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5-31 00:00
주체변혁론-③특징(2) :김 수일 지음
 글쓴이 : minj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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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거주하는 김 수일님이 <주체변혁론>에 대해 연구하여 쓴 논문을 민족통신에 보내왔다. 이 논문은 이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해외에서 진보운동을 전개하는 주체들에게 중요한 자료들이 될 것으로 보아 연속적으로 민족자료실에 올린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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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변혁론-②특징의 논문이 길어져 잇는 부분을 별도로 올립니다-편집자 주

"이상형"은 여러 사물 현상중에서 기본적인 요인으로 생각되는 것을 뽑아서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범주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베버 자신이 술회한 것처럼 역사적 사실의 반영은 아니며 어떤 인식주체가 방법론적인 보조수단으로 구성한 사유의 관념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베버의 중요한 "이상형"의 예로는 "자본주의", "관료주의", "지배형식"(합리적인, 전통적인, 카리스마적인 형태의 지배형식) 등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절충 이론인 실증주의는 경험적으로 실증가능한 사회적 현상에만 집착하여 사물의 본질, 사물들간의 필연적인 연관성, 사물의 변화발전의 합법칙성, 인식의 주체, 사회역사의 주체문제는 관념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만 것이다. 결국 학문의 "무당파성", "객관성"을 강조한 스스로가 관념론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실증주의의 비과학적인 견해는 60년대에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비판적 합리주의"사이에 뜨거웠던 "실증주의 논쟁"에서 "사실주물주의", "주관주의", "반 이론주의"로 명백하게 비판되었다. (Adorno, Th. u.a.: Der Positivismus in der deutschen Soziologie, Neuwied 1984 참고)

유물론적인 사회역사관은 물질적인 것 또는 물질 경제적인 여건을 철학적 고찰의 중심에 두는 경우이다. 이 사회역사관의 가장 완성된 이론을 맑스·레닌주의라 할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역사관은 유물변증법을 사회역사에 적용하여 사회의 본질(성격과 구조)과 사회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히고 있다.
맑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은 물질적인 요인인 생산력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의 본질을 생산관계의 총체, 다시 말하면 생산력에 상응한 생산관계와 생산관계에 상응한 사람들의 상호관계로 파악한다.

"그 형태는 어떠하든간에 사회란 대체로 무엇인가?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또는 저런 사회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가? 결코 없습니다. 사람들의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를 보시오.
그러면 교환 및 소비의 일정한 형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생산, 교환 및 소비의 일정한 발전단계를 보시요. 그러면 일정한 사회제도, 가정, 신분 또는 계급의 일정한 조직, 한마디로 말하면 일정한 시민사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시민사회의 공적 표현에 불과한 일정한 정치제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맑스·엥겔스 선집 Ⅱ, 515-516쪽)

또한 맑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은 변증법적 법칙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와의 상호관계에 적용하여 사회역사의 발전법칙을 밝히고 있다.

"인간은 그들의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상응한 생산관계에 들어선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그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면 생산력이 그 내부에서 지금까지 발전하여 온 현존생산관계 또는 그것의 법률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소유관계와 모순되게 된다. 이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형식으로부터 그 질곡으로 전화한다.
어떠한 사회구성태도 그것이 생산력발전에 충분한 여지를 주어 그 생산력이 다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며 또 새로운 보다 높은 생산관계는 그것의 물질적 조건이 낡은 사회자체의 태내에서 성숙하기 전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맑스·엥겔스전집, 13권, 32-33쪽)

