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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18. 총검의 숲을 헤치고 국내에로 - 박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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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1-29 09:01 조회5,37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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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의 숲을 헤치고 국내에로

박성철              


1935년 봄까지 우리 부대는 계속 연길현 신선동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다.

이 시기 적들은 자기 주력부대를 총집중하여 동만의 우리 유격대를 전멸하려고 밤낮으로 근거지를 공격하기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동만 각현의 어느 근거지에서나 무장은 물론 수적으로도 우세한 적과의 가렬처절한 전투를 련일 거듭하였다. 게다가 극도의 식량난을 비롯한 이루 헤아릴수 없는 간고한 시련을 겪고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반《민생단》투쟁에서 범한 좌경적오유의 후과는 매우 뼈저린것이였다.

이와 같은 정세하에서 유격근거지를 계속 고수한다는것은 적과의 투쟁에서 완전히 피동에 빠질 위험이 있었을뿐만아니라 유격근거지들이 적의 포위속에서 각개격파당할수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정세를 통찰하시고 1935년 봄 다홍왜와 요영구에서 있은 회의들에서 반《민생단》투쟁의 착오를 시정하고 혁명력량을 더욱 단합할데 대하여 그리고 유격근거지를 해산하고 무장투쟁을 보다 광활한 지역에로 확대강화할데 대한 현명한 전략적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이 방침에 따라 드디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남만과 북만 그리고 조선국내에로 진출하는 등 종횡무진 그 활동범위를 확대하게 되였다.

이런 때에 우리들은 신선동에서 처창즈로 옮겨왔고 거기에서 바로 국내진출에 대한 임무를 사령부로부터 받았다.

우리가 맡은 국내공작의 주요임무는 우선 국내에 진출하여 일제통치의 암흑속에서 신음하는 조선인민에게 조선은 살아있으며 조선은 반드시 광복된다는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는것이였다.

그리고 국내의 인민들과 련계를 맺을수 있다면 자리를 잡고 도시와 농촌들에 혁명단체들을 조직하며 사령부와의 정상적인 련계하에 소수의 적들은 소멸하면서 기동성있게 군사행동과 정치사업을 배합하는것이였다.

우리들은 당시의 국내형편으로 보아 이 과업을 결코 쉽게 해결할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제는 북부국경지대에다가 4㎞에 하나씩 포대를 쌓고 또 주재소마당에 돌담으로 역시 포대를 구축하였다. 뿐만아니라 국내지역에 경찰망을 확장하고 심지어는 산림간수들마저 훈련시켜 산간벽지의 독립가옥까지 감시망에 넣고있었다.

그야말로 북부국경지대는 물론 전조선천지가 적들의 보루와 경찰서로 얽어놓아 총검의 숲을 이루고있었다.

이러한 정황하에서 조선국내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진출한다는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총검의 숲을 헤치고 국내에로 진출하는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했다.

1935년 5월초순이라고 기억된다.

국내공작의 성원으로 3중대에서 중대장 황해룡동무와 정일권동무, 2중대에서는 내가 선출되였고 그리고 풍산일대의 지리에 밝은 재경이라는 동무도 선출되였다. 그밖에 선출된 많은 동무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곧 출발준비를 갖추었다.

선전문건으로 《전체 조선형제자매들에게 보내는 격문》, 《전조선동포들은 일어나라!》등의 삐라와 선전화들과 《혁명이란 무엇인가?》,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착취란 무엇인가?》, 《계급이란 무엇인가?》등 소책자를 준비하였다. 소책자는 주로 청년들에게 줄것을 예견하였다. 그밖에 변장할수 있는 의복류, 식량을 비롯하여 공작임무에 따라 각이한 무기 등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중대장 황해룡동무의 인솔하에 출발하였다.

조국으로 간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고국땅을 떠나 타국만리를 정처없이 헤매여다니면서 일제원쑤를 쳐부시겠다고 밤낮으로 결의를 다지며 의분의 목소리를 높이던 우리가 지금은 영예로운 조선인민혁명군대원으로서 조국으로 진군하는것이다.

