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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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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주한미군 철수와 통일 전망 /박 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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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0-12-27 00:00 조회3,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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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철수 국민운동본부(공동의장: 리인수, 임찬경)는 12일 창립1주년 기념식을 갖고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박세길 전국연합 "민"지 편집위원장이 강연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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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결합하고

공통 과제인 주한미군 철수투쟁을 중심을 전개.."

1. 지금 우리는 전혀 새로운 역사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드디어 연방통일조국의 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참으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어 놀라운 변화를 연출하고 있다. 그토록 강고하게 느껴졌던 남북 대결의 장벽이 봄바람에 눈 녹듯이 녹아 내리고 있다. 체제 상호간의 경쟁과 비방을 자제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대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이러한 남북관계의 거대한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이 역시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당시의 벅찬 순간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금 암흑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던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 우여곡절은 있을지언정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왜냐 하면 과거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던 시기와 지금은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미간의 군사문제이다. 미국이 한반도 남녘 땅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북한과 대치해 온 것이야말로 분단의 시작이며 동시에 분단 지속의 근본적 요인인 것이다. 남북관계는 바로 이러한 북미 군사관계가 어떻게 작동되는가 여하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은 미국이 패배하면서 중국과의 화해를 모색하던 시기에 탄생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곧바로 한반도를 대소 전초기지로 삼으면서 7·4남북공동성명은 첫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말았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당시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한에 배치되어 있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는 등 한반도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모색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신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결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정상적인 실현이 가로막히게 되었다. 이렇듯 상황이 반전될 때마다 미국에 정치군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남한 정권이 태도를 일순간에 바꾸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로부터 북미간의 군사문제가 풀리지 않은 조건에서 지속적인 남북관계 개선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것임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그런데 지난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은 거듭하던 북한은 마침내 반세기 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결정적으로 돌파하는 쾌거를 일구어내게 되었다. 북한이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를 통해 미국 전역을 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 능력이 있음을 선포한 것은 바로 그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시도한다면 미국 역시 치명상을 입게 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미국이 더 이상 군사적 압박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은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 하면 북한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조건에서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수 밖에 없었다. 즉 미국은 북한을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립적인 완충지대로 삼는 것을 최소의 목표로 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여 미국의 영향권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 변화는 필연적으로 남북관계 변화를 요청하게 된다. 만약 지금까지처럼 남북이 극단적인 대결을 계속한다고 한다면 미국의 전략은 원만히 추진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지 북한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면 일단은 친해져야 한다. 그런데 수족처럼 부려먹던 남한 당국이 북한과 여전히 대결 입장을 고수한다면 미국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 편을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남한 편을 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남북이 대결을 중단하고 평화공존하기를 바란다. 물론 이러한 평화공존 구도는 엄격한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즉 남과 북이 통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 통일은 종국적으로 자신의 개입 여지를 지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평화공존하면서도 통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 하면 평화공존으로 돌입하는 순간 곧바로 엄청난 통일 열기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연합은 바로 이러한 미국의 고민을 풀어준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정책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즉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그 목표를 추구하는 정략 방도에는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 같은 변화를 과소 평가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조차 있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는 미국의 전략 변화에 대해 예의 주시해야 한다. 상대를 모르면 결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의도하는 바가 곧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지극히 비주체적인 패배주의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전략이 변화했다는 사실이며 그러한 변화를 일으킨 것은 북한의 강력한 공세라는 사실이다. 즉 정세변화의 주동성은 미국이 아닌 북한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부 미국인들이 여전히 군사적 대결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민족 주체역량이 제대로 발동된다면 우리 민족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더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종착점은 한반도 분단의 근원인 주한미군 철수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 우리는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은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갈 존재가 아니다!"라는 진지한 충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진실로 우리는 결코 조급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가볍게 봐서도 안 된다. 안일한 낙관주의는 모든 것을 망쳐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비상한 국면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해왔던 그대로 열심히만 하면 되는 시기가 아닌 것이다. 급변하는 정세를 따라 잡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은 지난 상반기로서 족하다.

지금은 최후의 승리를 향한 치밀한 준비를 해야할 때이다. 최후의 승리는 준비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럭저럭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겠지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승리를 움켜쥘 자격이 없다. 참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역사의 준엄함은, 한 번 주어진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준비가 부족하다 하여 모처럼 다가선 기회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역사가 끝내 우리를 외면해버리고 말 것이다.

2. 주한미군 철수시킬 수 있다!


