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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변혁론-⑧주체론의 몰이해:김 수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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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05-31 00:00 조회5,1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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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수학하고 독일에 거주하는 김 수일님이 <주체변혁론>에 대해 연구하여 쓴 논문을 민족통신에 보내왔다. 이 논문은 이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해외에서 진보운동을 전개하는 주체들에게 중요한 자료들이 될 것으로 보아 연속적으로 민족자료실에 올린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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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주체변혁론의 몰이해

8.15 해방 이후 남한변혁운동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가혹한 제도 법률적 탄압 속에서 지하 운동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따라서 변혁운동의 지도사상에 대한 공개논의는 오랫동안 불가능하였다. 비로소 80년대에 이르러 그 동안 축적된 변혁운동역량은 남한의 정치판도에서 무시 못할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되자 남한 변혁운동은 지하적인 성격에서 반(半)합법적인 위상을 얻게 되었으며 변혁운동의 지도사상에 대한 공개논의도 활발하게 되었다.

남한변혁운동의 지도사상은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 두 주류를 이루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한 "민족민주진영"이 남한 변혁운동의 주도권을 잡게되자, 맑스·레닌주의를 지도사상으로 하는 "민중민주진영"은 "민족민주진영"의 지도사상에 대한 의도적 왜곡과 몰이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몰락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남한변혁운동세력 내에서는 여전히 갈등과 분파의 원천으로 되고 있다. 물론 건전한 이념논쟁은 변혁이론의 발전을 꼭 필요한 것이지만 왜곡과 몰이해는 변혁운동의 통일단결과 활발한 전진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극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왜곡되고 몰이해된 이론 실천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몰이해의 중요한 내용들을 철학적인 영역과 실천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몇 가지 중심적인 테마만을 골라 정리해 보고자 한다.


[ 철학적 기초문제와 과련하여 ]>

"민족민주진영"의 지도사상에 대한 몰이해는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시대적 제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교조적인 절대화가 주원인이라 파악된다. 이러한 교조적인 입장은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보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관념론을 피상적으로 이해한데 기초하여 주체사상을 왜곡한데로 나아가고 있다. 때문에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본질적 차이, 관념론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주체사상을 관념론이라 왜곡하는 문제, 변혁이론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주체사상의 사회역사관에 대한 몰이해가 중심문제로 떠오른다.


1.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본질적 차이

남한 변혁운동계와 사회학계에서는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관계문제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과학적인 변혁이론 정립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변혁운동은 바람직하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맑스·레닌주의의 본질적인 제한성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옳게 이해하지 못한데서 찾게 된다.

맑스주의는 "독점 전 자본주의시대"에 맑스와 엥겔스가 서재에서 물질중심의 철학적 사고에 기초해 체계화한 노동계급의 혁명이론이다. 맑스주의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정치경제학,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을 사상적 원천으로 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그 구성내용은 변증법적 유물론,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으로 되어 있다. 레닌주의는 이러한 맑스주의의 구성내용을 계승하고 여기에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이론화한 예를 들면 계속혁명론, 제국주의론, 국가론 등으로 맑스주의를 한층 발전 풍부화 시켰다. 맑스주의와 레닌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이론으로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시기의 맑스주의 또는 맑스·레닌주의라고 통칭하게 된 것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문제로 제기하고 물질의 일차성, 존재의 선차성을 논증한데 기초하여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세계는 합법칙적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물질운동의 합법칙성을 맑스·레닌주의는 자연계뿐 아니라 사람이라는 운동주체가 있는 사회운동에도 적용하여 사회역사관을 수립하였다.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역사관은 물질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철학의 근본문제에 기초해서 경제 물질적인 토대(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사회적 의식(정치 법률 사상 문화 등을 포함한 사회의 상부구조)를 규정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계급의 투쟁도 목적의식적일 때만 사회역사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기관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인 과학적인 사회역사관과 변혁이론의 창출도 이에 대한 노동계급의 요구, 달리 말하면 노동계급의 주체의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론 정립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주체의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맑스·레닌주의는 상부구조 또는 의식의 "상대적 독자성" 또는 "반작용"의 사상을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의 독자성"은 어디까지나 토대의 규정성 내에서의 상대적 독자성에 불과하다. 이것은 맑스·레닌주의가 철학의 근본문제 정립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제한성이며,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일관성의 결여이다. 이러한 제한성을 옳게 인식하지 못할 때 맑스·레닌주의는 교조화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한 부분만을 절대화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맑스·레닌주의로부터 이탈, 또는 변종되었다는 상반된 견해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시대의 마르크스주의"이며, "주사는 현시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견해는 계승성만을 절대시한 것이며, 주체사상을 관념론이라는 폄하는 맑스주의로부터 이탈 내지 변종을 주장하자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진리와 국제혁명운동의 경험을 주체사상의 본고장인 조선의 역사적 조건과 민족적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변혁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창시되고 심화 발전되어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발전과정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틀 속에 머물지 않고 독창적인 새로운 변혁이론체계를 세우는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주체사상은 계승성과 더불어 독창성을 분명히하고 있다: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기초 우에서 김일성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관계를 옳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김일성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관계는 계승성을 무시하고 독창성만 보려고 하여도 안되며 반대로 독창성을 소홀히 하고 계승성을 지나치게 내세워도 안됩니다. 물론 계승성과 독창성, 여기에서 주되는 것은 독창성입니다."(김정일, 김일성주의의 독창성을 옳게 인식할 데 대하여, 78쪽)

