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8-06 00:00
김현환 박사: 이북방문자들의 질문에 답한다
 글쓴이 : minjok
조회 : 8,592  

[로스엔젤레스=이용식 민족통신 편집위원]김현환 박사(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는 수십번 이북을 방문하면서 동행한 방북동포들로부터 받은 질문들을 정리하여 이에 답한 내용들을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했다. 그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수석부회장이며 서부지역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재미동포 이산가족들의 이북 혈육들을 찾아주는 봉사활동도 해 왔다. 이들과의 만남과 경험에서 나온 주요한 질문들에 대한 김 박사의 대답들은 이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의 글을 여기에 전재한다.



이북방문 때 자주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IMAGE##>나는 수십 번 이북을 방문하면서 여러 재미동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여행을 같이 하면 친해진다고 하는데 평양을 같이 방문한 <평양동창생들>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특별히 처음 이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여러 번 이북을 방문한 사람들을 만나면 참으로 반가와 하며 나에게 모든 궁금한 것을 묻곤 한다. 은근히 미지의 이북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처음 이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겁이 나서 이북 안내원들에게 질문을 하지 못하고 나에게 찾아와 마음을 열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가 목사라고 하니까 안심하고 나에게 접근하여 이북사회에 대하여 궁금한 점들을 ane는 경우가 많다. 수십 번 이북을 방문하면서 나와 함께 여행한 재미동포들로부터 자주 내가 받은 질문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답을 해보려고 한다. 이 답은 좁은 나의 관점의 표현이기 때문에 많은 부족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이북을 더 많은 재미동포들이 와서 보게 할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다. 이북방문이 동포대중에게도 열려 있느냐는 것입니다.

처음 이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은 자신들은 지금까지 너무나 이북에 대하여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남에서 받은 반공, 반북교육이 너무나 이북을 악마화시켜 놓았기에 이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속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여기 와서 보니 여기도 인간들이 살고 있었고 정상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자신들과 핏줄과 언어, 문화가 똑같은 동족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모두 고백한다. 평양에 도착하여 며칠을 지내면서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고 여행도 같이하며 농담도 하고 우리를 접대하는 호텔의 봉사원여성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더욱 놀라는 것은 그들이 너무 때가 묻지 않은 순수성을 지닌데 대하여 감격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수수하게 화장도 하고 수수한 조선옷을 입고 진솔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신기함마저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물질만능의 시각으로 계산을 앞세운 인간관계에 식상한 사람들일 수록 이북의 사람들 자체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 이북에 와서 평양시내, 개성근방, 묘향산, 구월산, 정방산, 사리원시, 남포시, 남포갑문, 단군 능, 동명왕 능, 모란봉, 등을 관광하면서 이들이 오염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 보존된데 놀라움을 금치 못해 하면서 여기 많은 재미동포들이 와서 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감격적인 마음을 미국에 돌아가 말과 사진으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섣불리 입을 열다가는 이북에 가서 “쥐약 먹고 왔다,” “쇠뇌 당했다,” 는 소리를 듣기 쉽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직접 보지 않으면 자신들이 느끼고 본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재미동포들을 이북에 방문시키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없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곤 한다.

나는 이들에게 미국에 돌아가면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과장하지 말고 그저 보고 느낀 대로만 이야기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위에서 이북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직하여 언제든지 모시고 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도 이산가족을 찾아주고 상봉하게 해주는 사업, 그리고 이북관광을 주선해온 단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단체가 바로 뉴욕에 본부를 두고 엘에이, 시카고, 뉴저지에 지부를 둔 [재미동포전국연합회(KANCC.ORG)]라는 것을 알려 준다.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수령)와 민중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곤 한다.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처음 이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당황하고 가슴 속에 말 못할 고민을 하면서 조용히 나에게만 하는 질문이 바로 이 수령론이다. 여기 이북에는 어디를 가나 김주석의 동상이 모셔져 있고 이북 민중들이 주석을 종교적 신앙심을 갖고 존경의 표시를 하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이 기독교인인 재미동포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또 하나의 종교를 이북이 만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나는 이들의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려면 <수령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되지만 그런 것을 여기서 다 다루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이들이 그런 이론을 이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상식적인 선에서 이들에게 통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을 하곤 한다.

