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7-14 11:51
양은식 박사, “연석회의는 요즘 정세의 돌파구”
 글쓴이 : 편집실
조회 : 3,112  

양은식박사(1984년 방북기 '분단을 뛰어넘어'를 발행한 저자겸 편집인) 건강이 좋지는 않으나 이번에 열리는  ‘연석회의’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건강상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 행사에는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고 강조한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은 오랜만에 양은식 박사와 대담을 갖고 그의 근황과 함께 '연석회의' 관련한 그의 생각들을 알아본다. 그는 재미동포사회 통일운동진영의 원로이며 통협 초대회장 및 범민련 재미본부 의장 등을 역임해 오면서 미주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져 온 인물이다. [민족통신 편집실]




https://youtu.be/5SaP-nO5SkQ





양은식 박사, “연석회의는 요즘 정세의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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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양은식 박사님 최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기자는 인사말로 시작해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면서 그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로스엔젤레스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산언덕 동네, 팔러스 버디스의 주택을 팔고 온천장이 있는 엘시노 근처의 조용한 마을, 코로나 지역으로 이사간 이후 자주 만나지 못하던 양은식 박사가 최근에 연석회의관계 소식들을 듣고 연석회의는 요즘 정세의 돌파구라고 진단하고  같은 중요한 모임에는 원로들도 많이 가는게 좋다고 생각하여 그는 여권갱신을 비롯하여 필요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움직임이다

 

양은식박사는 건강이  좋지는 않으나 이번에 열리는  ‘연석회의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건강상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이번 행사에는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평양에서소년시절을 보내는 기간인 14살때인 1948 4월에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는데 거리에 포스터가 나붙고 남녘에서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하여 남녘의 41 정당,사회단체와 북녘의 15 정당,사회단체에서 선출된 695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이승만 사대매국 세력을 제외한 , 세력 대부분이 참석한 범민족적인 연석회의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특히 재미동포로서 통일운동을 하는 동안 몇 차례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던 지난 날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김주석에 대한 생각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를 성사시킨 큰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분을 만난 소감에 대해서 그는 "김일성주석님을 만나 뵈었을때 느낌은 엄청난 바위같은 큰 인물로 느꼈다"고 대답하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 정치인들, 미국 정치인들과 종교인들도 존경하는 인물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일성 주석의 포용력, 흡인력, 결집력을 따라갈 수 있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그의 인물평을 털어 놓는다. 그는 이어 지구상에 사회주의 나라들도 여럿있기는 하지만 후비를 튼튼하게 꾸려놓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김정은 위원장으로 대를 이어 문제없이 혁명을 계승하고 있는 것을 볼때 그러한 토대도 김일성주석께서 다져놓은 업적중 하나로 설명했다.


양은식 박사는 '연석회의'라는 말을 듣고, '연석회의'라는 어휘를 볼 때마다 김일성주석이 떠오른다고 한다. 어쩌면 김일성 주석은 '민족대단결'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는 뜻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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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전쟁시기 잠시 피신한다고 월남

1966 미국유학,1976 평양서 혈육상봉


 

양은식 박사는 이산가족이다. 그 전쟁이 터졌던 1950 16살때 잠시 피신한다고 홀어머니와 여동생(14살과 12) 남겨두고 단신으로 남녘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16년의 남한 생활을 정리하고 1966 미국으로 유학와서 재미동포가 되었고, 다시 10년만인 1976 그리고 그리던 고향땅 평양을 찿아가 혈육을 상봉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자생활을 하면서도 통일운동진영에 들어와 재미동포통일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며 지내 것이 그의 족적이다. 그러나 전쟁이후  66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조국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되어 이토록 해내외동포들이 아픔을 겪을 줄은 몰랐었다고 말한다.

 

그는 유학 올때만 해도 우리민족의 분단원인이 미국의 지배세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그것을 비로서 깨닫게 것은  1980 5.18민중항쟁과 더불어 1981 유럽에서 열린 해외기독자들과 북조선 동포들과의 만남을 통한 교류가 계기가 되었다고 돌이켜 본다.

