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33]해외통일운동 지도자,덴마크의 임민식선생: ::<조미정상회담 걱정은 기우>라고 지적하며 문재인 대통령역할 기대 > 추천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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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3]해외통일운동 지도자,덴마크의 임민식선생: ::<조미정상회담 걱정은 기우>라고 지적하며 문재인 대통령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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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5-25 17:42 조회27,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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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은 독일취재를 마치고 스웨덴과 덴마르크로 갔다. 그 곳에서 23 체류하면서  스웨덴과 덴마크를 넘나들며  무도인 림원섭 선생과 통일운동 지도자인 림민식 선생을 만나 시사문제들과 자신들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지역 시민들과 남북화해협력을 상징하는 <판문점 선언> 설명하고 이들의 반응을 취재하기도 했다. 스웨덴 시민들도 조미회담을 통해 북미문제뿐 아니라 세계평화에도 기대해 줄것을 바란다면서 동시에  <남북정상회담> 반영된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향한 자세를 환영해 주기도 했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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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덴마크 통일운동지도자 림민식선생 부부댁 방문


 

[기획-33]덴마크의 임민식선생 댁 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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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 기자는 해외동포사회의  통일운동지도자 중에 한분인 림민식 선생을 만났다. 덴마크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서재에 붙여 있는 구호였다

 

<우리민족끼리>잡은 손 절대로 놓지말자

6.15선언으로 억세계 잡은 손

장검이 내려쳐도 탱크가 굴러와도

우리민족끼리 힘합쳐 맞받아 치자

방호산 인


 

그리고 524일 덴마크를 떠나 미국으로 가기 위해 후랑크후르트로 다시 돌아오자 림민식의장이 보내준 이멜을 통해 그의 정세관도 느낄수 있었다. 그는 요즘의 정세를 다음과 같이 표출했다.

 

무사히 독일에 도착하셨다니 안심이 됩니다.

 

이번 세계순방 해외동포 현지 취재는 새 시대의 출발과 함께 의의가 크다고 보겠습니다.

 

트럼프의 쇼맨쉽은 내가 우려했던 0.9%를 확인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내 트럼프 자신의 정치위기에서 벗어날 상술에 불과하다고 판단됩니다. 미국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그 이전에 북미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들 것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싱가포르는 불합리 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트럼프가 평양에 가기위한 지연전략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트럼프의 최후발악의 약빨이 떨어져 이제 걱정은 기우라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커지겠지요. 지켜봅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몸조심하시고 취재일정을 마치시길 바랍니다.(-림민식-”)

 

 

기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90분 정도 떨어진 조그만한 도시 헬싱요르(Helsingor)에 거주하는 해외통일운동의 지도자, 림민식선생(76)을 심방취재하기 위해 8시간 가량 기차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초원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려가 만났다.

 

기자는 또한 스웨덴의 림원섭 선생과 함께 덴마크를 오가며 현지 동포들, 현지 시민들을 접촉했다.

 

덴마크는 전체 인구도 5백만명 가량 되지만 이 나라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숫자도 매우 적었다.  동포숫자는 한국정부가8년전에 집계한바에 따르면 모두  293 (재외국민 214 , 시민권자 79 )의 동포들이 덴마크에 거주(2010 12월 기준)하고 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입양으로 이곳에 온 유아들은 대략  9,000명으로 집계되었다.

 

기자는 중국-일본-뉴질랜드-오스트랄리아-아랍 에미레트-독일-스웨덴-덴마크 8개국을 순회하며 <통일염원 5대양6대주 탐방취재>의 마지막 나라인 덴마크에 거주하는 림민식선생과 23일 일정을 보내면서 평소에는 몰랐던 이야기들을 포함하여 많은 유익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그는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겸 공동사무국의 사무총장직을 맡고 활동해 왔다. 그의 자택을 방문하여 23일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의 덴마크 부인 비어태 림 여사(우리말 이름 림경화)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가정생활과 이들의 근황도 알게 되었다.

 

기자가 도착한 2018521일 오후630분께  림민식 의장은 그의 부인 림 비어태여사와 함께 코펜하겐 역전 앞까지 마중나와 기자를 맞이하여 주었고, 90분가량 북쪽 근교에 있는 핼싱요르(Helsingyor)까지 기차로 가서 내리자 바로 역전 앞  중국 부폐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이들과 함께 이들 자택으로 갔다.

