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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목사]남미의 해방자-우고 차베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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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7-02-03 00:00 조회16,9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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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유태영 목사(범민련 재미본부 고문)는 남미지역의 우고 차베스 베네주엘라 대통령을 민중해방 지도자로 지적하며 그의 삶과 남미사회의 발자취, 특히 베네주엘라 역사에서 반미반제를 부르짖었던 선대 지도자에 대한 역사도 담겨있는 깊이 있는 글을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했다. 감사드리며 이 글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남미의 해방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IMAGE##> 우리 나라 속담에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본다” 라는 말이 있다.1400년대에 북아메리카를 침략한 영국의 침략자들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자유의 추구자 들이다. 하지만 저 남아메리카로 향한 스페인 사람 들은 황금의 추구자 들이다 “ 라고 흉을 보았다고 한다.

“Freedom Seeker” 와 “Gold Seeker” 의 차별을 주장하면서 “우리 영국인들은 저 스페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 “ 라고 역설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침략자의 변명인가?
침략에 무슨 우월이 있단 말인가?

자유의 추구자 라고 주장한 영국을 주축으로한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가지고 온 종교는 개신교 (Protestant Church) 이였다. 하지만 황금의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진 황금의 추구자 라는 누명을 달고 남아메리카로 향한 스페인게의 식민주의 자들이 가지고 온 종교는 천주교 (Catholic Church) 이였다.
그럼으로 남미로 향한 스페인 침략자들의 식민 정책은 보다 더 권위주의적 이였고 보다 더 엄하고 보수적 이여서 무조건적인 종교적 복종을 원주민 들에게 강요했다.

어쨌던 남미에서 침략의 발거름을 시작한 스페인 식민주의 침략자들의 “황금의 추구 “ 의 행동은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포악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에는 스페인과 포도아인들이 먼저 대량으로 오기 시작 했고 나중에는 영국, 벨기에, 불란서인등 많은 유럽의 식민주의 자들이 줄을 이어 남미를 침략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식민주의 침략자들이 저지른 만행은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만행에 못지 않게 잔인무도 하였다. 남미의 인디안족을 비롯한 모든 토착종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노예화 할뿐만 않이라 싸우다가 패배하고 겨우 살아남은 인디안과 토착민들은 땅을 빼았기고 빈몸으로 밀림속 으로 쪼겨 가야만 했다.

노예상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대량 실어와 남미 침략자들에게 판매
하여 10배의 이익을 보았으며 흑인노예 1명에 $5로 판매 하였다.

베네수엘라가 스페인 침략자들의 눈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1,500년대 초에
있었던 일 이었다. 하지만 성급한 스페인 침략자들은 베네스엘라에 묻쳐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지상의 풍요로운 천연적 자원에 대하여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그들은 보다 더 큰것을 탐험하려고 타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후로부터 약 100년이 지나서야 스페인 침략자들은 베네수엘라에 다시 도라와 농산물들을 착취하여 유럽으로 수출하기를 시작 했는데 코코아, 밀, 가죽등을 수출했다.

하지만 그 때 스페인의 왕은 식민지에서 농산물 보다는 금광석등 지하자원의 회득을 더 원하고 있었다.

1749년경에 베네수엘라를 침략한 스페인 침략자들은 베네수엘라 땅에 스페인의 뿌리를 내리면서 유럽에 있는 스페인 왕권정부 사이에 상호 불화와 분규가 심화되기 시작 헸다. 그 후로 약 50년후인 1800년대 초부터 베네수엘라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에 성공한 침략자들은 이제는 본국정부인 스페인 왕권정부의 지배와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버서나 자주독립을 원했고 독립을 위하여 민중운동을 시작 했다.

1811년 12월21일에 드디어 스페인 침략자들은 Miranda의 령도하에 베네수엘라 식민지 역사 300년을 마감하고 공식적으로 베네수에라를 스페인 본국정부 로부터 분리되여 독립하는 최초의 독립헌장을 채택하고 선포 했다. 하지만 Miranda는 1816년 7월 25일에 독립을 완강히 거부하는 스페인 왕정 에의하여 체포되고 투옥되였다가 옥사하고 말었다.