김일성주의는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이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있다. 때문에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가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관계문제 고찰에서 혼란이 생기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 계승성과 독창성을 옳게 파악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된다. 맑스·관계에서 주체사상의 계승성은 주체사상도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을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사상적 무기란데 있다. 뿐만 아니라 맑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 철학이 밝힌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과 물질세계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은 주체철학의 세계관 정립을 위한 전제로 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의 본질적인 제한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이론체계를 세움으로써 계승성보다 독창성이 훨씬 두드러지게 보인다.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처럼 서재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일본제국주의 대군과의 간고한 무장투쟁 과정에서 창시되었다. 1930년대 처음 시작한 이 무장투쟁은 맑스·레닌주의 기치로 전개되었으나 주체사상의 씨앗(원천)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이 씨앗은 일제에 대한 계속되는 투쟁과 광복 이후 미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을 반대하는 민족해방투쟁과 통일운동,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점차 심화 발전하여 70년대에 주체사상은 독창적인 이론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주체사상의 창시와 발전은 맑스주의와 달리 노동계급 뿐 아니라 광범한 민중이 자기의 운명개척을 위해 역사의 전면에 나선 "주체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체시대는 20-30년대에 서구자본주의 나라의 노동계급뿐 아니라 세계적 판도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의 민중들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역사의 주체로 대규모로 광범위하게 등장한 시대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체사상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창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비하여 혁명의 주체인 인민대중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훨씬 높아졌으며 사회발전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로부터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맞게 혁명의 이론과 방법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됩니다."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9-10쪽)

새로운 시대적 환경에서 조선반도에서도 각계각층의 민중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각성된 사람, 다시 말하면 자기운명의 주인이 된 민중은 무한대의 힘을 발휘한다는 절실한 체험은 주체적 철학사고의 원천으로 되었다. 이 원천에 의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 사람의 창조적 힘에 의거해서 세계(사회)를 변화 개척해야 한다는 사회철학적 원리가 독창성 있게 정립된 것이다.

이러한 주체사관의 독창성은 맑스·레닌주의 유물사관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사회변혁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 건설문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맑스·레닌주의에서는 "쏘비에트정권에 전기화를 더한 것"(레닌의 명제)으로 풀고 있다. 말하자면 노동계급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정권이 주도하여 물질기술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 주체사상은 "사회주의정권에 3대혁명을 더한 것"이라는 명제로 표현하고 있다. 3대혁명이란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뜻한다.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문화혁명을 통해 인간을 개조하여 "사상적 요새"를 점령하여야 하며, 기술혁명을 통해 자연개조를 수행하여 물질적 요새도 점령하여야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맑스·레닌주의의 공산주의 건설이론에서 "물질적 요새"에만 주되는 주의를 돌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주체사상은 물질중심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철학체계를 세움으로써 변혁주체, 영도방법 등을 일관성 있게 체계화 한 완벽한 변혁이론이 가능하게 된 것이며, 바로 여기에 주체사상의 독창성이 있게 된다. 그와는 달리 철학적 기초가 물질중심으로 된 맑스·레닌주의는 물질중심으로 철학적 체계를 세움으로써 혁명론의 핵심적인 문제인 혁명(변혁)주체나 영도문제는 이론체계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차이를 보지 못하면 정직한 변혁이론가도 맑스·레닌주의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착각하고 주체사상을 마음대로 재단하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왕년에 정통 맑스주의자였던 일본의 이노우에 슈하찌, 프랑스의 부도(Boudot Pierre) 같은 세계적 석학들 가운데는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옳게 이해함으로써 맑스·레닌주의의 제한성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주목할만한 일이다.

