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20. 적들의 흉계를 부시고 - 윤태홍 > 민족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민족게시판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20. 적들의 흉계를 부시고 - 윤태홍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1-31 17:01 조회3,537회 댓글0건

본문


적들의 흉계를 부시고

윤태홍      


1938년 여름이였다. 멀리 남만지방에 나가서 활동하던 우리들 경위련대의 일부 성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령을 받고 사령부를 찾아 동만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두달동안이나 계속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우리들의 강행군은 계속되였으며 도처에서 달려드는 적들과의 치렬한 격전이 전개되였다.
류하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고난은 더욱 심해졌다.

적들은 대부대를 풀어서 우리를 《소멸》한다고 날뛰는 한편 경찰과 자위단 등으로 하여금 지방주민들의 일체행동을 삼엄하게 《단속》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지방인민들과의 련계가 끊어진 우리는 20일가량이나 낟알구경을 못하고 산열매로 끼니를 에우면서 잠을 잘 때도 풀밭나무밑에서 절반은 물속에 몸을 잠근채 잠간씩 눈을 붙이군 했다. 이렇게 굶주리고 계속 비를 맞아가면서 험산준령을 넘고 깊은 수림을 뚫고나가느라니 환자들이 생기게 되였고 전투에서 입은 상처들은 아물지 못하고 도져갈뿐이였다. 부상을 당하지 않은 동무들도 온몸이 부어서 눈을 뜨기조차 힘겨웠다. 비물에 젖은 발가락들은 퉁퉁 부어올랐고 살가죽이 벗겨져서 피가 흐르는 다리에서는 불이 이는듯 했다. 이런 몸으로 부상당한 전우들을 업거나 담가에 눕혀 험한 길을 더듬어가는 한걸음한걸음은 그대로 피어린 투쟁이였다. 그러면서도 극도의 은밀성을 보장하고 적들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쏟아져내리는 비물도랑을 거슬러오르기도 했고 산비탈에 울긋불긋한 딸기덤불을 보고도 굶주림을 참으며 그냥 지나쳐야 했다. 그럴수록 가슴속에서는 앞길을 재촉하는 전투적욕망과 그 욕망을 따라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불길처럼 일었다.

(한걸음도 지체말자. 어떤 일이 있어도 명령받은 그날까지 사령부에 도착해야 한다.)
나혼자 생각도 이러했고 서로서로 고무하고 부추기는 말도 이러했다.

간혹 담가우에 누운 전우가 뜬소리로 안타깝게 《물!… 물!》하면서 얼굴에 가린 수건을 입속으로 끌어들일 때면 우리 가슴속은 더욱더 빠작빠작 타드는듯 했다.

《참게. …참아야 사네.》
이렇게 가슴아픈 말을 하면서 우리는 그의 입으로 끌려들어가는 수건을 걷어서 물기를 꼭 짜버린다음 다시 얼굴을 가려주군 했다. 그리고는 묵묵히 걸었다. 당장이라도 되돌아서서 적들을 맞받아 쓸어눕히고싶은 충동도 꾹 눌러참고 금시 주저앉을것만 같은 몸을 버티면서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울창한 밀림속 험한 길을 걸어가는 우리였으나 가슴속에는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할 해빛밝은 앞길이 내다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고계실가.)
이런 생각을 하면 금시 눈앞에 사령부의 밀영이 나타나는것만 같았다.

《동무들을 몹시 기다렸소. 한동무도 빠짐없이 돌아와주어서 기쁘오. 나는 동무들을 믿었소. 자 어서들 이리 들어오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문밖으로 나오시여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그이, 부상당한 동무들은 어린아이처럼 다루어야 한다고 하시며 더운 물 한그릇도, 따뜻한 구들도 먼저 내주시던 사령관동지의 그리운 영상이 우리를 앞으로앞으로 이끌어주는듯 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흑석진부근을 지나 휘발하강을 건너섰을 때였다. 두달동안이나 계속되던 장마가 끝나 개이고 맑은 날씨에 따뜻한 해빛이 비쳤다.

사나운 강물을 건너선 우리들은 젖은 옷을 쥐여짜기도 했고 행건을 고쳐매며 잠시 다리쉼을 했다. 그런데 몇동무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손을 더듬거나 몸을 뒤틀며 풀밭에 쓰러지는것이였다.
《웬일이냐?!》
우리는 모두 놀랐다.

