명백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만군이나 경찰대가운데서 악질적이 아니고 은근히 인민들과 아군을 동정하려는 부대와는 커다란 전략적의의가 없다면 될수 있는대로 전투를 피하고 정치공작으로 그들을 의거시키며 인민들과 아군에 대하여 완고하고 결사적으로 대항하려는 악질적인 적군에 대해서는 적아간 력량대비를 정확하게 타산한 기초우에서 견결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놈들을 괴멸시킬것입니다. 그러나 아군에게 생포된자들에 대해서는 갖은 방법으로 우대하여 모두 놓아보낼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야만 위만군으로 하여금 아군은 일제놈들과 놈들의 충실한 주구들과만 싸우고 진실한 중국사람과는 싸우지 않는 진정한 애국적혁명군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할수 있습니다.

또한 포로된자들을 우대함으로써 위만군은 아군과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싸우지 않고 인차 포로될것이며 그들은 아군의 무기수송대로 될것입니다.

1935년 3월, 조선인민혁명군 제4련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적군와해공작에 대한 교시를 충실히 집행함으로써 훈춘현 대황구에 주둔한 위만군의 와해공작에 성공하였다.

그때 대황구에는 위만군 1개 중대(110여명)가 주둔하고있었는데 우리의 정치공작이 추진된 결과 이미 하층에서는 적지 않은 동요가 일어나고있었다. 대황구 위만군중대에는 위만군 하사관으로 있는 우리의 공작원 2명이 들어가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지도관》놈과 반동장교들의 폭압과 아직 각성하지 못한 일부 병사들의 우유부단한 태도 등으로 말미암아 우리 공작원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있었다.

때문에 아군지휘부에서는 공작원들에게 위만군병사들의 민족적각성을 높이며 상하부간의 계급적갈등을 첨예화시키며 그들에게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잘 인식시켜 빠른 시일내에 우리에게로 넘어오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공작을 추진시킬데 대한 임무를 거듭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공작원들에게서 대황구에 주둔하고있는 위만군중대가 곧 다른데로 이동하게 된다는 련락이 왔다.

그리하여 아군지휘부는 비록 열매가 익지는 않았어도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열매를 따야 한다는 결심을 택하게 되였다.

아군지휘부는 대황구주둔 위만군을 와해시키기 위한 주도면밀한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대황구에 주둔한 위만군병사 3명이 때마침 우리에게로 의거하여왔다. 그들은 우리 공작원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이번에 우리는 사냥을 나왔었습니다. 우리는 일제놈들이 나쁘다는걸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이번처럼 똑똑히는 몰랐댔습니다.

사냥가는 도중에 우리는 일제놈들이 마을집들을 몽땅 불지르는것을 보고 우리의 원쑤는 정말 일제놈이구나 하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습니다. 유격대가 참말 옳았다는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는 그 더러운 총을 메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장교놈들이 이때까지 우리를 속여온것을 생각하니 분합니다. 우리는 어리석었습니다. 다시는 그놈들의 편에 서지 않으렵니다. 당신들과 손잡고 일제놈을 반대하여싸우겠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료들중에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고 따뜻하게 대하여주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동의 원쑤인 일제를 타도하기 위하여 손을 잡고 싸워야 한다는것을 해설해주었다.

그들의 의거는 우리들에게 적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정할수 있게 하여주었다.

우리는 대황구에 있던 일본군《지도관》놈이 훈춘으로 출장가고 없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기회는 좋았다.

드디여 1935년 3월 19일 우리 제4련대 약 120여명의 대원들은 진창을 떠나 대황구에로 향하였다.

우리는 북황구령을 넘어 다음날 대황구의 북쪽 약 20리 지점인 양목촌에 이르렀다. 지휘부에서는 여기서 우리들에게 전투시의 주의사항에 대하여 일일이 말해주었다.

특히 이번 전투는 다른 전투와 달리 위만군을 포위하여 와해시킨 다음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구국의 길에 나서게 하자는것이며 그러기 위하여서는 먼저 우리의 위력을 시위하여 적을 압도한 다음 함화로써 정치선동을 하여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격은 어디까지나 위협사격이여야 하며 피치못할 경우라 할지라도 장교들과 병사들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격대상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각 중대들의 배치지점과 전투임무는 하달되였다.

