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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황석영 선생에게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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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9-05-23 00:00 조회4,2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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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를 풀면 느슨한 연방제"는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것"
황석영, "이명박 이후에는 박근혜다"



유태영 박사(재미동포 통일운동 원로,은퇴 목사,뉴욕 거주)가 황석영 선생에게 드리는 글을 민족통신에
보내왔다. 필자는 1990년 8월 14일에 백두산에서 거행된 <제1차 범민족대회 출정식>에서 황석영 선생이 불을
뿜어내는 열정적인 웅변으로 <쇠붙이는 물러가라>고 웨치던 소리를 잊을 수 없다고 황석영과의 첫 만남을
회고하고 있다.

그 후 독일을 거쳐 뉴욕에 온 황석영과 재회하여 황석영의 부친과 필자의 고향이 같은 황해도 신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필자가 청소년기에 직접 겪은 <신천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쓴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 등장하는 주인공 <유요섭>은 필자의 신천사건 경험과 민족관, 역사인식 그리고 6.25
전쟁 때 우리민족이 당한 수난과 점령군 미군에 대한 필자의 분노와는 전혀 다른 소설적 허구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민족통신 편집실]


황석영 선생에게 드리는 글


요새 일간 신문들의 보도와 인터넷에는 황석영 선생에 대한 보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나에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오늘 아침 서프라이즈에 실린 안효용님의 글 < 당신을 흠모했던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이다>이었습니다. 필자도 황석영 선생을 존경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기관총에 난사당한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IMAGE##>필자가 황선생을 직접 대면해서 만난 것은 1990년 8월 14일 백두산 천지를 바로 뒤에 내려다 보면서 북조선 인사들과 남측, 해외동포들 수백 군중들이 백두산 산상에서 <제1차 범민족대회 출정식>을 거행하던 때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백두산 산장에서 조반식사 전에 황선생은 고 여연구 여사와 함께 아침산책을 하는 길에서 필자와 마주쳐서 첫 인사를 교환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황석영 선생은 그날 그 <백두산 범민련출정식>에서 불을 뿜어내는 열정적인 웅변을 토하면서 <쇠붙이는 물러가라>라고 웨쳤습니다. 너무나도 멋진 열변이었으며 강력한 구호의 웨침이었습니다. 그 날 황선생이 웨친 그 멋진 구호는 6.25 전쟁 당시 월북한 시인 백인준 문예총위원장이 처음으로 펴낸 그의 시집 첫페지에 쓰여져 있는 반미반제를 부르짖는 멋진 구호와 꼭 같은 구호였습니다.

황석영 선생은 남쪽 민예총 대변인 뿐만 아니라 남측 범빈련 대표로 백두산 범민련출정식에 참석하고 1990년 8월 15일에는 팜문점에서 제1차 범민족대회에 남측대표로 참석하여 민족통일의 큰 역할을 감수하였습니다.

얼마후 황 선생은 독일에서 대한민국 여권 만료로 정치망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황선생은 미국의 뉴욕에 있는 L대학의 사회정치학 교수이신 J박사님의 노력으로 그 대학총장의 초청으로 뉴욕에 와서 몇년을 지내다가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자 청와대 비서실장 J. N. Kim을 배경삼아 귀국의 용단을 내렸으며 필자에게는 Kim이 청와대에 있는 한 3개월 정도 감옥에 가있으면 될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황석영 선생이 뉴욕시 번화가 고층건물에 사무실을 임대하여 활약을 개시하면서 <동아시아문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우리들 몇 사람은 축하화환을 들고가 기쁨의 다과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때 황석영 선생은 동남아시아의 유명 문인들과 작가들과 교류의 폭을 넓히겠다고 역설했으며, 황선생의 명작 <장길산> 영화 제작을 북과남 공동제작으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사무직원으로 함께 일했던 김씨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북남합작 <장길산>을 위하여 북측과 상당한 교루가 이뤄지고 있었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 없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황석영 선생이 뉴욕에 체류하고 있는 기간에 황선생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보스톤대학과 위스콘신대학을 방문하여 한국 유학생들이 <장길산>의 황석영 선생과 새벽이 되도록 대화를 나누면서 흥분하고 행복해 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 비행기와 자동차 안에서 대화를 통하여 <황해도 신천>이 황선생 부친과 필자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천박물관>과 <신천미군학살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필자는 그 때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는데, 고향동네 기독교인들이 무지막지하게 한 동네의 <빨갱이>들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 휘발유를 뿌려 죽였으며, 그 때 그 동리의 기독청년들이 모두 월남하여 목사들이 됐는데 그 목사들은 지금도 그 때 일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황선생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UN군이 사리원을 지나 평양으로 북진하는 것을 보고 필자의 동네의 기독교 청년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동네 <빨갱이>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고문하고 무자비하게 죽였던 사실을 황석영 선생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황선생은 뛰어난 소설가로서 나의 <신천군 남부면 부정리> 약 100호 정도의 집들이 모여 사는 기독교화한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나의 사실적 이야기를 테마로 삼아 소설 <손님>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작소설을 창작하셨습니다.