<##IMAGE##>우선 첫째로, 이북민중의 수령에 대한 존경의 표시는 결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며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쉽게 통속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이남이나 해외의 동포들이 지금까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그 지도자에게 참된 마음과 정성을 바쳐 존경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북의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지적한다. 우리 남한 민중들은 해방 후 지금까지 친일, 친미파들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같은 독재자들을 속으로는 증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존하기 위하여 대통령으로 섬겨야 했고 최근에 이르러 그래도 민중의 지도자에 근접한 김대중, 노무현 같은 대통령을 모셔 보았으나 역시 그들도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도자라기보다는 특정한 이익집단의 지도자라는 것이 판명되면서 민중들의 민심이 그들에게서 떠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폭력으로 지도자를 존경하고 숭상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이남에서도 김구선생이나 여운형선생, 조봉암선생, 장준하선생, 문익환목사 같은 분들이 대통령이 되어 강대국의 이익보다는 민족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자주정권을 세우고, 민중이 주인인 민주정권을 세우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통일정권을 세우고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했더라면 아마 우리 민중들은 그러한 지도자들에게 기꺼이 생명까지 바치며 헌신하고 충성을 바쳤을 것이며 그러한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숭상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나쁘다는 것인가? 이러한 참된 민중의 지도자의 뜻은 바로 민중 자신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며 민중의 지도자를 위하는 것은 바로 민중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된다. 이러한 참된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숭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남민중들이 이북의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이해할 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남 민중들은 민중의 힘으로 처단해야 할 민족반역자들의 대표들을 강요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지도자로 여기하며 살아왔다. 이남 민중들은 김구, 여운형, 조봉암 등 민족의 지도자들을 무수히 학살한 미국의 주구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떠받들어야 했고, 4.19가 지향한 숭고한 민주와 통일의 열망을 탱크로 짓밟은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모셔야 했으며,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갈망했던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모셔야 했다. 이들 민중들에게는 합리성과 이성이 배제된 무자비한 압박과 설움만이 강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적당히 눈치 것 생존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었다.

이러한 이남 민중들이 친일파들을 철저하게 숙청하고 토지를 비롯한 생산수단을 민중이 소유하도록 한 이북의 인민정권을 어찌 이해하겠으며 이러한 인민정권을 세운 무장투쟁까지 벌리면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한 김주석을 비롯한 항일투사들을 어찌 이해하겠으며 그 중심인물인 김주석을 존경하고 숭상하는 것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민중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긍지감이다. 이북의 지도자들은 바로 이것을 민중에게 주었다. 즉 민족과 민중의 생명인 <자주성>을 민중에게 주었던 것이다.

나는 종종 이북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닌 미제국주의가 이남에 주둔하며 온갖 최신무기를 다 끌어들여 이북을 공격하려고 하는 처지에서 이북이 취할 대안이 무엇인가고 이북의 지도자숭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이북정권이 민중이 존경하는 수령, 혹은 영도자를 중심으로 당과 군대, 대중이 대동단결하는 방법 이외에 세계최강의 미국과 대결하여 전쟁을 막고 자신을 지키는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이북이 <전체주의?>고 <독재?>이고 <병영식?>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똑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나는 최근에 미국의 코앞에 있는 큐바를 미국이 어찌하여 침범하지 못하는가라는 내용의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세계 최강의 군사강국 중 하나였던 소련이 1991년 12월에 망한 것은 결코 무력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핵무기도 없고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없는 큐바가 미국의 코앞에서 생존하는 것은 결코 큐바가 무력으로 미국을 능가해서가 아니다. 큐바정권이 민중이 원하는 것을 주고 큐바지도자가 민중의 뜻을 대변하기 때문에 지도자와 민중이 하나로 일심단결되어 있어 미국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 이 예민한 수령론에 대하여 한 가지 더 통속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남의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신앙심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헌신하며 어렵게 모은 재산도 아끼지 않고 바치며 온갖 형태의 거대한 대형교회들과 성당들을 짓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북의 동상들만 나무라는 것이냐는 문제다. 어차피 어느 나라든 한 나라를 경영하려면 [국가이념기구들]을 동원하여 자기들의 사상과 문화를 민중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아닌가? 단지 민중을 깨우치는 이념을 주입하는가, 아니면 거짓의식으로서의 통치이념을 주입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그것을 장려하는가 아니면 민간차원에서 그것을 장려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나라도 다 사상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왜 하필 이북의 그러한 사상문화 활동만 비판하는가? 이북의 동상을 비판하기 전에 거대한 대형교회들과 화려한 절간, 대형 모스크 사원을 비판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재벌들이 소유한 언론들의 횡포를 더 비판하라고 말하고 싶다.

