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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22. 첫 시련 - 박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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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02 02:02 조회2,8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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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련

박두경                      


나는 혁명대오에 들어서기전 소작살이라는 그 지긋지긋한 멍에를 벗어던지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소와 같이 일하였건만 나이 40살이 가깝도록 소작살이를 면치 못하였을뿐더러 가난은 더욱 심하여갔다.

(팔자가 사나우니 별수가 없구나. 인제는 등뼈가 휘도록 지주놈의 농사나 짓다가 목숨을 끊을수밖에 딴도리가 없구나.)

저주로운 생활이 나에게 가져다준 결론이란 바로 이것이였다.

1931년에 들어서면서 내가 사는 왕청현 동일촌에도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응당 나와 같은 처지로서는 그때 그 불길속으로 서슴없이 뛰여들어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혁명이란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또 한대도 젊은 혈기로써나 할 일이지 나같이 중년기에 들어선 사람으로서는 아예 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강건너 불보듯이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우리 마을에는 타곳에서 온 《베감투》라는 별명을 가진 리종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파견하신 유격대공작원이였다.) 그가 우리 집에 마실을 와서 이럭저럭 이야기를 나누던중에 살아가는 형편에 대해서 이야기가 번지게 되였다. 그러자 나는 마음에 품고있던 신세타령을 하소연겸 그에게 한바탕 늘어놓았다. 내 말을 다 듣고난 그는 조용히 이런 말을 하였다.

《형님네가 그처럼 구차하게 사는것은 팔자탓이 아니웨다. 무슨 놈의 팔자가 죽도록 일하는 사람을 굶어죽으라고 하였겠습니까. 형님이 아직 세상리치를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합니다. 알고보면 뻔하지 않습니까. 우리 농민들이 사시장철 피땀을 흘려서 지어놓은 곡식을 여지없이 빼앗아가는 자가 누굽니까. 지주놈들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그놈들때문에 못사는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듣고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나는 이렇게 묻지 않을수 없었다.
《말하자면 땅이 지주의것이니까 우리는 그 땅값을 치르는것이 아닌가.》고.
종환동무는 나의 손을 잡고 말해주었다.

… 이 땅이 누구의 땅인가. 우리 농민의 땅이다. 우리 농민의 손을 보라. 그 손에서는 언제나 구수한 흙냄새가 풍기고있으며 바로 그 손으로 이 땅을 가꾸고 기름지워서 황금나락을 지어내는것이다. 그런데 놀고먹는자에게 누가 땅을 주었는가. 자본주의제도가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제도를 쳐부셔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무산대중이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 전체 인민이 단결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인 지주, 자본가놈들을 타도해야 한다. 그래야 땅은 영원히 밭갈이하는 농민의것으로 될것이며 우리의 처지도 개선될것이다.
공산당원인 그의 말은 나의 마음을 움직여놓았다.

그후에도 종환동무는 나를 자주 찾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과정에 나는 정말 일제놈들과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결사전을 하지 않고서는 나와 같은 무산자는 도저히 잘살수 없다는것과 또 내처지로서 이러한 의로운 투쟁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은 지난날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하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다.

혁명조직의 따뜻한 지도와 꾸준한 교양으로하여 나의 계급의식은 점차 각성되여갔고 마침내 나는 혁명조직인 《농민협회》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혁명조직에서 주는 첫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그것은 이웃동리에 가는 통신련락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때 이런 임무를 처음 수행하는것만큼 자신을 가지지 못하였다. 혁명사업이란 항상 간고하고 위험이 동반되는것만큼 잘못하면 자기뿐만아니라 조직의 비밀까지 로출시킬수 있는것이다. 이런것을 생각하니 모든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지나가는 경찰놈을 보아도 꼭 나를 따라잡는것만 같았다.

(내가 이래가지고야 무슨 혁명을 할수 있겠는가. 제나라를 찾기 위해 일제강도놈을 치겠다고나선 장부가 이게 될말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대담하지 못한 자신을 속으로 나무랐다.
그러나 나는 어쨌든 이러한 마음의 시련을 겪으면서 첫임무를 수행하였다.

내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자 종환동무는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나도 무엇보다 조직에 다소나마 도움을 주었다는것이 무척 기뻤다.
그러던 어느날 종환동무가 나를 다시 불렀다.

약속한 장소에 가니 그 집에서는 오중성동무를 비롯한 여러사람이 둘러앉아서 등사기로 열심히 삐라를 찍어내고있었다.
중성동무는 내가 앉자 신중하게 《지금 급하고 중요한 련락임무가 나섰는데 그 일을 맡을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나는 할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나에게 맡겨진 임무는 삐라를 영창동까지 시급히 전하는것이였다. 등사한 삐라뭉치를 보니 상당히 많았다. 짐으로 꾸려도 한짐이 실했다.
어떤 방법으로 이 삐라를 전해야 할지 나는 한동안 궁리하였다.

