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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21. 시난차전투 - 백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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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2-01 14:02 조회2,62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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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난차전투

백학림      
                

무송현 시난차는 송수진 동쪽방향 수십리지점에 위치한 약 300여호의 주민가옥이 들어앉은 빈한한 산촌이였다.

이곳은 남으로 로령이 동서로 가로놓였고 북으론 해청령이 뻗어있는 장백산맥의 수림지대인데 시난차남쪽 화수쥐즈산에 올라서면 멀리 동남방향으로 백두산에 잇닿은 련봉들이 바라보인다.

이 지대는 지리상으로 보아 유격대들의 활동에 유리한곳이였다.

당시 송수진에 본부를 두고 유격대에 대한 《토벌》에 날뛰던 일제와 위만군경놈들은 1935년에 시난차부락에도 통나무로 울타리를 둘러치고 다섯곳에 포대까지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놈들은 이 부락에 경찰 수십명과 보갑대(자위단과 류사한 적의 무장대) 10여명을 정상적으로 배치해놓고 인민들을 억압감시하며 유격대의 활동을 저애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지리적, 군사적정형으로부터 출발하여 백두산을 중심으로한 국경일대에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창설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실현하는 한 부분으로서, 또한 적들의 기반하에서 신음하는 시난차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시난차부락의 적들을 습격소탕할것을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6년 2월 녕안현 남호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후 부대를 친솔하시고 백두산 서남부국경일대에로 진출하시는 과정에 이미 이해 4월에 무송현 만강의 적을 제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때 만강부락에 여러날 머무르시면서 담화와 연설로써 대중을 교양하시였고 연예회도 열어 부락인민들을 고무하시였다.

시난차전투는 력사적인 동강회의후 로령전투다음에 그이께서 조직진행하신 전투였다.

1936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7련대와 사령부직속 경위중대를 친솔하시고 무송현 서강지구로부터 송수진방향으로 행군하시여 오전 9시경에 시난차부근의 초자산에 도착하시였다.

이 고지에서는 시난차부락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는데 경찰관주재소와 적들의 포대 그리고 보초선까지 손금보듯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수림속에서 부대를 잠시 휴식시키면서 지휘관, 정치일군회의를 소집하시고 시난차습격에 대하여 토의하신후 다음과 같은 전투계획을 수립하시였다.

(1) 먼저 편의대를 조직하여 주간에 적들을 불의습격하여 적들의 무장을 해제한다음 포대우에 붉은기발을 올릴것.

(2) 적포대우에 붉은기발이 오르면 주력부대는 시내에 진입하여 대중속에서 해설사업을 진행하며 전체 부락인민들을 집합시킬것.

(3) 부락인민들이 집결하면 문화공작반은 이미 준비된 연예회를 진행할것.

실로 이것은 대담한 전투계획이였다. 왜냐하면 성시에 주둔한 적들을 주간에 습격한다는것은 우리 유격투쟁에서 드문 일이였고 그만큼 어려웠기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난차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병력이 비교적 적고 본부대와 멀리 떨어진 조건과 더우기 적들이 성문을 열어놓고 방심하고있는 대낮에 적을 치기가 더 쉬울것을 타산하시여 주간에 습격하여도 능히 승리할수 있다고 확신하셨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파견하여 밭에서 일하는 농민 9명을 데려오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데려온 농민들에게 친절한 해설사업을 진행하신 다음 리동학, 김택환, 김주현 등 중대장들과 정치지도원, 소대장 및 대원들중에서 전투경험이 많은 9명의 동지들을 선발하여 농민들의 옷을 림시 바꾸어입게 하셨다. 선발된 동지들이 농민들의 옷차림에 삿갓을 쓰고 호미와 낫까지 들고나서니 어느모로 보나 농민티가 났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 대부분이 지난날에는 압박과 학대를 받으면서 살아온 농민들이였기때문이다. 그들은 품속에 권총들을 품고 명령을 기다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편의대의 준비정형을 면밀하게 검열하신후 김주현동지가 책임진 조(5명)는 부락 동문으로 들어가며 리동학동지가 책임진 조(4명)는 서문으로 진입할것을 명령하시였다.

두조로 편성된 편의대는 곧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시난차부락에 접근하여 무사히 울타리에 난 문을 통과하였다. 보초선에는 보갑대놈이 얼빠진 낯짝으로 보초를 서고있었는데 이때 서문으로 들어간 리동학동지는 날쌔게 달려들어 그놈을 찍소리도 못치게 하고 무장을 해제하였다.

이리하여 성안에 진입한 두조의 편의대는 번개처럼 적들의 병영으로 돌입하였다. 그때 적들은 한창 무기소제를 하고있었는데 그중 한놈이 편의대를 발견하고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원들은 벽뒤에 붙어서서 싸창으로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적들도 벽뒤에 숨어서 집요하게 응전하기때문에 좀처럼 소멸해버릴수가 없었다.