이러한 사회역사의 발전법칙은 생산력의 발전을 기초로 하여 생산력이 발전하는데 따라 생산관계가 개변되며 이 물질 경제적 토대의 발전에 상응하게 상부구조 즉 법률적,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예술적 사상과 제도가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자연사적인 합법칙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맑스·레닌주의 사회역사관은 사회의 본질과 그 발전의 합법칙성을 유물론적이며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선진적인 사회제도의 수립은 필연적이며 자연사적인 것으로 귀착되고 만다. 이러한 사회역사관은 관념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회역사관의 비과학성을 타파하는데 기여할 수 있지만 역사의 주체에 의한 사회역사발전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착안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역사발전에서도 그렇지만 역사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변혁운동에서 역사의 주체역할이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며, 현실적으로도 세계변혁운동은 변혁주체의 강화를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이 현실적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적 의식은 물질 경제적 조건에 반영하여 발생하지만 한번 형성된 사회적 의식은 물질 경제적 조건에 반작용한다거나, 상부구조가 토대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상부구조가 토대에 능동적으로 반작용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맑스·엥겔스 전집, 제2권, 567쪽, 576-577쪽). 그러나 이 반작용의 가능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사회역사관은 사회적 운동의 동인과 추동력을 역사의 주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물질 경제적 조건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과 그것을 반영한 계급적 모순에서 찾다 보니 이론적으로 헤매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사회도 물질적인 세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사적인 일반물질의 합법칙성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는 자연세계와는 달리 사람이라는 특수한 존재의 집단이기 때문에 이 집단이 자연과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사회발전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고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과 물질과의 관계, 사회적 의식과 사회적 존재와의 관계라는 관계설정, 이 관계설정의 결과로 물질 또는 사회적 존재의 일차성과 규정성이라는 도식을 타파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주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할 때 주체가 물질세계변화발전의 객관적인 법칙성을 만들어 낸다거나 무시한다는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

주체의 사회역사관은 민중을 중심으로 하여 그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을 통하여 사회역사관을 정립함으로써 재래사회역사관의 제한성을 잘 드러나게 하며 사회의 본질과 사회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역사 발전에서 민중의 사상의식의 결정적인 역할도 밝힘으로써 완성된 사회변혁론을 수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사회역사관의 근본사명이 무엇이며, 사회의 구성부분과 구성부분간의 상관관계, 사회발전의 방향과 목적, 사회발전의 단계와 추동력 등을 일관성 있게 정립한 과학적이며 종합적인 체계를 갖춘 새로운 완성된 사회역사관으로 되었다.


3.2 주체 사회관

사회관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는 무엇인가, 사회는 무엇을 위해서 구성되었는가, 사회의 성격은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일관성 있게 해명할 수 있어야 과학적인 것으로 된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회관은 사회의 구성요소를 사람을 기본구성요소로 하고 사람들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 그리고 재부를 창조하며 유용하는 과정에서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

"사회는 사람들과 그들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그것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는 다 사람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김정일,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7쪽)

