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3-08-02 00:00
[발제논문] 통일로 가는 길에서 나라이름은 Corea로[2003.8.1]
 글쓴이 : minjok
조회 : 4,747  
영문 국호 "Corea"쓰기 운동이 미주에서 최초로 시작됐다. 1일 오후6시30분 로스엔젤레스 소재 로욜라 법대 강당에서 미주의 통일맞이나성포럼과 한국의 통일연대 학술위원회가 공동주관한 "Corea 를 되찾자 학술세미나"에서 한국의 학자, 김상일 교수와 서굉일 교수, 그리고 미주에서 오인동 박사 가 각각 자신들의 논문을 발표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각 논문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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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가는 길에서 나라이름은 Corea로

오 인동 (의사, Korea-2000 위원)


필자는 1997년 "남과 북의 통일방안의 비교고찰" 이라는 글의 뒷장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Korea)방안"을 제시한바 있다. 그 글에서 통일로 가는 단계에서 나라이름을 조선도, 대한도 아닌 "코리아" 로 제안했다.

"북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Democratic Confederation of Koryo)"방안을 제창하며 고려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남은 "민족공동체" 방안을 제안하며 새로운 이름없이 National Community 라고만 했다. .....고려라는 이름이 나온 이유는........ 조선이나 대한 대신 제3의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는 오랜 기간 코리아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 이런 지명도를 희생하지 말고 통일로 가는 단계에서.... 영어로 "Korea"를 택하는데 남과 북이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한국어로는 어떤 이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리라고 본다. 어차피 대한이나 조선은 양쪽에서 서로 받아드리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구태여 배달이니 밝달이니 하는 새 이름을 찾는것도, 동의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영어로 "Korea" 를 선택한다면 일단 한글로도 "코리아"라고 쓰고 말 하는데 동의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 통상적으로는 "코리아"라 칭하고 완전통일단계에 들어갈때 새이름을 합의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고 썼다

6년전 위의 글을 발표하고 난 후에 우리 민족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루어 내고 이산가족의 상봉, 금강산 관광, 남북철도.도로의 연결등 남북관계에 꾸준한 진전을 보아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경기 입장때 남북은 한반도기를 들고 같이 행진했고,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때도 그러했다. 2002년 6월의 월드 컵 축구대회 때, "꼬레아"의 함성을 듣고, 새삼 필자가 제안했던 "코리아"는 "꼬레아" 로, 또 "Korea" 는 "Corea" 로 바꾸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공동행사때마다 의례이 등장하는 한반도기(통일기)의 채택을 10년전 남북이 합의해 냈듯이 이제는 그 허허한 깃발, 한반도 지도 밑에 붙여야 할 나라이름을 생각해 볼 수있다고 생각한다.

꼬레아-Corea 의 함성

온 국민의 열광 속에 들려오던 붉은 악마의 외침, 멀리 미국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민중의 노래. "오- 필승 코레아 오- 필승 꼬레아 ...........꼬레, 꼬레아!"
600백만 한민족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에서, 유로-아프리카에서, 남미에서도, 다 들었을 함성. 그리고 다 함께 불렀던, 꼬레, 꼬레아!

코리어가 아닌 꼬레아의 정겨운 외침은 아직도 귀에 울리고,
Korea가 아닌 Corea로 쓰여진 국호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떠나온 조국은 반도의 남쪽이든 북쪽이든, 바깥 세계에서는 한국도 조선도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Korea, 라틴어권에서는 Corea 로 쓰이고, 불린다.

Korea 는 코리어 로 발음하는데 옳게 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Corea 는 꼬레아 로 발음하는데 의식적인 노력없이 자연스레 발성되고 만다.
Korea 는 딱딱해 보이고, Corea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품위마저 있어 보인다.
알파벧 순서로 보면 C corea 는 K korea 보다 훨씬 앞에 선다.

그래서 일까, Korea보다는 "Corea"가, 코리어 보다는 "꼬레아"가 더 마음에 든다.


