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리일만선생 장례식 26일,25일에 도꾜서 경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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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1-23 15:14 조회65,602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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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들에게 널리 알려져 25일 경야온 재일동포 리일만 선생이 1월19일 지병으로 운명했다. 고인의 장례식은1월25일(일본 현지시간) 25일 경야, 26일에 장례식이 진행되며 유가족, 친척, 친구들, 그리고 진상조사단관계 일본인들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조문과 관련 문의는 고인과 가까이 지내온 최석룡선생(통일평론 발행인:이멜 korea21@jcom.zaq.ne.jp, 전화: 090-2626-5354)에게 하면 된다.
고인은 도쿄조선고급학교 교원과 군마초중학교 교장 등 민족학교 교원으로 오랜 기간 재직했으며, 총련의 지부 위원장도 역임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 활동을 통해 남측의 역사학자, 종교인, 교사, 노동자들과도 꾸준히 교류해왔으며 남북해외의 교류협력 활동, 그리고 일본의 <통일평론>에도 기고하여 많은 글들을 발표해 왔다. 고인의 서거에 대해 남녘의 언론인 안영민 선생이 아래와 같이 통일뉴스에 추모글을 올렸다.[민족통신 편집실]
영원한 ‘민족21 도쿄지사장’ 리일만 선생님 <추모글>
고 리일만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사무국장
글: 안영민(전 민족21 편집국장)
[사진]고 리일만 선생
[사진]생전의 리일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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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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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리일만 선생을 생각합니다. 2017년 10월 도꾜에서 열린 <도꾜 통일광장>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중 통일평론 최석룡선생과 함께 조그만한 일식 식당에서 만나 오랜만의 해후를 하며 고인의 건강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거동하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식당에 나와 기자와 사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리일만 선생님은 재일총련계 <우리학교>,즉 민족학교 교사로 오랜세월 교육계에서 일하셨고, 교직에서 은퇴하신 후에는 총련 일선조직의 간부로 활동하시면서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사무국장 일을 맡아 20여년 동안 일본과 북, 남에서 일제의 만행을 조사하고 폭로하는 일에 매진하여 오시면서도 국내외 동포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계기가 되면 자기일처럼 도와주시던 애국자이십니다. 나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거의 고인과 만나 교제를 하였습니다. 아는 지식도 많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공과 사를 막론하고 해내외 애국동포들을 만나면 자신의 피로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돕는 것을 좋아하셨던 분입니다. 연령도 비슷하며 고인은 저를 친형제처럼 맞이하여 주셨고, 몇번은 고인의 부인과 함께 자리도 마련하여 준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고인에 대하여 느낀 소감은 소리도 별로 없이 많은 일들을 하셔 온 애국자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리일만 선생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앞을 보고만 달려오신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사회정의감이 강하고 비리를 보면 그냥있지 못하는 정열적인 애국자였으나 그는 자신의 업적을 나타내지 않는 겸손한 성품이 몸에 베신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고인의 성품을 존경하여 왔습니다. 그는 일본취재를 갈때마다 교육계 인사들을 많이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직접 안내하며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것을 천성으로 보여주신 애국자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동부지역을 돌아보고 카나다지역으로 건너가 한창 취재활동을 하는 중에 갑자기 부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큽니다. 얼마전에는 재미동포 애국자 전순태선생이 갑자기 운명하여 충격이 컸는데 이번에는 재일동포 형제가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람을 금치못하고 있습니다. 리일만 선생, 이제 고통과 고민 잊고 평안하게 쉬십시요. 생전에 그토록 염원하고 바라던 조국의 자주적 통일의 날은 가까워 오고 있는 지금입니다. <평창평화올림픽>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외세들과 한국내 보수꼴통들도 없지 않으나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개선될 기미도 보이고 있는 시기에 눈을 감게되어 다소나마 마음이 편한면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바라고 바라던 평화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해내외 동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제2의 6.15시대를 부활시키려고 촛불을 들기 시작하였고, 그 촛불들이 횃불로 바뀔 그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모두가 굳은 결심의 시간을 갖고 실천할 준비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민족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리일만 선생의 생전고통과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보낼 역량을 축적하게 된 우리민족이 아닙니까? 세상이 놀랄만한 우리민족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리일만 선생, 다시한번 삼가 명복을 빕니다. 멀리 카나다 몬트리얼에서 여행중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삼가 올립니다.
2018년 1월23일 |
댓글목록
무등님의 댓글
무등 작성일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리일만 선생을 생각합니다.
작년 10월 도꾜에서 열린 <도꾜 통일광장>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중 통일평론 최석룡선생과 함께 조그만한 일식 식당에서 만나 오랜만의 해후를 하며 고인의 건강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거동하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식당에 나와 기자와 사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리일만 선생님은 재일총련계 <우리학교>,즉 민족학교 교사로 오랜세월 교육계에서 일하셨고, 교직에서 은퇴하신 후에는 총련 일선조직의 간부로 활동하시면서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사무국장 일을 맡아 20여년 동안 일본과 북, 남에서 일제의 만행을 조사하고 폭로하는 일에 매진하여 오시면서도 국내외 동포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계기가 되면 자기일처럼 도와주시던 애국자이십니다.
나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거의 고인과 만나 교제를 하였습니다. 아는 지식도 많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공과 사를 막론하고 해내외 애국동포들을 만나면 자신의 피로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돕는 것을 좋아하셨던 분입니다.
연령도 비슷하며 고인은 저를 친형제처럼 맞이하여 주셨고, 몇번은 고인의 부인과 함께 자리도 마련하여 준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고인에 대하여 느낀 소감은 소리도 별로 없이 많은 일들을 하셔 온 애국자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리일만 선생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앞을 보고만 달려오신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사회정의감이 강하고 비리를 보면 그냥있지 못하는 정열적인 애국자였으나 그는 자신의 업적을 나타내지 않는 겸손한 성품이 몸에 베신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고인의 성품을 존경하여 왔습니다.
그는 일본취재를 갈때마다 교육계 인사들을 많이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직접 안내하며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것을 천성으로 보여주신 애국자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동부지역을 돌아보고 카나다지역으로 건너가 한창 취재활동을 하는 중에 갑자기 부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큽니다. 얼마전에는 재미동포 애국자 전순태선생이 갑자기 운명하여 충격이 컸는데 이번에는 재일동포 형제가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람을 금치못하고 있습니다.
리일만 선생, 이제 고통과 고민 잊고 평안하게 쉬십시요. 생전에 그토록 염원하고 바라던 조국의 자주적 통일의 날은 가까워 오고 있는 지금입니다. <평창평화올림픽>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외세들과 한국내 보수꼴통들도 없지 않으나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개선될 기미도 보이고 있는 시기에 눈을 감게되어 다소나마 마음이 편한면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바라고 바라던 평화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해내외 동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제2의 6.15시대를 부활시키려고 촛불을 들기 시작하였고, 그 촛불들이 횃불로 바뀔 그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모두가 굳은 결심의 시간을 갖고 실천할 준비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민족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리일만 선생의 생전고통과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보낼 역량을 축적하게 된 우리민족이 아닙니까?
세상이 놀랄만한 우리민족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리일만 선생, 다시한번 삼가 명복을 빕니다.
멀리 카나다 몬트리얼에서 여행중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삼가 올립니다.
2018년 1월23일
<조선학교 차별>, <재입국차별>, <아파트 거주차별>, <취직차별>, <직장생활 차별> 등 각종 차별들이 있지만 요즘에는 특히 일본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에 정부에서 무상화를 실시하는데 유독 조선학교만 제외시키고 있어 이 문제가 일본내 문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문제화 되어 왔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