사람, 사회적 재부, 사회적 관계라는 사회의 3대구성에서 사람이 주된 구성부분이다. 사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써 어떠한 무생명 물질이나 생명존재보다 가장 발전된 존재이다. 이런 조건으로 세계에서 오직 사람만이 사회를 형성하여 생활하는 사회적 존재로 된 것이다. 수억만년의 세계 역사에서 사회는 사람이 발생한 이후에 생겨났으며 사람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사회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이익에 맞게 개조·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물질적 재부와 정신 문화적 재부를 창조하면서 자기자신도 더욱 힘있는 존재로 발전시켜 간다. 창조된 재부는 객관화되어 사회적 공유로 축적되며 세대를 이어 전수되어 간다. 물질적 재부에는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수단, 노동도구를 비롯한 생산수단, 정신문화향유를 위한 물질적 수단들이라 할 수 있다. 정신문화적 재부에는 윤리도덕, 교육, 문학예술, 과학기술 등을 중요한 내용으로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과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다양하고 복잡하나 크게 3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활동분야에서 맺은 관계, 둘째는 사회적 처지에서 맺은 관계, 셋째 혈연적으로 맺은 관계이다.
첫째, 사회적 활동영역의 측면에서 보면 정치생활에서 맺은 관계, 물질생활에서 맺어진 관계, 정신문화생활에서 맺은 관계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국가권력이 법으로 규제하여 질서의 체계로 공고화하면 정치제도, 군사제도, 치안유지제도, 경제제도, 문화제도, 교육제도, 가족제도 등이 성립된다. 이런 제도들을 포괄할 때 사회제도라 하게 된다.
둘째,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와 사회적 활동분야에 따라서 보면 사회관계는 계급과 계층으로 구분된다.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는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의 소유여하에 따라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되면 유산자이면서 착취계급이 되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면 무산자이면서 피착취계급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종류, 즉 공장이냐 또는 토지냐에 따라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지주와 농민 등으로 구별된다. 사람들의 사회적 처지는 또한 국가권력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기본적으로 결정된다. 원시공동체 사회 이후 오늘까지의 착취사회에서는 국가정권을 장악한 사회집단은 지배계급이 되며 국가정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피지배계급의 처지로 떨어지게 된다.
사회계층은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성립되는 사회집단이다. 이런 사회적 집단으로는 지식인 계층, 중소상인 계층, 공무원, 군인 등으로 구별된다. 이외도 사회적 이해관계의 공통성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적 집단으로는 정당, 고용주단체, 노동조합, 농민조합, 여성단체, 환경단체 등도 있다.
셋째, 사회에는 혈연적 유대를 기본으로 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씨족, 가족, 종족, 민족의 집단이 있다. 근현대에 와서는 민족국가발전이 현저해지면서 계급문제와 더불어 민족문제가 사회역사관 정립에서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민족은 혈연, 언어,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오랜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공고한 사회적 집단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족단위로 국가를 형성한 경우는 민족성원이 하나의 생사운명의 공동체로 되기도 한다.
주체사상에서는 민족의 중요한 징표를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에 두며 민족의 생명을 자주성으로 보는 것이 특징이다. 혈연적인 관계가 같아도 언어가 다르면 같은 민족이 될 수 없으며, 언어가 같아도 혈연관계가 다르면 다른 민족으로 되고 만다. 그러나 사회, 정치, 경제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다른 영토에서 살게 된 경우라 해도 핏줄과 언어가 같으면 다른 민족이라 할 수 없다. 주체사상은 민족의 생명문제로 자주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민족의 자주성이란 한편으로는 민족이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의 힘으로 개척해 가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용납하지 안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관은 근래에 제국주의 세력이 일으키고 있는 "세계화 바람"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맑스주의를 비롯한 유럽학계에서는 언어, 영토, 문화와 심리생활의 공통성을 민족의 중요한 징표로 보고 있으며, 주체사상과는 달리 혈연문제를 중요시하지 않고 있다. 그 근거는 유럽지역은 근대에 민족국가가 형성되기 전에 수세기 동안 수많은 전쟁과 민족이동이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혈통이 다른 민족들간에 혼혈이 되기도 하고 혈통이 다른 민족들이 같은 지역에서 섞여 살아 온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착취사회에서나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대립되고 있다. 때문에 계급적 대립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차원에서 정치권력의 소유관계도 더불어 고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주의에서 처럼 계급의 본질문제를 생산관계를 위주로 하여 규명하면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는 밝혀지지만 그것만으로는 정치관계에서의 지배와 피지배의 대립관계는 드러나지 않는 제한성이 있게 된다. 사회적 집단의 지배와 피지배의 대립관계는 국가정권의 소유관계, 정치적 처지에 의하여 규정지어진다. 그러나 착취계급이 곧 지배계급으로 되며, 피착취계급이 곧 피지배계급과 일치하지 안는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역사관에서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사회의 성격 문제다. 사회의 본질에 관한 문제가 자연적 존재와 구별하는 사회의 특성을 밝히는 문제이라면, 사회의 성격은 자연적 존재와의 차별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발전단계를 달리하는 사회들의 고유한 특성의 문제이다.
인류역사에는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유형의 사회들이 발전단계별로 교체되어 왔다. 처음 원시사회로부터 시작하여 노예제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식민지사회, 인민민주주의사회, 사회주의사회, 현재는 공산주의사회 단계까지를 전망하고 있다.
때문에 사회의 성격은 그 사회의 발전정도와 발전방향을 내포한 역사성도 가지게 된다. 사회성격의 역사성은 사회의 변혁운동을 옳게 전개하기 위한 방향설정의 전제로 되기도 한다.
사회성격이란 각이한 발전단계에 있는 일정한 사회의 기본특징을 의미한다.