뛰어난 소설가로서의 창작능력과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소설<손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필자와 필자의 형님을 <손님> 중에서 손님이 아닌 <주인공>으로 유요섭, 유요한으로 등장시킨데 대하여 소설가의 창작능력과 솜씨에 대하여 감탄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황선생에게 이 기회에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꼭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필자가 작가인 황석영 선생에게 토로한 나의 작은 고향동네 마을에서 겪은 개인적인 경험담과 또 나의 민족관과 우리 민족에 대한 나의 역사인식 그리고 6.25 전쟁 때 우리민족이 당한 수난과 점령군 미군에 대한 나의 분노 등은 소설 <손님>에 등장한 유요섭에게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입니다.

소설 <손님>을 읽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외곡된 내용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또 다시 부언하자면 소설 <손님>이 불러일으키는 혼돈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외곡에 대하여 <손님>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필자는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소설 <손님>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소설 <손님>이 가지고 있는 소재의 허구적 구상들은 필자와 신천의 역사적 현실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딴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 후 황석영 선생은 뉴욕에 올 때마다 필자를 불러 함께 점심식사를 같이 하도록 한데 대하여 늘 기쁘게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국의 대선이 한창 뜨거울때 필자는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가 당선되면 좋겠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런데 황선생은 뜻밖에도 <아니지 이명박이 돼야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필자는 묘한 기분과 감정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습니다.

이명박의 흠집과 타락된 부정부패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황석영 선생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사람이 이명박 선거운동하러 미국에 온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장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받았지만 참고 있었습니다. 판단력이 둔한 필자는 오늘에 와서야 <아니지 이명박이 돼야지>라고 말한 그 때의 황석영 선생의 정체를 알게 된듯 합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제국주의 침략적인 미국의 공작에 의하여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같은 생각이 들며 하나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황석영 선생이 그 때에 말한 <이명박이 돼야지>라는 말이 지금에 와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바로 3주 전 지난 4월말에 황석영 선생이 뉴욕에 다시 와서 필자와 32가 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황선생은 필자가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몽골-투코리아 중앙아시아 구상을 열렬히 말했었습니다. 필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 말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중앙아시아 순방동행과 이명박 정부에서 타이틀도 획득한다는 말이었던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황석영 선생!

황선생은 분명히 필자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기껏해야 제 임기나 겨우 채우고 물러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했을 겁니다. 필자는 민주당 개혁세력에서 뚜렷한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데 큰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황선생은 <민주당 개혁세력은 저들끼리 싸우니 아무 희망이 없고 이명박 이후에는 박근혜다>라고 필자에게는 폭탄같은 말을 했지요. 이전에 정동영은 안된다고 하면서 <이명박이 돼야지>라고 하던 그 때의 황석영 선생의 모습이 필자의 머리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필자로서는 미국의 배후조정으로 인하여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것을 황선생은 미리 다 알고 예언을 한 것 같은데 그러면 이번에도 역시 황석영 선생은 <박근혜가 이명박 이후에 대통령이 될것이다>는 것을 벌써 다 알고 필자에게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최근 조중동의 론조를 보면 겉으로는 이-박 계열이 서로 싸우는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내막은 은근히 박근혜 세력확장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것을 필자는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황석영 성생과의 대화 속에서 필자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가 4월초 미국을 방문해 스텐포드대학에서 미 정계와 국무성 관리들, 연구소 인물들을 활발하고 긴밀히 접촉하고 있는 모습도 황선생의 암시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황석영 선생에게 감히 쓴소리 한 마디로 끝을 맺겠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평소에 그 누구보다도 황선생을 존경하고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냈기에 하는 말입니다.

황석영 선생은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를 풀면—느슨한 연방제>라는 터무니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 남한에서 보수이든 진보이든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이든 그와 같은 황석영 선생의 허황된 말을 믿겠습니까?

남한에서도 벌써부터 황석영은 변절자, 배신자, 이중인격자라는 말이 돌고 있고 진보진영은 대단히 분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황석영 선생은 이번 이명박정부와의 밀착으로 인하여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변절자로 남한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더욱이 북쪽에서 황석영이 <남북화해>라는 말을 <남용>한다면서 아마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답도 없을 것 같습니다. 황 선생의 말은 <마이동풍>으로,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것>으로 하찮게 여길 것입니다.

안호용님의 말대로 왜 나이 늦은 황석영 선생께서 그런 길를 택하셨는지 필자는 분통을 터뜨리면서 황선생이 꼭 그래야만 될 어떤 깊은 이유라도 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어쨌던 뉴욕에 오면 예전과 같이 필자에게 전화하십시요. 만나 옛정을 회포하면서 한잔하는 재회가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속에 쌓여있는 분노를 솔직히 다 털어 보이고 싶지만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요.(끝)

5/17/ 09


뉴욕에서 유 태 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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