 

양은식 박사는지난 시기를 돌이켜보면서  ‘연석회의 같은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으로 민족대단결을 이루는 것만이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타파하고 주권을 지키는 자주독립국가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와 대화를주고 받는  민족은 한세기에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왔다고 공감하면서 어떻게 이러한 시련에서 벗어 있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는 가운데 그것은 오로지연석회의 같은 범민족통일대회합을 통하여 우리 민족성원들이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을 초월하여 우리민족끼리 손을 잡는 길만이 우리 조국반도의 평화를 지킬 있고, 8천만 겨레의 숙원인 자주적 통일을 이룩할 있다고 서로 공감하는이야기로 많은 시간을보냈다.

 

남과 손만 잡으면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선다

 

기자는 양은식박사와의 대화속에서 지난 역사에서는 우리민족이 나라에 조공을 바쳐왔고, 사대주의에 찌들어 대국들에게 설설기며 눈치보며 살아 왔지만 이제는지구촌 어느나라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수소탄 보육국이되었고, 핵보유국으로, 인공지구위성 강국으로 우뚝 섰기때문에 남과 , 해외동포들이 손만잡으면  세계 어느나라에게도 굴욕을 당하지 않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서로 공감대를 갖고 신심에 심정으로  21세기의  역사를 조명해 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진지한 분위기에 대화를 주고 받으며  지난 시기 민족성원들 가운데에는 민족허무주의에 빠져 실의에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북조선이 정치철학강국으로, 군사강국으로, 그리고 첨단과학기술강국으로 세상에 이름떨치고 있기 때문에 조국의 희망찬 미래를 꿈꿀수 있게 되었다고 서로 공감대를 가졌다.

 

나라와 나라, 사회와 사회, 사람과사람을 평가하는 경우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대상을 올바르게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은식 박사의 부인은  양은식 박사를 가장 아는 사람은 가족이며 배우자라고 전제하면서 양은식박사는 누구보다 선배들을 존중해 왔고, 앉으나 서나 조국의 번영과 평화통일을 생각해  진실되고 순수한 애국자라고 말한다.

 

지금은 고인이 선우학원 박사를포함하여 차상달 선생, 김상돈 선생, 김성락박사, 노의선 목사 등에 대한 양은식 박사의 존경의 마음은 남달랐다. 그들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돕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왔다. 워낙 말수가 적은 사람이기에 그의 깊은 속마음을 안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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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대담하는 차상달 선생 묘지 찿아 참배


 

양은식 박사는기자와 대담을 나누고  한송이를 들고 로스엔젤레스의 노르만디와 워싱턴블러바드 북동쪽에 위치한 차상달 선생의 묘지를 찾아가 지난 시기에 있었던 일화들을 혼자 중얼거리며 고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두차례 엎드려 절하고 세번째 묵도를 하며 고인과 짧은 대화를나눴다.


차상달 선생(1905.8.22~1992.2.13)은 1970년대, 1980년대 재미동포사회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지도자 중의 한사람으로 1990년대에는 조국통일운동에 들어서서 후진들을 돌보아 주던 원로였다. 고인은 재미동포들 가운데 최초의 퀘이커교 신자로서 함석헌 선생보다 먼저 이 교단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고인의 생전에는 한국서 초대 서울 민선시장을 하던 김상돈 선생과 양축을 이뤘던 로스엔젤레스 지역의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지도자였다.   

 

선배의 묘지에 온 양박사를 바라보며 그의 부인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은그의 참배에서도 나타났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신의 속마음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동안 뭔가 쓸쓸한 나날들을 보낸 표정들이 얼굴에 서려 있다는 것을 감지 있었다. 전화 연락해 안부를 물어 사람들, 집을 찾아 사람들을 물었을때도 그의 표정은 다소 고독한 모습을 띄었다.