주체사회관은 사회의 성격을 특징짓는 기본징표를 어느 사회집단 또는 계급이 정치적으로 지배적 지위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에서 찾고 있다. 한 사회에서의 지배적 지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에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체사관은 지배적 지위는 경제적 지배보다는 정치적 지배가 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으며 논리적으로도 타당한 견해이다.
근대와 현대사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비록 일정한 계급의 사회집단이 생산수단을 장악하였지만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전 사회는 물론 경제생활분야에서도 지배적 지위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봉건사회 말기에 출현한 신흥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창출했음에도 그들이 국가정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경제생활전반에서 지배적 지위를 확고하게 차지할 수 없었으며 사회성격을 자본주의적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20세기에 들어서 사회주의 변혁운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내에서 변혁세력이 우선 국가정권을 장악한 다음 새로운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를 확립하여 경제분야에서도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경제적 지배란 사회의 물질적 부에 대한 지배이며, 정치적 지배는 본질에 있어서 국가권력을 통한 사람에 대한 지배로 된다. 정권을 장악한 계급과 사회집단은 그것을 무기와 수단으로 하여 자기의 이익과 의사에 맞게 경제제도, 문화제도 등의 사회제도를 세우며 이런 수단을 활용하여 모든 사회성원들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지배가 본질에 있어서 의식이 없는 물질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지배로 된다는 것은 사회관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된다. 사회관의 핵심인 사람문제를 착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질과 달리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맑스주의를 비롯해서 재래부르주아 사회역사관은 사회관의 핵심인 주체문제에 착안하지 못하였다. 맑스주의는 계급문제와 더불어 사람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나 사회의 성격을 생산수단이라는 물질적 지배를 중심에 두고 고찰한 나머지 사람문제를 주체의 문제로까지 승화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그 외 재래부르주아 사회관은 사회의 성격을 정치적 내지 경제적 지배문제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만 사회구조나 계급구조 또는 국가형식에서 나타난 피상적인 "지배적인 특징"에 환원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단순사회냐 복합사회냐(듈켄), 산업사회냐 후기산업사회냐(벨), 이분법적 사회냐 총합적인 사회냐, 일차원적인 사회냐 다차원적사회냐(퓰스텐벨크), 중산층지배적인복지사회(볼테), 단독지배사회냐 소수지배사회냐 아니면 다수지배사회(알리스토테레스), 군주정치사회냐 공화정치사회냐(마키야벨리) 등이다.


3.3 주체 역사관

사회역사관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부분은 사회역사의 주체, 사회역사의 진행 방식과 지향, 사회역사 발전의 추동력 문제로 분류 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사회철학사적으로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며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재래의 사회역사관들은 사회역사관의 중요한 부분들의 어느 한 부분문제에 한정되거나 부분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일관성 있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맑스·레닌주의의 유물사관은 사회역사관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정립하고 있으나 사회역사의 주체문제를 옳게 해결하지 못해 과학적 미숙성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역사의 운동방식에 대해서는 윤회론(아우구스티누스, 불교 윤회설), 유기생물체적 순환론(스펭글러, 토인비), 기계적 직선적 발달론(Charles 쪽errault, 프랑스/17세기, Turgot, Condorcet 프랑스/18세기 후반), 변증법적 발달론(생 시몽, 헬더, 헤겔, 맑스 ……)으로 논의되었다.
사회역사운동의 지향과 목표에 대해서는 이미 뭔가 확정된 목적이 실현되어 간다는 목적론(희랍 철학자 폴리비오스), 자연적인 질서가 확립된 사회를 지향하는 자연주의론(홉스, 록크, 룻소. Morelly), 계급적 대립이 해소된 무계급사회론(맑스, 엥겔스, 레닌)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사회역사운동의 추동력과 관련해서는 윤회론과 목적론은 자동적으로 운동이 진행되기 때문에 운동의 추동력 문제를 논의 할 이론적 근거가 없게된다. 자연주의론에서는 사회역사의 추동력을 이성적 자연성의 도덕률로 보며, 무계급사회론은 적대계급 관계를 일으키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와 생산력과 생산관계모순을 해결해 가는 계급투쟁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회역사관은 과학적 미숙성을 나타내고 있다. 재래의 사회역사관들은 사회역사관의 어느 부분적인 문제에 한정되거나 부분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일관성 있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맑스-레닌주의의 유물사관은 사회역사관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정립하고 있으나 사회역사의 주체문제를 옳게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주체 사회역사관은 사회역사의 주체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역사의 성격과 사회역사의 추동력을 해명함으로써 사회역사관의 전반적인 내용들이 일관성 있게 정립되고 있다.

역사의 주체

사회운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진행되는 자연운동과는 달리 사람이라는 주체가 있는 운동이다. 사람은 사회를 구성하여 집단적 힘으로 자연, 사회, 인간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를 상대로 자기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는 목적지향을 갖고 역사를 창조 해 가고 있다. 주체사상은 이 역사창조의 주체를 인민대중이라 선언하고 있다.

