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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3권 17. 또다시 압록강을 건너서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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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1-27 06:01 조회2,9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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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압록강을 건너서

김성국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몽강현 남패자에서부터 장백현 북대정자까지의 그 헤아릴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 끝났을 때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자기의 성스러운 투쟁에서 또하나의 뜻깊은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번 행군과정에서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거기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어떠한 곤난도 이겨내는 우리의 불굴의 투지와 혁명을 위하여 하나로 뭉친 단결된 힘이 얼마나 크고 강대한것인가를 다시한번 널리 시위한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끝까지 간직해야 할 귀중한 우리의 밑천입니다.

사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험난하고 간고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은 영광스러운 길이였다.

적들은 종국적으로 우리를 《섬멸》한다고 자기들의 총력량을 기울여 끈질긴 추격과 겹겹의 포위로써 그리고 지역별 《소탕전》등 각이한 전술로써 악착하게 덤벼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들이 장백산맥의 깊은 산속에서 《얼어죽었다.》느니, 《공산군은 이번 토벌에 섬멸되였다.》느니 하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따라 그이의 주위에 한사람같이 뭉쳐 승리의 전진을 계속하고있었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집요하게 달려드는 적들과의 가렬한 전투, 모진 추위와 굶주림, 그속에서 배낭을 털어모은 한홉의 미시가루마저 대원들을 생각하시여 고루 나누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고무에 우리 대원들은 새로운 힘이 솟구쳤으며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전진 또 전진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자신들의 혁명적투지와 강의성을 검열하는 그 간고한 전투와 행군의 시련을 이겨냈고 마침내 목적지인 장백현 북대정자에 도착하였던것이다.

우리가 한겨울동안 간고한 행군을 계속하던 때 장백지구와 국내의 혁명정세도 또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일시 장백지구를 떠나셨던 1937년 말경에 일제의 간악한 탄압이 강화되였고 이로 인하여 조국광복회원들과 조선민족해방동맹산하의 수많은 동지들이 검거된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정세하에서 1939년 봄 북대정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간부회의가 소집되였다. 이 회의에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에 따라 우리는 국내의 무산지구에로 진출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은 국내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진출하여 오만한 원쑤들에게 새로운 타격을 줌으로써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하여 싸우고있다는것을 동포들에게 알려주며 또한 적의 탄압에 시달리는 혁명조직들에 생기를 북돋아주고 다시 추켜세우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그이의 현명한 방침에 따라 우리는 그해 승리의 5.1절명절을 쇤 감격도 새로이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5월 15일 원쑤격멸의 기세드높이 조국땅을 향하여 장백현 곰의골밀영을 떠났다.

우리 대렬이 장백현 24도구부근에 이르자 그이께서는 정찰조를 파견하시여 적정을 더 구체적으로 장악하신 다음 18일에 압록강을 감쪽같이 건느도록 하시였다.

참으로 그때의 감격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자나깨나 한시도 잊어본 일이 없는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 우리는 벅차오르는 감격에 가슴이 후더워졌다.

그동안 몇백번 부닥친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고 혁명의 길에 굳건히 서서 조국의 땅을 다시 밟게 된 우리들은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있지 못한 수많은 전우들을 생각하여 더욱더 뜨거운 결의를 다지였다. 그리하여 저마다 조국산천의 흐뭇한 냄새가 풍기는 흙을 움켜쥐였고 맑은 물속에서 속돌을 골라 배낭에 넣으면서 더욱 용감히 싸울것을 맹세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대원들이 꺾어드린 탐스럽게 핀 진달래를 받아드시고 향기를 맡으시면서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소!》하시며 감격과 흥분에 싸인 우리들을 바라보시였다.

그리고 어린 대원이였던 리오송동무에게 《이 강이 무슨 강인지 아오?》하고 물으셨다.

나서 처음 조국땅을 밟아보는 오송동무는 압록강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 들어왔지만 한번도 본 일이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압록강이 아닙니까?》하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자못 감개무량하신듯 《옳소, 이 강이 바로 조선의 압록강이요.》라고 말씀하시였다.

이국땅에서 나서 어머니의 품이란 모르고 자란 오송동무는 조국땅에 들어서자 어머니의 품에라도 안긴것만 같아서 그이께 《이제는 여기서 다시 돌아가지 않겠지요?》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웃으시면서 《우리는 조국땅에 영원히 돌아오기 위해서 아마 되돌아가야 할것 같소.》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휴식을 한다음 산등성이를 타고 청봉기슭에 당도했다.