세 번째로 왜 이북 같은 독재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왜 고난의 행군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면서도 폭동이나 항거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북이 독재국가, 전체주의국가이니 폭력이 무서워 그런 것이 아닌 가하는 질문이다.

위에서 수령론을 다루면서도 강조했지만 진리는 결코 강요에 의하여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북에 도착하여서는 방문자들이 여러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가 차츰 이북사회에도 <합리성>이 있다, 이들 나름대로 철저하게 민중의 뜻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는 것 같다, 위에서 독재적으로 강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의응답을 통한 진리추구가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절차가 있으니 이북 민중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을 받아먹지 그렇지 않고 강요에 의해서 지시만 받아 왔다면 어떻게 이북정권을 60여 년 동안 유지시켜 왔겠는가 하고 말한다. 나는 이들 이북민중들이 다 같이 혁명을 하는 동지들이기에 엉터리가 통할 수 없으며 자기 지도자가 민중의 뜻을 배신한 정책을 강요한다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가 민중의 뜻을 수렴하여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올바른 노선을 제시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지 그것을 거스르는 정책을 강요한다면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로 왜 이남과 미국이 이북정권을 <악의 축>이니 <붉은 귀신>이니 하며 악마화 시키는가 하는 질문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진리를 알게 되면 변한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 사람들이 이북을 찾아와 이북의 진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여러 재미동포들을 안내하고 이북을 방문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북을 최소한도 있는 그대로는 보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이북사람들이 붉은 뿔 달린 귀신들이 아니며 이북사회가 <악의 축>도 아니라는 것을 방문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거짓의식>이 인간을 약하게 하고 치사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질화폐로 인간을 평가할 수 없다. 돈 좀 있다고 이북사회에 와서 거들먹거리다가는 대번에 자기의 추한 모습이 들어난다. 진실 앞에 거짓은 대번에 들어나게 마련이다. 김주석을 만난 사람들은 루이제 린저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과 여러 국가수반들이 다 사상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진리는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러기에 진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멀리하게 하는 방법으로 진리를 악마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의식을 갖게 하여 두려워 진리를 멀리하게 하는 유치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남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이북의 주체사회주의의 진실을 알게 되어 이북을 따라할 경우 자본주의 나라들의 기득권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기득권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언론기관들을 통하여 이북을 악마화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과 이남은 [국가이념기구들]인 학교, 종교기관들, 언론출판을 총동원하여 이북을 붉은 귀신들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다섯째로 이북이 내세운 연방제통일방안이란 이남의 통일운동권과만의 연대를 목표로 하고 있느냐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3대헌장 탑을 참관하는 과정에서 젊은 강사선생이 80년대에 김주석이 제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하여 강의 하는 중에 한 젊은 청년이 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젊은 여성강사선생은 웃으며 만약 이북이 내세우는 연방제안이 선생의 질문처럼 단지 이남의 통일운동권과만의 연방을 목포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연방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상으로 통합하는 <통합제>지요 하며 생글생글 웃는 것이었다. 연방제란 사상과 이념, 체제가 다르더라도 그것을 초월하여 민족이 공존하며 공영하며 공동의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통일하자는 것이라고 그녀는 해설하였다. 참으로 그 여강사선생의 해설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만약에 이북에서 이남의 주사파를 비롯하여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과 만의 연대를 구상했다면 구태여 <연방제>란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남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 심지어 정주영회장같은 애국적 상공인들, 애국적 군인들까지 모든 민중들이 민족의 공동의 존립과 공동의 번영, 이익을 위하여 연대할 것을 강조하여 연방제를 제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상과 이념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더라도 각자의 처지에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지식과 기술 있는 사람은 지식과 기술을 내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은 노동을 내게 하는 통일운동이 바로 연방제통일론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여섯째로 이북은 <행정명령식>으로 모든 문제를 지시와 명령으로 일을 처리하느냐는 질문이다.