나는 우리 분대에서 제일 나이어린 장봉문동무에게로 가서 그를 급히 안아일으켰다. 그는 내 손을 더듬어잡고 머리를 내가슴에 기대면서 갑갑한 숨을 내쉬는것이였다.

《내 눈앞이 갑자기 캄캄해져요. 이젠 아무것도 안보여요. 나를 내버려두고 어서들 가세요. 이러다가 모두들 늦어지면 어찌나요.》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그를 내버려두고간단말인가. 나는 그를 그러안고 그의 손발을 주물러줄뿐 얼른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런 때에 단 한숟가락의 미시가루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하는 생각이 들뿐이였다.
《나는 이제 18살이예요. 10년이고 20년이고 견디면서 더 많이 싸우고싶었어요. 내가 못보면 우리 동생들에게라도 광복된 우리 조국을 보여주고싶었어요.》
눈을 감은채 힘들게 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이제라도 이 동무에게 더운물에 무엇을 좀 타먹여주었으면…)
이런 생각을 할수록 더욱 안타까왔다.

《분대장동무, 차라리 나를 여기 남아서 싸우다 죽게 해주세요.》
그러면서 장동무는 총을 더듬어쥐고 땅에 엎드려 뒤에 오는 적들을 맞겨누듯이 몸을 돌이키는것이다.

《아니다. 너는 죽지 않는다. 어째서 너를 못구한단말이냐.》
그 어떤 굳센 믿음이 나의 피를 끓게 하였다. 나는 급히 그를 업고 일어섰다.

그러나 나도 몇걸음 걸어가다가 눈앞이 캄캄해져서 그만 엎어졌다. 몸전체가 금시 땅속으로 잦아드는것 같은 어지러움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진정하기 위해 천천히 숨을 내쉬였다.
이때 곁에서 다른 동무를 부축해주던 중대장의 목소리가 어느 먼곳에서처럼 들려왔다.

《여러날씩 낟알구경을 못하고 지친 몸에 부상까지 당한데다가 또 물살이 센 강물을 헤염쳐건너서자마자 갑자기 뜨거워진 해빛을 쬐게 됐으니 그렇게 될수도 있소. 그러나 놀랄것은 없소. …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하면서 잠시들 쉬오. 긴장한 생각을 늦추지만 않으면 우리가 굶어서는 죽지 않소.》

중대장은 경계를 강화하면서 이런 동무들에게 랭수를 떠다가 상한 다리를 씻어주게 하였고 눈을 가려주게 하였다. 그리고 잠시후 수림속으로 들어가서 하루 쉬여가자고 하였다.

어느정도 기력을 차려가지고 우리가 수림속으로 찾아든것은 해질무렵이였다.
《이제 며칠만 더 고생을 하면 사령부에 도착하게 될것이요. 그럴수록 더욱더 긴장성을 높이고 적정을 잘 알아야 하겠소. 우리가 잘못 행동하면 우리자신들은 물론이고 사령부위치까지 적들에게 알려주는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소. 하루 쉬면서 적정도 다시한번 알아보고 또 식량도 준비하지 않고서는 행동하기 곤난하오.》

지휘부에서는 이곳에서 20리쯤 되는 뚱베차부락과 강건너에 있는 흑석진 등지로 정찰조원들을 파견하였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전투준비상태에서 교대제로 행건을 풀고 찬물에 상처들을 씻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일부 동무들은 송기를 벗기고 산열매를 따서 저녁을 에웠다.
기다리던 정찰조원들이 돌아온것은 그 다음날 새벽이였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뚱베차부락에는 몇채의 큰 지주집이 있고 양조공장과 위만군들의 식량창고도 있으나 경비인원은 불과 자위단원 30여명뿐이며 적의 《토벌대》들은 휘발하강 건너쪽인 흑석진에 집결해있다는것이다.
정찰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다음과 같은 행동지시를 주었다.

…적들은 우리가 이 부근 어느 지점에 있으리라는것을 모르고있을리는 없다. 그러면 어째서 계속 추격해오지 않는가. 적들은 강건너에 있지만 이곳부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시는 주력부대들의 활동이 눈부신 지대이므로 적들도 무모하게는 달려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적들이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러있지는 않을것이며 우리가 뚱베차부락을 습격한줄만 알면 적들은 인차 강을 건너올수 있다. 그런것을 예견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강을 건너서기전에 민첩하게 행동해야 하며 뚱베차부락을 습격하고 식량을 준비한후 다시 밀림에 들어와서 다음행군방향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개소대를 휘발하강가에 있는 흑석진쪽도로변에 방차대로 배치하고 또 일부 력량은 부락밖에서 엄호하도록 한다음에 이른아침 짙은 안개를 리용하여 우리는 부락에 접근하였다.