하지만 Miranda 사망후 약 100년 동안 베네수엘라 독립주의자들은 스페인 본국의 왕정에서부터 이탈하여 남미에 자주자립하고 독립한 새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장엄한 투쟁의 행진을 끝칠줄 모루고 줄기차게 게속 했다.

베네수엘라의 역사를 대략 4기로 나누어 본다.
제1기 스페인 식민통치 전성기(1526년 – 1800년)
제2기 스페인 식민통치 에서부터 버서나려는 독립운동기(1800년 – 1830년)
제3기 베네수엘라 내부의 인종간 평등과 민주화 투쟁기(1830년 – 1900년)
제4기 미국 제국주의 외세침략과 반미반외세 투쟁기(1900년 - )

베네수엘라 역사를 4개의 단위로 나눈 년대에 다소 오류가 있음을 시인한다. 하지만 이 글의 뜻은 제4기에 속하는 1900년대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략 하는 외세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반미 반외세 투쟁 역사 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의 오랜 역사는 스페인 침략자들이 인디언 원주민과 모든 토착종족들을 살해하고 추방한 침략의 역사 이였다. 그리고 침략에 성공한 스페인 침략자들은 멀리 유럽에 있는 스페인 왕권통치 에서부터 버서나 자주독립을 하기위하여 줄기차게 싸워 온 독립투쟁의 역사 이였다.
그리고 또한 독립을 한후에 베네수렐라 내부에서의 인종간의 불화와 계급 투쟁의 역사 이였다.

하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서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미국 제국주 자본주의 자들이 베네수엘라를 경제적으로 악탈하고 예속화 하려는 제2의 침략자 들과의 투쟁의 역사 인것이다.

그러므로 베네수엘라의 옛날의 역사는 인디안과 토속원주민을 마구 침략하는 침략자 로서 가해자의 역사 이였다. . 그러나 오늘에 있어서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싸워아 할 피침략자 로서의 항쟁의 역사 인 것이다. 즉 가해자의 위치에서 피해자의 위치로 바꾸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유럽의 스페인 혈통과 기타 유럽게 백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오늘의 베네수엘라의 부유층에 속하는 소수의 엘리트 권력자들은 베네수엘라 민중의 소중한 안전과 인권을 빼았고 희생시키면서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교묘하게 결탁하여 백인 조상들이 침략시대에 획득한 그 오래된 옛날의 기득권과 유산들을 끝까지 지키고 옹호하려고 친미 친제국주의 추종의 노선을 적극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나라 안에서 도전해 오는 백인 침략자 후손들의 부유층 기득권 세력과 싸워야 함과 동시에 또한 다른 한편 나라 밖에서 부터 도전 해오는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과의 투쟁을 동시에 전개 해야할 이중의 무거운 짐이 양어께에 지워져 있는것 이다.

대내적 으로는 민중의 평등과 민주화를 위허여 백인 기득권 엘리트 세력과 싸워야 하며, 대외적 으로는 자주와 자립을 위한 반미 반외세와 벅찬 투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1.반미반제의 선봉자 키프리아노 카스트로 대통령

키프리아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899년부터 1908년까지 9년간 집권 하면서 베네수렐라의 역사상 처음으로 반미반제 정권을 수립하는데 선봉자 역활을 했다.

그는 인디안의 혈통과 토착종족의 혈통인 두 혈통을 이어받은 지도자 이였다.
그는 백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엄청난 시련과 위험속에서 투쟁을 하였다.
그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카스트로 대통령을 “작은 고약한 원숭이” 라고 멸시 했으며 기회만 허락되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겠다고 공공연히 엄포를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스트로 대통령은 굳건히 서서 미국의 이익에 종사하는 친미 자본을
차단하고 봉쇠 할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으로 원자재들을 수출하는
백인 수출업자들에게 금지령을 내리기 까지 했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의 백인 권력자들이 미국의 거대한 지본과 결탁하여 이득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지난 시기에 있어서 오래동안 게속된 양국의 역사적 흐름과 맥락에대하여 비주류에 속하는 혼혈출신의 카스트로 대통령이 헤성처럼 나타나 잘못된 역사의 흐름을 차단하고 바르게 흐르도록 전환 시켰다는 것은 그때 베네수엘라 에서는 상상도 못할 어려운 일 이였다.