시간을 다투는만큼 밤을 기다릴수는 없었다. 그러자니 대낮에 가져가야 하는데 당시 놈들의 경계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대낮에는 얇은 종이에 적은 통신쪽지조차도 함부로 가지고갈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삐라를 놈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가지고간다는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였다.
나는 난처해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차라리 이것을 큰 보짐으로 꾸려서 등에 걸머지고 가자. 놈들도 설마 삐라뭉치를 대낮에 등짐으로 날라가리라고는 생각 못할것이다.

나에게서 이 계획을 듣던 종환동무는 한참 생각하더니 대담한 생각이라고 하면서 찬성하였다. 그리고 이번 일은 매우 어렵고도 중요하니만큼 조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반드시 성공하라고 고무해주었다. 이런 당부까지 받고보니 어깨가 더욱 무거워짐을 느꼈다.

내가 만일 어떤 사소한 과오라도 범해서 이 임무를 수행못한다면 혁명에 주는 손실은 크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임무를 어김없이 수행하여야 한다고 나는 마음속깊이 다짐하였다.

나는 삐라뭉치를 솜저고리에 차곡차곡 싸서 그것을 다시 밀가루포대에 넣었다. 그런 다음 짐바를 해서 그것을 지고 그우에 두터운 솜저고리를 덮었다.

나는 지팽이를 짚고 영창동을 향해 길을 떠났다. 걸음을 다그쳤으나 대감자시내에 들어갔을 때는 해가 이미 한낮이나 지났었다. 영창동까지는 아직도 몇십리를 더 가야하였는데 시장기가 앞섰다. 처음에는 가슴도 두근거리던것이 이쯤 오니 다소 가라앉기도 하여 요기를 하고 가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길가 음식점에 들어가서 방 한켠구석에 짐을 벗어서 밀어놓고 그곁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경관 두놈이 쑥 들어왔다.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잘못걸렸구나 하고 음식점에 들린것이 후회도 났다.

한놈은 문턱에 걸터앉고 다른 놈은 방안에 들어와서 어슬렁거리는것이 꼭 무슨 냄새를 맡은 곰과도 같았다. 어쩐지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그중 한놈이 털썩 내《짐》우에 걸터앉는것이였다. 나는 놈들이 기미를 알아차리고 뒤쫓아온것이 아닌가고 생각해보았다.

드디여 이놈들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놈은 나와 짐을 번갈아보더니 타고앉은 짐을 발뒤꿈치로 툭툭 건드리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게 뭐야!》
나는 두손을 마주 잡고 허리를 굽신하고 《아들집에 가져가는 쌀이외다.》하고 태연히 대답했다.
《쌀?》하고 그놈은 짐을 꾹꾹 눌러보기 시작했다. 문턱에 앉은 놈도 나를 유심히 보고있었다.

놈들의 서슬을 보니 그대로 물러설것 같지 않았다. 반드시 놈들은 짐을 풀어헤치라고 소리칠것이다.
(어떻게 할가? 놈들의 주의를 딴데로 돌리게 하여야 하겠는데.)

나는 놈들의 얼굴이 창백한것을 봐서 아편쟁이라고 단정하고 얼른 담배 한대를 꺼내서 태연하게 피워물면서 쌈지에 들어있던 아편을 우정 놈들에게 드러나보이게 하였다. 그러자 이놈은 어느새 이것을 내려다보았는지 비위좋게 아편이 좀 없느냐고 물었다.

《아편이요? 있습니다.》하고 나는 늘어지게 대답해놓고 손가락만큼한것을 떼여서 이놈에게 넘겨주었더니 문턱에 앉았던 놈도 닁큼 달려들어서 서로 더 많이 가지겠다고 다투면서 나가버렸다.
《시러베아들놈들 같으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비웃으면서 얼른 짐을 지고 목적지로 향하였다. 그러나 난관은 이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대감자를 지나 내리막길을 막 걷고있는데 기마경찰놈들이 일곱놈이나 마주오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나는 얼른 피할곳을 찾았으나 공교롭게도 량쪽이 벼랑이여서 꼼짝할수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든든히 걸려들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담을 크게 먹고 그들앞으로 걸을수밖에 없었다. 짐작했던대로 놈들은 나의 앞에서 말을 멈추고 버티여섰다. 그리고 말우에서 눈을 부라리며 《어디로 가! 공산당의 련락을 가지?》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나는 우정 펄쩍 뛰며 《원 나리님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늘그막에 시퍼런 자식을 가지고있는 내가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그런 무서운 일을 하겠습니까. 이 짐은 아들집에 가지는 가는 쌀이외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앞장섰던 놈이 말채찍으로 내 짐을 꾹꾹 찔러보는것이였다.
나는 놈들이 한놈도 아니고 일곱놈들이나 말을 몰고 사방에 눈을 돌리며 오던 품으로 보아 이놈들이 필시 유격대공작원을 추격하여온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나는 놈들앞에 다가서며 누가 볼세라 두려워하는듯한 태도로 《나으리께 꼭 알려야할 일이 있쇠다. 제가 막 저 고개를 넘자니 웬 이상한 젊은이가 갈팡질팡 내려닫는데 보통사람 같지 않습데다. 내 소견에는 아마 무서운 〈공산패〉같쇠다.》하고 놈들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경찰놈들은 저희들끼리 눈짓을 하더니 앞장섰던 놈이 《그게 정말이냐?》고 다그쳐물었다. 나는 믿어주지 않는게 섭섭하다는듯이 지팽이를 흔들면서 믿지 못하겠으면 당장 같이 가보자고 어성까지 높였다.

