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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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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격동하는 통일정세 전망-정기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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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7-01-19 00:00 조회16,8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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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전국연합회(윤길상 회장) 창립10돌 기념행사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정기열 박사(중국사회과학원 초빙교수)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미국의 대북정책에 일정하게 긍정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동시에 낙관적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이에 대해 몇 가지 근거들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크고 작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오리라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긍정적인 변화가능성과 관련하여 문제는 시간이다. 그 변화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오겠는가는 우리들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북미관계를 살펴볼 때 그 변화의 때는 어쩌면 멀지 않은 장래에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북미사이의 근본문제들, 즉 북미관계정상화와 같은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들이 어느 순간에 전격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전망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격동하는 통일정세에 대하여*

정기열 박사 (중국사회과학원 초빙교수)

1. 미국의 중간선거가 민주당의 승리로 끝난 것과 북이 핵보유국으로 된 조건에서 부시정권은 대북적대시정책을 계속하겠는가? 북미대결의 전망과 6자회담의 전망은 어떤가?

들어가는 말

<##IMAGE##>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적대시정책에 일정한 변화, 즉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오리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갖고 있다. 물론 이제 우리는 나흘 뒤인 12월 18일에 재개될 6자회담의 향후 회담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더 구체적인 것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난 지난 11월 7일의 중간선거 결과 이후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조짐과 변화들을 살펴 볼 때 일단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필자가 중간선거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일정한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 근거들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크고 작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오리라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다. 그런데 긍정적인 변화가능성과 관련하여 문제는 시간이다. 그 변화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오겠는가는 우리들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북미관계를 살펴볼 때 그 변화의 때는 어쩌면 멀지 않은 장래에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북미사이의 근본문제들, 즉 북미관계정상화와 같은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들이 어느 순간에 전격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전망을 할 수 있는가?

북미관계는 오늘 “대화와 양자접촉을 않겠다!”던 미국이 “대화를 하겠다!”는 쪽으로 일종의 조심스런 방향선회를 하고 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북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코리아전쟁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종전협정에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공동으로 서명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발언들은 그가 처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과거에도 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이런 내용들의 발언들만을 갖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일정하게 긍정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이것을 “말장난”과 “시간 끌기”로만 보겠는가? 앞에서 밝혔듯 필자는 일단 전자라고 생각한다. 다음의 이유들에서이다.

I. 북미관계개선을 희망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가?

먼저 현 북미관계에서 궁지에 몰려 있는 쪽은 미국이지 북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시간에 쫒기는 쪽은 미국이지 북이 아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외부로부터의 온갖 제제와 압력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녘동포들이다. 그러나 내부로부터 심각한 정치적 압력과 국제적인 비난에 시달리며 입지가 급격히 좁아지고 있는 당사자는 실은 미국이다. 북이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받고 있는 제제와 압력은 이미 50년을 넘겨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북은 어쩌면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오히려 미국은 직면한 도전과 시련에 준비되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북에 가해지는 일방적인 제제와 압박에 현상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쪽은 북이긴 하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진짜 몰리고 쫒기고 당황하고 있는 쪽은 북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미국이라는 주장이다. 대북제제와 압박에 정당성과 객관성을 결여한 억지카드까지도 모두 동원했는데 오히려 궁지에 몰린 쪽이 미국이라는 분석은 어떻게 가능한가? 억지분석일까? 아니면 친북적 시각에 불과할까? 그러면 “1994년 10월의 제네바합의를 어기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은 부시 행정부이지 북이 아니다”라고까지 비난하고 나선 지미 카터 전 대통령마저도 친북적일까? 아닐 것이다. 필자의 판단에 이것은 양심과 시각의 문제이다.