그래서 미국의 국무장관 엘리후 뤁 은 카스트로 대통령에게 “ 미친 야수” “버르장없는 놈” “외소한 검둥이” 라고 하면서 온갓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유일한 희망은 베네수엘라의 상류층 세력들이 봉기하여 카스트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반란을 이르키기를 바라고 있었다.
백인 상류층의 지원이 끊기면 카스트로 대통령은 자연히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리라고 미국은 장담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때에 기다리고나 있었던것처럼 베네수엘라의 백만장자 안토니오 마토스가 미국을 등에 업고 카스트로 대통령을 축출하기위한 반정부 음모를 전개했다.
하지만 마토스의 친미적인 반정부 소동은 2년동안에 12,000명의 희생자만 냈을뿐 실패하고 말었다.

마토스의 실패를 보고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었다.
미국은 또다시 뒤에서 베네수엘라에 내분을 조장하고 잇을뿐만 않이라 내분에 직접 개입하여 이번에는 미군이 직접 나서서 베네수엘라의 카스트로 대통령을 강제로 납치하였다. 납치를 당한 카스트로 대통령은 건강상 이유라는 핑게로 저 멀리 유렵 영국으로 보내졌고 미군은 카스트로의 귀국을 영구히 봉쇠했다.

1909년에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친미적 부유층에 기반을 두고 있는 빈센트 코메즈를 임시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세웠다. 두 말할 필요도없시 미국이 직접 세워 놓은 과도정부의 수반인 코메즈는 오직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하수인으로서 미국에 충성할뿐만 않이라 베네수엘라 민중에 대해서는 무서운 독재자로 군림 했다. 코메즈의 무서운 독재는 거의 30년을 게속하다가 1935년에 그의 사망으로 끝났다.

코메즈가 무서운 독재를 하고있는 그 시절에 베네수엘라에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 했는데 그것은 1920년대에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일 이였다. 석유의 생산과 독재자와 미국의 자본주의적 석유회사와의 상호 관게는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운명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뿐 이였다. 코메즈 대통령은 30년 독재를 끝내고 사망했지만 그후 게속되는 군부의 쿠테타로 베네수엘라의 민주화의 앞길은 점점 더 멀고 멀어질 뿐이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민중은 반미반제의 기치하에 민주화에 적극 나서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에 들떠 있섰다. 1940년대에 드러서면서 베네수엘라의민중속에서 “생동하는 민주운동” (AD) 이 라는 선풍이 일기 시작 했다. 이 운동으로 인하여 빈민들이 선거에 참여할 의욕이 생기고 18세 이상의 남녀는 누구나 다 선거권이 부여되는 새로운 법이 제정 되기도 했다.

1948년2월15일에 “생동하는 민주운동”(AD)의 순풍속에서 갈레고스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취임 했다.유권자 ¾이 선거에 참가하여 73%의 앞도적 지지로 당선 됐다.갈레고스 대통령은 석유재벌에게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돈으로 빈민들을 구제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데 주력 했다.

이런 정책이 백인 기득권층과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석유 재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리가 없었다.

갈레고스 대통령은 절대 다수 민중의 지지로 대통령에 추대 됬음에도 불구하고 취임한지 10개월 만에 미국에의한 3명의 군장교들이 주도한 무혈 쿠테타로 인하여 외국으로 추방되는 운명에 이르렀다.쿠테타를 이르킨 3인 군인중에서 델가도가 주도하는 군사정권이 친미적인 노선으로 베네수엘라를 이끌어 갔다. 하지만 델가도는 극단적인 극우파 세력과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 하면서 중도적 노선을 유지하려 했다. 이에대한 불만을 품은 3명중 한 사람인 페레즈에의하여 1950년11월에 델가도는 암살로 쓰러지고 말었다.