 

이들 부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사는 딸 집에 갔다고 다시 놀웨이 오슬로에 있는 한 가정을 방문하고 비행기로 막 돌아오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이 방문한 가정은 임경화 여사 부모들이 서로 인연이 되어 가깝게 지내던 그 자손들끼리도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그 세월이 무려 70여년 동안 친척처럼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년 517일 놀웨이 해방의 날(나치독일로부터 해방된 기념일)을 맞는 날을 택하여 서로 만남의 기회들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기자는 임민식선생의 부인이 덴마크 사람인데 어떻게 코리안 이름을 갖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우스며 통일열기가 한창 달아 올랐던 지난 19908.15범민족대회에 참가하였던 시기에 평양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대답한다.

 

그의 부인은 외모는 덴마크사람이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인은 코리안보다 더 코리안처럼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임민식 선생은 그의 부인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왔다고 말한다.왜냐하면 림민식선생이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덴마크에 온 기간에 외삼촌 박노수교수와 관련된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이른바 동백림사건이 터진이후 후속 사건으로 한국 정보원이 만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터진 1968년께부터 망명생활이 시작되었으니깐 그 망명세월도 어언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간 셈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사건이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림민식의장은 아마도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그 사건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건때문에 그리운 가족도 마음대로 못만나고 60년 세월을 망명의 처지가 되어 살아왔다.

 

이 때문에 림민식의장이 유학시절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를 도와주고 협력하여준 부인이기에 그는 부인을 가리켜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한다. 덴마크 사범대학을 나와 학교선생을 한 경력을 가진 부인은 언제나 침착하고 인자한 자세를 보여왔다. 이들 부부사이에는 음식문화의 차이, 전통문화의 차이들은 초창기에 존재하였지만 서로의 관계는 언제나 가까운 친구였고, 동지였다고 이들은 회고한다.


 

림민식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의 민족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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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림민식선생의 서재에는 남북 및 통일관계 도서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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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살짜리 북녘 소녀가 선물로 준 글발 <조국>이 서재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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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림민식 선생 서재의 한 책꽂이 위에 남측의 태극기와 북측의 인공기가 동시에 있다

 


림민식 의장이 생각하는 민족철학은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관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의 자택에도 통일기가 보이고, 남측 깃발과 함께 북측 깃발도 함께 달아놓았다. 그가 견지해온 통일철학도 흡수통일이나 적화통일 같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통일관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조합인 <연방통일관> 혹은 6.15시대에 합의된 <연합방>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또한 조국의 남녘이나 북녘에 대한 편견도 없다. 북부조국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왔다. 임민식선생의 책상위 벽에는 방북시절 김일성주석을 접견하고 찍은 기념사진도 있고, 남녘의 민중작가 홍성담의 민중판화도 있고, 남북 도서들 모두가 책꽂이에서 보였다. 그리고  방호산이 붓글씨로 쓴 <우리민족끼리>도 보이고, 평양학생소년궁전의 최진연양(6)이 쓴 글발 <조국>이 있고, 7살짜리가 써준 <통일>이란 붓글씨도 보였다.

 

그의 방에는 또 온통 12녀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의 사진이 여기저기에 놓여있었다. 가족들 모두와 우의도 아주 두터운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림민식 선생의 생애는 한마디로 통일운동과 함께 해온 애국활동이었다. 그는 해외통일운동을 위하여 독일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을 여행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통일운동에 바쳐왔다. 그러면서도 요즘에는 자신을 돌아보며 청년처럼 사고하며 자신을 점검하는 모습도 보였다.


 

누군가 쓴 <나이 듦의 기쁨>이라는 글발이 눈을 끈다.


