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백서 (1) > 민족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1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민족자료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백서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minjok 작성일02-04-04 00:00 조회6,989회 댓글0건

본문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백서(1)

 (평양 4월 3일발 조선중앙통신)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조사위원회가 조사장악한 미군이 남반부지역에서 저지른 무고한 주민들에 대한 살륙행위를 비롯한 만행자료들과 최근 남반부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들 가운데서 그 일부를 묶어 2일 공동백서를 발표하였다.
 백서의 첫째부분은 다음과 같다.

미제의 살륙,략탈,파괴행위는 잔악무도한 반인륜적범죄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백서(1)
 세월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잊을래야 잊을수 없고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것이 바로 미군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살인,략탈,파괴행위이다.
 산천초목도 분노에 떨게 하는 미군의 이 치 떨리는 만행은 세상에 그 류례가 없는 범죄로서 마땅히 조선민족과 인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조사위원회가 조사장악한 미군이 남반부지역에서 저지른 무고한 주민들에 대한 살륙행위를 비롯한 만행자료들과 최근 남반부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들 가운데서 그 일부를 묶어 공동백서를 발표한다.


주민들에 대한 야수적학살만행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후 공화국북반부지역은 물론 남반부지역들에 대한 야수적폭격만행을 련일 감행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1950년 7월 5일 남조선강원도 신탄에 날아 든 4대의 미제침략군 공중비적들은 맹폭격으로 농촌주민 10여명을 살해하고 충청북도 제천군 제천면 활산리에 날아 든 미군비행기 4대는 산으로 피신하는 주민들에게 20여개의 폭탄을 퍼붓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25명을 살해하고 3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7월 9일 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룡지면(이하 당시 지명)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 4대는 폭탄을 퍼부어 철도로동자 김재근,황영규 등 170여명의 주민들을 살해하였으며 충청북도 영동군 산익리에 날아 든 2대의 미군비행기는 산으로 피신하는 농민들에게 4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9명을 살해하고 1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2대는 7월 10일 대장리부근 나무밑에서 젖을 먹이고 있는 녀성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어린애와 함께 즉사케 하였으며 이날 경기도 려주군 려주읍에 날아 든 3대의 미군폭격기는 수많은 폭탄을 퍼부어 녀자 38명,어린이 48명,로인 11명을 포함한 151명의 평화적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7월 11일 경기도 수원지구에서 주민 15명을 살해한데 뒤이어 11일부터 14일까지 전라북도 리리일대에 대한 야수적폭격으로 철도공무원 54명을 사살하고 학생과 시민 450여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히였다.
 놈들은 7월 12일 충청북도 영동주변의 산에 피신중인 310명의 주민들에게 대형폭탄 10여개를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6명을 살해하고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미제공중비적들은 7월 15일,16일,19일 3차에 걸쳐 야수적폭격으로 경기도 평택지구 주민 77명을 살해하였으며 인천에서는 <동양방직>공장을 파괴하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밭에서 김매기를 하는 8명의 농민들을 기총소사로 살해하였다.
 7월 16일 서울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들은 맹폭격을 감행하여 1,096명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1,20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으며 7,000여명의 리재민을 내게 하였다.
 7월 20일 전라북도 김제군 죽산면 죽산리에 날아 든 놈들은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농민 200여명을 살해하였다.
 7월 25일 미군폭격기 2대는 전라북도 익산군 왕궁면 구덕리 문둥병환자수용소에 기총사격을 가하여 환자 6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여러대의 미군전투기가 충청북도 청주에서 김을 매고 있던 농민과 길가에서 놀고 있던 어린 학생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5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7월 25일부터 4일동안 미제는 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 철길 및 쌍굴다리에 700여명의 주민들과 피난민들을 몰아 넣고 기총사격으로 300여명,폭격으로 100여명을 살해하였다.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파주군에 날아 든 미군비행기의 폭격으로 63명이 사망하고 572명이 부상 당하였으며 남조선강원도 춘천시에서는 미군의 폭격으로 농민 리수영 외 3명,로동자 김학환의 안해 증매자(24살)와 그의 아들,강가에서 빨래하고 있던 김성숙(16살)과 목욕하던 그의 동생 김영숙(11살),인민학교 학생 리기훈(8살)도 미군비행기의 기총소사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7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강외인민학교에 여러개의 폭탄을 투하하고 교실에서 뛰여 나오는 학생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학생 5명을 살해하였으며 19명을 부상시켰다.그리고 8월 초 충청북도 청주시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는 주변농촌상공을 저공비행하면서 산으로 대피하는 농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12명을 살해하고 11명을 부상 입혔으며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에서는 소이탄 투하와 기총사격으로 30여명의 농민들을 살해하였다.