페레즈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정치활동을 정지시켜 놓고 스스로 자기자신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로 임명하는 무서운 독재자가 됬다. 쿠테타를 함께 이르킨 3인중에서 두 사람을 암살과 추방으로 깨끗이 제거한 후에 혼자 남은 페레즈는 스스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됬고 또 무서운 독재자가 됬던 것이다.

페레즈는 석유로 벌어 들인 돈으로 민중은 외면하고 NEW YORK’S ROCKEFELLE CENTER를 비롯하여 최고급 HOTEL등 미국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 헀으며 개인의 구좌에도 $250 MILLION을 가지고 있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으며 1954년에는 미국의 EISENHOWER 대통령으로부터 공훈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1957년에 형식적으로 선거를 실시 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시민투표에대한 공포심 때문에 페레즈 대통령은 긴급 조치를 발동하고 형식적으로 국민투표라는 비상 수단을 써서 투표후 2시간 만에 85%로 대통령에 당선됬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군민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하였는데 1958년1월1일에 공군 비행기 한대가 수도 카라카스에 폭탄을 투하 하는 큰 사건이 발생 했다. 이를 게기로 하여 전국적으로 민중의 데모와 파업이 휩쓰렀으며 견디다 못해 1957년 1월23일에 독재자 페레즈 대통령은 미국으로 도망 첬다. 페레즈의 축출로 인해 300명의 사망자와 1,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 하기도 했다.

페레즈의 8년 독재가 끝난후에 군부와 민간 단체 사이에는 혼합과 분쟁과 갈등이 게속되고 있엇다.
하지만 민주적 공명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대 원칙에 합의 함으로서 베네수엘라의 역사상 처음으로 3 개의 정당 단체를 대표하는 3명의 후보자를 놓고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생동하는 민주운동” 단체를 대표하는 베타코오트가 49%의 득표를 얻음으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당선 됬다.
베타코오트는 1959년2월13일에 대통령에 취임 했다.

베타코오트 대통령이 비록 민선에의하여 정권을 잡았다 할지라도 친미 기득권 엘리트들의 노골적인 저항과 미국의 끊임 없는 간섭은 여전히
게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자주와 민주화를 원하는 대하의 흐름은 절대로
끝치지 않고 게속 흘렀다.

1973년에 칼로스 페레즈가 대통령이 되였다. 그는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적 성향을 지닌 정치가 로서 석유의 횡재를 활용하여 사회
복지사업에 투자 했으며 미국의 손 아래에서 버서나 남미의 이웃 나라와의
수교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또 그는 그 당시 “사회주의 국제회의” 의 부회장이 되기도 했다.

칼로스 페레즈 대통령은 1973년에 취임하여 1988년 까지 비교적 안정된 장기 집권을 했으나 말년에 이르러 석유 값의 폭락과 그가 획득한 카리스마가
쇠퇴 됨으로 인하여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 했다.
그리고 미국의 네오콘이 강요하는 IMF로 인하여 친미정책을 강행 할 수 밖에
없게 되자 민심은 소란해지고 드디어 폭동이 발생했다.

차베스 중령이 쿠테타를 시도한 때가 바로 이때 이였다.
1992년 2월에 차베스 당시 중령이 쿠테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구속되였다.
2년만에 석방된후 차베스는 “제5공화국운동” 을 창당하고 1998년에 대선에 도전하여 56%의 득표로 페레즈 정권을 물리치고 베내수엘라의 대통령에 당선됬다. 차베스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배후에서 미국이 개입한 실패한 쿠테타로 인하여 긴장 했으며 또한 역시 미국이 개입한 대통령소환투표 라는 소동 으로인하여 7년의 집권 기간은 실로 고전분투의 기간 이였다.

그리고 2006년 12월 3일에 실시한 대선에서는 62.87%의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 3선의 대통령이 됬다.

지금까지 1900년대에 들어서서 베네수엘라의 주요 정치 변동 과정들을 대략 살펴 보았다.1900년대 초에 미국의 “뒷마당” 베네수엘라에서 반미 반제 운동의 선봉자로 키프리아노 카스트로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베네수렐라의 대통령이 되였다. 그후 부터 약 100이 지난 2006년 12월 3일에 오늘은 미국의 “앞마당” 이 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에서 21세기의 반미 반제 사회주의 운동의 선봉자 인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 된 것이다.