 

-두번째 사춘기 맞이하기

-틀을 깨기

-상실을 승화하기

-새로운 꿈을 꾸기,

-또 다른 일에 도전하기

-받은 것을 되 돌려주기

-정신을 확장하기

-유산남기기

-우정을 새롭게 하기

-로맨스의 세계탐험하기

-가족을 다시 발견하기

-영적인 위기와 대면하기

 


이같은 글발에서도 그런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임민식 의장의 발자취


 

기자는 범민족대회 준비사업을 하면서 유럽을 비롯하여 일본 등지를 다니며 19908.15 1차범민족대회를 준비하는 사업에 참여하였지만 그동안 주동적으로 범민련 조직을 위해 일해 온 임민식 선생과 허심탄회한 대화 한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로의 마음들을 내 보이며 상호총화하는 형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점,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점들을 나누면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아주 유익한 계기가 되었다.

 

기자는 우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민족통신에서 다뤄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생애에 관한 내용들을 들어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그는 194274일 광주 출생으로 1961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66년 경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듬해인 1967년 영국으로 유학가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캠브리지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후 덴마르크에 여행중 동백림사건후 최대사건이 터졌다. 그는 세계적인 법학자였던 외삼춘 박노수교수와 전남 보성의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김규남 의원에 얽힌 공안사건에 연루되어 고국 땅을 갈 수 없게 되어 그 때부터 망명생활이 시작되어 반세기 이상 그 망명생활을 지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그의 삼촌과 국회의원이었던 김규남은 국가보안법에 연루되어 박정희정권 시대에 사형되고 말았다.

 

임민식선생은 이에 대해 소위 ‘동백림 사건’의 연장에서 조작된 외삼촌 사건이 저를 망명인으로 만들었고, 그리운 고향땅과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가슴 아픈 분단시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안타까와했다. 하지만 그는 비극의 분단시대에 살아 왔지만 자신에게는  떳떳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사건은 나에게 민족적 양심을 기조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부끄러운 역사도 반면교사(反面敎師)하면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반응했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한 ‘외톨박이’의 처절한 투쟁은 분단국에서 굳어진 고정관념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결국 불시에 불어닥친 사건은 분단에 안주하거나 자기 민족을 스스로 멸시하는 자기 비하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길들여진 분단사고를 깨우쳐 준 계기가 되었다고 임민식 선생은 이것도 긍정적인 입장에서 사고하는 자세를 보였다.

 

물론 유럽문화에 동화하여 안주해 버릴 수 도 있었지만 임민식선생은 이 사건에 연루된 외삼촌을 비롯한 선배들의 숭고한 민족적 양심의 행위를 뒤늦게나마 알게 되면서 그분들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이념의 발상지라고 할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사상의 쇄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저리게 체험하였고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척하는 우리나라의 구태는 끝나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체험이다.

 

그는 우리 민족이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아직도 남아 있는 냉전의식과 냉전의 가치기준을 청산하고 그 자리에 민족의식, 애국의식, 통일의식으로 자리매김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임민식 선생은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코펜하겐대학에서 강사직을 갖고 일하면서도 한국이 자주화되어 북부조국인 조선과 화해협력하면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때문에 그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왔다. 그래서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후에는 해외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주력하여 왔다.

 

그는 다행히 망명생활을 하던중 덴마크 사범대학에 재학중이던 부인과 인연이 되어1972 722일 결혼하여 12녀를 두고 있다. 손자,손녀도 남자 3, 여자3명이 있다. 그의 자녀들도 외모는 덴마크인들인데 큰 딸은 영희, 아들은 철수, 막내딸의 이름은 영미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즐겨쓴다고 말한다.

 

 임민식선생은 특히 김대중선생이 일본에서 한국공안에 의해 납치당했을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배동호선생과 함께 한민련조직을 결성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해 왔고, 동시에 독일의 윌리 브란트 수상이 추진했던 사민주의 운동에도 참가하기 위해 독일의 윤이상 선생을 이 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여 나오게 한 인물이다.

 

기자는 그에게 범민련 활동을 벌이면서 계기마다 일본, 독일, 미국, 중국 등 많이 여행을 하였는데 북부조국에 가면서 최고 지도자였던 김일성주석은 몇차례나 만났느냐고 묻자, 그는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3번이라고 대답했다. 