 

지난 시기에에는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웃음도 짓던 그의 표정은 최근에 와서는 웃음 표정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자와의 대화중에서 가끔 우리 통일운동 진영의 인사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서로 왕래하며 상부상조하면 힘을 가질수 있다 하면서  “그런 자리를 누가 마련하면 통일운동진영도 발전할수 있는데…”라고 아쉬워 하는 말도 던졌다

 

 

일심단결 이룬 북조선의 기적이 놀랍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남녘 정치권이나 남녘사회의 여러가지 분열현상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들을 주고 받기도했다. 남녘의 여당이나 보수진영의 분열현상은 이권다툼으로 그런다고 하지만 진보진영의 분열현상은 그것보다는 일심단결을 하지 못하는데 비롯되는게 더욱 가슴아프다고 서로 공감했다.

 

돌이켜 보면 해외동포 통일운동 진영의 분열현상도 출발이 남녘 통일운동 진영에서 비롯된 것도 없지 않았다. 사회운동도 통일운동도 운동이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외부의 영향이 작용하면 흔들리고 분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심단결 이룬 북조선의 위상이 놀랍고 기적과 같은 것이라고 서로 공감하기도 했다.

 

우리는 분열의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특히 통일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이기 때문에 외세의 간섭과 지배정책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이것은 지구촌 나라들의 해방운동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으로 서로 정리했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다른 나라를 식민화할 그리고 침략할때는 나라의 구성원들을 갈기 갈기 찢어 놓는 작업부터 먼저한다고 진단했다.

 

중동지역 나라들은종교로 갈라놓고 지배하는정책을 써왔고, 동북아지역의 나라들은 색깔로 갈라놓고 분열하고 지배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것이 제국주의 세력들의 공통된 작전이었다.

 

북조선은 이러한작전에 말려들지 않았다.  미제국주의 세력은남과 북은 색갈로 분열시켜 지배해 왔고, 분열이 상황에서는 북조선을 다시 지도자와 구성원(인민)을 갈라 놓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분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북조선은 그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지도자와 인민이 일체감을 갖는 유기적 관계로 일심단결을 이룩해 왔다. 그리하여 지구가 깨지면 깨졌지 북조선의 지도자와 인민이 분열되지 않는다는것이 오늘의 북부조국의 실체라는 것을 서로 공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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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진로의 돌파구는 연석회의 개척

 

양은식 박사가 건강이 다소 좋지 않지만 연석회의에는 가고 싶다고 준비하는 마음에서 기자는이것이 바로 민족진로의 돌파구를 찾는 방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부조국에서 전례없이 연석회의 관한 각계각층에 보내는 공개편지들을 수없이 보내는 모습에서도 우리 민족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개척 없어 대국에 목을 걸고 자기 운명을 위탁해 사대매국 세력은 한사코 연석회의 거부하며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게된다. 세력이 다름 아니라 미국에 예속되어있는 박근혜 세력이다.

 

우리는 대화를주고 받으며 박근혜자신이 무엇때문에 당국의 간섭과 지배정책에 조금도 자기 주장을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원인들도 서로 주고 받았다.

 

우선 박근혜는자신이 정당한 방법으로대통령이 되지 못하였다. 국정원 댓글 부정으로 되었기 때문에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외동포들과 국내동포들은 오랜기간 그를 가짜 대통령이라고 불러 왔다. 뿐만이 아니라 그것도 불안하여 51.6%라는 전자투표조작에 의해 이뤄진 투표결과라고 일부 시민운동참가자들은 오랜 동안 이러한 주장을 왔고, 부정선거라고 법원에 청원하였으나 사법부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서로 공감하면서 제국주의세력과 하수인에 해당하는 사대매국세력을 청산하는가 못하는가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공감하기도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시간을 갖고 서로가 지나온 이야기들, 국제정세, 국내정세, 그리고 연석회의에 얽힌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민족 진로와 함께 그것을 위해 우리 해내외 동포들이 어떤 입장과 자세로 통일운동을 펼쳐나가야 하는가에대하여 심도있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결론은 주체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고, 주체를 견지하고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민족대단결에 의한 힘을 규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연석회의 같은 범민족통일대회합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것으로 대화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

 

*양은식 박사 연락전화: 310-962-9763

* 우편주소:

11269 Hutton Rd., Corona, CA92883


 

*양은식 박사의 발자취관련 보도자료: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173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6-07-18 06:05:29 통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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