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양영동 의장, 그는 누구인가 > 미주, 해외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17년 12월 14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미주, 해외

[중국]양영동 의장, 그는 누구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minjok 작성일06-08-21 00:00 조회13,957회 댓글0건

본문

[심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북녘의 큰물피해 돕기에 재중조선인총연합회(양영동 의장) 회원들이 앞장서고 있다. 지난 8월3일 1차로 1,470개의 여름이불을 보낸데 이어 8월21일에는 솜 이불 2천여개를 만들어 단동을 거쳐 신의주에 보내기 위해 심양에서 트럭 선적작업을 마치고 이어서 중국 전역에 있는 60개 지부에서 3차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IMAGE##> 해외 동포들의 북 수해지역 피해민들을 돕는 활동은 재중동포들을 비롯하여 재미동포, 재일동포, 재유럽 동포 및 지구촌 각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편 북녘의 큰물피해 돕기 운동은 남녘의 민간단체들과 정부차원에서도 함께 지원하고 있어 그야말로 6.15시대의 협력 분위기가 꽃을 피우고 있다.

양영동 재중총련 의장과 최수봉 선전부국장은 20일 심양 트럭선적 현장에 나와 솜 이불 2천여개를 정성껏 포장하여 트럭에 싣는 것을 확인하고 단동으로 이동했다. 최 부국장은 이날 밤 단동에서 신의주로 들어가는 수속을 마치고 트럭에 수재의연품을 옮겨 싣고 신의주로 향했다.

양 의장은 "피해지역 주민들이 살림집이 큰물에 무너져서 학교 교실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사업을 서둘러 진행중이다. 지난 7월 14일부터 16일에 걸쳐 내린 무더기비로 인하여 평안남도, 강원도, 함경남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다. 특히 평남 신양군, 양덕군, 성천군, 회창군, 황북 신평군, 강원도 원산시 평강군, 금강군, 안변군, 고산군, 철원군, 한남 고원군, 요덕군, 수동군 등 10여 개 시군구를 주요 피해지<##IMAGE##> 역으로 이 지역들에서는 집중적인 폭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게 되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갑자기 거처 할 곳이 없어서 공공건물에서 임시로 생활하고 있어 이들을 긴급하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빠른 시간에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지난 3일 1차 지원을 마쳤고 2차 지원으로 이번 21일 신의주에 솜이불 2천여 개를 우선 급하게 실어 나르고 있는 중이다."고 설명한다.

기자가 20일 솜이불을 싣는 트럭 선적장에서 현장을 목격하고 그 이튿날인 21일에는 심양시 황고구에 소재한 재중조선인총연합회 건물에 들어섰다. 3층건물 양영동 의장 사무실에 도착하자 각 지부에서 수재의연금 모으기에 관한 문의전화들이 쇄도했다. 농사일을 하는 시골 농부의 전화인 것 같았다. 양 의장은 전화가 끝나자 "작은 돈이라서 미안하다는 전화가 걸려와 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지에 맞게 성의를 다하면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위로했다"고 설명해 준다.

보통사람들이 한달에 1백달러(800 위엔)를 급료로 받는 이곳에서 2만 5천달러 가량(20만 위엔) 모금되었으면 그것은 미국의 사정에 비교한다면 상당한 금액으로 취급되는 실정으로 이해되었다. 양 의장은 "재중총련은 이 중에 일부 금액은 같은 시기에 중국 사천성 지역을 비롯하여 일부지역에서도 물난리를 입어 중국적십자사를 통하여 위문 편지와 함께 약간의 성금도 보냈는데 이에 대해 감사한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말한다.

재중총련에서 12년 동안 헌신적으로 활약해 온 조국제 사무국장은 "우리 공화국 국적(북조선)을 가진 중국동포는 과거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 1만여 명이 채 되지 않은 상태인테 그 연령층도 상당수 고령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큰 모금운동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 처럼 모금한 것은 우리로서는 온 정성과 성의를 다하였다고 본다. 우리가 모은 성금에는 재중총련 회원들의 마음이 모두 담겨있다."고 답변한다.