이때 부락정문에서 보총소리 두방이 났을뿐 우리가 문을 부시고들어설 때에 적들은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말았다. 놈들은 부락민들까지 끌고가버려서 우리가 부락복판을 통과할 때까지 어느 누구하나 만날수 없었다.

다른 지방, 특히 동만에서 같으면 수많은 인민들이 달려나와서 우리를 환영하여주었으리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허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적들과 전투없이 손쉽게 부락을 점령하고 적들의 식량창고며 지주집고간을 헤치게 된것이 어느 모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적들이 나타날 경우를 예상하여 경계를 강화한 다음에야 우리는 적들의 기관과 자위단실, 지주집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기관총분대원들을 인솔한 나는 양조공장을 경영하는 진모라는 지주집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그 집은 이 부락에서도 제일 큰 기와집이였는데 앞뒤문이 전부 열려져있을뿐 집안에는 역시 어느 머슴군의 그림자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방이며 부엌 어디에나 아침밥을 먹다가 도망친 흔적이 력연했고 지하실 같은데도 끌어내던 쌀섬과 소금섬들이며 기타 여러가지 짐짝들이 란잡하게 널려져있었다.

나는 분대원들과 함께 지주가 거처하는 방에도 들어가보았다.
첫눈에 띈것은 넓은 방에 굉장히 큰 상이 있고 그 상우에는 음식들이 가득히 차려져있었다.
닭과 돼지고기며 밀가루만두, 잡채, 당과즙, 떡, 삶은 닭알, 고구마 등 모두가 다 여러날 음식구경을 못한 우리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것들이였다.
바짝 마른 내 입안에도 군침이 감돌아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음식상주위에 서있는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지치고 창백한 얼굴부터 눈에 띄였다. 어떤 동무는 취할듯한 음식냄새를 못참는듯 외딴곳으로 시선을 돌리고서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중대장에게 알리고 지시를 기다려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문밖으로 걸음을 내디디였다.

그런데 이때 상곁에 서있던 대원 한명이 어느사이에 집었었는지 만두를 손에 든채 나를 흘깃 쳐다보는것이였다. 나는 흠칫 놀란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동무! 무슨짓이요. 참지 못하고…》
이렇게 소리를 치려했으나 그만 목이 꽉 메여올랐다.
그는 휘발하강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나어린 장봉문동무가 아닌가. 오죽 배가 고프면 저러랴 하는 생각으로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 물이라도 먼저 권하며 어서 먹으라고 할 심정이 앞섰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사념을 참으면서 피기없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우리는 반드시 검식을 하거나 지휘관의 지시하에서만 음식을 먹게 되여있었다. 게다가 적들이 차려놓은 음식이니 더욱 그러했고 지금까지 이 부락에 들어서면서부터 보고느낀 일들이 그 어떤 경각성을 불러일으켰기때문에 나는 잠시 더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장동무!》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코등이 찡해지는것을 참으며 이렇게 그를 불러놓은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당황해서 어쩔바를 모르며 손에 들었던 음식을 상우에 내려놓는 나어린 장동무의 두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곁에 서있는 동무들도 모두 무거운 숨을 천천히 내쉬는것이였다.

《잠시 더 참읍시다. 전투수색이 끝난 다음에 중대장동지의 지시를 기다려 먹도록 합시다.》
나는 이렇게 동무들을 타이르면서 문밖으로 나와 수색을 계속했다.

이때 중대장의 련락병이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그의 전달에 의하면 부락안에 있는 다른 지주집과 자위단실 등에도 이 집과 비슷한 음식상들이 벌려놓은채 있으며 길에 널려있는 쌀섬들과 창고들에 있는 쌀, 소금, 량식 등에도 독약이 섞여있다는것이였다.

이 말을 들은 우리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이놈들, 어디 보자.》

음식상이 차려져있는 방으로 나는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상우의 음식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과연 하나하나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였다. 우선 장동무가 손에 들었던 만두빛부터가 눈설어보였다. 거칠고 푸르스름한것이 아무리 서투른 솜씨라도 이렇게 설익히거나 거칠게 빚을리는 없다고 생각되였다.