Corea의 연원

그러면 지금의 한반도가 어떻게, 또 언제부터 Corea 또는 Korea 로 서방세계에서 부르고 또 쓰인 것일까? 1000년전 아랍문헌에서 부터 프랑스,이태리, 포르튜갈/네델란드 문헌의 영역본, 서양인들의 한반도 근해의 항해일지, 한반도 여행기와 저서, 한반도가 포함된 지도들 그리고 한글 문헌들에 의하면 지금 영어권을 따라 쓰고있는 Korea 보다는 라틴어권에서 쓰고 있는 Corea나 Coree(첫번째 e 위에 악셍떼기가 붙음)가 처음으로 그리고 훨씬 먼저 서양세계의 대부분에서 오랜동안 쓰여왔다.

한반도를 서양어로 표기한 첫번째 기록은 프랑스인 수도사 뤼브뤼크(G.de Rubruck)가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Innocentius)의 사절로 1253년에 몽골을 방문하고 1255(고려 고종 41)년에 돌아와 쓴 동방여행기에 고려를 중국의 동편에 있는 섬 나라 "Caule"라고 기술한 것이다.

두번째 기록은 이탈리아의 상인 폴로( Marco Polo)가 1271년에 육로로 몽골-중국에 가서 생활하다 1295(고려 충열왕 21)년에 돌아와서 구술한 폴로의 여행기(Travels of Marco Polo)에 중국의 동편에 "Cauli"라는 나라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 여행기의 최초 인쇄본이 필사본 후 180여년인 1477(조선 성종 8)년에 독어 번역본으로 나오고 1800-1900년대에 여러 나라 주역본이 나왔다.

아랍인들은 이미 800-1000년대에 신라와고려를 드나들었고 여러 문헌에 Shila로 썼지만 고려라는 표기는 의사이며 역사가인 라쉬드 알딘(Rashid al-Din)이 1300년대 초에 역사서 "종합사"에 "Kaoli"로 기술한 것이 세번째이다.

네번째는 오스만 터키제국(1298-1924)의 학자이며 여행가인 알리 아크바르(Ali Akhbar)가 실크로드를 통해 명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 1516년에 페르샤어로 출간한 중국 여행기 "키타이(Hitayname) 서"에서 상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나라 고려(사실은 조선)라며 "Kaoli"로 표기한 것이다.

다섯째는 포튜갈/네델란드인들이 1543년에 일본 남방섬 히라도와 나가사키 등에 거류지를 마련하고 조선근해를 드나들며 기록한 항해일지에 조선을 Coray, Corai, Corei, Core, Coree 또는 Corea로 표기하기 시작한 기록이다.1586(선조 13)년 네델란드인 린쇼텐(LHV Linschoten)의 Inula de Core, 1589년 영국인 하클류트(R. Hakluyt)의 Cape de Corea가 그 예이다.

여섯째는 네델란드인 하멜일행이 1653(효종 4)년 제주도에 난파해서 조선에서 억류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후에 쓴 표류기가 1668(현종 9)년에 출간되어 드디어 조선이 서양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는 이미 조선 중기였는데도 Coree로 표기했다.

고려가 뤼브뤼끄에 의해 "Caule"로 표기되고, 폴로에 의해서 Cauli로 표기된 것은 몽골-중국인들이 한문으로 쓴 "고려"를 "꼬우리", "까오리" (Gaoli) 로 발음하는 것을 듣고 라틴어계 불어에 가장 가까운 표기로 그렇게 썼다고 생각한다. 알딘과 아크바르가 Kaoli로 표기한 것은 오히려 라틴어를 이해하는 오늘날의 중국인이 고려를 Gaoli로 쓰는것에 더 가까운 표기가 된 셈이다.

포튜갈/네덜란드인들이 Coray, Corai,Corei로 표기한것은 일본인들이 한문으로 쓴
"고려"를 "고라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그들의 라틴어 특성에 따라 그렇게 표기했다고 본다.


Caoli, Corai, Core가 어떻게 Corea로

1500년대 후반의 유럽의 문서나 지도에 Caule, Cauli, Kaoli, Caoli, Coray, Corey, Corei 또는 Core등 으로 표기되던 것이 어떻게 Corea 로 끝에 "아(a)" 가 붙게 되고 결국 그렇게 정착 되었는가를 살펴보자. 불어계에서는 처음부터 Coree로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다.