주한미군 문제는 아주 특별한 사안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 단계에서 제기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주한미군 문제야말로 해방 이후 모든 모순이 발생하게 하는 만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즉 주한미군 철수 요구는 가장 본질적 문제를 공략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측 민족민주운동 진영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지 못했었다. 주한미군 철수를 내건다는 것 자체가 으시시한 찬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처럼 반공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주한미군 철수가 대중적 구호로 자리잡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민족민주운동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 일관되게 고민하고 그 해결 방도를 모색해 온 것은 아무래도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오랫동안 주한미군 문제에 대하여, 미국이 언제인가는 반드시 북한을 치고 들어올 것이라고 하는 전제 위에서 전략을 수립해 왔다. 즉 북한은 미국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가해 올 경우 정의의 전쟁, 해방전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강제 철거하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러한 전략에 대한 획기적 변화를 모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요체는 미국이 반드시 치고 들어 올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를 어떻게 격퇴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처음부터 북한을 건드릴 수 없는 실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정치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으로 집약된다. 북한이 이 같은 새로운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 다름 아닌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었다. 1998년 8월 31일 광명성 1호 발사는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능력을 입증하는 대사건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진정한 의도는 미국을 정치협상에 끌어냄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의도는 결과적으로 매우 적확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도리 없이 미국은 북한과의 정치협상에 응하면서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은 협상에 나서는 양측이 의견을 접근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정치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중미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한반도를 최소 중립적인 완충지대로 만드는 것인데 이는 북한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확연히 달라도 당면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해 의견을 접근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커진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미국과의 정치협상의 연장선상에서 해결을 모색할 것이다. 주한미군 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의 전략이 비평화적 방도에서 평화적 방도로 뚜렷하게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통일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전략 변화를 주도한 것은 현재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하여 국내외 정세변화를 통한 자진철수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미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등을 통해 주한미군의 공식 주둔 명분이었던 정전협정 체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과 북일 수교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로 빚어질지 모르는 남북간의 군비경쟁과 일본의 재무장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즉 주한미군의 국제 정치적 존립근거를 박탈함으로써 자진철수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직접적이고도 전면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차피 정치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는 상대의 자존심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일련의 정치협상은 미군철수에서 결정적 의의를 지닐 것이다. 어쩌면 주한미군 철수의 상당 부분은 여기서 판가름날 것이다. 그런 만큼 남측 민족민주진영은 북한의 전략 변화를 고려하면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주한미군은 전 민족이 함께 해결해야 할 대상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남과 북이 일정한 차이가 있다고 하는 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주한미군은 전쟁위협의 요인이면서 통일의 결정적 장애물이다. 반면 남한과의 관계에서 주한미군은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요소들을 고스란히 포함하면서도 중요하게는 직접적인 식민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로부터 남한에서는 정치군사적 예속을 핵심으로 생존권, 인권, 환경 분야에서 각가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당연히 남한에서의 주한미군철수 운동은 미국의 식민지배 체제를 허물고 민족자주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 된다.

또한 남측 민족민주진영은 현재로서는 미국과의 정치협상 여지가 없다. 설령 정치협상을 원한다 해도 미국이 응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협상 자체가 상대를 대등하게 인정한 기초 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측 민족민주운동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대중정치투쟁밖에 없다. 따라서 결론은 매우 명확하다. 민족민주진영은 미국의 식민지배를 허무는 관점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전면에 내걸고 강력한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더불어 정치협상의 여지가 없는 만큼 조직된 민중의 힘으로 강제 철거하는 방향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남측 민족자주역량을 결정적으로 강화하고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해외는 미국 본토를 중심으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베트남 전쟁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다. 즉 미국의 심장부 안에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불타오를 때 미국 정부에게 강력한 정치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이렇게 남북해외가 각자의 조건에 걸맞은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할 때 최종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여기서 남측의 강제철거를 위한 정치투쟁과 북측의 정치협상을 통한 자진철수 유도 전략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도리어 남측에서 강제철거를 위한 정치투쟁이 보다 광범위하게 전개될 때 북측의 정치협상력은 한층 강화될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북측의 정치협상은 남측의 정치투쟁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해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주한미군 문제는 기본적으로 평화적 방법에 의한 정치적 해결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치협상을 위주로 하느냐 아니면 대중정치투쟁을 기본으로 하는가에서 남북의 역할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코 베트남전쟁에서와 같은 군사적 수단에 의한 해결은 우리가 선택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3.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전망이 열리고 있다