 7월 31일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 마곡리 하천제방에 피난을 나와 점심을 먹고 있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미군전투기 5대가 갑자기 달려 들어 약 30분간에 걸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강남덕의 아버지와 3명의 동생 등 13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8월 2일 전라북도 김제군 광활면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26대는 논밭에서 김을 매고 있던 농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농민 2명과 가정부인 1명을 살해하고 처녀 1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인천시 부평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들은 소이탄을 떨구어 주택지구에 불을 지른 다음 불을 끄려 동원된 군중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11명을 살해하고 1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또한 이날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 조장리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 4대는 피난 가던 주민 약 300명에게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150여명을 살상하였다.
 8월 3일 미군전투기 2대는 인천시 룡현동 선창에서 떠나려고 하는 려객선에 기총사격을 가하여 녀자 4명을 포함한 14명의 려객을 살해하였으며 대구쪽에서 날아 든 미군비행기 2대는 대전시 신안동거리를 걸어 가던 시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3명을 즉사시키고 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또한 이날 미군전투기편대는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망경동 등의 주민 수백명이 대피한 주약동 약골의 진치령 굴에 대한 2차례의 폭격에 이어 다음날 오후 5시에 또 다시 나타나 저녁을 먹으려던 피난민들에게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50여명을 사살하고 5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감행한것으로 하여 굴안에는 떨어져 나간 사람의 팔과 다리들이 널려 져 차마 눈 뜨고 볼수 없는 광경이 펼쳐 졌다.
 8월 4일 인천시 석남동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3대는 집을 잃고 다리밑과 오막살이에서 살고 있는 리재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52명을 살해하고 1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날 경기도 고양군에 날아 든 공중비적들은 참외를 팔고 있는 상인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3명을 살해하고 44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봉산리에 여러개의 폭탄을 떨구어 15명의 평화적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8월 5일 미군폭격기 8대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날아 들어 무차별폭격을 가하여 3개의 동을 완전히 불 태우고 153명의 시민들을 살상하였다.
 8월 6일 미군전투기 2대는 전라남도 광산군에 날아 들어 도선장에서 나루배에 탄 주민 10명을 기총소사로 즉사 시키고 5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경기도 룡인군 기흥면 상갈리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2대는 길 가는 행인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3명을 살해하고 6명에게 부상을 입히였다.이날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당리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는 강가매(당시 12살)어린이가 아침밥을 먹고 놀러 간 사이 그의 집과 이웃집들에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집에 있던 강가매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 4명을 즉사시키였으며 이웃에 있던 임신부녀성이 폭격으로 놀라 죽은 아이를 낳고 그후 그도 죽게 하였다.
 8월 7일 남조선강원도 녕월군 녕월면과 전라북도 전주시 하천일대와 진북동,고사동 등지에 날아 든 여러대의 미군전투기들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기총소사로 강가에서 빨래하던 부녀자들과 목욕하던 아이들을 비롯하여 373명의 주민들이 살상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경상남도 마산시 진전면 진목리 진목마을상공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의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황맹성 외 4명이 살해되고 황근성 외 2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8월 8일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면 신흥동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들은 일터로 나가는 김종록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팔에 부상을 입히고도 성차지 않아 그가 대피한 집에 폭탄을 퍼부어 집을 완전히 파괴하고 김종록과 그 집에 있던 사람 4명을 살해하였다.