서양언어에서 보통 고유명사 뒤에 접미사로 a 또는터 ia가 붙으면 그 땅(land) 또는 지역(region)을 의미한다. 또 나라는 선박 처럼 여성으로 분류한다. 고유명사에 여성성을 부여하려면 명사 끝에 a 또는 ia 를 붙인다(George는 남성, Georgia 는 여성). 따라서 고려라고 알려진 지역이 하나의 엄연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자 Core라는 고유명사에 a가 붙어 Corea(고려땅, 고려지역 또는 여성인 나라)로 정착 되었다고 본다.(중국은 Chin-a, 몽골은 Mongol-ia, 아르젠틴은 Argentin-a, 콜롬비아는 Colombi-a 등)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포튜갈, 네델란드처럼 고려를 발견하거나 고려나 조선의 이름을 붙이는데에 기여했던 나라들은 고려(조선)를 Caule, Cauli, Coray, Core, Coree, Corea 등 한결같이 C로 썼고 또 지금도 Corea나 Coree로 쓰고 있다. 그러나 영국, 미국, 독일같은 고려나 조선의 표기에 처음부터 관여되지 않았던 나라들은 처음에는 선발국을 따라 Corea로 쓰다가 1900년대에 영어권과 독일어권 및 러시아계에서는 Korea 로 쓰게 되었다.

Corea의 연원은 뤼브뤼크나 폴로의 Caule, Cauli 또는 알딘과 아크바르의 Kaoli와는 직접적관계 없이 포르튜갈/네델란드인등 유럽인들이 쓰기 시작한 Coray, Core 등에서 연유된것 같다.


서양인 지도에 표기된 Corea와 Korea

한반도가 처음으로 세계지도에 나타난 것은 아랍의 저명한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Al-Idrisi)가 1154(고려 예종 8)년 신라를 중국 동남부 옆에 있는 6개의 섬으로 표시한 것인것 같다. 그 400여년후 한반도가 다시 서양인들의 지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반도가 지도상에 어떻게 표기된 것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남가주대학, 박 대헌의 "서양인이 본 조선", 헤니 사브나이에(H. Savenije)의 지도첩에 수록된 1595년 부터 1899년 까지의 226편의 옛날 지도를 편람하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지도들은 국립중앙박물관 편저인 "고려.조선의 대외교류"를 참고로 했다. (최초니 마지막이니 또는 총 몇개라는 말들은 단지 이 226편 중에서 그렇다는 것임을 분명이 해둔다)

이지도들을 년대별로 보면.1500년대가 4편, 1600년대가 27편, 1700년대가 140편, 1800년대의 것이 55편이었다
1595,6(선조 28,29)년 지도의 저자 오텔리우스(A. Ortelius)나 텍세이라(L. Texeira)가 고려(실은 조선)를 섬으로 그렸다. 조선이 반도로 묘사된 것은 선교사 마르티니(M. Martini)의 1655(효종 6)년 지도였다. 그는 중국에 거주하던 리치(M. Ricci)가 1602년에 만든 "곤여만국전도"를 참고로 했는데 리치는 조선인 권 근등이 1402년에 제작한 "강리도"의 모사판과 나 홍선의 1555년 "광여도"를 참고로 했다. 1600년대의 27편의 지도에는 Corea라는 표기가 12, Corai 6, Coray, Corey, Corei 5 등이 었는데 이름에 Insula등 섬이라는 표기가 따라 붙었다.

1700년대에는 섬의 표시없이 Corea 또는 Coree라고만 표기되었다. 1600-1700년대에는 가끔 Corea 옆에 조선을 Chau Sien, Chosin, Chosen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을 제바로된 반도로 그리기 시작한 사람은 1735-1737(영조 11,13)년에 프랑스인 지리학자 당빌(JBB D"Anville)이었다. 그는 중국의 "황여전람도"를 보고 그 당시로서는 가장 정확한 조선 전도를 한장의 독립된 지도로 출간해서 그후 150년간 큰 변화없이 복사되었다.

1743(영조 19)년 영국인 킷친(Thomas Kitchin)의 지도에 처음으로 Korea라는 표기가 나왔다. 1700년대 140편의 지도중 Corea나 Coree로 쓰인 것은 110편이고 Korea는 24편 이었다. 1600년대 지도의 대부분은 네델란드판 이었고, 1700년대는 영국과 프랑스 것이 었는데 그 당시에 Corea는 영어권을 포함한 모든 라틴어계에서 사용되었다.

