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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영구 귀국하는 정기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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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5-08-10 00:00 조회53,8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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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노길남 민족통신 편집인]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해외 통일운동가가 미국생활 25년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게 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서울로 귀국하는 길에 로스엔젤레스에 들린 정기열 박사(53)는 민족통신과 가진 대담을 통해 국내 신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되어 미주생활을 끝내고 귀국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IMAGE##> 이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해외에 있으나 국내에 있으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현장만 다를 뿐 같은 지향, 같은 목적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영구 귀국하는 소감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다음에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독수리 여권(미국 시민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여권이 될 뿐"이라고 말하면서 "돌아가는 즉시 주한 미대사관에 들려 미시민권을 의미하는 독수리 여권을 반납하고 곧바로 한국 국적회복 수속을 밟기로 하고 담당 변호사를 선정해 놓았다"고 설명한다.

정기열 박사는 서울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25년 전인 1980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으나 남감리교대학 퍼킨스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87년 미연합감리교 볼티모어-워싱턴 연회에서 목사 정회원 안수를 받아 목회자의 신분이 되었으나 그의 미국활동은 주로 한국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한 몸 바쳐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0년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게 된 것 같다.

어떻게 운동권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그는 몇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80년 광주학살에 대한 기록필림(카나다 맥길 대학 제작)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고 또 하나는 82년에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한 청년 노동자의 분신 자실을 통해 상상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받은 충격 때문이고, 84년 12월 예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서울을 방문하여 쓰레기 섬으로 알려졌던 "난지도"를 방문하고 빈민들의 지옥 같은 생활을 목격했던 충격 때문에 학업을 매진할 수 없게 된 것이 그가 운동권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회상한다.

미국생활 25년을 총화해 달라는 질문에 그는 "미국 오기 전 군대생활을 할 때 "전화시대의 논리"나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을 읽으며 청년시절의 정의감에 불탄 적도 있었다. 그래서 70년대 후반에 군 생활을 하면서도 목요기도회에 참여한 적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운동에 가담한 것은 미국생활 25년 기간에 있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세기 동안 반식민지 운동, 민족해방, 분단극복, 민족자주운동으로 이어지는 한 귀퉁이에서 국내외 모든 애국자들과 함께 노력한 결과 오늘날 우리들이 6.15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 한 개인으로서도 감회가 깊다. 특히 새롭게 변화된 6.15시대에 내가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기쁜 마음이라는 것이 그의 영구 귀국 소감인 것 같다.

그는 이어 "사람이 완전치 못하고 한계도 있을 수 있다"고 고백하면서 지난 삶 가운에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도 총화하며 겸허한 자세를 보이는 한편 귀국하여 교수직에 종사하면서도 계속하여 남북화해와 협력, 조국반도 평화를 위하여 미국에서의 활동에서 얻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바탕으로 국내에 있는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힌다. 이 단체는 주로 종교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조직으로 각계 각층에서 44개 단체들이 가입해 있는 이북 돕기 시민단체(비정부 조직)로 알려져 있다.

정 박사는 국내외 정세를 포괄적으로 자세히 설명하면서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과 관련해 그 근본 문제는 외세라고 지적하는 한편 미국의 1극 체제는 그 힘이 점차로 약화되고 있다는 전망에 기초하여 우리 민족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운동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분열, 분파현상에 대한 극복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몇 가지 대안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 박사는 "6.15시대의 운동은 무엇보다 상생과 화해"라고 강조하며 "더불어 함께 가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둘째로 각계 각층의 모든 역량들이 대의에서 합의하고 이뤄내기 위해 작은 차이점들을 덮어주고 좀 더딘 걸음이라고 할지라도 큰 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계 각층을 폭넓게 수용하려면 선진대열에 있는 운동가들이 논 높이를 낮출 수도 있어야 하며 적이 아니라면 과거를 묻지 말고 앞을 보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한다. 그는 셋째로 자신의 지난 날들을 총화하며 앞으로는 함께 하는 동지들에게 매사 하나 하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해외 평화운동가, 통일운동가에서 국내 교수로 변신하게 된 정기열 박사는 "비록 미국생활 25년을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가지만 나라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는 20년 만에 필라델피아 소재 템플대학 종교학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금년 2005년 여름학기에 "동학의 신관 연구: 종교와 사회변혁(Donghak Concept of Heaven/God: Religion and Social Transformation)"이라는 주제의 논문이 지난 봄 학기에 통과되어 오랜 시간이 걸려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는 1953년 2월6일 강원도 원주출생으로 국내에서 감리교신학교, 미주에서 남감리교대학 퍼킨스신학대학원 졸업, 84년에 코네티커트 한인감리교회 부목사, 86~94년에 메릴랜드 주립대학 교목, 88~809년에 한반도반핵자주화 국제연대위원회 조직결성, 94년에 워싱턴민족운동연합 부회장, 북미주조국통일동포회의 사무국장, 애틀란타 겨레사랑모임 고문, 95년 워싱턴 통일맞이 워싱턴모임 운영위원, 월간 "말지" 해외기획위원, 재미한청련 창립회원,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간부,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총장 등을 역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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