전우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는 무기를 몸에 지니고 조국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가슴은 높뛰였다.

첫 목표지점은 무산방향이였다. 우리들은 수림지대로 은밀히 행군하였다.

약 5일간이나 걸려서 우리들은 두만강류역에 다달았다.

강건너는 조국땅이였다.

우리들은 한참이나 어둠속에 잠겨있는 조국산천을 바라보았다.

몇해를 떨어져살면서 보지못하던 어머니를 눈앞에 보는것 같았다.

우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두만강의 물결은 소란스럽게 설레이며 소리를 내여 흘렀다.

우리들은 옷을 입은채 물에 뛰여들었다. 얼마쯤 물살을 가로질러 키를 넘는 물속을 돌파하고나니 다행히도 그 다음부터는 머리가 솟아나고 물결은 가슴아래로 휘감았다.

차디찬 두만강의 물결과 싸우면서 무산쪽 대안에 올라붙었을 때 우리의 몸은 얼음속에 잠겼다나온것처럼 와들와들 떨리였다.

우리들은 무기를 정비하고 경계선을 돌파하였다.

《여기서부터는 결사전이다. 탄알을 허비하지 말라. 덤비지 말고 앞사람에게 붙어서라. 떨어지지 말라.》중대장의 말은 추위에 떨리면서도 엄격하였다.

언덕우에 올라서니 자동차길이 나졌다. 그리고 멀리 전기불이 가물거렸다. 어떤 동무가 그곳이 무산이라고 말했다. 알고보니 무산 15리 못미친곳에 도달한것이였다. 개짖는 소리도 들리였다.

우리는 우선 이 근방의 산간부락에 있다는 장면장네집으로 향하였다.

우리들은 산하나를 넘어 장면장의 집에 들어갔다. 왜 그런지 밤에 보기에도 면장집치고는 매우 초라한것을 직감했다. 주인을 찾으니 이윽해서 방안에 불이 켜지고 주인이 나왔다.

《이 집이 장면장집이 틀림없지요.》

주인은 어안이 벙벙하여 얼마동안은 아무 말도 못하다가 《13년전에 면장을 했습지요.》라고 대답했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아닌게아니라 한심했다. 가장집물이란 보잘것 없었다. 주인의 옷차림이나 이부자리를 보아도 그것은 더우기 어이없었다.

(일제에게 아부하여 면장을 지낸 신세가 이 꼴이 되였으니 장차 놈들의 착취에 시달림을 겪어오는 인민들의 신세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 가슴이 뭉클하여지는것을 느끼였다.

면장집에 들려서 몸을 녹일겸 식량을 비롯하여 앞으로의 행동에 필요한것들을 마련하자던노릇이 결국 수포로 돌아간셈이다.

기왕 정체가 폭로된 이상 우리는 이 집에서 얼마간 휴식한다음 마을의 농민들을 비밀리에 모아다가 선전사업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물에 젖은 무기를 소제하고 주인집에 부탁하여 불을 피워서 옷과 신을 말리웠다. 얼마후 주변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정일권동무가 그들앞에 나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일제의 간악한 침략정책을 폭로하면서 왜 조선사람이 자기 나라를 빼앗기고 오늘과 같이 암흑천지에서 피눈물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는가에 대하여 말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인민은 절대로 망국노가 되여서는 안되며 일제를 타도하고 자기 조국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것을 이야기하였다.

지치고 헐벗은 마을사람들은 우리들을 눈여겨 바라보기만 하더니 우리들의 손목을 붙잡고 감격어린 어조로 《나라찾는 일에 얼마나 수고를 합니까.》라고 목이 메여 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자기들의 모든 기대와 희망을 걸고있다고들 말했다.

우리들은 가지고간 선전자료들을 대상에 따라서 나누어주었다.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그것들을 소중히 품속깊이 간직하는것이였다.