이북사회에서는 합리성이 전혀 통하지 않고 단지 위에서 아래로 명령만이 통하며 민중은 단지 복종만이 강요되고 있다는 잘못된 이남의 반북교육이 가져다 준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여 제기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북은 참으로 합리적인 사회이며 높은 사상의식을 요구하는 고도로 발전된 사회이다. 이북사회에서는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생존할 수가 없다.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는 철저하게 계급장 떼어놓고 토론을 벌리며 일단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결정이 되면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 이것을 이들은 <중앙집권제>라고 한다. 밑에서부터 이러한 토론을 통하여 결정된 사항들이 위로, 위로 올라와 중앙당에서 최종결정이 되면 수령의 이름으로 그것이 발표가 된다. 그러면 그것을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철저한 토론을 거쳐 밑으로부터 위로 올라가 중앙당에서 다시 최종 결정이 되어야 수정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결정사항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과 명령식으로 다루지 않고 <설복과 교양의 방법>으로 그들을 감화 감동시켜 스스로 깨달아 결정사항을 따르게 한다. 이것이 이북사회의 교육의 방법이고 교화의 방법이며 일을 잘 하도록 자극하는 방법이다. 행정명령식으로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으나 오래가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이 어떤 일에 대하여 본질을 이해하고 옳다고 합리적으로 인정이 되어 자기 스스로 감동이 되어 일을 열심히 추진할 때 그 일을 성공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이북에서는 이것을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을 발휘하여야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북의 중요 신문 중 하나인 <노동신문>을 읽어보라. 고도의 합리적 사고력을 지니지 못하면 글을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북민중의 의식상태를 알려면 <노동신문>을 읽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아마 섬정적이거 자극적인 신문이나 읽던 자본주의 언론에 익숙한 사람들은 북의 노동신문을 재미가 없어 한 줄도 읽기 힘들 것이다. 그 맛을 알려면 고도의 합리적 사고력과 고도의 사상의식이 필요하다. 이북사회가 합리성이 결여된 사회라면 노동신문 같은 고도로 발전된 의식을 요구하는 신문이 존재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거짓, 가짜가 전혀 통할 수 없는 사회가 이북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실력이 없는 자가 누구의 빽을 믿고 어느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다가는 하루도 못가서 대번에 옷을 홀라당 벗고 쫓겨날 것이 분명하다. 이북사회는 참으로 무서운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빈틈없이 조직화된 합리적 사회가 주체사회주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허위가 전혀 통할 수 없는 사회이다.

일곱째로, 이북사람들은 아주 순진하고 진솔한 것 같은데 사실이냐는 것이다.

위에서 이미 다룬 문제인데 이북을 처음 방문하는 재미동포들이 우선 놀라는 것은 이북사람들이 무엇인가 때가 묻지 않은 아주 순진하고 깨끗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농담을 해도 모두 잘 받아 넘긴다. 어떤 속임수를 갖고 남을 속이기 위하여 대하는 그런 기분 나쁜 기색이라곤 이북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이 우리 재미동포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가식이 없다. 일부러 티를 내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대번에 들어 난다. 이러한 <순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고 나는 오래 동안 이북을 방문하면서 깊은 생각을 하여 왔다.