카터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조차 북미관계가 난항을 겪고 있는 문제의 근본책임이 주로 미국에게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카터 대통령과 비판의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북미관계개선이라는 큰 방향에서 같은 제안을 키신저 전 국무장관 같은 노회한 정치인도 하기 시작했다. 북미관계의 미래전망이 아주 어둡지만은 않다는 판단을 갖게 하는 근거들 가운데 하나다. 클린턴 행정부가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임기 말에 북미관계정상화에로 가 닿기 위한 최종행위로 클린턴 대통령 자신의 평양방문을 계획했던 것처럼 오늘 부시 행정부 또한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필자도 동의하는 분석이다.

부시 행정부는 최근 내용상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종전협정에 공동서명하자“는 이전의 제안을 다시 꺼냈다. 내용적으로 북미관계를 정상화하자는 안이다. 그런데 전임 대통령이 친필서명까지 해서 약속을 지키겠다던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서마저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진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이런 정도의 제안들만 갖고 향후의 북미관계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을까? 그러면 ‘북미사이의 관계개선이 일순에 해결될 수 있다‘는 분석과 희망적인 전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비록 약속이 지켜지진 않았지만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서가 여전히 좋은 예다. 당시 북미기본합의서는 50년의 공백을 뛰어 넘는 일대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98년 2차 핵위기 뒤 클린턴 대통령은 윌리암 페리 전 국방장관을 특사로 평양에 보냈다. 미국은 그 뒤 “페리프로세스”(Perry Process)로 알려진 자체 내부토론과정을 거쳐 북미관계가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10월 조명록 차수의 역사적인 백악관 방문과 북미공동코뮈니케 발표 뒤 전격적으로 메델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케 했다. 그는 거기서 한 걸은 더 나가 임기 말에 자신의 평양방문 계획까지 세웠을 정도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모두 지난 반세기의 북미대결사를 돌아 볼 때 당시 상상키 어려운 일대사건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반세기를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어느 순간에 전격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 일정한 과정과 계기를 거쳐 한 순간에 해결될 조짐을 보이며 구체적인 희망을 갖게 한 일대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앞으로도 일정한 과정과 계기를 거쳐 북미사이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전격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대사건들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북미관계에서 북은 북미관계정상화라는 일관된 자체목표를 갖고 그 목적달성에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걸고 있는 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정권의 바뀜과 권력핵심들의 생각, 그리고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 역설이지만 북미관계의 바로 이런 배경들 또한 필자로 하여금 향후의 북미관계에 희망적 전망을 갖게 하는 근거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북미관계의 미래전망을 희망적으로 전망케 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 미국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상황 때문이다. 이라크문제에서 촉발된 위기는 오늘 미국의 권위와 위상을 세계적 판도에서 급격히 추락시키고 있다. 위기는 미국의 외교안보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외부채와 대내재정적자로 대표되는 미국의 경제위기 또한 마찬가지다. 이라크문제는 “이제 누가 나서도 패배 이외에 달리 방안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안이 없다는 말이다. 도를 넘은 미국의 제국적 오만(Imperial Arrogance)이 자초한 화(禍)가 아닐 수 없다!

소위 “초당적 기구” 라는 “이라크연구반”의 제안들이 언론에 발표된 뒤 많은 전문가들은 그 내용들이 부시 행정부의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정책과 전망과는 분명히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미국문제의 근본을 보는 입장과 시각은 여전히 다르지 않다고 분석한다. 이라크연구반 제안내용의 핵심은 결국 “미국의 사활적인 정치경제이해관계를 일종의 저강도전쟁(Low Intensity Warfare)을 통해 어떻게든 유지, 관리하면서 명예롭게 철군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정직하게 제안내용을 해석하면 ‘미국이 어떻게 완전히 망가지지 않고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살려서 빠져 나오겠는가?”다. 즉 미국지배세력 전체가 소위 “초당적으로”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양심적인 전문가들은 이라크연구반의 제안이 이라크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베트남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라크침략전쟁패배의 후유증이 (경제문제를 포함해서 오늘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정치사회문제들까지) 어쩌면 오래오래 미국이 자신의 과거위상을 완전히 회복키 어려울 정도로 크고 심각하다는데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의 성격차이 때문이다. 여하튼 현 이라크 상황은 아버지 부시와 그의 핵심측근들을 포함해서 미국의 전통적인 실질적 지배세력들이 총동원되어 침몰해가는 아들 부시호(号)를 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선 형국이다. 미국의 외교안보문제에서 최고원로라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까지 나서서 부시의 입장을 반대할 정도니 말이다.

