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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식 박사, “연석회의는 요즘 정세의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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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7-14 11:51 조회3,706회 댓글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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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식박사(1984년 방북기 '분단을 뛰어넘어'를 발행한 저자겸 편집인) 건강이 좋지는 않으나 이번에 열리는  ‘연석회의’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건강상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 행사에는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고 강조한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은 오랜만에 양은식 박사와 대담을 갖고 그의 근황과 함께 '연석회의' 관련한 그의 생각들을 알아본다. 그는 재미동포사회 통일운동진영의 원로이며 통협 초대회장 및 범민련 재미본부 의장 등을 역임해 오면서 미주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져 온 인물이다. [민족통신 편집실]




https://youtu.be/5SaP-nO5SkQ





양은식 박사, “연석회의는 요즘 정세의 돌파구


양은식소형02.jpg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양은식 박사님 최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기자는 인사말로 시작해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면서 그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로스엔젤레스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산언덕 동네, 팔러스 버디스의 주택을 팔고 온천장이 있는 엘시노 근처의 조용한 마을, 코로나 지역으로 이사간 이후 자주 만나지 못하던 양은식 박사가 최근에 연석회의관계 소식들을 듣고 연석회의는 요즘 정세의 돌파구라고 진단하고  같은 중요한 모임에는 원로들도 많이 가는게 좋다고 생각하여 그는 여권갱신을 비롯하여 필요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움직임이다

 

양은식박사는 건강이  좋지는 않으나 이번에 열리는  ‘연석회의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건강상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 행사에는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평양에서소년시절을 보내는 기간인 14살때인 1948 4월에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는데 거리에 포스터가 나붙고 남녘에서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하여 남녘의 41 정당,사회단체와 북녘의 15 정당,사회단체에서 선출된 695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이승만 사대매국 세력을 제외한 , 세력 대부분이 참석한 범민족적인 연석회의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특히 재미동포로서 통일운동을 하는 동안 몇 차례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던 지난 날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김주석에 대한 생각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를 성사시킨 큰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분을 만난 소감에 대해서 그는 "김일성주석님을 만나 뵈었을때 느낌은 엄청난 바위같은 큰 인물로 느꼈다"고 대답하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 정치인들, 미국 정치인들과 종교인들도 존경하는 인물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일성 주석의 포용력, 흡인력, 결집력을 따라갈 수 있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그의 인물평을 털어 놓는다. 그는 이어 지구상에 사회주의 나라들도 여럿있기는 하지만 후비를 튼튼하게 꾸려놓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김정은 위원장으로 대를 이어 문제없이 혁명을 계승하고 있는 것을 볼때 그러한 토대도 김일성주석께서 다져놓은 업적중 하나로 설명했다.


양은식 박사는 '연석회의'라는 말을 듣고, '연석회의'라는 어휘를 볼 때마다 김일성주석이 떠오른다고 한다. 어쩌면 김일성 주석은 '민족대단결'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는 뜻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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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전쟁시기 잠시 피신한다고 월남

1966 미국유학,1976 평양서 혈육상봉


 

양은식 박사는 이산가족이다. 그 전쟁이 터졌던 1950 16살때 잠시 피신한다고 홀어머니와 여동생(14살과 12) 남겨두고 단신으로 남녘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16년의 남한 생활을 정리하고 1966 미국으로 유학와서 재미동포가 되었고, 다시 10년만인 1976 그리고 그리던 고향땅 평양을 찿아가 혈육을 상봉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자생활을 하면서도 통일운동진영에 들어와 재미동포통일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며 지내 것이 그의 족적이다. 그러나 전쟁이후  66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조국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되어 이토록 해내외동포들이 아픔을 겪을 줄은 몰랐었다고 말한다.

 

그는 유학 올때만 해도 우리민족의 분단원인이 미국의 지배세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그것을 비로서 깨닫게 것은  1980 5.18민중항쟁과 더불어 1981 유럽에서 열린 해외기독자들과 북조선 동포들과의 만남을 통한 교류가 계기가 되었다고 돌이켜 본다.