"인민대중은 역사의 주체입니다. 인민대중이란 근로하는 사람들을 기본으로 하여 자주적 요구와 창조적 활동의 공통성으로 결합된 사회적 집단입니다."(김정일선집, 제13권, 472쪽)

희랍철학의 초기 투키디데스는 "사람은 역사자체를 만든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 견해는 역사를 신이나 운명이 주재한다는 이해에 대한 대안이었으나 사람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역사가 창조되는 장인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체계화 된 것이 아니었다. 주체라는 개념도 역사적으로 일찍이 대두하였으나 역사적으로 각이한 의미로 이해되어 왔으며 주체사상에서와 같이 사상체계의 중심개념은 아니었다. 주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알리스토테레스는 주체개념을 "사물의 근저에 놓여 있는 존재", 근세의 객관적 관념론의 대표적 철학자인 헤겔은 "절대정신" 또는 세계의 창조자로, 최근의 주관관념론자들은 "객체" 또는 "객관"에 대립한 "개인정신" 또는 "주관" 등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맑스는 주체에 관한 헤겔의 견해를 논박하면서 주체는 운동의 담당자이며 객관적인 물질적 존재로 보았다. 주체에 대한 이런 견해들은 주체란 세계를 주동적으로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개조하는 활동의 담당자,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 또는 인민대중(민중)으로 파악하는 주체사상의 과학적인 견해와는 본질적으로 달리하고 있다.

사회운동은 역사적 과정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사회운동과 사회역사, 사회운동의 주체와 역사의 주체를 각각 동의어로 이해할 수 있다.

민중은 자연을 개조하여 생산력을 발전시키며 물질적 재부와 사상 문화적 재부를 창조하는 담당자이다. 민중은 낡은 착취사회의 개조변혁을 요구하며 그것을 실현하는 데서도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세상에서 민중보다 더 힘있고 지혜로운 존재는 없으며 세상에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민중이라 까지 보는 것이 주체사상의 민중에 대한 견해이다.

주체사상에서 민중개념은 계급성을 반영하지만 그것은 순수 계급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고 있다.

"인민대중의 성원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본척도는 어떤 사회 계급적 토대를 가졌는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 하는데 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인민대중으로 결합시키는 사상적 기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 인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 애민, 애족 사상을 가지면 누구나 인민을 위하여 복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민대중의 성원으로 될 수 있다." (김정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단행본, 24쪽)

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사회계급적 처지보다는 오히려 사상의식의 결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은 선진사상을 신념으로 체득하고 그 실현을 위한 실천활동에 나서게 되면 자기의 계급적 처지와는 관계없이 민중의 성원이 되며 역사의 주체로 될 수 있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견해이다.

인류의 오랜 계급사회에서 언제나 민중은 역사의 주체였으며 사회역사 발전의 추동력이었으나 그에 상응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피지배자로서 수탈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민중이 다만 역사의 주체에 머물지 않고 강력한 "변혁주체"로 될 때 민중이 주인으로 되는 사회주의사회를 창조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성격/사회운동의 목적의식성