새로 국방장관에 취임케 될 로버트 게이츠 신임국방장관은 최근 자신에 대한 상원인준청문회에서 소위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서 오늘의 “북핵문제”는 그가 과거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 “북의 핵시설들에 대해 제한된 폭격을 주장”했던 입장을 철회했다. 그는 대신 “군사적 접근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신의 과거입장이 잘못된 것임을 정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일단 중요한 진전이지만 동시에 예측된 발언이다. 결국 실패한 럼스펠드 전임 장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발언이고 그가 일관되게(?) 반대해 왔던 ’네오콘 식의 대결적이고 일방주의적인 국제관계‘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로 알려진 게이츠 신임국방장관에게서 예측할 수 있는 발언이다. 참고로 게이츠 신임국방장관은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침략전쟁을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II. 북핵문제의 본질과 북핵실험 그리고 유엔대북제제결의안

소위 “북핵문제”의 본질은 50여 년을 넘긴 북미대결에서 비롯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북미대결의 연속선상에서 북핵문제를 보지 못할 경우 북미관계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키 어려울 것이다. 즉 지난 반세기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경제봉쇄와 유무형의 온갖 압박, 상시적인 군사침략위협 등으로 점철된 북미대결의 연장선에서 북핵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10월의 북핵실험 또한 북미대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북핵실험 뒤 채택된 유엔결의안은 이 점을 간과했다. 결국 유엔결의안은 출발부터 근본적인 한계를 갖게 된 것이다. 더더욱 그 결의안은 북미대결의 일방인 미국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 한계는 반세기 째 계속되는 북미대결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데서 기인한다.

<##IMAGE##> 대결관계에 있는 쌍방의 주장과 입장이 공정하게 모두 다 반영되지 않은 조건에서 일방의 주도에 의해 채택된 유엔결의안은 이전의 많은 미국주도의 결의안처럼 지극히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미국과 상임이사국 주도의 적지 않은 유엔결의안들이 갖는 한계는 유엔조직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동소이(大同小異)다. 불공정하고 정당성을 결여한 과거의 숱한 결의안들은 유엔조직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최대핵무장국가로서의 미국이 비핵국가들에 대해 선제핵공격을 국가정책으로 삼고 핵공격위협을 일삼는데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못하는 유엔의 한계와 무능을 지적하는 것이다.

온 세상이 잘 알듯이 유엔의 구조적 한계와 무능은 미국이 거짓명분을 내세워 주권국가인 이라크를 불법으로 침략, 점령하여 밤낮으로 파괴학살만행을 범하고 있고 온갖 전쟁범죄와 인류범죄를 3년이 넘도록 계속하고 있는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엔은 미국의 [이라크대학살](Iraqi Holocaust)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손발이 묶여있는 형국이다. 북핵실험과 관련한 결의안 채택과정에서 유엔이 북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경제봉쇄와 제제, 고립, 압박이 계속되는 구체적인 정치경제군사적인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것은/못한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유엔조직이 “미국의 거수기로 전락했다”고 비판을 받는지가 이미 오래기 때문이다.

인류에 대한 크고 작은 숱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역사가들로부터 “유엔조직은 미국의 불법적인 숱한 인류와 전쟁범죄행위들을 정당화하고 뒤치다꺼리나 한 조직에 불과했다”는 지적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마저 이라크침략전쟁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있는 유엔조직의 한계에 대해 자기비판을 탄식처럼 했을까 싶다. 유엔이 대북제제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북미대결문제를 거론조차 못한 채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북의 비핵무장화만을 요구한 것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하기야 이라크의 경우 인류문명이 파괴되고 주권국가가 강제로 해체된 것도 모자라 10만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무참히 살육을 당하고 그들의 재산과 자원이 약탈당하고 있는데도 유엔은 미국의 범죄행위를 3년이 넘도록 멈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더 기대하랴!

