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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변혁론-⑤주체의 생명력 :김 수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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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05-31 00:00 조회5,3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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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거주하는 김 수일님이 <주체변혁론>에 대해 연구하여 쓴 논문을 민족통신에 보내왔다. 이 논문은 이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해외에서 진보운동을 전개하는 주체들에게 중요한 자료들이 될 것으로 보아 연속적으로 민족자료실에 올린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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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혁주체의 생명력

모든 사회정치단체 또는 정당들은 자기의 정치적 역량을 최대화하고자 한다. 정치적 역량이 크면 클수록 자기존재의 목적을 빨리 그리고 쉽게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정치단체와 정당들의 정치적 역량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생명력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와는 달리 민중이라는 무한정한 원천에 기초한 변혁주체의 정치적 생명력은 성장력과 수명을 계속 확대 강화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1 일반적 사회정치세력의 성격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생 발전하는 과정에 부르주아지는 자유주의세력으로 진보와 보수의 구별 없이 느슨하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특히 1800년대 중반에는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면서 산업노동자들이 급속도로 많아졌으며 이들은 노조나 정당조직으로 정치세력화 되어 갔다. 이렇게 되자 대부분의 사회신분층을 망라했다고 자부한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세력은 보수, 중도(자유), 진보로 분화되어 갔다. 자유주의세력의 대부분은 지방귀족과 기독교세력을 망라한 보수정당, 중상층 부르주아로 형성된 자유주의당, 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하고 일부 진보적 자유주의세력을 포함한 변혁정당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정치세력의 주류는 보수와 변혁으로 양분화 되었다. 19세기 유럽사회에서의 이러한 정치세력의 형성사는 20세기 이후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한 보수정당은 사회전체로 보면 소수에 해당하는 유산자의 정치집단이다. 정당은 반변혁적인 유산자의 정치세력이다. 부르주아 정당은 부르주아 소수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파벌주의와 분파주의를 체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기적인 생명력 있는 정치세력을 구축할 수 없다. 부르주아 보수정당은 항시적으로 부닥치는 부분과 전체, 특수와 일반, 당내부적 견고화와 외부세력과의 연합 등의 사회정치적 갈등관계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것은 부르주아 보수정당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 강자위주의 개인주의, 보스를 상위로 하는 위계질서를 특색으로 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부르주아 정치인들도 "정치적 생명"이라는 술어를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치계에서 활동하느냐 아니면 정치계를 떠날 수뿐이 없지 안느냐하는 정치의리적 의미일 뿐 어떤 정치적 생명체의 일원이라는 것과는 상관없는 표현에 불과하다.

보수정당의 통일단결은 그 범위가 당수나 단체장이라는 개인적인 보스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일정한 이익집단에 한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통일단결은 사업체계와 조직규율에 의한 의무적인 결합방식을 취하고 있어 통일단결의 질을 공고하게 하는데 제한성이 있다. 이러한 결합방식으로는 성원들간에 자발적으로 생명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유기적인 통일단결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보수정당과는 달리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변혁정당은 생명력 있는 정치세력화에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변혁정당은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발휘하는 변혁주체로까지 발전할 수 없는 제한성을 안고 있다. 맑스·레닌주의도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모든 근로자들의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변혁주체를 강화하여야 한다는 것을 착안하였다. 변혁주체를 당을 중심으로 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노동계급)과 과학적인 사회주의사상(수령)을 구성부분으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스스로 "공산주의자 동맹"(1848)과 "사회민주 노동자당"(1869)을 창립했으며 이 조직의 위임을 받아 공산주의의 기초강령과 목적을 내용으로 한 "공산당 선언"을 창안하였다. 레닌은 새로운 시대조건에 맞게 맑스주의의 사회주의변혁이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켰으며 볼셰비키공산당(1903)을 창건하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영도하였다.

맑스와 레닌에 의해 창건된 노동자계급 당은 맑스·레닌주의를 "두뇌"로 하고 노동계급을 "심장"으로 한 노동계급의 선봉부대이며 조직된 부대로서 최고형태의 계급적 조직으로 된다. 이러한 맑스·레닌주의식의 당 건설은 변혁주체를 구축하면서도 변혁주체의 중심 문제는 논의하고 있지 않다. 당의 중심이 될 "수령"의 지위는 당의 최고대표자 또는 다소간 고정된 상임 지도그룹 정도일 뿐이다.

