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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김정숙 여사, 그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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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6-12-19 00:00 조회10,16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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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어머니의 인간적인 매력


* 김영순(서부연합 여성분과 위원장)


올해는 김정숙여사의 탄생 89돐을 맞는 해이고 12월 24일이 그 분의 생신입니다. 그 분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인격에 대해서 많은 글을 읽고 또 듣고 해서 여러분들은 이미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래 동안 김정숙여사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간적으로 참 매력적인 분이라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그 분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나라없는 설움속에서 부모를 잃고 김일성장군의 부대에서 격렬하게 해방투쟁을 하시다가 주석님의 부인이 되시었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하셨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고난과 투쟁을 통하여 남기신 그분의 인격의 향기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은 제가 늘 느껴오던 그 분의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서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그 분의 겸손하고 검소한 점을 들겠습니다.

<##IMAGE##> 항일투쟁당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퍼스트레이디가 되시고도 잡곡밥을 지어드셨습니다. 그것을 본 한 일군이 왜 흰 쌀밥이 아닌 잡곡밥을 지으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분은 "다른 사람들도 다 조밥을 먹는데 우리라고 흰쌀밥을 지어 먹겠는가. 앞으로 나라 살림살이가 펴면 우리도 흰 쌀밥을 지어먹겠어요". 라고 대답하시었습니다.

장마당에 나가신 어느날 한 여투사가 그분께 물었습니다.
지난날 어머니께서 산에서 싸우며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장마당에 나드시는 일쯤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물으니 그분은 환히 웃으시며 "저는 늘 이렇게 여느 사람들과 꼭 같이 지내는 것이 제일 마음편해요.. 우리가 만일 지난날 산에서 싸웠다 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행세하거나 편안히 지내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인민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것이 제일 걱정되어요".

<##IMAGE##>이렇게 무한히 겸손하고 소박한 품성으로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그 분의 모습은 수도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고생하는 인민들을 생각하셨으며 그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행동하셨습니다

또한 보통강개수공사장에 어린 아드님과 함께 나가서 직접 삽을 드시고 언제나 수수한 옷차림을 하시고 농촌에 나가면 농민들과 함께 씨도 뿌리고 마당도 쓸고 하셨습니다. 건설장에 나가서 무릎까지 빠지는 감탕판에도 들어가 삽질까지 하시었습니다. 손님을 맞을 때에도 직접 음식대접을 하고 해서 어떤 손님들은 주석님의 부인인 것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둘째로 그 분의 동지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고 특별했습니다.
수령을 동지로 생각하고 그 수령동지에게 바치는 충실성과 사랑은 지고지순했습니다. 수령님의 젖은 옷가지를 자신의 품속에 안고 말리신 이야기도 있고 적구로 떠나시는 수령님을 위하여 자신의 머리채를 잘라 부드러운 신발깔개를 만드신 이야기도 있습니다. 수령님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은 스스로 정해서 어김없이 지켜오신 새벽일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어는 새벽이었습니다.

한 여성일군이 어머님을 만나뵈려고 저택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때 그 분은 수령님께 드릴 아침식사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섰습니다. 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서던 그 일군은 부엌일을 하시는 짬시간에 당보를 열심히 읽고계시는 그 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도 바쁘신데 신문은 낮에 보셔도 되지 않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조용히 "요즘 장군님께서는 밤늦도록 일하시고도 아침 일찍 일어나시어 당보부터 찾으셔요. 당보를 보신 다음에 다른 일을 하시는데 신문을 보시는 시간이 될수록 짧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시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장군님께서 빨리 알아보시게 표시해드린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수령님의 천금같은 귀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고 수령님의 큰 노고를 얼마만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그 분의 마음에 그 일군은 감동을 금치 못했습니다. 수령님의 부인이라기 보다는 한 동지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충실히 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IMAGE##>김정숙여사는 수령님의 안녕과 관련된 문제는 작은 것도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체 29년 어느날 깊은 밤에 사령부 천막안에서 책을 읽으시던 수령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별을 보시며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보초대원은 수령님이 한동안 나타나지 않으시자 그때야 이 사실을 기관총수에게 알렸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숙영지의 대원들의 잠자리를 살피고 돌아오시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아주 친절하시고 다정하시던 김정숙여사였지만 이날은 아주 냉혹하게 그 대원을 비판하시었고 수령님께서 다문 몇 분간 자리를 뜨시더라도 수령님을 빈틈없이 호위하는 것이 사령부호위사업에서 조금도 어길 수 없는 철칙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대원의 무책임한 태도를 깨우쳐 주시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교훈을 찾은 지휘관들은 사령부 호위를 빈틈없이 조직하고 수령님께서 자리를 뜨실 때에는 삼사 명의 호위병들이 따라가는 것을 제도화 하였습니다.