井上週八: 주체사상개설, 동경 / 1987
삐엘부도: Diamants noirs au pays du matin clair,Berger-Levrault, Paris

2.주체철학과 관념론

80년대 중반 이후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변혁운동체가 남한 변혁운동을 주도하게 되자 주체철학에 대한 이론적 논의도 활발해졌다. 여기에는 비주체주의자 내지 반주체주의자가 주체철학을 의도적으로 매도하고 왜곡하려는 비학문적인 비겁한 태도도 있지만, 진지한 학문적인 논의는 철학이론 발전에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도 남한의 정치사회 풍토는 불행하게도 주체철학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인 논의마저 허락하지 않고 있다.

주체철학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일반적인 현상은 주체철학을 관념론이라고 몰이해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현상은 진지한 학문적 입장에서 보면 무엇보다 유럽의 관념론에 대한 천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주체철학을 피상적으로 고찰하는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체철학에 대한 관념론 논의는 철학 일반과 주체철학의 근본 초석이 되는 문제들인 주체철학의 근본문제, 주체철학의 근본원리, 주체철학의 인간관 등에 집중되고 있으며, 매 문제에 해당되는 관념론의 유파를 끌어 들여 주체철학의 기반자체가 관념론적인 것으로 논거하자는 것이다. 이 논거는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의 근본문제 설정의 절대화와 관념론적 규정을 통해, 주체철학의 근본원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관관념론을 통해, 주체철학의 인간론에 대해서는 실존주의를 통해 시도하고 있다.

유물론 진영에 형이상학적 유물론, 기계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 등 여러 유파가 있듯이 관념론 진영에도 객관 관념론과 주관 관념론으로 구분되고 있다.

객관 관념론은 초자연적 존재(신) 또는 절대정신 등 객관적인 관념을 세계의 시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철학으로는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헤겔 철학을 꼽을 수 있다. 주관 관념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흄, 버클리, 스트리너, 셸링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들은 주관적인 관념인 감각, 자아 등을 세계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주관 관념론에는 생의 철학, 인간철학, 실존주의 등의 여러 학파가 속한다.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와 관련하여

주체철학이 새롭게 정립한 철학의 근본문제는 이미 언급된바와 같이 "세계와 사람의 관계" 문제이다. 이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첫번 째 몰이해는 맑스·레닌주의가 설정한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절대화이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설정한 "물질과 의식" 또는 "존재와 사유"의 관계만이 철학의 근본문제라는 주장은 일면의 과학성만 절대화하고 타면의 제한성을 보지 못한데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는 물질과 의식은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포괄하는 가장 일반적인 범주이며 세계의 일반적인 연관과 세계의 통일성을 설명할 수 있는 근본범주라는 관점에서 "물질과 의식"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설정하였다.

맑스주의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철학의 근본문제는 개별철학이 관심을 가진 다만 중심적인 문제로만 이해되었다. 예를 들면 존재론에서는 세계의 시원 문제, 인식론에서는 인식의 가능성과 방법문제, 윤리도덕 철학에서는 윤리도덕의 원천과 기준 등의 문제였다.

맑스·레닌주의가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의식"이라는 철학적 범주로 정식화함으로써 전반적인 철학조류를 유물론과 관념론을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기준을 내놓았다. 물질이 의식에 비해 일차적이며 세계의 시원이라는 견해는 유물론이며, 그와 반대로 의식이 물질에 비해 일차적이며 세계의 시원이라는 견해는 관념론이라고 구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의 이러한 기준에 의하여 "세계와 사람"이라는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는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 없으며, 사람을 위주로 세계를 고찰하기 때문에 관념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인 세계와 사람의 관계문제는 둘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 하는 정의가 본질상 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문제가 아니다. ……유물론자라면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가 아니라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이다 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 주체주의자가 의기양양하게 내걸어 놓은 최신의 정의가 실상 근본문제가 아니다.(주체철학비판1. 45쪽, 남한주체사상논쟁 265쪽)