레닌은 수령이라는 개념을 "정치적 수령", "사회주의적 수령", "프롤레타리아 수령" 등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가장 권위 있고 유력하고 경험 있고 책임 있는 지위에 선발된 수령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로 되는 다소간 고정된 그룹에 의하여 지도된다" (레닌 전집, 제31권, 29쪽)고 했다.

맑스·레닌주의의 변혁주체는 사회적으로 정치세력화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노동계급을 "심장"으로 하고 있어 다른 어느 보수정당보다 정치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변혁주체가 유기적 생명체로 될 수 있는 생명력의 원천문제를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변혁주체 구성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그 상관관계가 옳게 설정되어 있지 못하다.

첫째, 생명력의 원천이 잘못되어 있다.

변혁주체의 생명력은 변혁주체 자체에 원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는 변혁주체 생명력의 원천을 생명력 발전의 외부적 조건의 변화 욕구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동계급을 비롯한 모든 근로자를 물질적 착취와 제도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즉 계급의 폐지를 실현하고자 한 욕구에 두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유산계급들의 연합된 정권과의 자기의 투쟁에 있어서 유산계급들이 조직한 낡은 모든 정당과 대립되는 특별한 정당에 조직됨으로써만 계급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이와 같이 정당으로 조직되는 것은 사회혁명승리와 그 궁극적 목적, 즉 계급의 폐지를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맑스·엥겔스 선집, I, 416-417쪽)

변혁주체, 즉 변혁이라는 정치활동과 정치활동의 주체는 사람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때문에 변혁주체 생명력의 원천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에서 찾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개별적인 사람 뿐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단체, 정당, 국가도 자주성 없는 정치적 생명력에 대해서 표상할 수 없는 일이다. 생산력 발전이나 계급 없는 사회의 구축은 결국에는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인 자주성 실현, 다시 말하면 변혁주체의 생명력 발현을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둘째, 변혁주체의 구성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맑스·레닌주의는 변혁주체의 성원인 지도자와 노동계급의 선진그룹이 맑스·레닌주의가 밝힌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수단과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 무장되고 조직규율을 잘 지키도록 되면 중앙 집권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하나의 유기체로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변혁주체론이 역사적으로 가장 눈에 띠게 현실화된 예는 레닌 사후 소련공산당의 수령 스탈린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스탈린은 세계2차대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소련 내의 모든 공화국들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맹에 망라시켜 소비에트사회 전체의 조직사상적 통일단결을 성취해 낸 것이다. 이 통일단결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이상사회건설이라는 특출한 사상의지를 가진 스탈린이라는 수령의 구심이 있었으며 강력한 중앙집권적 규율과 조직적 통제와 같은 조치들로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변혁주체의 통일단결은 통일단결의 구심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통일단결의 방법을 조직적 규율과 통제에 의존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변혁주체가 유기적인 통일단결체로는 될 수 없는 제한성이 있다. 변혁주체가 유기체로 될 수 있는 필수 요건인 생명력의 원천문제를 옳게 해명하지 못함으로 해서 생명력의 성격에 맞는 방도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정치적 조직체인 변혁주체는 그 성원들이 사상과 이념의 공통성 뿐 아니라 생사를 초월한 동지애, 자발적인 상호존경과 상호 협조하는 도덕의리를 매개로 결합될 때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승화할 수 있게 된다.
변혁주체가 유기적인 생명체로 되기 위해서는 그 구심으로서뿐만 아니라 변혁주체 성원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동지애와 도덕의리의 모범을 창조하고 실천하는 수령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 경험이 확인해 주고 있다. 1953년 스탈린 사후에는 소련을 비롯하여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에는 변혁주체의 구심이 될 만한 수령마저 대두하지 않자, 이러저러한 수정주의가 횡행하게 되고 변혁주체의 통일단결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변혁주체의 통일단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도 이외는 없었으며 결국 당은 관료주의에 매몰되고 민중은 당을 등지고 말았다. 그 후과, 지난 세기 90년대에 소련을 비롯한 유럽의 맑스·레닌주의적 당들이 권력상실, 분열, 해산, 개명 또는 축소되는 등 재생하기 힘들 만큼 생명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2.2 변혁주체 생명력의 특징