2. 베네수엘라의 성숙한 민주화

전 세계에서 뫃인 수백명의 참관인들이 가까히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대통령 선거는 75%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가 했으며 62.87%의 높은 지지율로 차베스는 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재선에 승리했다.
이번 선거는 베네수엘라 역사에서 처음 보는 성숙한 민주화의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 했다.

미국 CIA는 색안경을 끼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베네수엘라의 선거를 감시 하면서 방해 할뿐만 아니라 보수언론들은 총공세로 선거의 진행을 불투명하게
보도 했다. 하지만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미 국무부는 논평을 통하여
“ 차베스 대통령은 대선에서 깨끗하고 확실하게 승리했다” 라고 발표 할 수 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1920년 이후 6명의 미국대통령들이 획득한 득표율을 비교 해 보면 이번에 실시한 선거에서 차베스 대통령이 획득한 득표율이 훨신 더 높다는 사실이다.

1920년 WARREN HARDING 대통령 60.3%,
1928년 HERBERT HOOVER 대통령 58.2%,
1936년 FRANKLIN ROOSEVELT EOXHDFUD 60.8%,
1964년 LYNDON JHONSON 61.1%,
1972년 RICHARD NIXON 60%,.
1984년 RONALD REAGAN 58.8%,
2006년 차베스 대통령 62.87%

서방의 언론들은 차베스 대통령을 인기 영합 대중주의자 라고 격하하는 논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의 인기 요인은 풀뿌리 민중과 함께하는 “ 참여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토지노조 와 공동체 공동경영등 민중의 정치 참여를 주창하는데 인기의 기본적 요인이 있는것 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자원 의 국유화를 선언 함으로서 미국의 자유무역 주의자 들을 정면으로 들이박고 있다.
이와 같은 차베스 대통령의 인기 요인은 미국의 네오콘 자들에게는 건딜 수 없는 악몽이 될것이다.


3. 차베스 대통령의 종교

<##IMAGE##>차베스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후에 처음 마지하는 일요일 오후에 대통령 관저
전망대 밑에 뫃여 축하하는 군중들을 향하여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지도자의 역활을 한 이는 예수 이다”

도대체 차베스에게 있어서 예수는 누구인가?
차베스는 게속해서 그의 고백적인 말을 다음과 같이 또 했다.

“ 예수의 나라는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나라이며, 그리고 단합과 형제애와
사회주의의 나라이다. 예수의 나라야 말로 앞으로 베네수엘라가 지향해 나아가야 할 21세기의 사회주의적 나라인 것이다.
나는 예수가 아니며, 나는 또 예수와 같아 질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베네수엘라가 예수의 나라 처럼 될 수 있도록 힘을 쓸 것이다 “

차베스 대통령이 주장하는 예수의 나라는 19세기에 스페인 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웠던 Simon Bolivar 정신을 이어 받은 혁명적 개혁정신을 뜻한다.
차베스 대통령이 역설하고 있는 21세기의 사회주의 나라 건설의 꿈은 남미의 나라들에게는 좋은 일 이지만 미국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 된다.

역설적으로 Catholic 신자인 차베스 대통령은 보수주의적 기독교의 신자 라고 자처하는 부시 대통령보다 일요일에 교회에 출석 하는 성적이 좋치 못할런지도 모르 겟다. 하지만 차베스는 한 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그것도 유엔 총회의 연설 석상에서 부시를 향하여 “ 악마” 또는 “악마의 악취” 라고 직설적 으로 공격 했다. 이에 대하여 부시는 지금까지 아무 응답을 못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7녀간 사회적 복지와 가난한자들을 위해서 석유의 자원을 제도적으로 관리 운영 하도록 시도 했으며 앞으로 6년동안의 임기 에는 예수정신에 기초하고 기독교의 기본 윤리에 기초한 사회주의 복지 국가를 건설 하기 위하여 국가의 모든 자원을 투자 하겠다고 3선의 태통령 취임식에서 가족과 국민과 하나님께 맹세를 했다.

