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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유태영 목사, <신천 학살은 미군학살이다>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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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7-10-09 00:00 조회11,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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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목사(77. 재미통일운동 원로)는 최근 <남북정상회담경축 국민대회>에 참석했다가 민중의 소리와 가진 대담을 통해 북녘 신천에서 6.25전쟁시기 일어난 대학살사건은 동족간의 사건이 아니라 미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만행이다.>고 지적하는 한편 이 사건에 대한 황석영 작가의 작품, <손님>에서 언급된 자신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민중의 소리> 27일자 대담기사를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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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끼리 밖에 길 없다"

[인터뷰] 유태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상임고문


정지영 기자

<##IMAGE##> “황석영 씨 소설에 내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책방에 가서 샀다. ‘손님’이라는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내 얘기를 듣고 신천 학살은 동족학살이지 미군학살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왜곡해 버렸다.”

미주지역 통일운동을 이끌어온 유태영 목사가 서울을 방문해 소설가 황석영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유 목사는 지난 19일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경축 국민대회’에 해외대표로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고, 20일 인사동에서 열린 유 목사 환영 만찬회에 참석했다.

유 목사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미주본부 공동의장을 역임했고 현재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공동대표로 있다. 또 재미동포 전국연합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으며 미국 교계의 원로이다.

“황석영 씨가 방북한 후 독일로 도피한 동안 여권이 만기 돼 국제 고아가 됐다. 대한민국에 들어가면 감옥에 가고 여권도 없고...... 그 때 황석영 씨가 미국 대학의 초청으로 왔고 하버드대 등 한국 유학생들 모임에서 초청도 많이 받았다. 나와 만나게 됐는데 내 고향인 황해도 신천이 바로 황석영 씨 아버지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 목사는 전쟁 시기 목격한 학살의 비극을 황석영 씨에게 생생히 전했다고 한다.

“내가 19살 때 전쟁 중이라 독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오니 유엔군이 밀려온 상태였다. 유명한 신천미군양민학살은 목격하지 못했고 우리 마을의 일만 목격했다. 당시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이 산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떼를 지어 피란 가려고 내려왔다. 그 때 우리 마을은 대부분 기독교였는데 교회 간부들이 동네의 30세대가 빨갱이라며 치안대를 조직하고 인민군의 총을 빼앗아 학살했다. 그들을 새끼줄로 묶고 우물 판 데 넣고 석유를 부어 불을 질렀다. 거기서 뛰쳐나오면 찔러 죽이고 그랬다. 황석영 씨한테 그 때의 얘기를 했다.”

또 당시의 상황이 현재 한국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
유 목사는 “당시 신천 사람들이 남쪽으로 와서 90~100% 목사가 됐다. 과거에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양심의 거리낌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큰일이나 한 듯이 생각하더라. 빨갱이를 죽인 건 당연한 거라고. 이북에는 교회가 없고 여기는 교회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며 “이들이 헤게모니를 잡았다. 그래서 60년대 교단이 전부 반공주의였다”고 말했다.

“어느 날 황석영 씨 소설에 내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책방에 가서 사서 읽었다. ‘손님’이라는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내 얘기를 듣고 신천 학살은 동족학살이지 미군학살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왜곡해 버렸다. 거기에 나는 유다니엘로 나오고 나의 형(목사)도 나온다. 작가의 상상력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문제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IMAGE##> 즉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으로 유명한 신천학살사건에 대해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짚지 않고, 유 목사가 목격한 장면을 확대해서 동족 간의 학살로 왜곡한 데 대해 분노한 것이다.

만찬에 참석한 원로 중 많은 분들이 과거 인혁당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는 소개를 들은 유 목사는 "인혁당 사건은 내가 통일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목요기도회 활동을 하며 인혁당 사건을 접했고 박정희 정권의 문제, 분단체제가 강요한 희생에 눈을 떠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임수경 씨가 방북할 때는 대학 다니는 아들을 평양에 보냈는데 아들이 내 고향을 비디오에 찍어 왔다. 이 때 자극을 받고 미국에 와서 인생을 헛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해 범민련 1차 대회 때 평양에 가게 됐다."

또 “여러분의 인생을 존경한다. 미국의 기독교, 한국의 기독교(보수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근본적인 하나님, 내가 믿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희생과 고난을 알고 계신다”고 갖은 탄압 속에 수십년 간 통일운동을 지켜온 남측 원로들을 위로했다.

끝으로 정상회담에 바라는 바를 전했다. 유 목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민족끼리’를 분명히 해 달라는 것"이라며 ""우리 민족끼리’밖에 길이 없다. 남북 경제교류에서 성과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근본적으로 미국의 간섭을 끊어버리고 우리 민족 독자적으로 나갈 수 있는 획기적 전환점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국민들이 무릎을 치고 희망을 가질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09월27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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