재래 부르주아 정당은 정치역량의 강화를 "재력"과 "화술"에 기초한 카리스마적 권위 또는 국가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혁명적 정당들의 정치역량 강화는 이미 전장에서 살핀 것처럼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변혁이론과 조직력에 의한 당과 노동계급의 통일단결에서 찾았다. 이러한 정치역량 강화방도는 정치역량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수단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변혁주체의 정치역량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변혁주체 자체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변혁주체가 발휘하는 정치역량은 유기체적 생명력, 무한 발전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유기체적 생명력

변혁주체의 정치역량은 유기적으로 통일단결된 "사회정치적 생명체"로서 발휘하는 위력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란 변혁주체의 삼대 구성부분인 수령, 당, 민중이 유기체적 성격으로 결합한 정치적 집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라 할 때 부르주아 역사철학이나 사회학에서 생물학을 도용하여 자연계에서와 같이 사회에서도 "적자생존", 강자(자본가)와 약자(노동자)의 차별은 자연적이며 당연하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회다윈주의"적 생물학주의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사회정치적 집단도 어떻게 하면 유기체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현실감 있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수령의 사상의지"를 생명으로 하고 동지애와 도덕의리를 "혈액"으로 하여 유기적으로 결합한 정치집단이다. "수령의 사상의지"란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을 시대와 사회적 여건에 맞게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향과 방도를 창출하고 이를 실천해 가는 의지라 할 수 있다. 동지애란 변혁주체의 생명인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변혁주체 성원들간에 발현되는 사랑이며, 도덕의리란 변혁주체 성원들간에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켜주고 계속 빛내어 가도록 서로 협조하는 것이다.

동지애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그 어떤 보수나 대가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처럼 어떤 대가를 계산하지 안는 진실하고 사심이 없는 것이다. 도덕의리는 어디까지나 개별적 사람들의 생명력과 생명력을 결합시켜 집단의 생명력을 더 위력하게 하려는 변혁주체의 본성적 요구의 반영이다.

수령의 사상의지는 변혁주체성원들의 정치적 생명으로 되여 통일단결의 강도를 보장하며, 동지애와 도덕의리는 변혁주체성원들이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각자가 자발적으로 창조력을 키우고 발양하게 하는 자양분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변혁주체 성원들은 조직규율에 따라 자기의 의무와 역할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강한 조직성을 갖게 된다. 변혁주체가 강한 조직성을 갖게되면 무규율과 무질서가 나타날 수 없으며 외부의 끊임없는 압력, 회유, 기만 등에 노출되어 분열과 와해되는 위기를 방지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체질을 갖추게 된다.

동지애와 도덕의리문제가 변혁주체 강화의 중요한 요인임에도 맑스·레닌주의는 당 건설이론에서 사상의지와 조직적 통일단결을 강조할 뿐이었다.

무한 발전성

변혁주체의 생명력은 자주성을 원천으로 하며, 자주성은 인간의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지향이다. 따라서 변혁주체는 광범한 민중을 하나의 생명체로 결합할 수 있으며 자주성 실현이라는 목적 의식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사회정치적 생명력을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무한히 발전시킬 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개별적인 사람들이 정치적 생명을 갖지 못하게 되면 육체적인 생명의 종말과 더불어 그들의 인생도 끝이 난다. 또한 사회의 일부 계층 계급의 물질적, 이념적, 정치권력의 이해관계로 결합된 사회정치적 집단들도 그 수명은 본질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들집단들은 사회일부분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만큼 사회정치적 영향력의 성장에서 제약을 면치 못하며, 사회집단들간의 갈등과 알력은 이들의 존립을 항상 위태롭게 하게 된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생명력은 생물학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람들이 자기의 본질적인 속성인 자주성을 자각하고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일원으로 되면 육체적 생명력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의 정치적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력 강화에 기여한 만큼 사회정치적 생명체와 더불어 자기자신도 더욱 성장한다. 그리고 변혁주체의 생명력은 그 성원들이 기여한 만큼 계속 장성해 간다. 사람의 정치적 생명은 자연이 부여하거나 부모에 의하여 주어진 생명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모체로부터 부여받는 생명이며 그 모체와 더불어 "영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영생은 인간이 영생하고자 한 희원의 반영인 종교적인 "영생"이 현실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정당들과 사회정치 집단들이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영구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영생"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 근본 원인은 인류의 오랜 사회정치활동의 진행 방향이 결국 민중의 자주성을 더 높은 수준으로 실현해 가고 있다는 역사인식을 옳게 갖지 못한 데 있다. 오늘날 사회정치적 집단의 진보성과 우월성은 그 집단의 활동이 민중의 자주적 요구에 얼마큼 부합하는가,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차츰 일반적인 척도로 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정립된 변혁주체론은 사회정치적 집단이론의 발전역사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2.3 변혁주체 생명력의 위력