부대는 3월 21일 새벽에 대황구에 도착하자 각각 지정된 지점들을 차지하였다. 지휘부는 대황구 북쪽고지의 그리 높지 않은 중턱에 위치하였다. 각 중대는 적병실을 완전히 포위하였으며 적증원부대를 경계하였다.

이리하여 우리 부대들은 적위만군병실을 물샐틈없이 완전히 포위하였던것이다.

우리는 고도의 긴장성과 은밀성을 보장하면서 전투개시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

새벽 5시경이였다. 적보초병 한명이 총도 메지 않은채 병실뒤 언덕배기에 있는 보초막으로 올라오고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자는 보초막을 비우고 병실에 내려가 온밤 도박을 하다가 그제야 올라오는 길이였던것이다.

아군지휘부쪽에서 《서라!》하는 웨침소리가 났다. 그러자 보초는 금시에 자라목이 되여서 비명을 치더니 벼랑진 언덕아래로 딩굴어떨어졌다. 이 소동에 놀란 병실안의 적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우리는 위협사격을 함으로써 우선 적을 압도하였다.

적들은 병실에서 뛰여나오자 우리에게 총질을 하였다. 적소대장놈은 우리를 향해 《할려면 하자!》라고 호통을 치면서 어리석게도 대응사격을 해왔으나 잠시후에는 우리의 위압사격에 의하여 독안에 든 쥐처럼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적들의 사기는 점점 죽어들어갔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적들중에서 동요하고있는 층을 끌어당기며 장교층을 제압하여야 했다.
우리는 일단 사격을 중지했다. 그리고 적병실을 포위한채로 산언덕에서 함화로써 정치선동을 들이댔다.
갑자기 총소리가 멎고 산언덕에서 구호를 웨치는 소리가 나자 적들은 모두 어리둥절하여 우리들이 있는 산언덕쪽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들은 우리의 원쑤가 아니다. 우리의 원쑤는 일본침략자들이다. 우리와 함께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우자!》, 《총을 놓고 의거하여나오라!》, 《우리는 중국인을 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계속 웨쳤다.

적들은 《사격하지 말고 말로 하자.》고 요청하여왔다.

우리는 《대표를 보내라!》고 웨쳤다.

적대표 2명이 우리의 지휘처까지 올라왔다. 그들은 자기들의 내부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즉 대부분은 의거하자는 의견이나 일부는 계속 싸워보자는 주장이 있어 서로 의견이 대립되고있다는것이였다.

우리 지휘부에서는 이 말을 듣자 곧 대담하고 기략에 능한 동무로써 대표 2명을 선출하여 그들과 함께 적병실로 보냈다.

대표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직의 위임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굳은 마음으로 대담하게 적들속에 들어갔다.

우리 대표들은 적들과 담판을 진행할 때에 위만군들앞에서 열렬한 어조로 선전해설사업을 시작했다.

《여러분! 당신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우리 두 나라 백성들은 똑같이 일본침략자들의 잔악한 쇠사슬에 얽매여 허덕이고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두 나라 형제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공동의 원쑤인 일제놈들을 쳐부셔야 합니다. 일제놈들은 간교하고 악독합니다. 그놈들은 우리 형제들이 서로 손을 잡고 싸우는것을 제일 무서워 합니다. 그래서 놈들은 우리들사이를 멀게 하고 형제들끼리 서로 피를 흘리게 하고 심지어는 중국사람들끼리도 서로 싸우게 하여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흘리게 합니다.

여러분, 형제들!
우리들의 부모처자들을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우리 조국과 당신들의 귀중한 동북땅을 그 악독한 왜놈들에게서 다시 찾기 위하여 우리는 손을 굳게 잡고 싸웁시다!》

우리 대표의 열렬한 선전을 듣자 《옳소! 옳소!》하고 웨치면서 이미 우리들에게서 정치적영향을 받은 위만군 하층병사들이 우리에게로 나섰다.