 8월 9일 미군폭격기와 전투기 20대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초공장상공에 날아 들어 작업중인 로동자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11명을 살해하고 39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서울시 룡산구상공에 날아 든 미제공중비적들은 녀성상인 4명을 살해하여 젖먹이 어린애가 피 흘리며 쓰러진 어머니의 젖을 찾으며 애처롭게 울게 하는 비참한 사실까지 산생시켰다.
 8월 10일 인천시 신흥동에서는 그전날 폭격으로 불 타고 있는 주택들에 대한 불끄기작업에 동원된 주민들에게 미군전투기 8대가 달려 들어 기총소사로 13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부상을 입히였으며 경기도 룡인군 룡인면 남리에서는 길 가는 사람들에게 수백발의 기총사격을 가하여 12명을 살해하고 련이어 이 군 이동면 천리(무내미고개)에서 7명을 살상하였다.
 이날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하담리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4대는 하담리 인민학교교사에 기총사격을 가하여 수업중이던 교원 변윤수,학생 김경환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을 살상하였으며 리재민들이 림시로 거처하고 있는 룡산중학교를 폭격하여 204명을 살해하고 24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또한 이날 경상남도 마산시 진전면 곡안리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는 뒤산에 피난한 100여명의 주민들을 향하여 기총사격을 가하여 80여명의 주민들을 살상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8월 10일,12일 량일간에 걸쳐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세브란스병원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들은 폭탄을 퍼부어 환자 3명을 즉사시켰으며 입원중인 환자 2명을 살해하고 그들을 간호하던 간호원들과 다른 환자 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8월 11일 오후 1시경 경상남도 의령군 화정면 상일리 보천마을 상공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4대는 피난민임을 육안으로 확인할수 있을 정도로 저공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폭탄을 투하하여 마을을 불 태우고 살아 남은 주민들이 불 타는 집에서 뛰쳐 나오는것을 보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유지곡 외 23명을 죽이고 수십명에게 부상을 입히였다.
 8월 12일과 13일 2일간에 걸쳐 미군비행기 19대가 충청북도 괴산상공에 날아 들어 50여개의 소이탄과 폭탄을 투하하고 폭격을 피하여 산으로 대피하는 주민들과 화재현장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부녀자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121명을 살해하고 376명을 부상시켰다.
 8월 14일 전라북도 익산군 룡안면 흥왕인민학교에 8.15조국광복기념준비를 위하여 전교 학생들이 모여 있을 때 미군전투기 4대가 불의에 날아 들어 폭탄 2개를 퍼붓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학생 13명을 즉사시키고 1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8월 16일 미제공중비적들은 충청북도 청주군 북이면 석성리 학교마당에서 급히 교실로 대피하는 어린이들에게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학교를 심히 파괴하고 여러명의 학생들을 살해하였으며 진천군 덕산면 룡몽리 우물에서 3명의 부녀자들이 물 긷는것을 발견하고 기총사격으로 1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날 미군전투기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농촌에서 밭일을 끝내고 돌아 오는 농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6명을 살상하였으며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에서는 참외밭에서 참외 따는 농민 3명을 살해하였다.
 8월 18일 충청남도 대전시에 날아 든 미제공중비적들은 기총사격으로 판암동 335번지에 사는 대전중학교 1학년 리경무(15살)를 즉사시키고 6살 되는 그의 동생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8월 20일 미군전투기들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 일대에 모여 든 2,000여명의 피난민들에게 무려 2시간이나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170여명을 죽이고 100여명을 부상시켰으며 같은 면 수곡리에서는 심육갑의 일가족 3명과 타지역에서 온 피난민 2명을,가야읍에서는 김종곤의 부친 등 4명을,의령군 의령읍 만천리에서는 12명을,부림면 단원리에서는 피난민 13명을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살해하였다.
 8월 21일 대전시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는 룡운동 과수원에서 포도를 따고 있는 15살 난 어린 소년에게 기총사격을 퍼부어 그 자리에서 숨 지게 하였다.