"공산주의자 동맹"이 결성되고 "공산당 선언"(1848)을 지침으로 하여 변혁운동을 전개하여 온 이후 오늘까지 가장 위력한 생명력을 발휘한 변혁주체는 주체철학에 기초한 "주체의 변혁주체"라는 것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주체의 변혁주체"는 형성 초기부터 변혁운동에서 위력을 발휘했으며 오늘날 세계의 초대강국이며 제국주의 열강의 두목인 미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유일한 적수로 되고 있다. 주체변혁론이 얼마나 과학적이며 그 생명력의 위력이 어떠한가는 주체변혁운동사의 역사적 경험에서 실감할 수 있다. 그 동안 150여 년의 세계변혁운동사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변혁주체들이 있었지만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명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주체의 변혁주체"가 발휘하는 위력은 세계의 도처에서 새로운 변혁주체가 탄생하도록 촉진할 것이다.

일제 100만 대군에 타격

1930년대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점령을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의 변혁주체를 새롭게 꾸렸다. 이 변혁주체는 주체사상을 생명으로 하는 "주체형"의 새로운 변혁주체였으며 활동의 초기부터 생명력의 위력을 발휘하였다. 우리 나라가 일제식민지로 전락된 후 반식민지운동을 전개한 운동세력은 크게 민족주의진영과 맑스·레닌주의 세력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위대한 영도자를 모시지 못하여튼튼한 운동주체를 꾸리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주목할만한 정치역량으로 되지 못하였다.
20대의 청년장군 김일성 수령에 의하여 새로운 변혁사상인 주체사상이 창시되었으며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지도핵심으로 육성되었다. 이들 지도핵심은 주체사상을 생명으로 하는 기층 당조직들을 북부조선일대와 두만강 연안 여러 지역에 결성하여 조선인 대중들을 조직해 갔다.

주체사상의 기본내용은 1930년 6월 카륜회의에서 발표된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제시되었다.
기층 당조직의 결성에 관해서는 일본 잡지 "동양", 동양협회, 1934년 7월 호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렇게 수령의 변혁사상을 생명으로 하고 반일무장세력과 기층당조직을 중추로하여 결합된 대중조직으로 구성된 변혁주체는 아직 청소하였지만 막강한 생명력을 발휘하였다. 그 생명력의 위력은 그 당시 우선적으로 일제의 군사력을 타승해야 하는 상황에 적합하게 변혁주체의 핵심역량으로 육성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력과 결속력에 의해 과시되었다.
조선에 이어 만주지방을 점령한 일제는 대규모의 강력한 "관동군"으로 청소한 조선 인민혁명군과 유격구에 대하여 "초토화작전"(1933년)과 "위공작전"을 감행하였지만 오히려 심대한 타격을 받고 수세에 몰렸다. 일제는 1934년 9월에서 1936년 3월에 걸쳐 "장기특별치안공작" 계획에 따라 "보보점령의 보루전술"에 기초한 유격구에 대한 "위공작전"을 강화하였으나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군부대의 종심 깊이 들어가 거점을 반복 타격하는 영활한 전법으로 좌절시키고 만 것이다.
또 하나의 특출한 사례는 1939년 9월 관동군사령관이 자기의 직속에 "토벌사령부"를 설치하여 대규모 토벌작전을 감행할 때 였다. 이들이 백두산동북부에서 벌린 20만 대군의 포위작전을 김일성장군의 조선인민군 주력부대는 "대부대선회작전"으로 분쇄하여 정치·군사적 타격을 가한 것이었다. 이러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적 성과는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에 대한 희망을 키워주어 변혁주체를 더욱 장성·강화해 가는 계기로 되었다. 그 때 변혁주체의 결속력이 어떠하였는가는 "만주일일신문"의 서술(1939. 12.27)에서 짐작할 수 있다: "단결심이 매우 강하고 전투도 참으로 교묘하며 그 주민에 …… 선전에 이르러서는 우리들조차 경탄할 정도이다."
변혁주체의 강한 결속력은 변혁운동과정에서 부딪친 난관의 극복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1938년 겨울에서 1939년초에 이르는 100일간의 "고난의 행군"은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변혁주체의 생명력에 대한 가장 엄혹한 시련이었다. 일제는 관동군주력사단병력의 대부분, 봉천과 안동경비사령부관하의 위만군부대들, 비행대의 지원, 지방의 무장경찰까지 총동원하여 조선인민군사령부를 주된 목표로 하여 "대소탕전"을 벌인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병력과 무장력에서 비교도 안될만큼 열세였지만 "부대의 신속기민한 집중과 분산, 대부대에 의한 집중공격과 소부대에 의한 불의의 기습전, 령활한 기동전과 유인전술, 매복전술과 망원전술(적들끼리 싸우게 하고 구경하는), 선회전술 등 탁월한 전략전술과 전법"으로 일제의 대소탕전을 수포로 만들고 일제 관동군을 쇠퇴의 기로 몰아 넣고 말았다.
영하 40도의 맹추위, 장백산줄기와 용강산줄기의 험한 산발, 사나운 눈보라, 혹심한 식량난을 이겨내고 매일과 같이 추적하는 적들의 대소탕전을 승리적으로 파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영활한 유격전술과 탁월한 영군술의 과시였다. 더욱 주목을 끄는 중요한 요인은 변혁주체의 성원들간에 "한홉의 미시가루"에 깃든 숭고한 혁명적 동지애, 동지의 생명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할 줄 아는 동지적 의리로 변혁주체의 유기적 결합관계가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 반증이다.