주석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김정숙여사의 높은 사격술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군인들이 그 분의 백발백중의 비결에 대하여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 분은 따로 무슨 비결이 있겠는가고 하시며 "내가 쏜 탄알이 한알이라도 빗나가면 장군님을 보위할 수 없고 조선혁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김정숙여사는 우리 나라의 첫 여성낙하산병이기도 하였습니다. 조국해방을 맞이하기 위하여 훈련기지에서 낙하훈련을 열심히 하실 때였습니다. 첫 낙하훈련에서 긴장한 여대원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자신께서 먼저 낙하하셔서 모범을 보이자 용기를 얻은 여대원들이 그 분의 뒤를 따라 하나 둘 낙하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김일성주석의 호위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으신 일화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주체 36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한 휴양소로 김일성주석께서 현지지도를 가시었을 때 휴양생들이 기쁨에 들떠서 주석님의 주변에 몰려와서 기뻐했습니다. 주석님께 그들의 생활도 얘기하시고 사진도 찍으셨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주위를 살펴 보았습니다. 예견한대로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 저쪽 산기슭의 으슥진 곳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계셨습니다. 수령님께서 휴양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그 역사적 순간을 지켜드리기 위해 호위병의 모습으로 서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않고 혁명의 수뇌부를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본분을 생각하며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께 사령부는 곧 해방조국을 위한 투쟁의 중심이었고 수령님은 그 중심의 핵이었습니다. 수령님의 안전과 안녕에 한생을 바치는 그 분의 모습 속에서 지극한 동지애와 철저한 책임감과 해방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의 매력은 사령부의 결정을 실천할 때의 헌신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IMAGE##>통일전선운동에서 내려진 결정은 모든 성원들이 합심하여 실천할 때에만 목표가 달성될 수 있고 그 운동이 확대발전 될 수 있습니다. 김정숙어머님은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투쟁하시었습니다. 투쟁업적 중에는 천도교인들과의 통일전선사업을 벌려나가신 내용도 있습니다. 1937년 박인진 도정이 천도교의 교주에게 조선인민혁명군과 합세하자고 제의하였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교내에 심각한 대립이 조성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풍산지구의 천도교는 서울에 있는 천도교중앙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고 해마다 올려보내던 성미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김정숙어머님은 이 실태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은 나라를 사랑하고 일제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관계없이 모두다 하나의 대오에 묶어세워 왜놈들과 싸우게 하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전위하려는 대상은 령북일대의 교인들만이 아니라 수백만에 달하는 조선의 모든 천도교인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처럼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서야 이 사업을 옳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서울과 결별할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교직자들에게 우리의 입장을 인내성 있게 깨우쳐주어 천도교를 일제의 어용종교단체로 전락시키려는 흉악한 최린 일파의 정체를 밝히고 그의 영향밑에 있는 교직자들과 전국의 신자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똑똑히 알고 우리를 따라오게 해야 할것입니다." 모든 천도교인들과 온 민족을 한마음 한뜻으로 튼튼히 묶어세워 단결된 힘으로 일제와 싸우자는 것이 장군님의 뜻이라는 것을 인내성을 가지고 지도하셨습니다. 그후 천도교인들과의 통일전선사업은 조국광복회기치아래 더욱 활발히 벌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946년 해방직후 우리 인민앞에는 새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여야 할 과업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과업은 모든 애국적 민주역량을 하나로 묶어세울 것을 요구하였으며 사회혁명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용감한 부대인 청년들을 굳게 결속시켜야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후에 활동하던 공산주의 청년동맹만으로는 광범한 청년들을 다 묶어세울 수 없었습니다.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보좌하시던 어머님은 몸소 청년동맹일군들 만나시고 광범한 청년들을 청년동맹에 받아들이는 것이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고 하시며 모든 애국청년들을 조직동원하는 것이 청년사업의 중심으로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석님의 가르치심은 한결같습니다. 모든 애국인민들을 다 망라하여 통일전선에 묶어세우라는 것입니다. 6.15 이후 현재의 우리 정세와 비슷합니다. 과거 통일운동을 한 인사들 만이 아니라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을 다 묶어세우라는 메세지라 생각듭니다.

<##IMAGE##>해방후 보통강개수공사가 마감고비에 들어서던 1946년에 어머님이 공사장을 찾으셨을 때 현지취재를 하던 노동신문의 전신 정로사의 기자가 어머님을 알아보고 달려 와서 간절한 소원을 말했습니다. 기자는 어머님께서 토성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리시고 이처럼 늘 공사장에 나오시는데 이 사실을 신문에 내면 평양시민들과 건국노력대원들을 더 크게 고무할 것이라고 하면서 어머님의 일하시는 모습를 한장 찍을 수 있도록 간청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사진촬영을 굳이 사양하시면서 열심히 일하는 건국노력대원들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진은 바로 저런 동무들을 찍어야 합니다. 보통강개수공사에서 위훈을 떨치고 있는 저 노동자 농민들과 청년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을 사진찍어 신문에 내고 그들의 투쟁내용도 널리 소개선전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열의와 기세를 북돋아 주어 공사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어머님의 말씀에 기자는 청을 더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과거의 투쟁경력을 내세우며 말로는 혁명이요 인민대중이요 떠들지만 실지는 관리행세를 하면서 제 이속 챙기기에 바쁜 일군들을 교양하셨습니다. 이들을 만나서 일제를 반대하여 국내에서 잘 싸웠다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고 장군님께서는 혁명가는 그 어떤 벼슬이나 개인의 공명과 출세를 바라며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는 배불리 먹고 잘 입고 다니면서 굶주리고 헐벗은 인민들을 보고 참아라. 일 잘하면 잘 살수 있다고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일군은 조만간에 인민의 버림을 받고야 맙니다. 인민과 같이 먹고 인민과 같이 입고 인민과 같이 숨쉬는 사람만이 인민을 위한 참다운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도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참다운 인민의 충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인민의 고락과 함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껏 여러 일화를 통하여 김정숙 어머님의 겸손과 검소함, 지극한 동지애, 실천에서의 헌신성 대하여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김정숙어머님은 인민들로 부터 사랑받는 일군, 혁명의 수뇌부의 핵심인 수령을 목숨걸고 지키는 일군, 수뇌부의 뜻을 완전히 파악하고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일군의 모습으로 일관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혈육같은 따뜻함을 잃지 않으셨고 동지들에게 친어머니처럼 사랑을 주셨습니다. 김정숙여사는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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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갈남님의 댓글

노갈남 작성일

김정술은 중군 위안부입니다
수령님과 대원들에게 성적 즐거움으로 위로 하였지요
1949년 나중에 김성주놈에게 권총으로 피살당한 불운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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