 이날 미군폭격기 12대와 전투기 8대는 서울시 영등포구에 날아 들어 수많은 폭탄과 소이탄을 투하하고 저공비행하면서 기총사격을 가하여 평화적주민 33명을 살해하고 52명을 중상시켰으며 동부동에서는 어린이 28명을 포함한 676명을 살해하고 많은 주민들을 부상시켰다.
 8월 22일 공중비적들은 대전시의 한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고 있는 가정부인 김현숙에게 사격을 가하여 즉사케 하였으며 충청남도 대덕군 구즉면 송강리에서는 논김을 매고 있는 최인기와 그의 아들 최승은을 목표로 폭탄 5개를 투하하여 살해하고 200여평의 논을 못 쓰게 만들었다.
 또한 경상남도 의령군 룡덕면 정동리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4대가 저녁준비를 하는 마을주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33명을 즉사시키고 3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였다.
 8월 23일 미군폭격기들은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상공에 날아 들어 무차별폭격으로 20명의 농민들을 살해하고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밤중에 모기불을 피우고 잠든 농가들에 폭탄을 떨구어 잠 자던 농민가족 7명을 살해하였으며 24일 서울시 룡산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24명을 살상하였다.
 8월 25일 미군폭격기 8대는 서울시 서대문구 은평면 수색동에 1톤짜리 폭탄 10여개를 퍼부어 주민 34명을 살해하고 48명에게 부상을 입히였으며 충청북도 충주읍에 150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주민 89명을 살해하고 20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7월 12일부터 8월 25일까지 여러차례에 걸쳐 충청북도 괴산군 증평면에 날아 든 미제침략군 비행기들은 10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농민 68명을 살해하고 124명에게 부상을 입히였는데 사망자중에는 부녀자 39명과 어린이 13명이 포함되여 있었다.
 8월 27일과 30일 미군전투기들은 서울시 룡산일대와 충청북도 청주에 날아 들어 밭일을 하는 사람들과 대피호에 피신하는 사람들,소를 몰고 가는 사람과 빨래하는 녀인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살해하였다.
 1950년 가을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는 산청군 미천방향으로 피난을 가기 위해 부흥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느던 16명의 피난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정용환의 어머니 등 4명을 사살하였으며 진주시 반성면에서는 주민들이 방공호로 들어 가는것을 보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해 10여명을 살해하였다.
 9월 2일과 3일,4일에 서울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와 전투기 12대는 주민들이 집결하고 있는 곳에 기총사격을 가하고 폭탄을 떨구어 79명을 살해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공중에서뿐아니라 지상에서도 남반부의 무고한 주민들을 악랄하게 학살하였다.
 7월 2일 남으로 쫓겨 가던 미군은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충의동에서 로동자,농민,학생들을 체포한 후 총부리를 들이대고 제놈들이 퇴각하는 곳으로 끌고 가면서 아들,딸들을 따라 나온 늙은 부모들을 총창으로 무참히 찔러 죽이였다.
 7월 8일 미군은 기관총 5정을 자동차에 싣고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매천리에 달려 들어 부락주민들에게 피난시켜 준다고 하면서 산으로 끌고 가 52명을 학살하고 19명에게 부상을 입히였다.
 7월 19일 인민군대가 충청남도 대전시 근방에 육박하자 이에 바빠 맞은 미군은 이날 아침 6시경부터 중동,정동,대흥동,인동 등 대전시의 각 지역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3,740호의 살림집과 35개의 기관건물,140개소의 평화산업시설,9개의 학교,12개의 병원을 재더미로 만들었다.