III. 북핵문제와 유엔 그리고 NPT체제

북미관계를 내다보면서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자. 북핵문제의 본질은 다시 말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안보리의 5대 상임이사국들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의 기존의 핵무장국가들은 수천수만의 핵무기로 머리끝부터 발톱까지 핵무장한 채 어느 특정국가(들)과 지역(들)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요구하는데 있다. 바로 이 문제가 소위 북핵문제와 이란핵문제의 핵심이다. “핵클럽“으로 알려진 핵무장국가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핵강대국들의 비핵국가들에 대한 일방적인 비핵화요구는 지극히 위선적일 수밖에 없고 비핵화요구자체가 갖는 명분과 타당성,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은 따라서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문제는 미국이 그 정도 위선과 부당함에서 멈추지 않았다는데 있다. 부시 행정부는 오히려 한발 더 나갔다. “선제핵공격도 불사하겠다!”는 공격적인 핵정책을 국가의 공식입장으로까지 채택한 것이다. 세상전체를 상대로 한 핵공격위협인 셈이다. 핵공격대상국가들에 기존의 핵무장국가들인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해서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이라고까지 비난한 당시 비핵무장국가들인 이라크, 이란, 북도 포함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오늘 북은 핵무장국가가 되었고 이란 또한 어쩌면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북의 핵무장화는 미국이 자초한 결과”라는 비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물론 당시 핵도 대량살상무기도 갖추지 못했던 이라크는 미국의 불법적인 침략전쟁에 의해 이미 역사에서 사라지고 없다.

중국도 러시아도 그 누구도 이라크를 구하지 못했다. 유엔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대답이 자명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의 생존문제에 있어 핵무장국가들과 비핵국가들의 처지는 크게 다르다. 기존의 핵무장국가들과 달리 북과 같은 과거 비핵국가에게 있어 국가의 생존문제는 근본문제 중의 근본문제다. 이라크의 교훈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자체방어를 위한 무장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미국에 의해 제거되었던 70년대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처럼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 또한 미국의 오랜 계획과 준비에 의해 제거되었다. 90년대 파나마의 노리에가 장군이 자국 땅에서 침략군(侵略軍)인 미군에게 체포되어 마이애미로 후송된 뒤 미국법정에서 40년이 넘는 일종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는 것과, 역시 자기 땅에서 침략군(侵略軍)인 미군에게 체포된 후세인 대통령이 미국이 주도하는 소위 “전범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은 것은 닮은꼴이다.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제적이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내려 먹이기“의 한 전형이다.

결국 미국의 비핵화요구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라는 주장은 마치 “상대의 머리에 총을 갖다 들이댄 채 상대방에게는 가진 총마저 버리라든지 아니면 총 자체를 아예 갖지 못한다!”고 우격다짐하는 격이다. 그래서 북과 이란에 대한 미국의 비핵화요구는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자신은 여전히 핵선제공격정책을 유지한 채 말이다. 따라서 미국의 비핵화요구는 명분과 정당성이 없다. 미국이 아무리 국제여론을 호도하고 오도해도 역사의 진실은 못 가리는 법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또 하나의 역사적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힘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참으로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IV. 미국의 전략적 오판과 향후 북미관계의 전망

최근 역사에서 구소련연방체제와 구동구권사회주의국가들을 해체, 붕괴시켜 자신의 속국처럼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마저도 단번에 잿더미로 만든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미국은 북에 대해 ‘그까짓 조그맣고 가난한 나라쯤이야!’라고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마치 리비아처럼 밀어붙이고 제제를 가하고 위협을 가하면 손들고 나올 줄 알았던 것 같다. 미국은 북에 대해 역사에 유례없게 50년이 넘도록 밀어붙이며 고립시키고 온갖 제제를 가했지만 결과는 마치 중미의 쿠바처럼 되었다. 구소련연방과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이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북과 쿠바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당히 미국에 맞섰다.