선전공작을 끝낸 우리들은 적의 추격을 예견하고 두만강연안쪽을 향하여 흔적을 내면서 걸어갔다. 이렇게 하여 일단 적의 눈을 딴데로 돌리게 한다음 우리들은 슬쩍 종적을 감추고 다시금 국내에로 숨어들면서 적정을 살펴보았다.

정찰에 의하면 적들은 라남 19사단의 일부와 회령, 무산 등지의 수비대까지 동원하여 두만강연안에다 50m 간격으로 경비를 세우는 한편 우리의 종적을 찾아내려고 경찰들과 합세하여 농민들을 강제동원하고 짐을 지운다, 소를 끌어낸다 야단법석이라는것이였다. 이것은 놈들이 대포위선을 칠 때면 탄약, 기타 물자들을 나르기 위해 흔히 하는짓이여서 우리들은 적의 기도를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깊은 산속에 스며든 우리는 적정에 대처하여 긴급히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분산전술로써 활동할것이 결정되였다.

이리하여 3개의 소조를 편성하고 각기 행동하였다.

중대장 황해룡, 정일권, 재경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의 조는 그곳을 떠나 풍산골로 행군하였다.

다른 2개 소조는 회령, 청진과 혜산, 갑산 등의 방향으로 떠났다.

얼마간 행군하였을 때 회령쪽으로 가는 조방향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려왔다. 그 총소리는 기관총사격소리까지 섞여서 사뭇 소란스러웠다. 우리는 그 조가 적과 조우하였음을 알았다.

우리는 적의 포위에 들지 않도록 수림속을 급히 내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편 혜산방향으로 가는 조쪽에서도 총성이 들려왔다. 거기에서도 적과 조우전이 벌어진것임이 틀림없었다.

우리들은 급히 산중턱을 탔다.

캄캄한 밤에 험준한 산허리를 손더듬으로 그것도 적들의 턱밑으로 기여넘는다는것은 백병전을 하기보다 몇곱절 힘들었다.

밤새도록 간것이 제굽이를 자꾸 돌아서 겨우 10리를 가나마나 했다. 날이 밝자 사방을 살펴보니 포위선은 벗어났으나 앞산 장대에는 적들이 욱실거리고 아침밥을 짓는지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우리들은 어디든지 몸을 숨겨야 했다. 적들을 코앞에 놓고 어디다가 몸을 숨길것인가. 우리들은 나무사이를 기여가다가 가랑잎이 쌓인 웅뎅이를 발견하였다. 그 가랑잎은 아마 수십년이나 묵었던지 웅뎅이를 헤치고보니 축축히 썩어있었다. 그러나 그우에 겹겹이 쌓인 가랑잎은 말라있었다.

중대장의 지시로 우리들은 곰이 땅굴로 들어가듯이 그 가랑잎속을 파고들었다. 얼굴까지 다 들씌워놓아도 공기가 통해서 답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걱정스러운것은 놈들이 군견을 끌고다니면서 냄새를 맡게 하면 야단이였다.

그러나 요행 날이 어슬어슬할 때까지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말았다.

우리들은 적들이 낮에 수색할 때에는 숨고 밤에 놈들이 잘 때에는 행동을 했다.

우리는 밤사이에 산을 둘씩이나 넘었다. 그후부터는 적을 볼수 없는 수림으로 길을 걷게 되였다. 모름지기 적과의 거리는 30~40리정도 되였다. 그런데 문제는 식량이였다. 아무리 식량이 곤난하여도 함부로 민가에 들어갈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놈들은 어떠한 산중독립가옥이라도 다 감시를 붙이고있었다.

우리들은 다시 걸음을 다그쳐서 그 이튿날 점심때가 되여서 백암방향이라고 짐작되는 지점에 당도하였다.

우리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보지 못한 심심산골안으로 들어서게 되였다. 발걸음이 빠르다고 해서 내가 선두에 섰다. 우리들은 가다가 굶주린 배를 그러안고 잠시 쉬게 되였다. 나는 쉬면서 무심히 앞에 있는 늙은 소나무에 눈이 가자 《저게 뭔가?》하고 소리쳤다.