미제침략의 격파와 사회주의 건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발족한 주체적 변혁주체는 조국을 광복한 다음에는 조국에 진출하여 조국의 현실에 맞는 변혁주체로 강화하여야 했다. 1945년 광복된 조국의 현실은 38선 이남은 미제국주의가 강점하였으며, 북조선은 미제의 분열 책동과 더불어 수많는 좌파세력을 비롯하여 지방활거주의자들이 정치주도권을 잡으려 좌충우돌하는 험난지경이었다. 이렇게 조성된 조선의 사회정치상황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변혁주체의 확대·강화였다.
위대한 김일성 수령은 항일혁명투쟁에서 이룩한 당창건의 조직적 기반과 혁명전통(주체사상, 혁명적 사업방법과 사업작풍)에 기초하여 북조선공산당을 창건(1945. 10.10.)하였으며 이를 근로인민의 대중적 당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조선 신민당과 합당하여 북조선 노동당(1946. 8.28.)으로 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변혁주체 확립을 위한 "중추"의 확보였으며, 다른 한편 조선에서 변혁주체의 강화를 파탄시키기 위한 미제의 온갖 분열책동에 대한 커다란 타격이였다. 새로 창건된 노동당은 변혁주체의 중추가 되어 계급, 계층별 대중단체(노동자와 사무원들은 직업동맹, 농민동맹, 여성동맹, 민주청년동맹)를 새로 조직하였으며, 민주주의정당(민주당, 청우당)과 10여개의 사회단체들과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망라하여 600여만 민중을 변혁주체에 결속시켰다. 결과 반혁명세력의 지반은 무너진 반면에 변혁주체역량은 전국적 범위에서 확대강화되었다. 이렇게 강화된 변혁주체는 어떤 침략세력과 반동세력과도 맞설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새로운 사회를 빠른 속도로 건설할 수 있는 추진력으로 되었다.

미제는 북조선의 변혁주체를 수년간의 정치적 책략으로 와해하기 힘들게 되자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압살하고자 전쟁판을 크게 벌렸다. 인구 1000만의 소국이며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지 5년이 채 안된 북조선에 대한 미제의 국력과 군사력을 비교한다면, 다윗과 골리앗 관계 같았다. 더구나 15개의 추종국가들이 미제의 전쟁정책에 가담했으며 미제는 그 당시 유일한 원자탄 소유국가였다. 상대방의 역량관계를 상식적으로 계산할 때 전쟁승리는 일찍이 미제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든 상상을 초월했다. 미제는 3년간의 전쟁에서 제2차세계대전시기 태평양전쟁 4년동안의 2.3배 가량의 큰 손실을 입은 채 승리하지 못하고 말았다.