그런데 입으로 하나님 하나님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차베스가 아니고 부시 이다. 부시 행정부의 과고사는 말할것도 없고 최근에 있어도 미국은 남미 여러 나라 들에게서 미국의 이득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군사적 힘으로 지배하고 강요하는 침략적 정책을 게속하고 있다.
이런것을 보는 세계의 양심은 도대체 “부시의 하나님 “ 은 어떤 하나님인가 하고 의심을 품게 한다.

지난 100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역사는 미국의 석유식민지 역사에 불과 하다.
그럼으로 지금 차베스 대통령이 “예수의 나라” 를 주장 하고 있는 그 이유는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이 감행한 석유식민의 어두은 역사 에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스페인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Ctholic 교회와 그 전통에 대한 현실적인 종교적 마찰 인것이다 .

차베스 대통령의 종교는 해방의 종교이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예수의 나라” 는 민중의 외침을 외면 하지 않고 우익 제국주의 이데올기에 끊임 없이 도전하면서 기독교의 깊은 메시지를 새롭게 입증 하려는 참된 “예수의 나라” 정신에 기초한 민중 운동 인것이다.


4. 민중의 영웅 차베스 대통령

차베스 대통령은 1954년 7월 28일에 베네수엘라의 사바네따라는 시골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차베스 대통령을 민중의 영웅 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차베스는 유년 시절에 시몬 불리바르 장군의 전기를 읽고 어려서부터 백인 강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베네수엘라의 토착원주민들과 서민농민들이 죽도록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감수성이 강한 소년 차베스는 볼리바르 장군의 통치철학은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꼭 필요한 혁명적 사상이 되리라는 것을 소년 시절에 벌서 깨닫고 있었다,

소년 차베스에게 그렇게도 큰 감명을 준 볼리바르 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볼리바르 장군은 1800년대 초부터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예해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농민들에게는 토지무상분배 정책을 감행한 혁명가 이였다.
볼리바르 장군은 노예와 흑인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제도를 설립 하기도 했다.

볼리바르 장군은 주장하기를 “사회개혁 정책은 서두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하며, 극빈자에게 고기를 주는것보다 고기를 잡는 그물을 주어야 한다” 라고 주장 했다. 볼리바르 장군은 사회개혁 정책을 남아메리카 전역에 확대시켜서 대륙 전체에서 민중해방 운동을 전개하려 했다. 볼리바르 장군은 그 당시의 영웅으로 추대 될뿐만 아나라 오늘도 남미 민중 해방 운동권에서 여전히 존경받는 영웅이다.

그러면 차베스 대통령은 이와같은 “볼리바르 혁명사상” 을 이어받아 제일 먼저 실행 해야할 과제는 무엇 일까?

차베스 대통령은 지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 미주대륙자유무역지대협정” (FTAA) 에 대하여 반대 해야 하는것이 오늘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 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뿐마 아니라 남미 전체와 제3세게 가 함께 연대하여 FTAA 반대운동을 전개하도록 선봉을 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토지와 악덕 부호 정치인들이 불법적으로 강점하고 있는 농지 150만 헥타르를 몰수 하여 농민들에게 무상 으로 분배 함으로 개혁의 첯 발거름을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약 120만의 농민들이 처음으로 자기땅을 소유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에 있어서 교육부분과 국민복지분야에는 베네수엘라 역사상 볼수 없었던 빠르고 놀라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극빈자와 실업자 수도 크게
줄어드는 추세 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과 인내는 차베스 대통령의 개혁 운동에 있어서 성패의 원인이 될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볼리바리안 대안” (ALBA) 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의료 헤택과 문맹퇴치 운동에 국력을 최선으로 투자 할것을 천명한 대안이다. 민중은 그 누구나 인격을 지녔으며 인종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도록 재도를 세워야 한다 라고 ALBA는 주장 한다.

차베스 대통령은 빈민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위급한 상황을 해결 하기위하여 무료의료제도를 정착 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 게획을 실현 시키기위하여 쿠바에서 의사 4만명을 초빙 하여 베네수엘라 지방 전역에서 의료봉사를 하도록 배치 했다.