그것은 소나무가지에 매여달려있는 머리채였고 그 밑에는 사람의 뼈가 소복이 쌓였는데 녀자의 고무신도 여기 한짝 저기 한짝씩 널려있었다.

《범한테 물리여왔을가? 아니면 어떻게 된 사연일가?》

《이러한 심산에서 왜 녀자가 목을 매였을가?》

《가난한 살림에 쪼들려서 자살을 한게지.》

이렇게 말들을 주고받는사이에 우리의 담화는 어느덧 삶과 죽음에 대한 심각한 문제에로 넘어갔다.

(일제놈의 학정밑에서 더는 살아갈수 없어 스스로 목을 매고죽은 사람이 이 이름모를 아낙네 혼자뿐이겠는가.

조국땅은 눈물과 굶주림과 죽음의 장막이 드리워있는것이니 이 장막을 우리가 걷어야 한다.

이 녀성처럼 이렇게 보람없이 죽을 필요야 어디 있는가.

우리는 어디까지나 혁명의 길에서 살고 죽어도 혁명의 길에서 죽어야 한다.

자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성전에서 최후를 마친다는것, 이이상 고귀하고 보람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적의 총검의 숲을 헤치며 우리의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나아가고있다.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우리는 헛되게 죽을수 없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짐했다.

우리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힘을 내여 다시금 앞길을 재촉했다.

풍산골입구에만 들어서면 재경동무의 누이가 살고있기때문에(그것도 10년전에 살았다는것인데…)그곳에 발붙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 재경동무를 따랐다.

이윽해서 우리들은 높은 고지에 나섰다. 백암의 분수령에 오른것으로 짐작되였다.

우리들은 어느한 산중턱을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재경동무가 《물방아다!》하고 환성을 올리였다. 그 물방아가 낯이 익다는것이다.

우리들은 산옆으로 붙어서 인가에 접근하였다. 그런데 10년전에 이곳에서 살던 재경동무의 누이가 아직도 사는지 그것이 문제였다.

얼마후 재경동무는 어떤 아낙네가 물동이를 이고 샘터에서 올라오는것을 보고 《틀림없다. 물동이를 이고 한손으로 앞머리 물을 뿌리는 맵시가 여전하다.》하고 좋아했다.

우리들은 바삐 배낭속에서 신사복을 꺼내여 침을 발라서 펴입게 하고 구두며 넥타이를 재경동무에게 신기고 매주고 했다. 모자도 구겨진것을 당겨서 펴가지고 씌워주었다. 우리들은 얼싸한 신사가 된 재경동무를 산아래로 내려보내였다.

이렇게 되고보니 희망은 날개를 돋쳐 그럴듯한 계획이 자꾸 떠올랐다.

《발붙일 곳이 생겼구나.》

《비밀을 지키게 하고 근거지로 삼자.》

《여기를 근거지로 삼고 신사복을 입은 다음 거리를 마음대로 나들어보자.》

《청년들을 교양해서 유격대원으로도 받자.》

이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고있는데 20분도 못되여서 재경동무가 되돌아왔다.

재경동무는 누이를 만나기는 하였으나 순사놈들이 집집에 들어있으므로 행동하기가 곤난하다는것을 말하면서 누이가 준 밥과 소금을 내놓았다.

중대장은 《저놈들을 잡는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의 행동에 불리할수 있다. 그러므로 인내성있게 적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려서 될수만 있으면 이곳에 발을 붙이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이튿날 날이 밝자 우리는 재경동무에게 또다시 신사복을 입혀서 매부가 달구지를 몰고올수 있는 장소에 보냈다. 그러나 그날도 일이 시원치 않았다.

매부를 만난 재경동무는 식량을 부탁하였는데 그는 경찰들이 달구지짐까지 샅샅이 들추어내므로 식량을 실어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아니 글쎄, 이런 산골에 그런 신사복을 입고 나타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했다 한다.