청봉에서의 숙영의 밤은 실로 뜻깊고 흥겨웠었다.

우리는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가에 둘러앉아 밤이 깊도록 조국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며 적을 통쾌하게 때려부실 결의들을 새롭게 다지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의하여 나무껍질을 벗기고 《조선청년들, 속히 달려나와서 항일전에 힘있게 참가하자》, 《일본의 파시스트군벌을 때려부시자》등의 구호를 썼다.

우리는 심장으로 새긴 이 구호의 매 글자가 우리 부모형제들에게 새로운 힘을 북돋아줄 정의의 웨침소리로 전해질 생각으로하여 한없이 기뻤다.

그리고 그것을 쳐다보며 나는 먼 타향에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고 어서 빨리 받아보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듯한 그런 심정으로 한참이나 서있던 일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선하다.

우리는 건창과 베개봉에서 각각 숙영하고 그 이튿날 삼지연쪽으로 행군하였다. 우리는 삼지연기슭에서 휴식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못가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100리가량은 물이 없으니 미리 준비들을 잘하라고 하시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맑고 시원한 삼지연물을 량껏 마시고 물통에도 가득 채워넣었다. 조국의 산과 물이 한없이 정다웁기만 하여 대원들은 마치 어린애들처럼 물을 손으로 끼얹으며 즐기였다.

식사가 끝난후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춘 대렬은 대낮에 갑산으로부터 무산으로 통하는 《갑무경비도로》를 걸었다.

적이 우글거리고있는 그런 조건하에서 심산속이면 또 몰라도 적이 닦아놓은 경비도로를 따라 대낮에 행군한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밀림속을 헤치고나간다면 무산지구에로의 진출이 지연될뿐만아니라 그속에서 오래 지체하면 좁은 지역에서 적에게 포위될 위험성이 있는것이다.

이러한것을 예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우리가 밀림속에 있는줄만 알고 도로에는 주의를 적게 돌리리라는것과 설사 도로에서 적과 조우한다 하더라도 놈들을 능히 격파할수 있는 강대한 력량이 우리에게 있다는것을 타산하시고 대도로행군을 하기로 하셨던것이다.

적들이 국경을 《경비》하겠다고 닦아놓고 검열을 마치려고 금방 비로 쓸어놓은 길로 바로 그 적들을 치러간다는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였다. 우리는 힘든줄도 두려운줄도 모르고 보무당당히 걸어나갔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행군한다는것으로하여 마음이 든든했고 어떠한 원쑤도 무찌를 자신이 만만했다.

무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구체적인 전투명령을 내리신다음 이번 싸움의 승산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22일 우리들은 그이의 뒤를 따라 사기충천하여 무산지구를 향해 발걸음을 다그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정된 계획에 따라서 도중에서 일부 력량을 삼수평방향과 무포쪽에 보내여 붉은바위쪽과 혜산, 무포방향에서 오는 적을 막아낼 방차대의 임무를 주시였다. 그리고 대홍단벌 중심에 있는 까치봉에도 보초대를 파견하시였다.

이렇게 하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대홍단벌을 횡단하여 국사당부근에 이르시였다. 이 기동전술은 적으로 하여금 미처 손을 쓸 겨를을 주지 않을 목적밑에 취해진 그이의 대담한 조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사당부근에서 부대가 두개방향으로 행동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8련대와 경위중대를 친솔하시고 신사동쪽으로 진출하시였다.

오중흡동지가 지휘하는 7련대는 신개척에 있는 일제의 독점자본인 《북선제지》계렬의 목재작업소와 들쭉회사를 공격하고 그곳에 있는 적들을 감쪽같이 소탕해버릴 임무를 받았다.

이 첫날 전투에서 신개척에 진출한 7련대는 한방의 총도 쏘지 않고 20여명의 《산림보호대》놈들과 일본인《십장》들을 몽땅 생포했다. 로동자들을 악착스럽게 부려먹으며 우쭐대던 놈들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앞에서는 벌벌 떨면서 벙어리처럼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사전에 적의 신호조직을 알아내고 행동했던것이다.