"인민군대는 미군 40만 5.400여명을 포함한 156만 7.100여명을 살상포로하고 12.200여대의 비행기와 560여척의 함선과 3,250여대의 땅크 및 장갑차를 ... 소멸하였다."(조선통사 하, 평양, 1987, 491쪽)

강대국 미제는 100여 년의 침략사에서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휴전협정에 조인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한다면, 한국전쟁은 커다란 군사적 재난이며 부적당한 장소에서, 부적당한 때에 부적당한 적과 싸우는 부적당한 전쟁"(한국전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조지프 굴든·김쾌상 옮김, 일월서각, 1982)이었다고 합동참모본부의장인 오마 브래들리 장군은 "한국전쟁"에 대해서 논평하고 있다. 이 논평은 데이비드가 골리앗을 이긴 "20세기의 신화"를 시인한 셈이다.
일제식민지의 잔혹한 수탈에서 벗어 난지 5년밖에 되지 안는 조그마한 나라인 북조선이 이런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혁주체의 생명력이 얼마나 위력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위대한 수령을 중심에 모시고 당은 수령의 현명한 전략전술적 방침에 따라 전선과 후방에서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조직정치사업을 잘하여 인민대중이 똘똘 뭉쳐 영웅적 위훈을 떨치고 애국적 헌신성을 다 바쳐나가도록 한 것이다. 수령과 당, 민중이 똘똘 뭉친 변혁주체는 정치사상적, 전략전술적 우세로써 적의 수적, 군사기술적 우세를 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역사적 모범을 창조한 것이었다.

크라크 유엔군 총사령관은 전전협정에 서명하면서 "나는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 토로했다.(한국전쟁 비사, 459-460쪽)

북조선은 미제와 휴전협정을 맺은 다음에는 "북진소동"을 막아내고 미제와 엄혹한 냉전을 진행하면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해 갔다. 초토화 작전에 의해서 전국을 잿더미로 만든 미제는 북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일어설 수 없게 되었다고 호언장담했다. 미제의 이러한 잘못된 판단은 북조선의 변혁주체가 3년간의 치열한 전쟁 속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단련된 수십만의 혁명적 골간과 더욱 정치 사상적으로 각성되고 혁명적으로 단련된 인민대중들로 더욱 억세어진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전쟁을 통하여 오히려 강화된 북조선의 변혁주체는 3년만에 전후복구를 실현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대 고조가 일어나게 하고, 곧바로 5개년 계획(1957-1961)을 완수하여 사회주의공업농업국를 건설하는 "대동강의 기적"을 창조한 것이다. "대동강의 기적"은 내외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수많은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였다. 내부적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사회경제토대의 완전한 파괴와 폐허 속에서 종파주의와 교조주의, 사대주의세력들이 사회주의제도와 경제건설노선에 대해서 제동을 걸었으며, 외부적으로는 미제의 침략과 봉쇄정책이 괴롭히고 사회주의진영에서는 수정주의가 횡행할 때였다. 그러나 변혁주체가 튼튼히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온갖 장애와 애로를 극복하고 독창적인 사회주의 경제건설이론에 따라 빠른 기간에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독창적인 사회주의 경제건설 이론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경공업과 농업도 발전시키는 것이었으며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촉진할 수 있게 하였다.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소련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 그에 기초하여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중국에서는 그와 반대로 농업을 발전시킨 다음에 성장된 경제력으로 공업을 발전시킨 대로 나아갔다. 이것은 순차적인 방법이었으며 북조선에서처럼 동시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세기적인 고난의 극복/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기수