1) 정치투쟁의 요체


지난 8·15행사 직전 어느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자리에서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정치적 판단 문제가 논쟁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냉전질서 해체를 위해 김대중 정권과도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은근히 내비친 데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을 탄압하는 김대중 정권에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결과 투쟁 모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제출되기도 하였으나 투쟁을 강조하는 측(?)으로부터 김대중 정권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유보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이 논쟁은 당시 토론회 자리에서 말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판단의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정치적"이라는 용어는 흔히들 쉽게 사용하지만 본래 의미는 매우 심각하고도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때리면 싫고 달래면 좋고" 하는 그 정도의 수준을 가리켜 정치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마찬가지로 정치투쟁은 무작정 후려치고 들이박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정치투쟁은 지배세력을 끊임없이 쪼개고 흐트러뜨리면서 우리편을 불려 가는 고도의 전략전술에 기초한 것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성은 명확하게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지향할 때 발생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남측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적 승리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으로 결실 맺는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미국의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사회변혁을 추진하며 연방제통일국가의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가장 확고한 정치적 담보이다. 민족민주운동은 바로 이러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뚜렷한 전망 속에서 나오게 된다. 오늘날 김대중 정권에 대한 태도 역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일련의 계획에 비추어 판단 내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민주진영의 정치투쟁 지침으로써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전략전술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권력 교체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를 수반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 없이 권력이 교체되지는 않는 것이다. 왜냐 하면 권력은 언제나 사회적 주도세력의 손에 장악되기 때문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혁명적 권력의 등장은 바로 기존 지배세력과 피지배 세력의 관계가 혁명적으로 뒤바뀔 때 가능한 것이다. 사회적 세력관계의 혁명적 변화는 피지배세력의 힘이 기존 지배세력의 힘을 능가하는 것을 충분조건으로 하지만 기존 지배세력이 결정적으로 분열되어 약화되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삼는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역시 기존 친미예속적인 분단체제에 균열을 야기하면서 지배세력의 분열 약화를 유도하는 것을 필요 조건으로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분단세력을 통째로 몰아넣고 들이박는 것으로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전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자칫 지배세력의 결속만을 도울 수도 있다.

그런데 지배 세력의 분열과 약화는, 대체로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지배방식을 전환할 때 발생한다. 왜냐 하면 기존 방식을 통해 기득권을 보장받으려는 구세력과 지배방식의 전환을 통해 주도권을 거머쥐려는 신세력 사이의 사활을 건 다툼이 분열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통일정세가 바로 그러한 지배세력 내부의 분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의 급변하는 한반도 통일정세는 바로 이러한 기존 지배세력을 두 조각 낼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왜 그런가.

2) 분단세력을 분열 약화시키기 위한 방침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미국은 기존 방식으로는 한반도 지배를 관철시킬 수 없게 되었다. 남북대결 구조를 전제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경제봉쇄 정책은 명백한 파탄을 맞이하고 있다. 만약 기존 정책을 고수하게 된다면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중국은 남북한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만 미국은 북한을 굴복시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친하게 지내지도 못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존의 군사적 대결 정책을 접고 평화공존에 기초한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미국의 대북 전략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존 분단체제의 균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하나의 지배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질서를 하나로 묶어주는 이념적 끈이 필요하다. 그 끈에 묶여 있는 세력은 동일한 정체성을 느끼면서 지배질서에 충성을 바치게 된다. 마치 조선시대 양반집단이 유교라는 이념적 끈으로 묶여진 상태에서 봉건질서에 충성을 다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난 반세기 분단세력을 지배세력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끈은 반북대결이라는 이념적 끈이었다. 그런데 그 끈이 어느 순간에 맥없이 풀리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기존의 반북대결이라는 끈을 더 이상 붙들어맬 수 없게 된 것이다. 왜냐 하면 북한과의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전략은 반북대결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의 반북대결의 끈을 풀어버리고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이념적 끈으로 지배세력을 새롭게 묶어내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존 반북대결의 끈에 묶여 있던 세력들 모두가 기꺼이 새로운 끈에 몸을 내맡기지는 않는다. 반북대결 구조 속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그들인 만큼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도리어 그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남북관계 변화가 극히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심하게는 미국의 전략 변화마저 지극히 일시적인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당연히 영화로운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분단 세력은 평화공존의 흐름으로 날렵하게 몸을 싣는 세력과 기존 반북대결 구조에 집착하는 세력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국의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그 뒤를 잇게 된다.

하지만 반북대결 세력은 궁극적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반북대결세력은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준 미국으로부터 더 이상 무조건적인 후견을 받을 수 없게끔 되어 버렸다. 더욱이 반북대결 세력은 민족자주진영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바 이러한 도전은 의외로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실로 맺어진 6·15남북공동선언은 반북대결 세력이 자신을 추스릴 여유도 주지 않고 반북대결이라고 하는 이념적 끈을 사정없이 잘라 버리고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침없는 남북화해 메시지는 말 그래도 반북대결 세력의 사고를 파괴하는 강력한 폭탄이 되어 날아들고 있다.