 

양은식 박사는지난 시기를 돌이켜보면서  ‘연석회의 같은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으로 민족대단결을 이루는 것만이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타파하고 주권을 지키는 자주독립국가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와 대화를주고 받는  민족은 한세기에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왔다고 공감하면서 어떻게 이러한 시련에서 벗어 있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는 가운데 그것은 오로지연석회의 같은 범민족통일대회합을 통하여 우리 민족성원들이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을 초월하여 우리민족끼리 손을 잡는 길만이 우리 조국반도의 평화를 지킬 있고, 8천만 겨레의 숙원인 자주적 통일을 이룩할 있다고 서로 공감하는이야기로 많은 시간을보냈다.

 

남과 손만 잡으면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선다

 

기자는 양은식박사와의 대화속에서 지난 역사에서는 우리민족이 나라에 조공을 바쳐왔고, 사대주의에 찌들어 대국들에게 설설기며 눈치보며 살아 왔지만 이제는지구촌 어느나라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수소탄 보육국이되었고, 핵보유국으로, 인공지구위성 강국으로 우뚝 섰기때문에 남과 , 해외동포들이 손만잡으면  세계 어느나라에게도 굴욕을 당하지 않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서로 공감대를 갖고 신심에 심정으로  21세기의  역사를 조명해 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진지한 분위기에 대화를 주고 받으며  지난 시기 민족성원들 가운데에는 민족허무주의에 빠져 실의에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북조선이 정치철학강국으로, 군사강국으로, 그리고 첨단과학기술강국으로 세상에 이름떨치고 있기 때문에 조국의 희망찬 미래를 꿈꿀수 있게 되었다고 서로 공감대를 가졌다.

 

나라와 나라, 사회와 사회, 사람과사람을 평가하는 경우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대상을 올바르게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은식 박사의 부인은  양은식 박사를 가장 아는 사람은 가족이며 배우자라고 전제하면서 양은식박사는 누구보다 선배들을 존중해 왔고, 앉으나 서나 조국의 번영과 평화통일을 생각해  진실되고 순수한 애국자라고 말한다.

 

지금은 고인이 선우학원 박사를포함하여 차상달 선생, 김상돈 선생, 김성락박사, 노의선 목사 등에 대한 양은식 박사의 존경의 마음은 남달랐다. 그들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돕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왔다. 워낙 말수가 적은 사람이기에 그의 깊은 속마음을 안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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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대담하는 차상달 선생 묘지 찿아 참배


 

양은식 박사는기자와 대담을 나누고  한송이를 들고 로스엔젤레스의 노르만디와 워싱턴블러바드 북동쪽에 위치한 차상달 선생의 묘지를 찾아가 지난 시기에 있었던 일화들을 혼자 중얼거리며 고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두차례 엎드려 절하고 세번째 묵도를 하며 고인과 짧은 대화를나눴다.


차상달 선생(1905.8.22~1992.2.13)은 1970년대, 1980년대 재미동포사회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지도자 중의 한사람으로 1990년대에는 조국통일운동에 들어서서 후진들을 돌보아 주던 원로였다. 고인은 재미동포들 가운데 최초의 퀘이커교 신자로서 함석헌 선생보다 먼저 이 교단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고인의 생전에는 한국서 초대 서울 민선시장을 하던 김상돈 선생과 양축을 이뤘던 로스엔젤레스 지역의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지도자였다.   

 

선배의 묘지에 온 양박사를 바라보며 그의 부인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은그의 참배에서도 나타났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신의 속마음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동안 뭔가 쓸쓸한 나날들을 보낸 표정들이 얼굴에 서려 있다는 것을 감지 있었다. 전화 연락해 안부를 물어 사람들, 집을 찾아 사람들을 물었을때도 그의 표정은 다소 고독한 모습을 띄었다.