이리하여 대원들은 한시간이내에 두지바위로부터 신개척에 이르는 15리나 되는 로은산지구일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목재작업소창고에는 조선사람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식량과 피복, 기타물자들이 쌓여있었다.

인민들은 굶주리고있는데 놈들의 창고에서는 쌀이 썩고있었다.

우리는 적들의 창고에서 로획한 막대한 량의 식량을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인민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들을 도와야 할 우리가 이처럼 도움을 받다니. … 우리는 죽어도 김일성장군님부대를 잊지 못하겠소.》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날밤 군중들속에서 연설도 하고 그들과 함께 오락회도 가지였다.

이때 사령부는 신사동에 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일대의 목재로동자들과 함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본제국주의는 반드시 멸망한다는것을 해설하시고 당신들이 왜 피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여도 헐벗고 굶주려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일본제국주의자들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힘을 합해 일제놈들과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도 하시였다.

《당신들의 자제들을 잘 교양하고 열심히 가르쳐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자제들에게 조선글과 조선말을 꾸준히 가르쳐주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신다음 옆에 있는 나어린 전령병을 가리키시면서 《이 소년은 부모도 없고 어린 나이지만 유격대에 들어와서 글도 한자두자 배우고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을 배워서 지금은 글도 잘 읽게 되였고 이처럼 나라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와 같은 말씀에 로동자들은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밤이 이슥해서 돌아가는 그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였었다.

일제놈들에게 억눌리고 짓밟히던 두메의 마을은 유격대를 맞이하자 명절날처럼 들끓었다.

《우리 김장군님은 백두산이 낳은 장수이신데 천기를 환히 내다보시며 축지법을 써 산을 주름잡아 다니신다우.》

《그러니 … 왜놈들이 망할 날도 얼마남지 않았지.》 로동자들은 이런 말을 신이 나서 주고받군 했다. 그들은 귀밀쌀을 모아 국수를 누른다, 우리의 도중식사를 마련하려고 주먹밥을 만든다 하며 밤늦도록 서둘렀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이날밤 자정이 넘어 대홍단벌 국사당부근으로 철수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개척과 아래두지바위에 진출했던 부대들의 도착을 기다리시면서 창평방향에서 올수 있는 적의 추격을 예견하시고 먼저 도착한 부대들에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게 하시였다.

그러던차에 그이의 명철하신 예견대로 23일 아침 중무기를 갖춘 일제수비대놈들과 경찰대놈들 수백명이 철갑모를 번쩍이면서 신개척에 진격했던 아군부대의 뒤를 따라오고있었다.

그리하여 대홍단벌에서는 적아간에 치렬한 조우전이 벌어지게 되였다.

이 광경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사격명령을 내리셨다. 그러자 아군의 기관총과 보총들이 일제히 맹렬한 불을 뿜었다.

한편 그이의 명령에 의하여 경위중대장이였던 오백룡동지는 일부 력량을 지휘하여 동쪽으로 신속히 우회하여 적에게 측면공격을 가하였다.

불의의 공격을 받은 적의 전투서렬은 뒤죽박죽이 되였다.

이날 전투에서 우리 유격대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련속 나타나는 적을 모조리 격파했다.

당황한 적들의 일부는 유곡방향으로 도주하다가 마침 그쪽으로부터 올라오는 다른 일대의 적수비대와 맞다들자 저희들끼리 맞총질을 하는 추태까지 부리였다.

대홍단벌에서 승리한 우리 항일유격대는 두만강을 건너 올기강방향으로 이동했다.

대홍단벌에서 패배한 적들은 급기야 19사단의 일부 병력까지 동원하여 수백명의 응원군을 파견하였으나 어찌도 혼이 난 놈들인지 국사당근처에서 우물거릴뿐 감히 추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우리가 두만강을 건너설무렵에야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두만강을 건너선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6월에 화룡현 올기강에서 일본 《지도관》놈이 인솔한 위만군 200여명을 몰살시킨후 그 상류에 밀영을 짓고 일시 휴식을 하게 되였다.

장기간에 걸친 련속되는 가렬한 전투후에 가지게 되는 이 시간을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귀중하게 그리고 뜻깊게 보냈다.

우리는 다음에 닥쳐올 전투를 보다 큰 승리로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의 종국적승리의 시각을 보다 앞당기기 위하여 우리의 력량을 더욱 튼튼히 갖추기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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