중대장의 지시대로 우리는 그 음식들을 전부 먹은것처럼 없애치우고는 쌀섬과 기타 로획물자들만 운반해가지고 그곳을 급히 떠났다.

적들은 우리가 음식을 다 먹었으니 얼마못가서 취해넘어졌으리라고 생각할것이며 반드시 뒤따라올것으로 예견됐다. 그래서 우리는 흑석진과 뚱베차부락어간에 있는 도로옆 릉선에 방어하기 좋은 장소에 화력을 배치하고 놈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의 예견은 틀리지 않았다.
적들은 인차 뒤따라왔다. 그놈들은 뚱베차부락자위단뿐만아니라 일본지도관놈이 인솔하는 약 200여명의 《토벌대》들이였다.
적들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우리는 모두 취해넘어진듯이 위장을 한채 침착하게 대기하였다.

우리가 독약에 취해넘어졌으리라는것을 인정해서인지 적들은 도로주변 강냉이밭머리에서 잠시 대렬을 멈추고 릉선을 올려다보더니 무기들을 어깨에 멘채 계속 기여오르는것이였다.

기다리던 지휘관의 구령이 내렸다. 우리는 적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고 나는 경기관총으로 적들의 중심을 갈겼다. 마음놓고 기여들던 적들은 우리 눈앞에서 삼대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중의 어떤 놈들은 너무 놀라서 저희끼리 그러안고 딩굴기도 했고 미처 심지도 뽑지 못한 수류탄을 우리에게 올려뿌렸다.

일본지도관놈이 쓰러지고 40여명의 주검이 나자 놈들은 뿔뿔이 내뛰였다.
그중에는 총을 내던지고 뛴 놈들도 허다했다. 그것은 이 전투에서 쓰러진 적들은 약 40명인데 무기는 약 70정이나 되였다는것만으로도 적들이 얼마나 혼비백산했는가를 알수 있다.

그만큼 우리들은 통쾌했다. 아니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환희와 새로운 신심이 가슴가득히 넘쳐났다.

(네놈들의 그 어떤 흉계도 우리를 어쩔수 없다.)
전투후에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처음으로 우리는 식사준비를 했다. 쌀은 끓는 재물에 여러차례 씻고 소금은 솥에 넣고 닦았다. 쌀에서는 푸른 빛이 감도는 기름방울이 떠나가고 소금에서는 파란빛 가스불이 모기향 연기처럼 피여나다가는 스러지군 했다.

그 다음에도 몇번을 더 손질하고 시험해본 뒤에 죽을 묽게 쑤어서 나누어먹게 되였다.

《동무들에게 밥도 짓고 떡도 쳐서 실컷 대접하고싶은 생각은 간절하오. 그러나 우리는 오래동안 빈속으로 지냈으니까 우선 묽은 죽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다음에 밥을 지어먹도록 합시다. 이것도 역시 경각성이요. 배가 고프다고 있는대로 털어먹는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소.》

이렇게 말을 하면서 중대장은 우리 대원들을 쭉 둘러보았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또 한번 극복했소. 이제 얼마안가면 림강땅에 들어서게 되오. 어떠한 곤난에도, 그 어떤 적들의 간계에도 넘어가지 않은 동무들은 굳세고 용감했소. 나는 참으로 기쁨을 금치 못하오.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교훈을 잊지 말고 긴장성을 늦추지 말아야 하겠소.》

중대장의 말을 듣고있는 나의 눈앞에는 또다시 사령부의 밀영이 보이는듯 했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오시여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사령관동지의 그리운 모습이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다시 행군을 계속하면서도 나는 이러한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내곁에서 노래라도 부를듯이 거뿐거뿐 걸어가는 나어린 장봉문동무에게 자주 눈길을 돌리며 《우리는 모두 무사히 행군해가고있습니다.》이렇게 마음속으로 보고를 드렸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고 누리는 생활이 행복할수록 나는 더욱더 이러한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우리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얼마나 귀중한 전우들이 성스러운 이 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서슴없이 바쳤던가. 그만큼 오늘 우리의 행복과 혁명의 승리가 귀중함을 더욱더 깊이 느끼게 된다.

항상 꺼질줄 모르는 승리의 신심과 혁명적락관주의로 사령관동지의 모든 지시와 명령을 어김없이 받들어나간 우리의 전우들, 바로 그러한 전우들이 있었기에 나도 또한 그 어려운 투쟁의 나날을 끝내 이겨냈으며 오늘도 우리 당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전사로서 성스러운 혁명대렬에 튼튼히 서있는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