국내에서는 신사복만 입으면 자산계급이나 주구로 알고 적들이 주목을 돌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우리의 타산이 들어맞지 않았다. 별수없이 우리들은 동리 앞산에 숨어서 사흘이나 굶다싶이 하면서 적들을 감시하였다. 그런데 적들은 철수는커녕 더욱더 증강해왔다. 여기서 풍산골목재소가 50리라고 했다. 자리는 좋으나 형편이 그렇지 못하니 어찌할수 없었다. 이대로 눌러앉아서 적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다가는 굶어죽고말것이다. 뿐만아니라 여기서 지체한다는것은 우리의 비밀활동이 로출될 우려도 있는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목재소로 발판을 옮기기로 정한 다음 급히 떠났다.

막상 떠나고보니 며칠을 굶은지라 힘이 부쳐서 고개를 둘도 못넘은채 해가 넘어가버렸다.

소금 두숟가락이 유일한 식량이였다.

북부지대는 5월이라지만 산중벽지엔 아직도 눈이 남아있고 산채들이 움도 트지 않았었다. 우리들은 말라빠진 버섯을 기여다니며 뜯어다가 여러번 끓여서 독을 뺀다음 소금을 쳐서먹었다. 헌데 먹은지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모두가 설사를 만났다. 버섯에 독이 있었던 모양이다. 굶은데다가 설사까지 만나고보니 기운이 다 빠지고 움직이기조차 힘들게 되였다. 오랜 시간 고통을 겪고나니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고말았다. 이대로 산중에서 병들어 누워있을수는 없었다.

우리들은 억지로 일어나앉았다. (걸어야 한다!)스스로가 자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들은 골짜기로 들어서서 인가쪽으로 가까이 갔다. 거기는 목재소사람들이 사는 고장이였다.

마을아래로는 철길이 나있었다. 우리들은 서로도와 부축하면서 인가 200m 가까이까지 접근하였다.

열려진 문안에는 불이 켜있고 누런옷을 입은것들이 앉아있었다. 적이였다.

(저놈들을 쳐없애고 식량을 해결할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너무 지친 몸이니 서뿔리 행동할수는 없다.)

우리는 토의끝에 하루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놈들은 다음날도 가지 않았다.

(인제는 할수 없다. 적과 결사전을 해야 한다. 더는 기다릴수 없다.)

우리들은 싸울것을 결심하고 어둡기를 기다려 적이 있는 집으로 기여갔다.

중대장은 탄알을 골라 재우게 했다.

우리들은 서로 다리를 주물러 신경을 풀고 강물을 마신다음 더 접근해갔다.

저녁무렵이라 적들은 밥을 먹으러 모여들었다. 우리들은 적들을 감시하면서 물홈채기로하여 한발한발 접근해들어갔다. 약 30분이나 걸려서 집앞으로 다가가서 열려진 방안을 보니 금방까지 있었던 적들이 온데간데 없었다. 우리들은 잠시 주춤거리고있는데 집안에서 주인인듯한 사람이 나왔다. 우리는 그를 불러세우고 물었다.

《놈들이 다 어딜 갔소?》

《금방 4륜밀차를 타고갔쉐다.》

그 집주인은 우리를 미처 유격대로 알지 못하고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우리는 집주인에게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것과 굶은 사유를 알려주고 죽을 쑤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주인은 그 소리를 듣자 반색을 하더니 우리에게 다가와서 그러면 당신들이 김일성장군님부대의 어른들이 아니냐고 은근히 물었다. 그렇다고하니 그는 곧 우리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안내했다.

우리들은 주인에게 일제의 간악한 침략정책과 조국의 광복에 대하여 상세히 말해주면서 원쑤들에게서 얼마나 학대를 받아가며 사는가고 이야기하였다.

주인은 떨리고 분이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조선사람치고 왜놈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왜놈이 원쑤라는것은 산천초목도 다 알고있쉐다. 당신네들은 참 훌륭한분들이오그려.》

주인은 옆집에도 귀띔하여 비밀을 지킬것을 부탁하고 죽을 쑤었다.

우리들은 멀겋게 쓴 죽을 마시였다.

조국땅에 들어와 이런 따뜻하고 지성어린 음식을 받고보니 눈물이 돌았다.