 

지난 시기에에는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웃음도 짓던 그의 표정은 최근에 와서는 웃음 표정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자와의 대화중에서 가끔 우리 통일운동 진영의 인사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서로 왕래하며 상부상조하면 힘을 가질수 있다 하면서  “그런 자리를 누가 마련하면 통일운동진영도 발전할수 있는데…”라고 아쉬워 하는 말도 던졌다

 

 

일심단결 이룬 북조선의 기적이 놀랍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남녘 정치권이나 남녘사회의 여러가지 분열현상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들을 주고 받기도했다. 남녘의 여당이나 보수진영의 분열현상은 이권다툼으로 그런다고 하지만 진보진영의 분열현상은 그것보다는 일심단결을 하지 못하는데 비롯되는게 더욱 가슴아프다고 서로 공감했다.

 

돌이켜 보면 해외동포 통일운동 진영의 분열현상도 출발이 남녘 통일운동 진영에서 비롯된 것도 없지 않았다. 사회운동도 통일운동도 운동이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외부의 영향이 작용하면 흔들리고 분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심단결 이룬 북조선의 위상이 놀랍고 기적과 같은 것이라고 서로 공감하기도 했다.

 

우리는 분열의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특히 통일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이기 때문에 외세의 간섭과 지배정책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이것은 지구촌 나라들의 해방운동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으로 서로 정리했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다른 나라를 식민화할 그리고 침략할때는 나라의 구성원들을 갈기 갈기 찢어 놓는 작업부터 먼저한다고 진단했다.

 

중동지역 나라들은종교로 갈라놓고 지배하는정책을 써왔고, 동북아지역의 나라들은 색깔로 갈라놓고 분열하고 지배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것이 제국주의 세력들의 공통된 작전이었다.

 

북조선은 이러한작전에 말려들지 않았다.  미제국주의 세력은남과 북은 색갈로 분열시켜 지배해 왔고, 분열이 상황에서는 북조선을 다시 지도자와 구성원(인민)을 갈라 놓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분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북조선은 그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지도자와 인민이 일체감을 갖는 유기적 관계로 일심단결을 이룩해 왔다. 그리하여 지구가 깨지면 깨졌지 북조선의 지도자와 인민이 분열되지 않는다는것이 오늘의 북부조국의 실체라는 것을 서로 공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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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진로의 돌파구는 연석회의 개척

 

양은식 박사가 건강이 다소 좋지 않지만 연석회의에는 가고 싶다고 준비하는 마음에서 기자는이것이 바로 민족진로의 돌파구를 찾는 방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부조국에서 전례없이 연석회의 관한 각계각층에 보내는 공개편지들을 수없이 보내는 모습에서도 우리 민족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개척 없어 대국에 목을 걸고 자기 운명을 위탁해 사대매국 세력은 한사코 연석회의 거부하며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게된다. 세력이 다름 아니라 미국에 예속되어있는 박근혜 세력이다.

 

우리는 대화를주고 받으며 박근혜자신이 무엇때문에 당국의 간섭과 지배정책에 조금도 자기 주장을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원인들도 서로 주고 받았다.

 

우선 박근혜는자신이 정당한 방법으로대통령이 되지 못하였다. 국정원 댓글 부정으로 되었기 때문에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외동포들과 국내동포들은 오랜기간 그를 가짜 대통령이라고 불러 왔다. 뿐만이 아니라 그것도 불안하여 51.6%라는 전자투표조작에 의해 이뤄진 투표결과라고 일부 시민운동참가자들은 오랜 동안 이러한 주장을 왔고, 부정선거라고 법원에 청원하였으나 사법부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서로 공감하면서 제국주의세력과 하수인에 해당하는 사대매국세력을 청산하는가 못하는가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공감하기도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시간을 갖고 서로가 지나온 이야기들, 국제정세, 국내정세, 그리고 연석회의에 얽힌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민족 진로와 함께 그것을 위해 우리 해내외 동포들이 어떤 입장과 자세로 통일운동을 펼쳐나가야 하는가에대하여 심도있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결론은 주체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고, 주체를 견지하고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민족대단결에 의한 힘을 규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연석회의 같은 범민족통일대회합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으로 대화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

 

*양은식 박사 연락전화: 310-962-9763

* 우편주소:

11269 Hutton Rd., Corona, CA92883


 

*양은식 박사의 발자취관련 보도자료: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173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6-07-18 06:05:29 통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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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후배님의 댓글

후배 작성일

양박사님 오랜만에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박사님과  평양에가서 90년대 참여한  범민족대회 에서 통일위해 애쓰시는 박사님의모습
지금도 기억이 새롭고  박사님의 그때 그흰머리모습은  지금도 옛날 그대로시군요...
이제 미주지역에서도 선우박사님을 비롯해  많은 통일운동 대선배님들이 세상을 떠나셨고 박사님  또한 건강이
좋지않으시다하지만  미주통일운동의 중심에서 대선배님으로서  계속 후배들위해 지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박사님께서 참여하시는  '연석회의'가  대성공하여 민족통일이 앞당겨 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민족통신 양박사님소식 감사드리며....