그러나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설정할 때 일련의 한계성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는 어디까지나 인식론상의 근본문제이라는데 있다. 레닌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물질과 의식의 분리대립은 인식론의 한계 내에서만 절대적 의의를 가지며 그 한계 밖에서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질과 의식의 분리대립을 절대화하지 않으면 세계의 시원, 인식의 원천문제를 해명할 수 없게 되며, 물질과 의식의 대립을 인식론의 한계 밖에까지 확대하게 되면 세계의 시원을 2중화하는 오류를 낳게 된다.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가 인식론의 한계에 있게 되면 물질세계에서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특수한 지위(존재론적 문제)와 역할(실천의 문제)을 포괄하지 못한다. 따라서 물질과 의식이라는 범주는 근본범주가 될 수 없으며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가 없게 된다. 또한 의식은 인간을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나 의식의 산물인 관념은 인쇄물, 예술의 수단, 사회적 제도를 통해 자기의 독자성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철학의 근본문제가 관념론적이라 하는 것은 사람과 의식을 관념으로 동일시 한데서 오는 몰이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사람은 인식론적 의식 뿐 아니라 목적의식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인간의 노동, 변혁운동도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에서처럼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의식의 관계로 보게 되면 의식의 수동성만 강조하게 되어 인간활동의 목적의식성과 주동성, 왜 계급투쟁을 하며 자연개조를 해야 되는지 그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이러한 제한성은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밝히고 있지만 사회적 운동의 주체문제를 이론화 할 수 있는 철학적 기초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무엇보다 맑스·레닌주의가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의식의 관계로 설정하고 사람도 하나의 물질적 존재에 불과하며 그 특수성에 대해 관심을 돌리지 안는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일반 물질세계는 장구한 진화발전과정에 사람이 출현한 이후는 그 본질적 면모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사람이 발생하기 이전의 세계란 곧 자연이었으나, 사람이 출현한 이후의 세계는 자연과 함께 사회를 자기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포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의 운동변화과정도 자연의 일반적인 변화발전과 함께 사회의 고유한 개조발전과정을 포괄하게 되었다. 사회적 운동은 자연운동과는 달리 운동의 주체가 있기 마련이며 이 운동의 동인과 추진력은 운동주체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직결되어 있다.

주체철학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문제로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사회운동의 주체문제에 철학적 해답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체철학의 근본원리와 관련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람과 세계로 설정하고 그 관계문제를 사람을 위주로 하여 세계를 고찰하는 철학적 방법론은 세계에서 사람의 지위와 역할관계가 가장 본질적이며 기초적인 것으로 된다. 주체철학에 대한 몰이해는 인간중심의 철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사람위주" 문제와 관련해서는 버클리주의와 실용주의, "사람의 지위"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아론", "사람의 역할"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의론" 등을 끌어들여 관념론적이라 왜곡하는데서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위주"와 버클리주의 및 실용주의

주체철학의 근본원리는 사람의 운명개척을 위한 모든 인식과 실천활동을 사람을 위주로 하는 관점과 입장의 철학적 방법론을 정립하였다. "사람위주"의 관점과 입장은 세계의 주인인 사람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대하며 사람의 활동을 위주로 하여 세계의 개조변혁을 대한다는 것을 말한다. 철학적 방법론으로써의 "사람위주"의 관점과 입장은 사람이 세계의 유일한 주인이고 개조자이며 세계에서 사람보다 더 귀중하고 힘있는 존재는 없다는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위주"의 철학적 방법론을 버클리주의와 실용주의에 결부시켜 주관주의적인 것이라 왜곡하고 있다.

"사람위주"와 버클리주의

버클리주의의 기본내용은 사상, 감각, 표상 등 의식은 사물, 객관에 비하여 보다 시원적이고 근원적이라는 것이다: "감각, 표상, 사상은 곧 객관적 사물의 묘사나 반영이 아니라 실재적인 사물이다. …… 존재는 곧 지각이다, 감각, 표상, 사상 없이는 객관적 사물은 존재할 수 없다."(인간의식의 제원리에 대한 논고)

조지 버클리(1684 1753)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의 승정이었으며 종교를 옹호하기 위하여 주관 관념론을 제창한 학자였다. 버클리의 주관 관념론은 신이 감각, 표상, 사상의 제1원인이며 결국 객관적 사물현상은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견해이다. 이런 버클리의 견해에 데이비드 흄(1711-1776)도 비슷했으며, 이들의 주관관념론을 오지리의 에른스트 마하(1838-1916)가 이어 받았다. 그도 객관세계는 사람의 감각과 의식의 산물이며, 자연 법칙성도 주관적 의식의 산물로 간주하였다.