반면 평화공존의 끈은 아직 형체조차 애매한 채 어디서 어디까지 둘러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기존 반복대결의 끈에 자신의 사고가 묶여져 있던 지배세력들은 급격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 직후 지배세력 내부에서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믿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 심하게는 내가 무언가 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내가 오랫동안 꿈을 꾼 것은 아닌가! 등등…….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다. 지난 1990년대 소련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북한 붕괴론(?) 유포 등을 계기로 민족민주진영이 극심한 사상적 혼란을 겪었는데 이제 그 비슷한 현상이 반북대결 세력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반북대결 세력은 그 이념적 끈이 풀리면서 급격한 해체 과정을 거칠 것이다. 우리가 남북공동선언을 전민족적 합의로 전환시켜 냄으로써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굳혀 가자는 것은 바로 분단 세력을 두 조각 내고 그중 반북대결 세력을 결정적으로 해체시키는 것을 그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바로 그러한 반북대결 세력의 해체를 법적으로 확정짓는 과정임에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당연히 6·15남북공동선언 지지관철투쟁은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그 중심 고리로 삼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했다가 들은 모 박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과거 1970년대까지는 북한이 남한에 비해 국력에서 앞섰기 때문에 자신 있게 연방제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한에 비해 국력이 열세에 놓여지게 된 요즈음은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북한이 겉으로 연방제를 주장하지만 내심은 연방제를 원치 않고 있다. 왜냐 하면 발전된 남한에 자신을 전면 개방할 때 체제 위기가 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논박한 바 있다.
"연방제를 하면 북한이 체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했는데 실은 그 반대 아닌가. 연방제는 고사하고 남북정상회담 한 번만으로도 남한 체제에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벌써 친미반공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데 이야말로 체제 위기가 아닌가. 진정 연방제를 해서 남한 체제는 멀쩡한데 북한 체제가 흔들린다고 한다면, 남한에서 연방제를 금기시할 이유가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남쪽에서는 연방제를 입밖에 꺼내지조차 못하고 있는가. 정말 연방제를 하면 북한 체제에 위기가 발생한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인가"

그렇다. 남과 북이 대결을 그만두고 화해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설수록 민족대결에 기반 하는 기존 남한 체제는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3) 최후의 승리를 위한 조건


한반도에 존재하는 세력은 크게 연방통일세력과 분단세력으로 나눌 수 있으며 분단세력은 다시 반북대결세력과 평화공존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연방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민주세력과 평화공존세력은 통일에 대한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도 있다. 평화공존세력은 여전히 통일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보아 분단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북대결 체제를 해체시키고 민족적 화해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일정 정도 이해관계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연방통일을 위해서나 평화공존을 위해서나 반북대결 체제를 허물어버리는 것은 공통된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력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대립 구도에서 민족화해세력 대 민족대결세력(반북대결세력)의 구도로 전환시켜내야 한다. 그리하여 반통일세력을 두 조각 내고 그중 민족대결세력을 짓뭉개버려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6·15남북공동선언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굳혀 가는 것은 이를 위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러면 변화된 국면에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조건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민족화해 국면으로 전환한 이후 연방통일로 갈 것이냐 평화공존을 통해 사실상 영구 분단으로 갈 것이냐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주한미군 처리를 핵심으로 하는 민족자주의 문제이다. 왜냐 하면 평화공존 노선의 실체는 미국의 영구적인 한반도 분할지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관계없이 주한미군 문제를 건드리면서 반외세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나아가 강하게 반발한다.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통해 미국의 부당한 개입 여지를 차단시키는 것이야말로 평화공존 노선의 생명줄을 끊어놓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연방통일세력이 평화공존 세력을 제압하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을 주도할 수 있는 최후 승부처는 바로 주한미군 철수투쟁인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투쟁을 여러 사안 중 하나로 떼어내서 전개한다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에 성공할 수 없다. 설사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해도 반드시 연방통일세력의 정치적 주도권이 확고해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격변의 시기에 기존 질서를 허물어뜨린 것은 민중이지만 전혀 다른 세력이 권력 장악에 성공하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 왔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민중이 정치적 대표를 선택할 때는 자신의 생활적 이해를 실현해 줄 수 있는가 없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즉 사회변혁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광범위한 민중은 연방통일세력의 확고한 정치적 지지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해 조국통일운동은 사회변혁운동과 밀접히 결합되지 않고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운동의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조국통일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이 공통 과제인 주한미군 철수투쟁을 중심에 놓고 제반 사회변혁적 과제를 밀접히 결합시켜 전개해야 한다. 이는 연방통일 조국의 확고한 동력을 구축하는 것임과 동시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오랜 염원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2000. 11. 12

주미철 국민운동본부 11/12/2000 onekorea@on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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