대학원생님의 댓글

대학원생 작성일

양박사님이 편집하여 펴낸
 "분단을 뛰어넘어"가 1984년에 발행되어 ㅌ출판된 거를
아직도 고히 간직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접한 북녘의 실상이었어요.
양심적인 여러분들이 방북하여 쓰신 책이라
퍽 좋았어요.

한동안 언론에 나오지 않아서 궁금하던차
오늘 이렇게 민족통신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번 역사적인 연석회의에 가시려고 준비한다니
부럽습니다. 건강 잘 추스려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양박사님을 존경하는 후학도

한라산님의 댓글

한라산 작성일

남북관계가 꽉 막혀있어요
연석회의같은 범민족 연석회의가 아니고서는
풀길이 없는거 같아요
양박사님도 그런 심정으로
불편한 몸으로 가려고 하시는거
같아요.
건강빕니다.

재일동포님의 댓글

재일동포 작성일

양은식박사님
 소식 반갑습니다.
평양서 뵙겠습니다.
건강하여
자주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일본 동지들-

유럽동포님의 댓글

유럽동포 작성일

양은식박사님 소식 궁금하던차 멀리서 안부접합니다. 인터뷰 내용중 다음귀절이 다가옵니다.

<<<그는 특히 재미동포로서 통일운동을 하는 동안 몇 차례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던 지난 날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김주석에 대한 생각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를 성사시킨 큰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분을 만난 소감에 대해서 그는 "김일성주석님을 만나 뵈었을때 느낌은 엄청난 바위같은 큰 인물로 느꼈다"고 대답하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 정치인들, 미국 정치인들과 종교인들도 존경하는 인물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일성 주석의 포용력, 흡인력, 결집력을 따라갈 수 있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그의 인물평을 털어 놓는다. 그는 이어 지구상에 사회주의 나라들도 여럿있기는 하지만 후비를 튼튼하게 꾸려놓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김정은 위원장으로 대를 이어 문제없이 혁명을 계승하고 있는 것을 볼때 그러한 토대도 김일성주석께서 다져놓은 업적중 하나로 설명했다.

양은식 박사는 '연석회의'라는 말을 듣고, '연석회의'라는 어휘를 볼 때마다 김일성주석이 떠오른다고 한다. 어쩌면 김일성 주석은 '민족대단결'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는 뜻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

wj Kang님의 댓글

wj Kang 작성일

48년 남북연석회의 장면들을 담은 사진들 인상적이외다

카나다님의 댓글

카나다 작성일

양은식박사님 반갑습니다. 여러차례 전화하는데 연결 어렵군요.

진달래님의 댓글

진달래 작성일

사대주의는 우리민족을 망하는 수렁으로 빠지게 할 뿐이다. 우리민족 제일주의가 오로지 사는 길이다.이것이 바로 역사의 진리이다.

미주청년님의 댓글

미주청년 작성일

양은식박사님 반가와요^-^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호주님의 댓글

호주 작성일

그렇게되면 얼마나 좋겟습니까.

자주고름님의 댓글

자주고름 작성일

인터뷰기사 마지막부분 좋았어요~

<<<그 결론은 주체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주체를 견지하고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민족대단결에 의한 힘을 규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연석회의’와 같은 범민족통일대회합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으로 대화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맞아요 주체가 바로서야 그 나라꼴이 바로되지요. 배도 선장이 제대로 해야 뒤짚히지 않지요. 결국 지도자가 중요하다는거가 된다는 말이 아닐까요?  김구선생님이나 김대중 대통령님 같은 분이 남녘에 있어야 남녘사회 힘이 결집될텐데 중구난방이고 오합지졸로 되어있어서 ....