버클리주의의 이러한 철학적 견해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근본문제에 비추어 봐도 관념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의 시원문제를 어떻게 고찰하는가에서 나타난 버클리주의의 주관관념론을 "사람위주"의 주체철학의 원리에 견강부회하는 것은 대단한 이론적 탈선이 아닐 수 없다. "사람위주"의 주체철학 원리는 세계의 시원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람의 지위와 역할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사람위주"의 주체철학원리에서 관념론을 제기할 수 있으려면 사람을 위주로 할 뿐 물질세계운동의 객관적 합법칙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보일 때이다.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여 전개한 항일혁명투쟁, 미제와의 전쟁, 사회주의 건설 등이 객관적 합법칙성을 인정하지 않고 주관적·관념적 의사대로 행동했다면 일찌기 패배만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위주"와 실용주의

"사람위주"의 철학원리를 실용주의와 결부시켜 주관관념론으로 매도하려는 사이비 지식인들도 있다. "사람위주"의 철학원리는 "철학을 요구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산물", 즉 "개인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에 주관관념론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도는 오히려 실용주의와 주체철학에 대한 천박한 지식을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매도의 예:
1) "주사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다른 철학적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주사가 실용주의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 철학을 하는 주체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철학과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따라 철학적 원리를 새롭게 정의하여 이를 이른바 방법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식을 취한다." (맑스·레닌주의와 주체 사상)

2). "……주사의 진리성은 극히 실용주의적이다. 진리를 사람들의 생활적 요구의 실현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야말로 미국의 제임스의 진리관을 연상시킬 만큼 실용주의적 진리관에 가깝다."(남한주체사상논쟁, 198쪽)

실용주의는 윌리엄 제임스(1842-1910)의 인본주의적 실용주의, 찰스 샌더스 피어즈(1839-1914)의 실제주의적 실용주의, 존 듀이(1858-1952)의 도구주의적 실용주의, 오만 콰인(1908-2000)의 자연적이며 논리적인 실용주의(신실용주의) 등 여러 유파들로 변조되어 전개되고 있지만 철학적 기조는 공통적으로 주관관념론에 해당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실용주의라는 개념은 "개념의 대상이 가질 실제적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지 그 효과를 생각하라. 그러면 이 효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그 대상의 개념의 전제다"라는 "피어스의 원리"(1878)를 프라그마티즘(실용주의)이라 한데서 나온 것이다(그리스어의 프라그마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프라그마티즘은 주로 미국의 대표적이며 지배적인 철학사조로 되어 있으며, 영국을 제외한 대륙유럽에서는 전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용주의의 주관관념론적 세계관과 인식론(진리관)은 윌리엄 제임스의 "인본주의"와 존 듀이의 "도구주의"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임스는 "세계, 실재, 객관, 사물 등의 개념은 모두 순수경험, 인격적 자아의 소산이며 경험적 조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근본경험론)며 사람이 생물학적인 본능적인 힘에 의해서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인본주의" 세계관을 세우고 있다.

존 듀이의 "도구주의"는 개념은 지식, 사상, 이론, 관념, 개념 등 사유형식은 예외 없이 인간이 환경에 순응해서 살아 나가기 위한 수단,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존 듀이의 "도구주의"가 주장하는 기본내용은 "인간의 생득적인 생물적인 본능이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기본요인"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실용주의가 주관관념론적이라는 것은 실용주의 철학자들이 한결 같이 진리의 기준을 개인의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효과성과 유익성에서 찾는데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진리란 ……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행동을 가져 오게 하는 것"(피어스), "진리란 단지 검증과정에 나타나는 집합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 진리는 인간의 행동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리는 욕망 충족에 만족을 주는 것이다."(제임즈), "진리는 본질상 매 개인의 진리이며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스킬러), "진리의 기준은 객관적 실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효과이다"(존 듀이) 등이다.

실용주의는 말하자면 행성인 목성이 12개의 달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며, 그런가 하면 잘못된 주장도 그것이 유익하다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된다. 그리고동일한 주장도 유용한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고, 유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니다. 이처럼 실용주의는 세계의 객관성과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하며, 진리의 기준을 "유용성"과 "효과성"에 둠으로써 힘있는 개인과 집단들의 -무법천지의 카우보이처럼- 이윤추구 활동을 이론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사상"이다. 실용주의는 오늘날 세계적 판도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을 휘두르는 미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데 봉사하는 "실용적인 이론"으로 되고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를 "사람위주"의 주체철학 원리에 견강부회하여 관념론 운운하는 것은 학문적 천박성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위주"의 철학원리는 "인식과 실천의 주체"와 그 대상과의 관계를 일반화한 것이지, 진리의 기준에 대한 원리가 아니다. "인식과 실천의 주체"와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사람위주"의 관점과 입장은 객관적인 것이지, "철학을 요구하는 사람의 주관"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지위" 문제와 "유아론"

사람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문제를 "유아론"과 결부시켜 주체철학의 근본원리를 주관관념론이라고 시비하는 경우도 있다.