이때 한 동무가 재빠르게 병실문안으로 뛰여들어서 명중사격을 퍼붓자 일시에 적 3명이 쓰러졌다. 뒤이어 다른 유격대원들이 비호같이 날랜 동작으로 병실로 뛰여들었다. 적들은 그만 겁을 집어먹고 갈팡질팡하였다. 처음에 대항하던 몇몇 놈들은 총을 내동댕이치고 손을 쳐들었다. 대부분의 적들은 무기소제를 하느라고 모두 총들을 분해해놓은채였기때문에 총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이리하여 유격대원들은 순식간에 적 17명을 생포하고 무장을 몽땅 해제하였다.

이렇게 편의대원들이 전투를 진행하는 동안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처에서 전투정황을 살피시고계시다가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포대에 붉은 기발이 인차 오르지 않는것을 념려하시여 곧 전체 부대에 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북쪽고지에서 대기하고있던 부대주력과 시난차 남산에 배치되였던 기관총분대가 돌격나팔소리와 함께 일시에 북문과 서문으로 진공해들어갔다. 이때 편의대동무들은 적병영을 계속 수색하면서 포대우에 붉은기를 꽂았다.

전체 부락인민들은 거리로 뛰여나와 유격대원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때는 바로 낮 12시경이였다.
문화공작반원들은 얼마후에 부락 한복판에 가설무대를 만들었는데 그앞에는 부락 남녀로소 약 300여명이 모여들었고 생포한 적경찰놈들도 무대왼편에 앉히였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대우에 오르시자 흥분속에 웅성대던 군중들은 오래도록 환성을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중들앞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연설을 하시였다.

나는 그때에 들은 이야기를 다 쓸수는 없다. 요약하여 말하면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조선인민혁명군은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을 소탕하고 조중인민들의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우는 정의의 군대라는것을 설명하셨다. 그리고 일제의 악독한 침략정책들을 구체적실례를 들어 폭로하시였고 그놈들의 통치밑에서 신음하는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의 비참한 노예적처지에 대하여 격분에 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두 나라 인민들은 근면하고 총명하며 서로 화목하게 살기를 좋아하는 훌륭한 인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헐벗고 굶주리고 인간이하의 학대를 받고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다 누구때문입니까? 그것은 오직 일제침략자놈들때문입니다. 만약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두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놈들이 우리 인민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행복한 사회를 세울수 있었을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을 때 흥분한 군중들은 여기저기서 《그렇습니다!》, 《참말 그 말씀이 옳습니다!》하고 호응하였다. 진정 그들은 이처럼 속시원한 말씀을 처음 듣는것이였다. 그 말씀 어느 한마디도 그들의 가슴을 울리지 않는것이 없었다.

흥분된 군중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조중 량국인민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때려부셔야만 조국을 광복하고 행복을 찾을수 있다는것과 그러기 위하여서는 우리 두나라 인민들이 굳게 단합되여 항일무장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혁명의 승리적인 전망을 명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연설에 감동된 군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높이 만세를 불렀다.

이때 들끓는 군중들속을 헤치고 무대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왕유하, 리명진 등 4명의 청년들이였다. 그들 4명은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나서 유격대에 입대시켜줄것을 청원하였다. 청년들의 얼굴은 저마다 감격과 흥분에 휩싸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석에서 청년들의 입대를 허락하시였다.

이때 입대한 왕유하에게는 왕덕하란 형이 있었는데 그는 동생보다 앞서 입대하였었다. 두 아들을 유격대에 보낸 그의 아버지 왕봉인은 년로하여 전투대오에는 참가하지 못하였으나 일제를 증오하던 나머지 그후 자기 처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적통치구역을 벗어나서 양목정자후방밀영에 들어와 생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설을 끝마치시자 뒤이어 계획한대로 문화공작반원들의 다채로운 연예회가 시작되였다.

동무들아 준비하라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

《유격대행진곡》의 씩씩한 노래소리가 울려퍼지자 군중들은 신이나서 어깨를 들먹거렸다.

뒤이어 군중들은 여러가지 혁명가요들을 들었으며 20여명의 녀성대원들이 출연하는 전투적인 무용들도 보았다.

이 연예종목들은 시난차인민들을 일제와 그 주구들에 대한 한없는 증오와 적개심으로 불타게 하였으며 그들을 항일투쟁에로 힘차게 고무하였다. 뿐만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씩씩한 투지와 혁명적정열,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애국주의적투쟁모습들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이렇듯 다채롭고 전투적인 연예회는 근 한시간반동안이나 계속되였다. 시난차인민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깊은 감동과 흥분속에서 연예회를 관람하였었다.

연예회가 끝난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로한 적들에게 강도 일제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반역하는 죄악스러운 생활을 그만두고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선량한 인민이 되라고 간곡히 타이르시였다. 포로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들의 죄과를 뉘우쳤고 자기들을 죄악의 길로부터 광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드리였다.

시난차전투에서 우리 부대들은 보병총 20정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시난차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 지은 우리 부대는 승리의 기세드높이 무송현 서강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연설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시난차인민들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깊이 신뢰하게 되였고 일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을 반대하는 싸움에 한결같이 나서게 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시난차전투에서 편의대를 조직하시여 대담한 주간행동으로 단시간내에 적을 소탕하시였을뿐만아니라 인민들을 혁명의 한길에로 힘차게 불러일으키시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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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달라스님의 댓글

달라스 작성일

  대단하십니다. 역시 김일성 주석님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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