 이날 미제침략자들은 대전시 판암동 623번지에서 사는 여신용(68살)과 그의 아들 여남복(12살)이 판암동 한 철길굴속에 숨어 있는것을 발견하고 총살하였다.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의 사이에 미제침략자들은 경기도 수원에서 형무소와 류치장에 구금하였던 1,146명의 애국자들을 살해하고 충청북도 충주에서는 시민 739명을 체포하여 이원국민학교 교사에 가둔 다음 7월 5일 학교 뒤산에서 23명을 학살하였으며 나머지 716명은 손발을 결박하여 트럭에 싣고 가다가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앞산 등지에서 10명 혹은 15명씩 묶어 놓고 기관총으로 학살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에서도 미제야수들은 600여명의 시민을 체포하여 산골짜기에 몰아 넣고 무참히 살해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이와 류사한 방법으로 평택에서 600여명,안성에서 500여명,부여에서 2,000여명,조치원에서 158명,대전에서 8,644명,청주에서 2,000여명,전주에서 4,000여명,군산에서 400여명,공주에서 600여명,안양에서 400여명,충주에서 2,060여명을 학살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950년 9월부터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남조선지역에 다시 기여 들어 평화적주민들에 대한 학살만행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1950년 9월 16일 인천에 상륙한 미제야수들은 첫 하루동안에 1,3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데 이어 9월 28일부터 11월 13일까지의 기간에 5만 5,900여명의 주민들을 <공산분자>로 몰아 투옥학살하였으며 인천시 금곡동지구에서만도 1,500여명의 녀성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2,700명의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서울에서 9월 28일부터 3일동안에만도 3만 8,800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9월 30일 미국놈들은 서울 전차 차고 로동자 600여명을 <부역자>라는 혐의로 체포하여 야수적고문을 하던 끝에 30명을 즉석에서 학살한데 이어 직맹위원장 최금목과 123호전차 녀차장을 창으로 가슴을 찔러 죽이였다.
 1951년 1월 4일 미제야수들은 경기도<경찰부>가 차지하고 있던 창영국민학교에서 48명,18일에는 동인천<경찰서> 창고에서 422명,인천<경찰서>에서 28명을 학살하고 불 태워 버리였다.
 양동,양신,금포,양촌에서도 애국자들과 그 가족 400여명이 학살되였다.
 1950년 여름부터 1951년 여름까지 전쟁 1년동안에 미제야수들에 의하여 희생된 남조선인민들의 수는 초보적으로 조사확정한데 의하더라도 무려 100만여명에 달한다.


녀성들에 대한 추악한 만행
 미제침략자들은 남조선각지에서 살인,방화,략탈을 하였을뿐아니라 수많은 녀성들을 릉욕강간하는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인 만행을 감행하였다.
 1950년 7월 초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 회동리에 침입한 미제침략군 5명은 이 마을 가정부인 김심순을 대구로 피난시켜 준다고 트럭에 싣고 가다가 산골짜기에서 륜간하고 총살하였다.
 7월 15일 충청남도 대전시 목동에 기여든 미제야수 2명이 한 녀성의 집에 뛰여 들어 가 그를 륜간한것을 비롯하여 놈들은 시내에 머물러 있는동안 수많은 부녀자들을 닥치는대로 릉욕강간하였다.
 7월 18일 충청남도 대덕군 기성면에 침입한 미군 3명은 농가에 뛰여 들어 남자들은 피난 가라고 강요한 후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심지어 가정부인 김한녀를 강간하고 그 자리에서 총살하였으며 충청남도 대전시 류천동에 사는 농민의 안해 리갑순이 앞내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집으로 들어 가 대문을 잠그자 미군야수는 담장을 뛰여 넘어 그를 강간하고 국부에 총을 쏘아 즉사시켰다.
 7월 19일 미군야수 10명은 대전시에서 한 집에 뛰여 들어 남편을 강제로 내쫓은 다음 그의 안해를 산속에 끌고 가 륜간하여 인사불성에 이르게 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남조선지역에 또다시 침입하여 수많은 부녀자들을 릉욕강간하는 귀축 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950년 9월부터 12월까지 서울에서만도 875명의 녀성들을 강간한 다음 무참히 학살하였다.
 9월 18일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은행직원 권백모의 집에 침입한 미제침략군 6명은 그의 처를 붙잡아다가 3일동안 감금해 놓고 륜간하여 실신시켰으며 10월말 미제침략군 야수들은 송림동에 사는 최모의 14살나는 딸과 한모의 15살나는 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가는것을 랍치하여 1주일간 감금해 놓고 집단륜간한 다음 죽여 버리였다.