그러나 장교들을 비롯한 일부 병사들은 우리 대표의 말을 리해할수 없는듯 고개를 가로젓고있었다. 그것을 포착한 우리 대표들은 재삼 인내성있게 선전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그들의 절대다수가 자기들의 지난날을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우리 유격대와 손을 잡고 싸우겠다고 결의하였다.

처음부터 우리의 제의를 거절하던 대지주의 아들인 중대장의 부관놈도 압력에 눌리여 마지못해 동의했다.

우리는 예견한 목적을 달성할수 있었다. 우리의 전부대는 위만군운동장에 집결하였다. 우리는 이때 적들에게 총을 그냥 메운채로 정렬시키고 다시한번 해설사업을 진행하였다. 결과 그들은 자기들의 민족적처지를 개탄하면서 모두들 우리와 함께 항일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주변인민들은 아침식사를 지어가지고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환영하였으며 도로닦이에 강제로 동원되였던 로동자들과 농민들 수십명은 우리가 로획한 군수품을 자진하여 지고서 우리 부대와 함께 길을 떠났다.

우리 부대들은 오전 11시경에 양목촌을 향하여 개선의 길에 올랐다.

한편 내가 속한 제1중대와 제4중대는 계속 새로운 전투임무를 받아가지고 훈춘방향으로 진출하였다.
우리 부대들은 대황구에서 넘어온 위만군 115명을 우리 대렬에 편입시켰다. 그중에는 전투시에 복부를 부상당한 위만군 소대장도 있었는데 우리 부대의 군의 리봉수동지는 그를 잘 치료하여주었다. 그리하여 그 소대장은 우리 유격대의 고상한 인도주의에 감화되여 그후 우리와 함께 용감히 싸우게 되였다.

대황구에서 우리 대오에 편입되여 3개 중대로 편성된 그 병사들은 그후 악질적인 《정안군》을 격멸소탕한 로흑산전투에서 용감히 싸웠으며 왕청현 태평구에서는 로흑산전투에서 로획한 박격포로 적에게 명중사격을 들씌워 위만군부대를 통쾌하게 무찌르는 위훈을 세웠다. 그리고 이밖의 수많은 간고한 전투들에서 그들은 우리와 함께 끝까지 잘 싸웠다.

실로 대황구에서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적군와해공작에 대한 교시의 정당성을 다시한번 시위한것으로 된다. 우리는 이 전투를 통하여 심지어 일제에게 리용당하던 적군병사대중까지도 능히 우리와 함께 항일구국위업을 수행할수 있으며 반일력량으로 전변시킬수 있다는 신심을 더욱 확고히 가지게 되였다.

이 전투가 있은후 광범한 위만군 하층병사들가운데서는 자기들의 민족적처지와 계급적립장을 점차 깨닫기 시작하고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의거해오는 일이 빈번하였다.

이것은 반일력량을 더욱 강화해야 할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정치, 군사적으로 큰 리득이였으며 일본침략자들에게는 더없는 타격으로 되였다.

이후부터는 교전시에 위만군 병사들중에서 싸우지 않고 포로되여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실례는 허다하다. 위만군중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신뢰하고 동정하여 일제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아군에 무기, 탄약까지도 보내준 사실이 적지 않았다. 전투중에 있어서도 우리 대원들은 일본군과 위만군이 아군을 향하여 진격하여오면 우리는 총구를 일본놈들에게만 돌리여 집중사격하고 위만군에게는 총을 쏘지 않고 《입대포》(당시 함화를 부르는것을 《입대포》라고 하였다.)를 쏘아 대항치 않도록 하였다. 결과 그들중 량심이 있는 병사들은 일제놈들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헛총을 쏘기도 하였고 어떤 병사들은 일본군의 정보를 아군에게 알려주어 사전에 우리가 준비하게 함으로써 위기를 면하게까지 한 일도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에 기초한 적군와해공작은 항일유격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사업이였으며 그것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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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꽹과리님의 댓글

꽹과리 작성일

  위만군은 한국군과 같은 성격의 군대인가요?

괴뢰타도님의 댓글

괴뢰타도 작성일

  맞습니다. 위만군은 바로 현재 한국군과 같은 성격이지만 한국군은 위만군 보다도 더못한 숭미사대 괴뢰집단으로서 동족을 주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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