양영동 의장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들의 북조선 큰물피해 돕기 운동도 시작되었다고 밝히면서 "심양시 명령가에 소재한 조선족 노인협회도 성금지원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이 조직의 장세영 간부가 전달해 왔다."고 알려주며 "이러한 현상을 볼 때 이번 북조선 큰물피해 돕기는 그야말로 해외 전 지역과 남녘에서 다함께 협력하고 있어 흐뭇하다."는 소감을 밝힌다.

<##IMAGE##> 재중동포들의 현주소는 다른 나라 동포들과 공통점들도 가지고 있었지만 차이점들도 보여주고 있다. 북의 국적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중국의 국적법상 쉽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국적법이 달라졌다. 조선국적의 자녀들이 17세가 되면 자신들이 성인이 되어 선택할 수 있던 권한이 이 때부터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중조선인총연합회 회원들은 중국 전역에 산재해 살고 있는 북 조선국적의 중국거주민들이기 때문에 중국에 귀화한 조선족들의 숫자(약 2백만명)에 비해 작은 숫자(약 1만명 안팎)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중총련은 중국 전역에 길림시 지부, 료녕성 지부, 중남지구협회 등에 크고 작은 60개 지역지부들을 두고 있다. 이 조직이 결성(1991년 3월3일)된지는 15년이 조금 넘었다. 이 조직의 모체는 1990년 8.15를 기해 결성된 범민련 재중조선인본부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이듬 해에 재중조선인총련합회가 탄생되었다. 이들이 걸어 온 길을 돌이켜 보면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들에 대해 일부 권한들은 존중하지만 상당부분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제한해 온 것을 엿 볼 수 있다. 재중조선인총연합회 사무실의 3층 건물에 이 조직의 이름을 "재중조선인총련합회"라고 전부 나열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 말로 "조총련"이라고만 명기한 것만 보아도 그런 문제를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양영동 재중조선인총연합회 의장,
그는 누구인가?


<##IMAGE##> 목소리가 우렁차다. 단단한 몸매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주변 간부들에 의하면 그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노래는 독창하면 박수가 안나오는데 남들과 합창을 하면 박수를 받는 수준이란다. 운동은 대체로 잘하고 건물 공사를 하면 지붕같은데 잘 올라가며 등산에도 월등한 실력을 갖춘 인물로 정평이 높다. 언어에도 해박한 실력가로 이름나 있다. 중국어 글 솜씨는 중국인들도 감탄 할 정도이고 영어, 일어, 로시아어도 잘하는 인물. 그는 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인정받는 설계기사로 알려져 있다.

양영동 의장(69)은 1937년 9월27일 황해도 벽성군에서 출생했다. 2살되던 1939년에 부모따라 생활고 때문에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9살 되던 1946년에 다시 조선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951년 전쟁시기 부모를 따라 다시 중국 흑룡강성으로 건너가 55년 째 중국에서 북조선 국적을 갖고 살고 있다.

그는 흑룡강성에서 초중급 조선족 학교를 다녔고 62년에 하르빈 사범대학 수학부를 졸업하고 1963년부터 27년 동안 인구 백만여명이 운집한 도시 흑룡강성 가목사시라는 곳의 국영 목재공장에서 기사(설계사)로 활동해 왔다.

1991년 3월3일 재중조선인총연합회가 결성되던 해부터 조국의 통일을 위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될 때까지 평양에서는 조국통일범민족대회가 매년 개최되었는데 그는 10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여 남북 해외동포들의 조국통일 3자연대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그 당시부터 재중조선인총연합회 의장을 맡아 지금까지 16년째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의 조직성원들은 이 단체의 대표인 양영동 의장의 모범적 실천을 따라 배우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 조직을 착실히 육성시켜 왔다. 그의 실천적 성과는 창립시기부터 매달 발행해 온 월간지, "백두-한라"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그는 부인과 2남1녀를 두고 있다.

*연락문의는 전화 024-8642-6513, 팩스 024-8642-6556
전자 우편 주소는 cnccr@cnccr.com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후원
후원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의 오늘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17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hotmail.com, editorminjoktong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