 10월초 어느날 미제침략군 3명은 서울시 금곡동에 거주하는 40살난 과부 김씨의 집에 침입하여 아들들을 총으로 위협하고 구타하면서 밤새도록 녀성을 륜간하였으며 그 다음날에는 김씨로인의 집에 뛰여 들어 어린 소녀를 강간하려는것을 제지시켰다고 하여 총탁으로 로인을 때리고 그의 얼굴과 목을 칼로 찔러 죽이였다.
 12월 15일 서울에 사는 김인수의 옆집에 침입한 야수들은 녀자의 몸에서 출생후 2주일된 어린아이를 빼앗아 방바닥에 내던지고 산모를 륜간한 다음 그것도 성차지 않아 다른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있는데서 그의 딸을 강간하였다.
 12월 25일 서울교외 광장리에서는 미제침략군 3명이 무기로 위협하면서 50살나는 녀성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강간하였다.
 이에 격분한 녀성이 한 자의 생식기를 잡아 당겨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하자 남아 있던 2명은 그 녀자를 총살하였다.
 또한 12월말에 미제침략군 여러명은 삼간동 부락에서 처녀를 붙잡아 륜간하고 산속수풀속에 던져 버렸다.
 이외에도 성북동과 은진리에서 300여명의 가정부인과 녀대학생,어린 처녀들이 강간당한것을 비롯하여 미제침략자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부녀자들에 대한 릉욕강간만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행되였다.


인민의 재산과 문화시설의 략탈,파괴만행
 미제침략자들은 남조선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인민의 재산과 문화시설에 대한 략탈과 파괴행위를 꺼리낌없이 감행하였다.
 1950년 7월 초순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면에 침입한 미제침략자들은 이 부락인민들에게 피난 가라고 강요하여 내쫓은 다음 주민들의 재산을 략탈하였으며 갈춘자의 집에 뛰여 들어 그의 할아버지(70살)와 아들이 피난 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권총으로 쏴 죽이고 집재산을 모두 털어 냈다.
 10월 1일부터 20일까지의 사이에 미제침략자들은 서울시 리태원일대에서 여러 기관들에서 일하던 일군들의 가정 21세대와 의용군에 나간 가정 45세대를 습격하여 의복류,침구,가구,식량 등 일체 재산을 략탈한것을 비롯하여 습격략탈행위를 매일과 같이 계획적으로 감행하였다.
 12월중순 미제침략군 3명은 남대문로 3가에서 한 회사원이 은행에서 타 가지고 오는 현금 25만원을 백주에 략탈하였으며 12월 26일 충무로 3가에서 미군야수들은 갈월동에 거주하는 임영동이 가지고 있던 현금 30만원을 략탈하여 가지고 달아 났다.
 12월 27일 미제침략군 2명은 명동의 큰길가에서 대낮에 회사원 지인봉을 권총으로 협박하여 현금과 소지품 등 40만원어치를 강탈하였다.
 지어 미제침략자들은 1951년 1월 3일 20여대의 자동차를 타고 돈암동에 침입하여 조금이라도 값 나가는 물건은 모조리 략탈하는 집단강도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1950년 7월 4일 경기도 련천군 련천읍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4대가 초급남자중학교,고급남자중학교,잠업기술학교에 기총사격을 가한 후 소이탄을 떨구어 불 태워 버렸으며 15일과 16일,19일 3일동안 경기도 평택시에 맹폭격을 가하여 평택인민학교와 병원 4개를 파괴하였다.
 7월 16일과 20일,23일,30일 미군폭격기들은 맹폭격으로 서울시 룡산구에서 병원 14개와 교육기관 2개,카톨릭교회 및 고아원 1개,충청남도 대전시의 대전공업중학교 본관 14개 교실과 신관 8개 교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일체 교수용 비품을 완전히 불 태워 버렸으며 대덕군 구즉면 구즉인민학교,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신흥리 인민학교와 농업중학교,이 면에 있는 지정리 대신인민학교를 전부 파괴하거나 완전히 불 태워 버리였다.