북조선의 변혁주체는 지난 세기 90년대에 들어서 "세기적인 고난"에 부닥치게 되었다. 1930년대 말의 "고난의 행군"보다 훨씬 엄혹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감당하여야 했다.
시기를 마지한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추진함으로써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다그치기 위한 정치 사상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토대를 확고하게 마련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 예상치 않게 내외적으로 심각한 시련에 부닥치게 되어 새로운 "고난의 행군"을 감당하여야 했다.
사회주의 인접국가인 중국은 이미 80년대부터 사회주의를 방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한대로 나아갔으며, 90년대 초에는 소련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은 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해 버린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국제상황은 북조선을 제국주의 열강들의 포위 속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게 하였다. 반세기에 걸쳐 북조선에 대해서 정치, 경제, 군사적인 압박을 가해 온 미제에겐 어느 때 보다 "흡수통일"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김일성 수령이 갑자기 서거(1994년)하는 변이 일어났으며, 수령후계자의 영도문제가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진영과의 경제관계가 무너지고 미제의 경제봉쇄는 더욱 악랄해지고 여기에 3년에 걸친 자연재해까지 겹쳐 동력란, 원료란, 식량난 등은 경제건설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한 국가가 이러한 포괄적인 역경에 처하게 되면 백 번이면 백 번 다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으며, 세계의 진보 진영은 물론 온 세계가 북조선의 운명을 주목했다. 회의적으로 보는 것은 당연했다.

한 국가가 이러한 "세기적인 난관"을 극복하느냐, 그 앞에 좌절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사회주의를 건설해 가는 변혁주체의 위력에 대한 시험으로 수렴되었다.

북조선에서는 모든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운동의 주체를 우선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혁명의 전통으로 되었기 때문에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변혁주체의 단결과 강화문제가 초미의 중대과제로 되었다. 변혁주체를 획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토대는 전대 김일성 수령의 혁명사상과 그에 의해 창조된 혁명전통에 충실한 김정일 영도자에 의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70년대 수령의 후계자로 추대되신 김정일 비서는 80년대에 전당을 유일사상체계화하고 온사회를 주체사상화 방안을 내놓고 변혁주체의 생명력을 확고하게 강화시키신 것이다.

이 방안의 사상적 기초와 방도는 "주체사상에 대하여"(1982. 3. 31)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인민정권의 과업" (1982.4.14최고인민회의 합동회의에서 시정연설)에서 제시되었다.

우리의 일심단결의 위력은 원자탄보다 더 강합니다. 당과 수령의 두리에 일심단결되어 있는 인민 앞에서는 그 어떤 대적도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과 민족의 마음속에, 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할 것이다, 4쪽)

변혁주체의 이러한 생명력 강화는 언제나 변혁주체의 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으로 되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 시대적 정황과 요구를 정확히 통찰하신 김정일 비서께서는 "선군사상"을 내놓은 것이다. "선군사상"은 새로운 독창적인 정치운영방식이며 그 핵심 내용은 군대의 높은 정치사상과 강력한 조직성과 단결력의 우월성을 앞세워 변혁주체의 위력을 높이는 것이며, 이 위력으로 국방건설을 우선하면서 인민경제를 따라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군사상"의 위력은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조선반도에 대한 미제의 군사적 모험을 파탄시킨 것이다.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세기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원자탄을 비롯한 최신예 무기를 동원하는 군사적인 압박정책을 시도해 나섰다. 이것은 모든 정보자료를 분석하고 타산한 다음 제네바 "조미기본협정"을 맺은 전임자를 무시하는 것이었으며 상대방을 무조건 얕보는 천박한 태도였다. 북조선이 "광명성 1호(인공위성)"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대륙간 탄도탄 보유를 암시하는 한편, "지구상 어느 곳도 미군이 안전한 곳은 없다"는 조선인민군의 선언만으로도 부시 행정부는 궁지에 몰리고 만 것이다.
둘째, 미제의 정치, 경제, 군사적 고립압살정책을 파탄시키고 오히려 "강성대국건설"로 진격하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청년돌격대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어려운 조건에서 오히려 정신사상적으로 더욱 단련되어 갔다. "오늘을 위한 내일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똘똘 뭉친 이들의 위력은 마사진 경제토대를 더 현대적으로 세우며 강성대국건설의 기초를 꾸려간 것이다. 이들의 모범으로 모든 경제분야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사상, 정치, 군대 부분에서는 이미 강국으로 된 조건에서 이제 경제분야만 추켜세우면 강성대국건설은 멀지 않다는 자신감이 넘치게 된 것이다.
셋째, 고난의 행군을 통해 오히려 더 위력해진 변혁주체는 "6·15 남북공동선언"(2000. 6. 15)을 주도적으로 결실했다. 이 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을 성취하는 길에서 가장 정확한 문에 들어서게 한 것이다. 남북이 합세한 자주역량은 멀지 않아 조국통일을 성취하고 강성대국건설에서도 세계를 놀랍게 할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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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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