사회역사의 성격은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발전단계가 어느 단계에 왔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인 만큼 사회의 발전방향은 민중이 요구하는 지향성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민중의 지향성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을 옹호하며 끊임없이 향상시켜 가려는 자주성 실현의 목적지향성이다.
사회역사의 주체인 민중은 자주성 실현을 억제하는 자연적, 사회적, 인간적 조건을 극복하고 개조하는 활동을 통하여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자연을 개발하여 생산력을 발전시켜 사회적 재부를 풍부히 하며 사회를 개조하여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개조해 온 것은 민중의 자주성 실현을 확대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민중은 이 과정에서 자기의 창조적 능력을 키워왔으며, 창조적 능력의 장성에 따라 자주성을 더욱 확대해 가는 사회제도로 단계별로 변형시켜 왔다. 이러한 사회제도의 변형은 현재 공인된 사회학적 범주로는 원시사회,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사회로 분류한다.
노예제사회에서 노예들의 창조력은 자연물들을 재생산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그들의 자주의식은 자주성을 억압하는 노예제도에 대한 인식하고 그것을 반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일하는 동물 또는 생산도구와 같이 혹사당하고 상품처럼 매매되는 사회적 처지를 벗어보자는 정도였다. 따라서 그들의 투쟁은 자연발생성과 분산성을 면치 못한데서 보인 것처럼 노예제 사회에서 민중인 노예들이 발휘한 사회발전의 추동력은 낮은 수준이었다.
봉건제 사회에서 노예들은 철쇄에서 풀려나 신분제와 토지에 얽매이게 되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농노, 농민으로, 일부는 노동자, 수공업자, 상인, 부르주아지 등으로 전환되어 갔다. 이들은 노동도구와 간단한 기계제품을 생산하여 힘든 노동과 자연의 구속을 경감할 만큼 창조력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일부 부르주아는 신분적 사회제도가 인간의 자주성을 제한한다는 것을 아는 단계에 이르렀다. 부르주아지들은 농민들의 자연발생적인 반봉건 투쟁의 열매를 독점하여 자본주의사회를 만들어 냈으며 많은 농민들을 차츰 노동자로 전환시켜 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계급의 의식주문제를 상당한 수준에서 해결하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만큼 창조력을 발전시켰지만 이들은 자본주의제도의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민중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첫째 요인이 자본주의제도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농민과 일부 중산층은 자본주의제도의 개혁투쟁에 나섰다. 이들이 탁월한 영도자를 만나 강력한 투쟁조직체를 구성하고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구사하여 자본주의제도를 전복하고 사회주의제도를 세웠다.
사회주의사회는 원시사회 이후 인류사회에서 처음으로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이 없는 사회며 군대, 노동계급, 농민, 인테리로 구성된 민중이 주인이 된 사회다. 사회주의사회의 수립은 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해 가는 길에서 전환점이며 시발점으로 된다. 사회주의제도를 수립한 다음 사회주의 완전한 승리를 향해 계속해서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이 반세기에 걸쳐 사회주의를 건설 해 왔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역사적 이변이 일어났다. 그 원인을 맑스·레닌주의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헤메고 있거나 사회주의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이것은 변혁주체 문제를 과학적으로 정립하지 못하여 일어난 당연한 결과로 보게 된다.


사회역사발전의 추동력과 사상의식

사회역사 발전의 추동력은 민중의 창조적 역량, 다시 말하면 지식, 민중의 결합정도,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회역사관은 이 3자 중에서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사회역사발전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주적인 사상의식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혁명운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8쪽)

"사상의식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사람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며 사람을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에로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된다." (김정일, 사상사업을 앞세우는 것은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필수적 요구이다., 근로자 1995/7, 6쪽)

맑스·레닌주의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계급투쟁이 역사발전의 "기관차"요 추동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발전의 추동력이기 보다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근본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이며 의식의 또 다른 부분인 지식의 획득과 구사를 규정하는 의식이며, 지식은 객관적인 사물현상의 본질과 운동법칙을 반영한 의식이다. 사상은 사람의 요구를 기준으로 하여 객관적 대상이 사람의 요구실현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것을 반영한다.
사상의식의 내용은 계급사회에서 계급적 처지와 사회발전의 수준, 실천활동에 따라 형성 발전되어 간다.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실천활동 과정에서 뚜렷하게 제기되어 사상의식으로 형성되며 사상의식은 사회발전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간다. 노예와 봉건제사회의 농민,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사상의식이 현저하게 발전되어 간 데서 볼 수 있는 일이다. 현재 가장 발전된 사상의식인 자주적 사상의식은 "자기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라는 자각이며, 자기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이며 민중의 자주사상이다.
일정하게 형성된 사상의식은 사람의 활동과정을 조절하고 통제할 뿐 아니라 사람의 의지력과 활동력, 투쟁력의 발휘에서도 규정적 역할을 한다. 사상의식은 어떤 계급이 자기의 생활상 요구와 이해관계 실현을 위해 어떤 목적과 방향을 선택하며 어떤 수단과 방도를 통하여 실천해 갈 것인가 하는 활동과정을 규정한다. 또한 사상의식은 자기행동의 정당성과 자기의 투쟁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강한 의지력과 최대의 활동능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사상의식이 사회역사운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사상의식이 민중의 창조력을 결집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데 있다. 민중은 사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조직화하여 단결될 때 무진장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계급계층으로 구성된 민중은 생활상 처지의 차이, 지식과 창조력의 차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조직화되고 단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결정적인 요인은 민중의 사회적 지위와 이해관계의 공통성을 반영한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이 사회역사운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운동의 주체인 사람의 활동을 규제한다는 의미인데도 물질세계와 그의 발전법칙을 규정한다고 잘못 이해하여 필요없는 논쟁을 벌리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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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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