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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남북관계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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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1-01-08 00:00 조회1,9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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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남북관계의 전망(노중선)



1. 2001년 남북관계의 전망

노 중 선(통일자료실 대표/통일뉴스 고문)




I0000001774.JPG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관계 발전 과정에서 민족화해와 평화정착 그리고 자주적 통일을 향한 일대 전환점이 될만하다.

<공동선언> 이후 6개월 동안 이루어진 여러 분야의 남북대화와 교류들의 양과 질은 분단 50여 년 동안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제 남북간에는 더 이상 대화의 단절이나 적대적 대결 상태에서 분단을 지속시킬 수 없고,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향해 화해하고 협력하며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전민족적 염원을 거역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같은 대세는 그 동안 남북관계 개선 과정과 북·미 관계의 발전 양상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

먼저 남북관계 개선 과정이 그러하다. 1972년 7월 분단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정상의 교환서명을 받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전민족 앞에 조국통일 3대 원칙으로 자주·평화통일·민족 대단결을 천명했었다. 그 뒤 20년 만인 1992년 2월에는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의 총리가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서명하여 발효시켰다.

그리고 새천년의 문턱에서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연합제안과 연방제안의 통일, 남북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등을 내용으로 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합의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은 그 과정에서 지지부진하고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 왔다.

다음으로 북·미간에 적대적 대결이 아닌 유화적 관계로의 진전이다. 1974년 3월 북측은 처음으로 대미협상을 제의했었고, 1987년 7월에는 다시 북·미간 국회대표 회담을 제의했었다. 이에 미국은 1988년 10월 북측과의 학술·문화 등 비정치적 교류 허용 등 대북 완화 외교조치를 취하였고, 1988년 12월 북·미간 첫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 1993년 9월까지 5년 동안에 34차례의 참사관급 북경 접촉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1992년 1월에는 뉴욕에서 북·미간 첫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그리하여 북측은 1993년 6월 6.25이후 줄곧 개최해오던 ’연례 반미집회’ 취소 결정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4년에는 핵 문제 타결,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4개항 등을 합의하였고, 1995년 1월 미국은 대북경제제재 완화조치를 발표하였으며, 북·미간 직통전화가 개설되었다.

또한 1999년 9월에는 북·미 공동발표문을 통해 북측은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였고 미국측은 북에 대한 제재 해제 및 식량지원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2000년 6월 미국은 ’대북경제제재 완화’를 발표하였고, 10월에는 북측의 조명록 차수가 방미하여 ’북·미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는가 하면 미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였다.

이처럼 북·미관계는 용납하기 힘든 숙적관계에서 상호 대등한 선린관계를 향해 진입하고 있다. 북·미관계는 직접적이고 민감하게 남북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진전은 우리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내외적 대세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지속적이며 전진적으로 발전해 가고 또 그것이 반드시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동안 남북간의 대화를 단절시켜 분단 상태를 지속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고, 역시 냉전시대의 산물인 한·미·일공조체제가 아직도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그 동안 보아왔듯이, ’남북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남북대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절차문제들에 관한 합의는 어렵지 않았으나 민족화해나 평화 그리고 통일문제의 본질적인 접근이나 절충에는 늘 의견의 일치를 보기 어려웠던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남북관계는 일정 기간동안 ’대세’와 ’현실’ 속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양적으로는 빈번하게, 질적으로는 미흡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그리하여 이산가족 상봉이나 체육 및 관광 교류 부분은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진전되어 새해에는 혈육들의 생사 확인이나 편지 교환, 면회소 설치를 통한 상봉은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각종 체육경기나 예술 및 학술, 종교, 관광 등은 선택적으로나마 교환 접촉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장관급회담, 군사회담, 국방장관회담 등을 통한 군사적 긴장완화문제, 평화협정의 합의는 남북화해 시대에 걸맞는 인식의 전환과 법률적,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는 대화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곧 한계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고 더 이상의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올해의 남북관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실현 여부가 분수령

따라서 올해의 남북관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실현 여부가 그 전진적 발전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6.15 남북공동선언’을 성실하게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그리고 그 선발대적 성격을 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이루어진다면 그것 자체로서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됨은 물론 그 이후의 남북관계는 새로운 변화와 진전을 동반하여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국가보안법이나 한·미·일 3각 공조체제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냉전체제의 유물들에 대한 완화 조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남북의 정상이 만나게 되면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민족통일의 본질적 문제인 군사문제 등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여 일정한 합의를 이루어내고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곧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의 제약요건이 해결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그만큼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각 분야에서 여러 형태의 대화와 교류가 빈번하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그야말로 한풀이, 장사, 관광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민족화해와 평화 그리고 자주적 통일을 향한 전진적 남북관계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의 중요한 또 하나의 변수는 통일운동 진영의 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연대(준)’의 출범은 시의적절하고, 아울러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한다. ’통일연대(준)’는 출범 취지에서 천명한 것처럼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정당 사회단체와 개인들을 두루 포용하여 통일운동의 구심체로서 자기 역할을 해야하고,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출처:통일뉴스 2001/1/5 ]

민족통신 1/8/2001 minjok@minj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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