 


림원섭 선생과도 하루 밤 함께하며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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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웨덴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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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림원섭선생이 시범을 보이며 갈라 놓은 송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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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태권도 소개 도서에 담긴 문제점들을 지적해 준 림원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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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태권도와 주체도 <물흙길>을 구별하여 설명해 주는 림원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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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태권도 도서에 담긴 문제점들을 지적해 준 림원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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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태권도 도서에 담긴 문제점들을 지적해 준 림원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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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물흙길>대한 설명과 태권도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해 준 림원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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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물흙길>개념과 그 방어자세를 설명해 준 림원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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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덴마크 깃발이 통일기 위에 덴마크 깃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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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웨덴 항에 도착할 때 스웨덴 깃발이 나부낀다.


 

덴마크에서 하루 밤은 지난 2018522일 긴시간 기차를 타고 스웨덴의 림원섭 선생이 기자를 만나기 위해 덴마크로 방문하였다. 그가 헬싱요르에 기차로 도착하는 즉시 만나 둘이서 함께 배를 타고 스웨덴 헬싱보르그로 가면서 그리고 스웨덴 땅에서 잠시 머무르면서 그곳 시민들과 <Peace Korea>, <Unified Korea>를 외치고 합창하기도 했다.

 

우리는 다시 덴마크로 와서 림민식 선생댁에서 하루를 함께 지냈다. 그동안 림원섭 선생은 우리 둘(림민식선생과 기자)에게 건강을 걱정하며 허리운동과 발목, 손목 관절운동을 통하여 나이든 다음에도 유연한 몸매를 유지하는 건강체조를 한시간 동안 구령을 부르며 지도해 주었다. 그를 따라 하느라고 기자와 림민식 선생은 땀을 흘리며 배웠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한국에서 유행해온 <태권도> 일본의 <가라대>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가 개발하여 창조한 <물흙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뒷 마당에서 시범까지 보여주는 몸짓을 관람하기도 했다.

 

우리는 또한 통일운동과 남과 북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조국통일 운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 운동하는 사람들과의 오해는 어떻게 풀어야 한는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호총화도 함께하는 기회도 가질수 있었다.

 

림원섭 선생이 떠나는 기차역으로 가서 먼길을 달려 온 그를 마중해 주었다. 손을 흔들며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좀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기자는 그를 보내고 림민식 선생댁으로 돌아와 마지막 날 밤을 지내며 서로간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관계에서도 그동안 많이 만나 온 관계였지만 서로를 이해하는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고 서로 인정하면서 통일운동은 그 기본이 사람사업인데 서로 부족하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남은 생애 새로운 자세로 힘을 합쳐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가자고 다집하기도 했다.

 

기자는 마지막 밤을 지내며 <베를린리포트> 김원희 발행인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기자의 짐이 그의 집에 보관되어 있어 그의 집에서 이틀정도 묵어야만 했다. 돌아가는 비행기가 후랑쿠푸르트에서 뉴욕-로스엔젤레스로 가는 비행기이기 때문에 다시 독일땅으로 갔다가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유럽취재 일정을 마치면서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리인모선생의 방북을 주선하며 애국활동을 정열적으로 벌여왔던 신옥자 선생이 세상을 떠나 후랑크후르트 어딘가에 묻혔고, 이영빈목사와 함께 유럽통일운동 초기에 함께했던 기독교계 인물, 이화선목사 또한 지난 해 후랑크후르트에 묻혔고, 정규명박사가 오래전에 운명했고 그의 부인이 지난해 세상을 떠나 함께 후랑크후르트에 묻혀 이들의 묘소들을 참배하고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526일 이른 아침 죠링엔에서 후랑크후르트로 가서 현지 동포들의 안내를 받아 함께 묘소들을 찾아 인사하기로 했다. 그것이 유럽취재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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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8]일본 사이타마 동포들도 기쁨에 넘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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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7]일본 김명철박사 전망대로 조미관계 흘러간다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9414



<중국지역 동포들

 

  *[기획-6] 중국 조선족 각계각층의 정상회담 관점(동영상)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8797

[기획-5]중국 조선족 기업인이 바라는 정상회담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9399

 [기획-4]재중조선인총연합회 특별대담(동영상)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9393



<미주지역 동포들>



    * [기획-3]<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바란다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9382

 * [기획-2]<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바란다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9379

 [기획-1]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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