1800년대 55편의 지도에서 Corea나 Coree로 표기된 것은 49편 Korea는 4편이었다. 1795년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미국이 제작한 지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800년대에 미국에서 나온 지도는 20편으로 늘어났고 2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Corea로 표기되었다. 결국 1899년 까지 226편의 지도에서 한반도가 Korea로 표기된 지도는 26편이었다. 나머지는 Corea나 Coree로 C로 쓰였다.


근세 유럽과 미국인의 조선.대한 표기

하멜의 표류기 출간 이후 1787(정조11)년 프랑스 해군 탐험가 페루스(La Perouse)가 Coree의 해안을 탐사한 이래 유럽각국이 뒤따랐고 통상요청을 시작했다. 서양인들은 또 전교의 목적으로 육로로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의 항해일지, 여행기등 조선에 대한 다방면의 저서가 출간되기 시작했다.

서지학자 박 대헌의 "서양인이 본 조선"에 수록된 저서의 제목에 한반도의 명칭(Corea, Coree, Korea, Choson 등)이 들어간 것은 1817년에서 1945년 사이에 106편이었다. 1817-1899년 사이에 30편과 1900-1945년 사이에 76편이었다.

1800년대의 30편중 Corea나 Coree로 표기된것은 21, Korea 9, Choson은 하나였다. 이는 1800년대의 지도에 Corea나 Coree로 표기된것이 대부분인 것과 비슷한 추세이다.저서 출간국은 미국과 영국이 각각 7, 프랑스 6, 일본 5, 독일 2, 한국과 이태리가 한권씩이었다.

1900년대의 76편중 Corea는 1, Coree 7, Chosen 1, 그리고 Korea가 65편으로 가장 많았다. 출간국은 미국 34, 영국 14, 독일 9, 한국 8, 프랑스 5, 일본 3 등으로 미국이 단연 많아졌고 독일과 한국의 진출이 눈에 띤다.

조선이 Corea로 표기되기 시작한 1500년대 후반 부터 서양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은 1800년대 말까지 조선은 거의 대부분의 문서에 Corea나 Coree로 표기되었다. 1866(고종 3)년 평양 대동강에서 격침된 미국상선 제너랄 셔만호 사건에 대한 미국측 기록에는 조선이 Corea로 때로는 Korea나 Chosen으로 표기되었다. 같은 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40일간이나 점령하고 문화재와 금은괴를 약탈한 병인양요에 대한 프랑스측 기록에 조선이 Coree로 표기되었다. 1871(고종 8)년 미국이 대함대로 강화도에 무차별 포격으로 조선인 350여명을 살해한 신미양요를 Corean War라고 표기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 이후 조선은 1876(고종13)년에 외부세계에 개항을 허락했다.
그 후 미국인 동양학자 그리피스( William E. Griffis)가 1882년에 "Corea, the Hermit Nation"(꼬레아, 은둔의 나라)을 출간 했고, 미국을 방문하는 보빙사(민영익, 홍영식등 8명)일행의 안내자였던 미국인 외교관 로웰(Percival Lowell)이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A Sketch of Korea" 를 1886년에 출간함으로서 처음으로 "조선:고요한 아침의 나라" Korea라는 표현이 나왔다.
1897년 영국인 비숍(I.B. Bishop)여사의 "Korea and Her Neighbors", 1898년 게일(J.S. Gale)의 Korean Sketches, 1904년 미국인 해밀턴(A. Hamilton)의 "Korea", 다시 게일의 1909년 "Korea in Transition"등은 모두 널리 읽힌 책들이다.

아직까지의 기술은 모두 일반사회에서 고려나 조선이 외국어로 어떻게 표기 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국가의 국제외교적 차원에서 조선이 어떻게 표기되어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외교문서에 쓰인 Corea 또는 Korea

외국과 체결한 공식외교문서의 첫번인 1876년 강화도 조.일수호조규 이래 1910년 일본에 병합되고 1945년 해방되기 까지의 모든 공식 비공식 외교문서를 편람했다.

조선시대

1876년 조.일 병자수호조규의 원문은 한문과 일문이고 영문본은 없다. 그 후 일본과 맺은 상업적인 조약등에 영역문이 따랐는데 조선을 Corea로 표기했다.

