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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볼]뉴욕<노둣돌>행사에 각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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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12-10 15:45 조회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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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은 129() <노둣돌> 행사들의 일원인 <김치볼>행사에 참석하는 한편 각계각층이 참석한 가운데 <노둣돌 모금행사>에도 참가하여 주요한 인사들을 만나 보았다. 이날 행사에 관련된 주요내용들을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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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볼]


뉴욕<노둣돌>행사에 각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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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2세 젊은이들의 공간인 <노둣돌>129() 오후7시에 주관한 <김치볼>모금행사에는 각계 동포들과 미국인들이 참석하여 젊은이들을 격려하여 주었다. <노둣돌> 회원들은 2017년 활동들을 종합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지난 한해에 많은 일들을 한 업적들을 홍보하면서 끊임없는 지원들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노둣돌>이 마련한 저녁식사들을 함께 나누면서 <노둣돌>이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한편 참석자들간의 친교시간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교수들, 의사들, 전문직 종사자들, 목사들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노둣돌> 젊은이들이 지난 한해에도 민권운동을 위시하여 평화운동 및 사회정의 운동을 전개한 업적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들을 격려해 주었다.

 

뉴욕 노둣돌은 1999 4월에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 사는 1.52세 청장년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 당시는 미주의 여러 청년단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상태였고 단체를 잃은 성원들은 생활전선으로 또는 학교로 하나 둘씩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큰물 피해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북부조국을 돕자는 운동이 뉴욕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 가운데 생겨났다. 그러면서 이곳 동포사회에는 이 같은 젊은이들이 모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게되면서 남과북을 모돕자는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비록 이곳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들이 떠나온 조국이 남과 북으로 갈려서 양측 동포들이 장기간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 조국이 무엇때문에 갈라졌고, 이토록 오랜세월 분단된 상태로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스스로 나오게 되었다


이들 젊은이들은 또한 자기들이 왜 미국에 이민와서 살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떠 올리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고민하게 되면서 이들은 우리 동포역사의 현재를 다시 조명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들은 더 나아가서 부모들의 조국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소수민족간의 문제들, 그리고 인류사회의 문제들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미국사회내에 존재하는 소수민족들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들도 심층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타소수민족들과의 연대활동도 활발했다.

 

현재까지의 소위 미주진보운동은 1세와 2세들 운동조직들 사이엔 운동내용과 목적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왔다. 1세들이 중심이된 조직들은 대부분 "통일운동 또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주류를 이룬 반면 1.5, 2세들의 운동은 동포사회 권익 신장운동, 소수민족 연대운동등 미국 내 문제에 역점을 둔 활동이었으나 <노둣돌>회원들은 균형적 감각을 가지고 활동을 해 온 것이 특징이다.

 

기자는 이날 <김치볼>행사에 참석하여 일부 손님들과 그리고 <노둣돌>회원들과 교류하면서 이들과 짧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 죠엘 쿠퍼멘 변호사는 진보변호사협회(National Lawyers Guild-환경정의 전문변호사) 임원으로 그의 부인 콜럼비아 피에로(미술가)와 함께 참석해 젊은이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이들의 업적들을 치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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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인 15살때 미국에 와서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약해 온 캐롤 레즈바니 허승은 변호사 2세동포들이 우리문화를 잊지 않고 <노둣돌> 단체를 중심으로 건전한 활동을 전개하여 온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어떤 감정의 눈물이냐고 그에게 묻자 그는 이날 동포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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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승엔젤레스에서 버스승객노조의 한 임원을 맡아 사회활동가로 활약하던 양선영씨가 뉴저지주로 거주지를 옮겨오게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기자와 만나 반갑다면서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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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때인 1981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온 이현정씨는 이른바 1.5세로 불리운다. 콜럼비아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지만 전공분야에서 종사하지 않고 2005년 한의사가 되어 지금까지 12년 가량 일했다. 이 한의사 병원을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는 노둣돌 회원으로 활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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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호박사(64)는 1971년 미국으로 이민온 1.5세 동포이다.처음 커네티커트에서 살다가 시카고를 거쳐 뉴욕으로 이사오게 된것이 2002년이다. 그는 스토니부르크 대학을 나와 의과대학은 남미의 그리네이더에서 마쳤다. 한국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1984년 재미한청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단체는 윤한봉 선생이 로스엔젤레스에 망명오면서 민족학교, 청년학교, 재미한청, 한겨레연합 등의 단체들을 만들면서 이러한 단체들이 미전국과 카나다지역에 확산되었다.그때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어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때는 한호석 뉴욕 통일학연구소 소장과 함께 <자주연합> 조직에서 활약한바도 있었다. 그는 내과의사로 오랜동안 일해왔지만 최근에는 평통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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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7-12-13 08:38:37 통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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