이와같은 대안계획 (ALBA) 으로 인하여 오늘 베네수엘라는 국민 70%가 무료로
의료헤택을 받고 있으며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 전국민이 모두 다 무료로 의무교육의 헤택을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에는 뿌리깊은 백인 엘리트그룹으로 형성한 권력층이 있다
이 권력층은 수 백년동안 조상으로부터 유산으로 이어 받은 이권들을 빼앗기지 않을려고 미국의 신보수주의 와 결탁하여 차베스 대토령의 정치쳘학을 무섭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가.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농민서민들과 토착원주민들과 흑인들을 포함한 민중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인간 대우와 사회의료복지 및 의무교육 헤택등 놀라운 역사적 변혁 을 경험하고 있다.오늘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은 의식의 변화와 국가에대한 의욕적 보답으로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저서 80%로 육박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민중들의 빈곤문재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 개혁 을 우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혁명가로서 물질적인 빈곤 문제 못하지 않게 정신적인 빈곤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차베스 대통령은 엄청난 독서를 통하여 문학과 철학, 정치와 경제 그리고 특히 라틴문학에 통달한 풍부한 지식를 가지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카리스마는 그의 높은 꿈과 정신력과 그리고 풍부한 지식에 근거 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카라카스 같은 큰 도시 에서 또는 저 아마존 밀림지대 처럼 미개한 지역에서 언제던지 교육기관과 학교 건축 준공식에 참석할 때는 군중을 향하여 “공부와 독서” 를 강조한다. 가난과 빈곤을 해결하는 길은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지성은 절대적 필수적 조건 이라고 차베스 대통령은 항상 역설한다.

차베스 대통령은 자기자신을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시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직을 맡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과 여론에 의하면 그는 틀림 없이 베네수엘라 뿐만 아니라 남미와 전세계 의 제3세계 민중들에게 까지도 영웅적 지도자로 추앙을 받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는 그가 어렸을때 독서를 통하여 감명 받은 “ 볼리바리안 혁명” 의 정도를 지금 힘차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5. 남미 사회주의를 꿈꾸는 차베스 대통령

지금까지 500년 동안 남미대륙은 서구 문명의 연장선에서 백인 침략자들의 꿈과 낭만의 땅이였으며 모험과 기회의 대륙 이였다. 유럽인과 백인의 혈통을 이어 받은 남미의 부유층 백인들은 이직까지도 자기자신들을 유럽의 일부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오늘 남미에서는 과거 몇백년 동안 남미를 지배해 온 미국의 이념적 헤게모니와 경제착취에 대항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제반미의 열풍이 남미전역에서 세차게 일어나고 있다.

유럽연합의 출현은 그들에게 그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미에서도 유럽연합에 상응하는 “메르코수르 의회” 를 출범 시킴으로서 남미를 정치, 사회적으로 통합을 하기위한 워대한 설게에 대하여 합의가 이루어 지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선봉으로 하여 오늘 남미에서는 에과도르, 보리비아,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쿠바, 파라과이, 우르과이, 베네수렐라등 여러 나라들이 반미반제의 깃발 아래 굳게 뭉처 남미 자체의 “국가공동체 정상회담” 을 발족하여 화합의 발거름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이제는 남미의 백인들이 더 이상 유럽의 일부가 아니며 차라리 남미의“백인 사생아”들 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갇다.

2006년에 남미에서 차베스 대통령의 지도를 선두로하여 6명의 좌파 대통령이
줄줄히 당선되여 집권을 하고 있다. 남미에 불어닥친 좌파열풍을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길이 없다.