1882년 서방세계와 최초로 체결한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조선을 Corea 로 표기한 이래 영국,러시아, 이태리, 독일과 오지리와의 조약문서에도 모두 Corea 로 썼다..
즉 Corea를 조선의 공식 국제(서양)어 국호로 인정한 것이다. 불어권 나라들과의 조약에서는 Coree 로 썼다. 영국 영사관은 한때 조선이 국호인것을 알면서도 Chosen이라 하지 않고 Corea로 쓰기로 조선정부의 승인을 얻기도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와의 조약의 독문본은 Korea로 썼다.

1883년 미국에 보빙사로 간 민영익을 미국은 Government of Tah Chosun(대조선)을 대표하는 Minister Plenipotentiary and Envoy Extraordinary, Corea로 표기했다.미국의 서울주재 공사관은 Legation of US, Seoul, Corea로 쓰고 공사는 US Minister to Corea라고 썼다. 영국 총영사관의 명칭은 British Legation, Seoul, Corea 또는 Consul General in Corea 로 썼다. 독일 영사관은 독일어로 Konsulat fur Korea 로 썼지만 영문으로 쓸때는 언제나 Corea 로 썼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Choson이라는 명칭은 쓰이지 않았고,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도 공식적으로는 Corea로 쓰였다.

대한(제국) 시대

1897년 국호를 대한으로 개칭한다는 것을 각국 공사관에 한문으로 통보했으나 서양어로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답신하는 각국 공사관이 "대한"을 각기 다른 철자로 써 보내도 그에 대해 지적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대한의 서양어 공식명칭은 조선을 Corea로 써 온 대로 계속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서재필이 발간하던 독립신문 영어판 1897년 10월12일자에는 대한국 황제 고종의 즉위식에 즈음해 Daihan Empire가 아니고 "The Korean Empire"라는 글이 실렸다.

1899년 청국과 맺은 통상조약의 영문원문에는 대한국 대황제를 Emperor of Korea로 표기했으나 그 후의 모든 영문 외교문서에 Corea 로 표기 되었다. 1900년 러시아와 맺은 거제도 조차조약에서는 대한국을 Korea로 표기했다.
1901년에는 벨지움과, 1902년에는 덴마크와의 조약에서는 불문으로 Coree로 썼다. 제3자간의 외교문서인 1902년과 1905년의 제1차, 2차 영일동맹에는 대한국은 Empire of Corea 로 표기되었다.

대한시대의 어느 조약이나 공식문서에도 Empire of Han이나 Great Han Empire로 쓰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을사보호조약과 그 후

일본의 강압이 심해오던 1905년 7월 29일, 일.미간의 비밀협정(가즈라-태프트) 에서 대한을 Korean question 또는 Suzerainty over Korea 로 표기했다. 그러나 9월5일 러.일전쟁을 종결하는 포오쓰마쓰조약의 영문본에는 Corea로, 불문본에는 Coree 로 썼다. 드디어 11월17일 일본이 강압으로 체결한 한일 협상조약의 영문본은 없다. 12월 11일 고종황제가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선언을 미국인 헐버트(H.B. Hulbert)가 써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는데 대한을 Korea로 썼다.

일본이 1905년의 한일협상과 1907년 한.일 신협약을 맺은 사실을 서방제국에 보낸 통고문서에는 Corea 를 썼다. 1906년 제네바조약에 의한 한국의 지위에 관한 문서는 불문으로 되어 Coree 로 썼다.

1907년 7월 고종황제가 화란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밀사 이위종(이준 이상설)에게 준 신임장은 한문으로 되어있다. 번역은 불어로 Coree로 쓰였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사살한 사건의 보도에서 유럽은 Corea나 Coree, 독일은 Korea, 미국은 Corea 와 Korea가 섞여 쓰였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과 해방 후

1910년 일본이 대한을 병합하는 선언서에 아직까지 써오던 Corea대신 Korea로 써서 세계 각나라에 통고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를 Government General of Chosen이라고 썼다. 총독부는 각국 영사관과 주고받은 문서에서 한국을 Chosen으로 만 표기했다.

1919년 3.1 독립만세 운동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선언서를 Proclamation of Korean Independence 라 표기했다. 임시정부의 영어명칭은 "Provisional Government of Corea" 나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로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승리로 굳어지면서 1943년의 카이로선언, 1945년 2월의 얄타협정, 같은해 7월의 포츠담선언에서 한반도는 Korea 로 표기되었다.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의 득세로 점차 영어가 국제어로 되어가며 Korea 로 많이 쓰이게 되었지만 라틴어권은 지금도 Corea로 쓰고 있다.