주체주의는 …… 인간에 의하여 지배 또는 개조되는 대상, 인간에 의한 세계만을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주관주의, 유아론에 빠져들었다.(주체철학비판 1, 175쪽)

"유아론"(Solipsism)은 극단적인 주관관념론 유파이며, 서구 철학사에서 독일 철학자 막스 슈틸너(1806-1856), 동양에서는 양주(楊朱, 공자·묵자보다 이후이나 맹자·장자보다는 이전 사람)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유아론"의 핵심적 내용은 오직 "자아"가 세계구성의 중심이 되며, 그 변화의 원인이 된다. 달리 말하면 "자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계도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 "자아"를 세계의 유일한 중심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자아는 비어(空) 있다는 의미에서는 무(無)이지만, 창조하는 무, 자아 자신이 창조자로서 이 무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그런 무이다."(슈틸너, "유일자와 그의 재산", 맑스·엥겔스, 3권, "독일 이데올로기", 103쪽)

이러한 극단적인 주관관념론인 "유아"론과 주체철학의 원리인 "사람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주인의 지위" 문제와는 이론적인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다.
"유아론"은 관념론적인 "자아"에서 세계의 시원을 찾는 철두철미한 주관관념론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주관관념론을 본질적으로 다른 주체철학에 결부시키는 것은 탈선이 심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아론"은 "나"(자아)를 세계의 유일한 중심으로 세계변화의 제1의 원인으로 본다. 주체철학은 자주적이고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고 개조자라고 본 것이지 물질세계구성의 중심으로 본 것이 아니다. 또한 "유아론"에서 사람은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역사 밖에 서 있는 "절대적인 개인", "나"일 뿐이다. 주체철학에서의 사람은 독자적인 개인이 아니라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로 결합된 사회적 존재이다.


"사람의 역할" 문제와 "주의론"

사람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행하는 "역할"을 "주의론"과 결부시켜 주관관념론적이라 매도하는 것도 수준 이하의 철학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계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운동한다는 것이 주체철학의 "인간위주의 원리"다. 주체주의자에게는 자기 의식적 요구를 가진 인간의 의지가 자연과 그 법칙을 규정한다는 의지의 자유이다." (NL-주사비판 1, 330쪽)

"주의론"(Voluntarism)은 인간의식의 한 속성인 "의지"를 절대화하여 "의지"가 "인간의 진정한 실재성 즉 인간의 내적 본질"이며, "의지"가 "존재(세계)를 규정하는 원리"와 "인식의 기초"이며, "의지"가 "영혼의 근본기능", "윤리의 기본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의론"은 사람의 이성을 중심으로 철학을 전개한 합리주의와는 달리 사람의 "의지"를 중심으로 철학을 전개한 비합리주의와 주관관념론이다.

"주의론"은 중세기 초 기독교신학자들인 아우그스티누스(354-430)와 그 이후 둔스 스코투수(1265-1308)에서부터 논의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 근대 철학사에서는 "의지론"에 기반해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1788-1860)는 "의지로서의 세계"라는 새계관을, 빌헬름 분트(1832-1920)는 이성은 의지에 의존한다는 심리학을, 프리드릭히 빌헬름 니체(1844-1900)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명제로 윤리론을 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합리주의"에 대치한 "비합리주의"의 철학사조라는 데 있다.

"주의론"은 그 대표적인 이론가인 쇼펜하우어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서 보듯이 "사람의 의지"가 세계의 객관적 합법칙성을 무시하며 무엇이나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근거를 주고 있다.

"내가 그러나 말하려는 것은 모든 운동, 형성, 노력, 존재, 이 모든 현상은 의지의 객관성이라는 것, 그 근거는 의지가 모든 사물 자체, 다시 말하면 세계는 곧 우리의 표상이라고 인정한 다음에도 아직 세계에 남아 있는 것은 의지이다라는 것이다."(쇼펜하우어, "의지의 세계에 대한 첫 번째 고찰"의 서언)