미국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모순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결과 이기도 하다. 빈부격차가 심화되여 백인 특권 정치에대하여 염증을 느끼는 민중들의 성숙한 정치의식이 남미에 좌파정권을 세우는데 힘과 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남미에 수 없이 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서로 연계 협력하고 있으며 또한 흑인 노예들의 후손들이 하나로 집결된 민중의 정치력은 오늘 남미에서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1800년대에 시몬 볼리바르 장군이 남미의 해방을 위하여 싸우다가 못다 이룬 그의 혁명적 과업을 오늘에 와서 완수하기 위하여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선봉으로 한 남미의 6명의 대통령들이 “남미 좌파단합”의 굳은 의지를 전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차베스 대통령은 현대적 남미의 좌파 벨트의 중심축으로 높이 솟아 민족주의적 에너지 국유화, 중남미 지역 통합,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반대, 기존 제도권 개혁운동 등을 민중동원의 방법을 통하여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식민지에서 독립” 을 외첬지만 오늘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남미의 민중들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그의 3선 승리를 바라보면서 선거 운동을 할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패권 세력에 맛서기 위하여 악마와의 대결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서거가 승리로 끝난 후에 차베스 대통령은 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석유를 공급할 것이며 우선적으로 남미와 카리브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공급 라인을 확대할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긍까지 미국에 집중되여 온 석유시장의 이권 독점을 앞으로는 중남미 전역으로 전환하여 확대 할 것을 뜻하는 말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금까지 미국에 종속되여 온 남미 경제를 해방시켜 제2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이르키겠다고 선언히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침략에 대하여 규탄하여 말하기를 “남미의 천연자원들을 착취하기 위한 강대국의 간교한 수단 이다 “ 라고 규정하고 폭로 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 나라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공동으로 투자하여
“남미은행” 을 세워 미국에 종속된 경제구조를 속히 개선 하여 남미의 모든 천연적 자원들을 보존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 했다.

그는 또 남미의 풍부한 노업자원에 대하여 말하기를 농기구와 노업 기술의 현대화에 총력을 기우려 남미를 세계의 곡창으로 만들어 곡물 자원을 확보할 의지를 역설 했다. 이 같은 차베스 대통령의 뜻은 미국이 식량을 무기로 삼아서 세계적인 기근의 문제를 정치화하고 있는데 대한 직설적인 반응 이다 .

차베스 대통령은 농업뿐만 아니라 공업분야에 있어서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등 기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공동으로 개발하여 핵발전소 건설분야도 상호 협력할 것을 시사 했다.

그러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남미에서 추구하는 이른바 “21세기형 신사회주의” 란 도대체 어떤 것 인가?

차베스 대통령이 추구하는 요점은 “계급사회의 철페” 이다. 신사회주의는 전체주의가 아니며 인간은 누구나 다 각자의 능력과 요구에 따라 가능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원 해 주는데 큰 뜻이 있는 것 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추구하는 21세기형 신사회주의는 20세기에 동구권이 몰락한 병태를 교훙삼아 이론보다 실천을 중요시하고 특권측만 특헤를 누리는 과오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방지해야 한다고 역설 한다.

개인의 능력과 효율성을 중요시하고 중소 기업활동을 장려하며 민주적인 통제하에서 시장의 요구를 능동적으로 반영하는 이상형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라고 차베스 대통령은 설명을 하고 있다. 따라서 남미의 실정에 맡게 라틴아메리카형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빈부의 양극화라는 뿌리 깊은 사회적 병태를 제거하는데 모범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역설 한다.

사실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차베스 대통령의 주장은 베네수엘라에서 임이 어느 정도 시작되고 제도화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이에대하여 고도의 신경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차베스 대통령이 추구하는 21세기 신사회주의 운동이 보다 더 시급하게 급선무로 요청되는 이유가 무었인가?

그것은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7억 이상의 원주민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원주민들은 문화권 이하 수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이다. 전 세계 인구 중에서 25억 이상이 절대빈곤에 처해 있으며 16억의 사람들이 아직도 전기 시설의 헤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속에 살고 있다. 도저히 믿어 지지 않는 통계가 분명히 게속 발표돠고 있다.

오늘 현재까지 이락에서 불의한 전쟁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은 이락인들의 수는 60만에 이르고 있으며 부상자들은 부지기 수 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21세기 신사회주의의 건설을 위하여 차베스 대통령이 남미에서 벌이고 있는 개혁운동을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빈곤에서 구출 해 주는것은 곧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차베스 대통령은 말 했다.[끝]

2007년 1웡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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