해방후, 대한민국인 남측도 Republic of Kore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측도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로 다같이 Korea 를 쓰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서 우리 자신은 국호의 외국어 표기에 대한 차분한 성찰없이 외부세계의 추세에 따라 남과 북이 모두 Korea를 써왔다.


그날이 오면 꼬레아-Corea 로

2000년 6월 15일의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 간에는 쉬임없는 화해와 협력 그리고 교류의 싹이 커가고 있다. 그리고 남북의 민족성원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주인인 우리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각오가 다져지고 있다. 우리가 Corea로 불리고 쓰였을 때는 하나의 나라였고, Korea로 불리게 됐을 때 둘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며 지냈다. 통일을 지향하며 다시 하나가 되는 날을 그리며 남북이 동의할 수 있는 나라 이름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민족사저으로 고려는 우리의 웅대한 선조국 고구려의 얼을 이어받은 나라였다. 고려는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후고구려를 계승한 뒤, 전쟁없이 신라를 접수하고 백제를 제압함으로서 민족 통합을 이루고 처음으로 자주적인 통일을 이루어낸 나라였다. 그 고려를 서방세계에서 Corea로 부르고 세계가 그렇게 써 왔다.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가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서양어로 Corea로 표기하는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우리의 자의로 국호를 조선국에서 대한국으로 바꾼 후에도 Corea의 국제칭호는 견지했다. 그리고 외국과 체결한 외교문서에서 일관성 있게 써온 Corea를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며 잃어 버렸다. 일제식민통치에서 해방되며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단에 휘말리고 민족내부의 갈등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정전이된 한반도에서 민족 자존과 주체성 회복의 대 명제아래 그간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Corea를 되찾아서 새시대 새나라에 걸맞는 국제어(영어) 이름으로 쓰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Corea 되찾기는 남북의 민족 성원들이 동질성을 가지고 논의 할 수 있는 명제이며 또 통일환경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될것으로 믿는다. Corea는 700년간이나 우리민족과 함게 온갖 풍파를 겪어온 역사성이 깃든 이름이다. 주체적 역사의식의 확립 차원에서도 Corea 되찾기는 민족사적 의의가 크다.

Korea 는 "리"에 액센트를 넣어 코리어로 발음해야 하는, 우리 언어 습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Corea 는 꼬레아 로 발음하는데 우리 언어 습성대로 자연스레 발성되고 만다. Korea 는 딱딱해 보이고, Corea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품위마저 있어 보인다. 알파벧 순서로 보면 C의 corea 는 K의 korea 보다 훨씬 앞에 선다. 지금 우리 자신과 영어권이 Korea 를 쓰고 있기 때문에 Corea 로 쓰는 라틴어권과는 다르게 표기하고 있는셈이다.이제 Corea를 되 찾아 쓰기로 하면 Corea로 쓰고 있는 라틴어권과 같이 하게되고 Coree로 쓰는 불어권까지 C로 통일하는 장점도 있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그날이 오면 어차피 남과 북이 뜻을 같이 해서 잠정적이나마 정해야 할 나라 이름이기도 하다. 10여년전 남북이 단일 탁구팀을 구성해서 세계대회에 나갔을 때 지금의 한반도기(통일기)의 채택을 합의해 냈듯이 Corea 되 찾기를 같이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정작 최종적인 국호는 완전한 1민족 1체제 1국가의 통일이 완성 되는 때에 전 민족성원의 뜻을 모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 필승 꼬레아-Corea"의 함성이 커졌던 것은 우리의 젊은 세대가 민족의 주체성과 자존심을 되찾고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청산하자는 고귀한 뜻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가 올 무수한 남.북의 문화, 예술, 학술, 체육행사에서, 올림픽경기 입장식에서, 아시안 게임에서, 다시 월드 컵 축구경기에서.........., 한반도기(단일기,통일기)가 펄럭이고 그 허허한 깃발, 한반도 지도밑에 언젠가는 남북이 동의해서 붙여야 할 나라이름. 그 이름이 "Corea" 가 되면 어떻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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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19대 대통령이 된 인물에게 대외관계에서 가장 바라고 싶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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