나의 태도를 노려보던 놈들은 저마다 채찍으로 말을 후려치면서 고개를 향해 내달려갔다. 나는 속으로 《미친개 같은 놈들!》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하여 나는 이날 무사히 삐라를 영창동에 가서 전달하였다. 다음날 마을에 돌아와서 종환동무에게 어제 겪은 일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배를 그러안고 웃으면서 나의 수고를 치하해주었다.

《그것 보십시오. 혁명사업이란 간고하면서도 얼마나 통쾌한것입니까. 아마 지금쯤은 영창동일대에서 일제놈들은 눈이 뒤집혀돌아치고있을테지요. 그리고 인민들은 그 삐라를 보고 큰 힘을 얻고 앞으로 더욱 힘찬 투쟁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형님은 얼마나 큰일을 하셨습니까!》

정말 혁명사업이란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가 문제이지 마음만 옳게 먹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발벗고 나서기만 한다면 나이가 40살이 아니라 70살이라도 얼마든지 이 숭고한 사업에 힘을 합칠수 있다는것을 나는 절실히 깨닫게 되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기때문에 앞으로 더 어렵고 더 보람있는 일을 자진해서 수행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후 종환동무가 나에게 보위단실에 삐라를 붙여야겠는데 누가 하였으면 좋겠는가고 문의하였다.

보위단실은 우리 집에서 한 50m 가량 떨어진 큰길가에 있었다. 견고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보위단실에는 놈들이 20여명이나 박혀있었고 밤낮없이 보초도 서고있었다. 더우기 밤에는 여러마리의 사나운 개까지 풀어놓아서 누가 얼씬만 해도 마을이 떠나갈듯 짖어대였다.
그러나 그런곳일수록 우리가 삐라를 붙이기만 하면 인민대중에게 주는 영향은 큰것이다.

그동안 조직에서는 여러번 이곳에 삐라를 붙여보려고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꼭 삐라를 붙여 놈들에게 타격을 주자는것이였다. 때문에 종환동무도 신중히 이 문제를 나에게 문의하는것이였다.
혁명사업에서의 제일 큰 보람의 하나는 난관을 뚫고나갈 때의 그 기쁨이다.

나는 몇번 조직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이것을 절실히 느꼈다. 조직의 리익을 위하여, 무산자의 해방을 위하여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싸우는것보다 더 기쁘고 장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나는 머리를 들고 종환동무에게 내가 그 임무를 맡겠다고 제기했다.
종환동무는 나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미소를 띠웠다.

나는 그날부터 보위단실을 오가면서 우선 개부터 낯익히기 시작했다. 그놈에게 며칠간 다니면서 먹을것을 던져주니 인차 꼬리를 저었다.
그런 다음 어느날 점심때쯤 해서 약초를 뜯는척 하면서 보위단실주변으로 나갔다.

삐라는 다래끼안에 있었다. 나는 그우에 약초를 캐여덮었다. 내가 보위단실 정문앞에 이르러 동정을 살펴보니 보초놈은 점심먹으러 들어가고 개만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놈은 나를 보고 몇번 쿵쿵거리더니 인차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재빨리 고기한점을 내던져주었다. 그리고 담벽에 착 붙으며 전선대에 삐라를 붙였다. 그런다음 내가 몇걸음 발을 옮기는데 《여봐…》하고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을 느꼈다. 그러나 뛸수도 없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방금 점심을 먹고나온 보초놈이 나에게 손질하고있었다.

이 순간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애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비밀을 지켜내자. 혁명가답게 의젓하자. 최악의 경우에는 피값이라도 하자.)고 결심을 다졌다. 나는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놈은 히죽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령감, 정신을 차리라구. 박일(그는 나의 일곱번째 동생인데 공산당원이였다.)이가 요새 밤마다 공산당을 찾아다니고있단말야.》
나는 그놈에게 얼른 단단히 명심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놈은 좋다고 하면서 떠들썩하는 자기네 담장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나는 이렇게 된바에야 삐라를 더 붙이고보자는 생각으로 돌담벽에다 얼른 한장을 더 붙이고나왔다.
이렇게 조직에서 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나는 비록 늙은 몸이지만 마음만 굳세게 먹고 싸운다면 혁명의 길에서 못해낼 일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으며 마침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건하신 항일유격대에까지 입대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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