이러한 "의지론" 해석을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철학의 기본원리에 적용하여, "사람이 세계를 주동적으로 개조하고 지배해 나간다는 것"을 세계의 객관적 합법칙성 자체를 사람이 자의적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왜곡하는 맹목적인 "반주사 사변론자"들이 있다. "반주사 사변론자"들이 스스로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겸허하게 주체철학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주체철학은 ……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며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지 결코 물질세계 자체가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주체철학이 밝힌 것은 사람이 세계의 개조자이며 사람에 의하여 세계가 개조된다는 것이지 세계의 모든 변화발전이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김정일, 주체사상의 기본에 대하여, 62쪽)


사람의 본질적 속성과 관련하여

주체철학을 주관관념론으로 매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는 "선험론"과 "실존주의"를 끌어 들여 주체철학의 핵심부분인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관념론적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질적 속성과 "선험론"

주체철학을 관념론이라고 매도하려는 주체철학 "비판가"들은 주체철학이 정립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서 "선험론"을 끌어 들여 "선천성" 내지 "생득적"인 범주로 왜곡하고 있다. 이미 논의 된 것처럼 주체철학은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 밝히고 있다.

"사람의 사회적 속성으로는 왜 자주성·창조성·의식성 뿐인가 …… 이 세 가지 속성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천성이 아닌가" (남한 NL론 비판, 274쪽)

"선험론"(Apriorism)은 원래 인식론의 방법론적 개념으로 "인식의 타당조건" 내지 "인식의 존재조건"을 "경험"에 "앞서서" 또는 "경험과 독립적"인 "범주"를 설정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이다. "선험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식론 전개의 불가분의 요인으로 되고 있다.

예를 들면 플라톤은 인식론의 성립과 타당근거로 경험 이전의 "이데아"를 상정하고 이 "이데아"를 "기억해 내는(아넴내스) 과정이 인식으로 되고 있다. 데칼트는 "존재", "팽창, "지속", "운동" 등을 생득적인 개념으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적 재료에 바탕한 "이해"를 성립시키는 선험적인 (초월적)인 개념으로, 포이어바흐는 "이성", "심성", "의지" 등을 선험적인 개념으로 하여 인식론을 전개하고 있다.

인식론을 정립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선험론"의 본질은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사물의 본질을 (사회역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물 자체에서가 아니라, 추상적인 또는 사변적인 개념에서 논증하는 방법으로 도출하는 것이다."(맑스·엥겔스, 제 20권, 89쪽 참고)

그러나 주체철학이 밝힌 인간의 본질적 속성은 "선험론"에서처럼 사회적 경험의 매개도 없이 사변적으로 추상한 것도 아니며, "생득적"인 것으로 가정한 것도 아니다. 주체철학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사회적 관계와 역사적 발전 관계에서 파악한 것이다.

"…… 사람의 유기체가 아무리 발전하였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존재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정일선집, 제14권, 197쪽)

사람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서 주체철학은 어떤 초월자가 부여하였다고 사변하거나 진화적 산물이라는 견해를 배격한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자연적 존재, 생물학적 존재와는 달리 주위세계에 대하여 주동적으로 능동적으로 작용하며 목적의식적으로 생존하고 활동한다. 다시 말하면 자주적이며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활동은 세계의 모든 사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의 특수한 존재방식이다. 때문에 주체철학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사회역사적 과정에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적 속성입니다." (김정일선집, 제14권, 197쪽)

물론 사람도 생물적 존재이며,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고도로 발전된 생물적인 유기체로서의 인간뇌수의 기능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 그 자체가 사람의 사회적 속성을 낳는 필요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사람이 고도로 발전된 유기체라 하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발생하지 아니 했을 뿐 아니라, 사람의 생물학적 존재가 고도로 발전된 유기체로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주체철학이 밝힌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의 형성과정은 그것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부여했거나 선천(험)적인 성격일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며, 또한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생물학적으로만 고찰하여 진화론적인 산물로 규정하는 것도 부당함을 밝혀주고 있다고 본다.

사람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주체적 이해를 관념론으로 치부하는 선상에서 주체철학의 "사상의식의 결정적 역할"에 대해도 관념론이라 주장하고 있다.