 8월 4일 미제침략군 전투기 4대는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 날아 들어 인민학교에 기총사격을 가하여 학교의 일부를 파괴하였으며 미군전투기 3대는 경기도 양주군 로해면 공덕리 공과대학을 폭격하여 그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8월 5일 남조선강원도 강릉시에 날아 든 미군전투기 4대는 약 20차에 걸쳐 저공비행으로 무차별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강릉인민학교와 강릉상업중학교,강릉옥적인민학교를 파괴하였을뿐아니라 기타 학교들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8월 8일부터 14일까지 수십대의 미군폭격기들은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충청북도 제천읍 제천인민학교와 제천인민병원,서울시 룡산구 룡산인민학교,중구 세브란스병원의 일부와 간호원 기숙사 1동,대방동의 병원 1개와 제약소 1개,학교 2개,인천시 인천자림극장,전라북도 익산군 룡안면 흥왕인민학교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8월 15일과 16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와 제천군 제천면 활산리,청원군 북이면에 대한 미군폭격기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보천리인민학교와 활산리인민학교가 불 타버렸으며 석성리인민학교와 내추리인민학교가 여러개의 폭탄을 맞고 완전히 파괴되였다.
 충청남도 일대에서는 인민군대에 의하여 해방된 때로부터 8월 25일까지사이에 미제침략군 공중비적들의 야만적폭격으로 수많은 문화기관 청사들과 기타 기관들이 심히 파괴되였는데 아산군에서는 병원 7개,대덕군에서는 병원 2개,학교 13개,기타 3개의 문화시설,연기군에서는 병원 6개,학교 16개,기관청사 15개,천안군에서는 병원 4개,학교 1개,보령군에서는 병원 4개,기관청사 6개,론산군에서는 병원 14개가 파괴되였다.이 기간 남조선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일대에서는 12차에 걸친 미제침략자들의 함포사격으로 근덕인민학교 및 기타 문화시설들이 파괴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서울에 있는 학교 76개를 완전히 파괴 또는 불 태워 버리고 79개 학교의 내부시설,38개 병원과 의료시설들을 파괴하였으며 방송국 2개,극장 6개,박물관 1개,신문사 4개를 불 태워 버렸다.
 미제침략군 야수들은 종로의 종각과 덕수궁 석조전을 불 태워 버리는 등 서울시내의 많은 력사고적들과 유적들을 파괴하고 경복궁안의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였던 신라시기의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국보적진렬품들을 략탈하였으며 남산에 있는 민족박물관,창경원박물관,서울대학박물관의 귀중한 진렬품들을 전부 략취 또는 파괴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덕수궁미술관에 진렬하였던 유명한 고서화들을 전부 도적질하고 국립도서관,시립도서관,서울대학도서관 등에 있는 력사고서들과 귀중한 도서들도 불 태워 버렸으며 인천영화관,동방극장 등의 영사기와 기타 기구들을 략탈 또는 파괴해 버리였다.
 이와 같이 미제침략자들이 조선전쟁을 도발한 후 남반부지역에서 감행한 야수적살륙,략탈,파괴행위는 력사에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잔악무도한것이였다.
 제반사실들은 미제승냥이들이 남반부지역에서 저지른 반인륜적범죄는 그들이 지금 떠벌이는것처럼 결코 그 어떤 우발적인 요인에 의한것이 아니라 조선민족말살을 목적으로 감행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륙,략탈,파괴행위였다는것을 똑똑히 보여 준다.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목숨같이 귀중히 여기는 조선민족은 결코 미제식인종들에게 당한 치욕을 수수방관하지 않을것이다.
 우리 민족은 천인공노할 미제의 죄행을 총결산하고 쌓이고 맺힌 한을 기어이 풀고야 말것이다.


주체91(2002)년 4월 2일
평 양

                                                 (끝)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