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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암선생 형제들,요즘 정세 고무받아 활기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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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6-24 07:55 조회32,8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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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 민족통신 편집인은 이번 샌후란시스코 방문을 계기로 장소암선생과 그의 동생 장주암선생도 만났다이들은 요즘 정세에 고무받아 생활 자체가 과거에 비해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민족통신 편집실]

 

장소암심방02.jpg
[사진]샌후란시스코 장소암 선생

 

장소암선생 형제들,요즘 정세 고무받아 활기찬 생활


장소암심방.jpg

장소암심방01.jpg
[사진]왼쪽부터 장주암 선생, 장소암선생 그리고 민족통신 기자
 

 

[샌후란시스코=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이민온지 44년이 되는 장소암선생(72)은 요즘 정세에 고무받아 생활 자체가 과거에 비해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을 통해 70여년 고통의 시간속에 지내온 암담한 세월이 이제 빛을 보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것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평소때 조국반도 정세가 깝깝하여 한국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한탄하던 그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밝고 희망에 차 있다그는 무엇보다 남과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손을 잡은 모습에 가슴이 흐뭇했고북과 미국 정상들이 수십년 적대관계에서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에서 손을 잡는 보도를 바라보며 가슴 벅찬 감격을 느꼈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와 가게에서 만나 그의 사업경영 철학과 경험담을 들으면서도 많은 교훈들에 대하여 감명을 받았고자신이 생후 몇달되지 않아 자신의 육체가 소아마비라는 것으로 판명되어 지체자로 한평생을 살아오면서도 긍정적인 생활관을 갖게 된 72년의 세월에 대한 극적인 삶그리고 천사같은 부인을 만나 아들을 낳고 그를 버클리대학을 졸업시켜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킨 가정에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도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된 것은 장소암선생 가문에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증조할어버지가 동학에 관계했고아버지 장희진목사의 역사의식과 그의 사회정의적 생활관에 영향을 받아 온것으로 생각되었다.

 

장소암선생은 신체불구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내 샌후란시스코 자기사업 분야에서 1등기업으로 성장시켜 왔다주로 가정 대대로 간직해 온 가구들을 새것처럼 만들어 주는 사업을 해왔다할아버지가 아껴온 가구들이나 한세기 이상 조상들이 애지 중지해 온 가구들을 마치도 새것처럼 수선하여 주는 사업인데 손님들이 가져오는 옛날 가구들은 모두 사연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손님들은 그의 손재주와 옛날 가구들을 예술적 가치를 부과하여 창조하는 기술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것 같다옛날의 고급 헌 가구들을 맡기면 그 가구가 새롭게 태어날때까지 손님들이 전화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색다른 상술을 느낄수 있었다작품이 완성되면 장소암선생이 다 되었다고 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어떤 것은 1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그의 가계에는 고급 옛날 가구들을 고치고 재생시키는 여러가지 공구들과 모직들 견본들이 수없이 많이 배열되어 있다.

 

그는 또 이분야의 사업에 관심있는 후보사업가들 15명정도 매주 토요일 수강료는 받고 5시간씩 강의를 통해 지도한다고 한다.

 

장소암선생은 미국내 동포사회보다 미국 주류사회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소비자협회에서 그의 사업체가 최우수 기업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미국내 Goodwill Center에서 추천한 사업자문가로 인정하여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하는 방법들에 대한 강연자로서도 소개하여 왔다다시 말하면 신체장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랜세월 한길을 걸어오며 손님들에게 신뢰를 받아 온 기업인으로서 높이 평가한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그와 서너시간 대화를 나누며 까맣득하게 잊었던 지난 시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장소암선생이 얼마나 기억력이 좋은 분인가를 다시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기자는 또한 그의 동생 장주암선생이 보고 싶어 그의 자택 주변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나 페인트 사업의 한길을 걸어온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한국서 온 친척들 때문에 바쁜 시간에 시간을 내어 만나게 되어 긴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그 동안 잘 지내 왔다는 것과 요즘에 정세에 장주암선생도 크게 고무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이들 형제들은 1980년 광주항쟁애 일어났던 시기에는 로르엔젤레스에 원정시위까지 참여해 한국민주운동그리고 그 이후 통일운동에도 참여해온 용감한 형제들이었다.

 

 기자는 식당에서 통일기를 꺼내들고 장소암선생장주암선생과 함께 셋이서 기념촬영을 찍기도 했다.

 

이들 형제들은 국제정치를 비롯하여 세계경제철학 및 예술 등 각방면에 박식한 인물로 알려져 왔다.

 

장소임선생의 사업장소는

Soam’s Upholstery

1741 Noriega St.,SFO, CA94122

전화연락처: 415-681-2930

 (  

 

*장소암선생 지난시기 대담보도 자료보기: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people&wr_id=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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