하지만 한국사회가 자체가 넘 엉망이고 부패하여 깜깜하네요.

HRF님의 댓글

HRF 작성일

알보르센 대표 “北에 드론 날려 한국드라마 담은 USB 살포”


‘인권재단(HRF)’의 토르 알보르센 대표는 20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드라마 등 외부 정보를 담은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가 북한에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도 언젠가는 컵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 넘칩니다. 북한에 외부 정보를 주입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폐쇄된 북한 체제도 변화되는 분기점을 맞을 겁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인 ‘인권재단(HRF)’ 토르 알보르센 대표(40)는 20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외부 정보를 담은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가 북한에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알보르센 대표는 2년 전부터 올해 5월까지 드론을 이용해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북한이 강하게 반발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뷰’와 한국 드라마, 위키피디아 등을 담은 USB메모리 1000여 개를 북한 땅에 뿌렸다.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인 드론은 목표한 지점에 정확히 USB메모리를 살포하고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알보르센 대표가 한국을 방문한 건 탈북단체들과 드론의 활용도를 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까지 제3국에서 드론을 날렸다”며 “한국은 군사분계선(MDL)의 통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드론을 날릴 수 없었다”고 했다. 

알보르센 대표가 말하는 제3국은 중국이었다. 그는 어떻게 중국에서 드론을 날릴 수 있었을까. 그는 “함께 활동하는 탈북단체가 대신해 주고 있다”며 “드론의 정확한 기술적 제원과 날리는 위치, 낙하지점 등은 보안상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한 탈북단체 대표는 “현재 중국에서 무게 2kg 정도의 물체를 매달고 20km 정도 날아갔다 돌아오는 드론이 600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전했다. 알보르센 대표는 드론과 USB메모리 구입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알보르센 대표는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그는 “북한 체제 수호의 첨병인 국가안전보위부가 베네수엘라 남성이 북한을 비판하는 자료를 뿌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00년 우연한 기회에 요덕수용소 출신인 강철환 씨가 쓴 ‘평양의 어항’이란 책을 읽게 됐다. 그때 ‘북한을 변화시키는 일’을 필생의 과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북한 인권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는 13세 때 아버지에게서 처음 들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통치하는 쿠바보다 더 열악하다’고 말이죠. 직접 탈북자들을 만나 들어본 북한 인권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알보르센 대표는 개인적인 아픔도 갖고 있다. 13세 때 어머니가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베네수엘라엔 어느 인권단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국과 미국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공산주의 이념을 공부했고 2005년 직접 인권단체를 만들었다. 현재 HRF는 뉴욕 본부와 3개의 지역 지부를 두고 2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알보르센 대표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삶을 사는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개인적으로 제일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단체 예산의 10%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단체 예산이 350만 달러(약 40억 원) 정도였으니 드론 프로젝트 등에만 4억 원 정도를 사용한 셈이다.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드론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며 “한국 정부와 국민들도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만조님의 댓글

만조 작성일

이넘두 돈몇푼받아먹구 잔명유지하자는 수작이다

미주청년님의 댓글

미주청년 작성일

존경하는 양은식 박사님,

누가 뭐래도 박사님은 미국통일운동의 \
오랜 상징이었습니다.

"분단을 뛰어넘어~"라는 1984년도 출판도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박사님은 그 어려웠던 시기
통협을 이끌어오셨고
1990년 범민족대회이후
범민련을 이끌어 오신 대 원로이십니다.

존경합니다.

 건강
건강
건강하세요

ㅎㅎㅎ님의 댓글

ㅎㅎㅎ 작성일

알보르센!
ㅎㅎ13살때...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북에 가봐라.
사기군,dog,pig

차중열님의 댓글

차중열 작성일

존경하는 양은식박사님의 소식 오랜만에 접하게 되어 기쁩니다.
박사님 부디 건강하셔서 통일을 그날을 함께 맞이하고
기쁨의 막걸리로 잔을 나눌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건강, 건강을 빌며,

차중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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