(인민들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자기의 혈육처럼 여겨준다. 이 굽히지 않는 민족의 의지를, 힘의 원천을 일제놈들이 제아무리 발악한다해도 누를수 없는것이다.)

우리들은 그만 죽에 취하여 쓰러져 혼곤히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깨여보니 주인은 벌써 주근주근하게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우리들은 서로가 굶었던 배에 많이 먹지 말라고 권유하면서도 밥이 꿀처럼 달아서 어느덧 숟가락이 연신 올라갔다.

식사가 끝난후 집주인에게서 상세한 적정을 들었다.

후에 알고보니 주인은 래일아침 자기 식구들이 먹을 식량으로 우리를 대접했던것이였다.

우리는 주인에게 사례를 하고 목재소 서기의 집을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들은 집주인의 안내로 목재소 서기의 집을 찾아가서 금고와 창고를 열라고 했다.

우리들은 창고문을 열고 모포, 식량, 소금, 군용밥통, 간장 등을 로획하였다.

로획한 물건들은 목재소주변의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우리에게 밥을 지어준 주인집에는 쌀을 주었다.

그런 다음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선전사업을 했다.

생활에 쪼들리고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던 이 궁벽한 마을의 주민들은 무장한 우리들을 보자 말보다도 우선 눈물이 앞서서 우리의 손을 마주잡고 소리없이 눈믈을 흘리였다. 우리들은 조국의 산천이 쩡쩡 울리도록 목청껏 웨쳤다.

《우리가 누구때문에 못살게 되였는가. 우리는 왜 망국노의 쓰라린 생활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싸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무장력인 조선인민혁명군이 있다. 당신들이, 조선인민들이 누구나 다 흠모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신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하고계신다. 이러한 혁명군이 있는한 조선은 반드시 일제를 쳐부시고 제나라를 다시 찾을것이다. 다같이 힘을 합쳐 일어나라. 만일 일제강도놈이 없고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누가 당신네들을 이렇게 마소처럼 부리겠는가. 모두 일어나라. 청년들은 피끓는 청춘을 반일항쟁에 바치라.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우리의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들어와 원쑤격멸의 길에 나서라.》

모여왔던 사람들은 《김일성장군! 김일성장군!》하며 여기저기에서 물결치듯 하였으며 경탄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우리들은 가지고간 소책자들과 선전문들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불씨를 뿌리시오. 혁명의 불씨를 뿌리십시오.》라고 말하였다.

물론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지 않은 이 시간을 가지고도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혁명의 불씨를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이 불씨들이 활활 타번지면서 크나큰 화산으로 변할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인민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간 뒤에 경찰서에 보고하라고 일러주고 차후작전을 위하여 일단 철수하였다.

우리들은 수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철길로 나와 4륜밀차를 타고 언덕진 선로를 단숨에 30리가량 벗어져나왔다. 그리고나서 타고온 4륜밀차를 골짜기에 들어메친 다음 아무도 모르게 은페해놓았다. 우리는 다시 산으로 올랐다.

우리의 앞길에는 첩첩 난관이 가로놓여있다. 그러나 이 난관은 반드시 돌파하여야 하는것이다. 혁명의 길은 평탄하지 않다. 이루 헤아릴수 없는 난관이 가로놓인 험준한 길이다. 그러나 이 혁명의 길은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한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그러한 의로운 길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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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달라스 학생님의 댓글

달라스 학생 작성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읽고 우리 선열들이 넘 고생많이 하신거 알았어요. 항일빨찌산이 김일성세력이지요? 그럼 좋은 사람들인데 왜 빨갱이라고 욕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무척궁금해요.

애독자-3님의 댓글

애독자-3 작성일

  투쟁!
친일매국노는 물러가라!
친미매국노도 물러가라!

MB OUT!
PKH OUT TOO!

샌후란시스코님의 댓글

샌후란시스코 작성일

  일제와 싸운 우리 선열들 참으로 고생과 난관 많았군요. 우린 그 고마움을 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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