"의식, 사상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 주체의 사상론은 유물론에서 이탈한 관념론이 아닐 수 없다. …… 주체철학은 인간의 의식적 활동이 자연에 대한 반영임을 거부하고 관념적 요구에 기초한 의식적 활동을 밀수입함으로써 신헤겔주의의 늪에 빠져들었다." (주체철학 비판 1, 134쪽)

사람을 의식의 지휘 밑에 주위세계를 주동적으로 능동적으로 대하는 사회적 존재로 보는 것이 "추상적인 인간설"이라면 사람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한 맑스·레닌주의 창시자들의 견해까지도 "관념론적 인간설"이라고 말해야 할 본의 아닌 결론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주체철학의 다음과 같은 정식화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상의식은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하여 그들의 활동에서 가장 적극적인 작용을 합니다. 사상의식의 규제와 조절을 떠나서는 사람들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김정일, 주체사상의 기본에 대하여, 100쪽)


사람의 본질적 속성과 실존주의

주체철학이 밝힌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관념론이라 매도하기 위해 끌어들인 또 다른 관념론은 실존주의이다. 그 핵심적인 의도는 "사회적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실존적 자아"의 관념론적인 성격인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주체주의가 말하는 "자주성"은 "실존적 자아의지", 즉 "자유의지"이다. 인간은 그 어떤 자연의 힘, 자연적 법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는 요구를 가진다. 이와 같은 성질은 "실존적 자아"의 우연한 의지, 감정이다. ……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허무주의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 대한 무규정적 결정권을 가진 존재는 초월적 존재이고 이 초월적 존재는 자기 통일적 실천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현실적 비조건적인 실천주체의 강조, 여기에서 우리는 유물론의 실존주의적 수정설을 볼 수 있다. (주체철학비판 1, 330쪽)

실존주의는 빌헬름 딜타이(1813-1911), 게올그 짐멜(1858- 1918), 앙리 베르그송(1859-1941)등의 "생의 철학",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1743-1819), 쇼펜하우어(1788-1860), 쇠렌 키에르케골(1813-1855),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등의 비합리주의와 허무주의 등 주관관념주의를 사상적 원천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 신학과 해석학 또는 관념론적 변증법을 결합하여 유신론적인 실존주의, 무신론적인 실존주의, 변증법적 실존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실존주의철학이 대두하였다.

실존주의 철학조류를 쇠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 칼 야스퍼스(1883-1969),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등의 유신론적인 유파와 마르틴 하이덱거(1889-1976), 쟝 폴 사르트르(1905-1980) 등의 무신론적 유파로 대별할 수 있다.
또한 실존주의를 프랑스에서는 "실존주의", 독일어권에서는 "실존철학", 특별히 하이덱거의 실존철학은 "존재론적 실존철학"이라 부르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을 전후해서 풍미하던 실존주의는 맑스·레닌주의 철학, 비판철학, 신실증주의 등에 밀려 70년대에 들어 저조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세계의 철학계에서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흘러간 하나의 철학사조로 되고 말았다. 남한에서도 실존주의는 4·19이후 70년대까지 철학계에서 지배적인 철학사조였다.

실존주의의 철학조류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인간의 본질을 "실존" 또는 "실존적 자아"라는데 있다. "실존적 자아"는 다음가 같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객관적인 세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며 책임지는 "비사회적 비역사적인 성격"을 가졌다. 때문에 "사회적 자아로서 나는 나 자신이 아니다."(야스퍼스)라고 인간의 사회적 존재를 부정하며, "도대체 학문이 무조건적으로 있어야 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하이덱거)고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둘째, 사람의 의식 내지는 심리의 부분 현상, 일시적이며 특수한 현상을 인간의 본질이라고 "상정"(Entwurf)한 것이다. 그 내용은 "고독한 존재", 심리적 현상인 "죽음에 대한 공포", "죄의식", "걱정", "불안", "구토"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은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주의와 개인이기주의로 팽배해 지면서 나타난 자유방임주의, 허무주의, 염세주의, 회의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 실현을 억압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실존주의는 합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체철학이 규명한 "주체적 인간"은 "자주성 실현"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집단을 이루고 세계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자기의 창조적 능력으로 역사를 창조해 나간다. 역사를 창조해 가는 길에서 인간의 의식성은 오늘날 인간의 자주성 실현을 억제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합법칙성을 인식하고 이를 개변하기 위한 실천활동을 조절 해 나간다. 역사를 창조해 가는 역동적인 주체철학의 인간상은 "무규정적인 초월적인 존재", 사회역사 밖에 홀로 서 있는 "고독한 존재",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신의 구원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주체적 인간"을 자본주의사회가 안겨준 고통을 영원한 숙명으로 감수하는 "시지푸스" 같은 "실존적 자아"로 혼동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사고일 수 없다.

프랑스의 실존철학자며 작가인 알베르트 카뮈(1913-1960)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찌프스를 "실존적 자아상"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시지푸스는 신과 인간의 원상(原像)을 멸시했다는 죄값으로 강요된 "무거운 바위를 갓파른 산봉우리 위에 올리는 노동"을 영원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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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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