내가 보는 관점은 이북의 독특한 사회제도가 거기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이남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있으며 생산수단(토지, 공장, 기계, 등)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부리고 지배하고 심지어 착취하고 있다. 자본이 자본을 늘리고 돈이 돈을 벌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자본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을 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다. 이북에서는 <내 것>보다는 <우리 것>을 더 강조하고 있다. 공장도 내 공장이 아니라 <우리 공장>이며 농장도 내 농장이 아니라 <우리 농장, 즉 협동농장>이다. 이북에는 생산수단을 중심으로 아직도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으며 서로 돕고 서로 힘을 합치는 협동체가 중심이 되어 사회가 유지되는 집단주의사회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잘 못 이해하여 <전체주의사회>라고 하는데 그것은 큰 오해이다. 집단주의(Collectivism)와 전체주의(Totalitarianism)를 구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서로 재산을 가지고 싸울 일이 없다. 유산을 가지고 형제자매들이 싸울 일도 없다. 그래서 이북을 돈(자본)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인 사회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회에서 오래 동안 살다보니 인간이 순진하고 순박하고 솔직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사회는 공산주의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 사회라고 이북도 인정한다. 여기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낡은 사상이 남아 있고 고루한 생활습관이 남아 있으며 일정하게 생존경쟁도 있어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미국과 이남의 자본주의 인간형과는 다른 순진성을 이북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며 이 순진성을 지녀야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노예제사회나, 봉건주의사회나, 자본주의사회에서 잘 못된 제도를 그대로 놔 둔 채 그 많은 종교와 도덕이 아무리 노력해도 못 이루었던 인간의 <순수성>과 <순진성>을 이북의 주체사회주의 사회가 이루어 내었다. 마치 삐뚤어진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의자는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삐뚤어진 자세만 비판하는 것처럼 종교나 도덕이 이제부터라도 잘못된 제도를 바꾸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북을 방문하면 우선 이북 민중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게 되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보게 되고 그들이 사는 집을 보게 되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보게 된다. 이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우선 겉에 보이는 것을 먼저 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소위 말해 물질적 선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누구나 이북의 보이는 겉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여러 물질적 측면에서 뒤져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왜 이들이 이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을 알기에는 한참 시간이 요구된다. 군사강국을 이루어 최소한 제국주의가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선 군수산업을 포함한 중공업을 육성시키다 보니 여러 경공업분야에 손을 대기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이해를 하기에는 시간과 의식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북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사람들을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이북의 [인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으며 <인간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가 보이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들에게 반하게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만나지 못했던 순수한 인간들을 만나면서 이들에게 반하게 된다. 마치 오염된 강과 산을 대하다가 이북의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산과 강을 대할 때 느끼는 그 산뜻함을 이북 사람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서구자본주의사회나 이남에서는 너무 건설을 하다 보니 자연성을 상실하고 콩크릿트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그립게 된다. 가식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참된 인간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나는 이북을 자주 다닌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산천을 찾아 오염된 내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오염된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매번 이북을 방문할 때 마다 마치 부흥회하는 교회당에 들어가 실 컷 울고 웃고 은혜의 바다를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북에 은혜를 받으러 온다. 이북을 방문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이북서 만나는 간부일꾼들, 운전수들, 접대원 동무들, 강사선생들, 일반 시민들, 내 가족들, 모두가 내 애인들이다. 그들은 내가 조국통일사업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고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존경해주고 받들어준다. 내가 사는 미국과 이남에서는 나를 위험한 인물로, 붉은 귀신으로 보고 위험시하고 있으나 이북사회는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내 사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받아준다. 이남에서는 내 사상이 불순하다고 나를 오래 동안 비자를 주지 않아 아버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어머니와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비자를 내주어 어머니와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이북사회는 내 사상이 불순하다고 트집 잡지 않는다. 이북은 내가 생긴 그대로를 존중해 주는 사회이다. 나는 이북에 도착하면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인간이 살만한 사회이다. 여기서는 날 속이는 사람도 없고 나를 중상모략 하는 사람도 없다. 내 가방을 훔쳐가는 사람도 없고 내 돈을 훔쳐가는 사람도 없다. [잘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해주는 사회가 바로 이북사회이다.

이북을 방문한 많은 재미동포들이 나에게 고백하는 말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많은 동포들이 이북에 와서 보면 이북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버리게 되고 이북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와서 그리고 보라(Come and see.)고 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렇다. 많은 재미동포들이 이북을 와서 그리고 보고 변해야 한다. 그래야 동포사회도 변하고 조국통일도 앞당겨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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