1994년 10월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서 채택 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 각하“(Your Excellency Chairman Kim Jong Il)라고 쓴 자신의 친서에 ”합의서에 약속한 내용들을 꼭 지키겠다!“는 서약까지 해서 평양에 보내기까지 했다. 결국 부시행정부도 클린턴행정부가 밟았던 과정과 비슷한 경로를 거쳐 원점으로 되돌아 갈 것으로 예상하는 분석들이 있다. 필자 또한 동의하는 분석이다. 북미대결이 일종의 극한점을 넘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수의 전문가들은 미국에게 더 이상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고 분석할까?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여곡절 끝에 북미관계개선과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큰 희망을 안겨준 9.19 공동성명 발표 바로 다음 날 미국은 금융제제카드를 꺼내 들었다. 철저히 계산된 행동에 의해 네오콘 세력은 역사적인 9.19공동성명을 마치 휴지조각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핵문제를 빌미로 북의 붕괴를 목적한 그들에게 9.19공동성명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9.19공동성명이 진척되어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그것이 곧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기틀이 되고 더 나아가 동북아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종식되는 상황으로 발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북과 동북아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관계의 지속은 네오콘 세력과 공생관계에 있는 미국군산복합체의 천문학적인 사업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했다는 분석 또한 설득력을 더해준다.

결국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대북강경세력이 북의 붕괴와 동북아지역에 상존하는 군사적 긴장관계의 지속을 위해서 꺼낸 카드가 금융제제였고 그것도 모자라 소위 대량살상무기제한방지구상(PSI)이라는 일방적인 무력제제방안까지 동원했다는 분석이다. 즉 그들은 대북제제에 있어 마지막 카드라고 할 수 있는 해상봉쇄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동원가능한 모든 제제와 고립, 압박에도 불구하고 십 수 년이 지난 오늘도 북은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건재한 반면 대표적인 네오콘 강경세력의 대표주자들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에 이어 존 볼턴 유엔대사마저도 퇴출당했다. 북과 한미일 합동네오콘세력과의 6년에 걸친 기(氣)싸움은 월러스틴 예일대 교수의 지적처럼 “북의 한판승”으로 끝난 것 같다.

V.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미국 지배세력이 갖는 집단위기의식

<##IMAGE##> 중간선거 결과는 무엇보다도 미국국민 다수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사표시였다. 그러나 중간선거 결과를 단순히 이라크전쟁에 대한 반대만으로 읽어서는 중간선거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더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오늘 세상에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단순한 반대이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화의 핵심내용은 무소불위의 미국의 오만한 권위와 위상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빨간불이 켜진 것“이란 첫째 소위 인권문제, 대량살상무기, 핵무기 카드 등을 번갈아 빼들어 미국의 불의한 요구와 위협에 맞서는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까지 몰아세우고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부은 것도 모자라 이라크의 경우 국제법과 유엔의 존재까지도 무시한 채 온 세상을 상대로 거짓과 침략전쟁만행을 서슴지 않던 미국이 이라크라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형국을 일컫는 말일 수 있다.

혹은 빨간불이 켜진 것이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국제여론조사에서 미국이 꼽히고 있는 변화된 현실을 일컫는 말일 수 있다. 미국과 서방, 일본, 한국 등의 주요언론 보도내용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가 이라크도 아니고 이란도 아니고 베네수엘라와 북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국제적 비난의 주요한 대상이고 걸핏하면 거짓과 불법을 일삼으며 세상을 상대로 핵위협도 불사하는 미국“이라는 것이다. 변화된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뜻있고 생각 있는 적지 않은 수의 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변화를 촉구한 이유일 것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변화를 읽어야 할 것이다.

중간선거 결과는 부시 대통령을 단순히 소위 “레임덕” 궁지로만 몰아넣은 것이 아니다. 중간선거 결과는 “국사(國事)를 이대로 부시와 네오콘 세력에게 맡겼다가는 나라를 통째로 말아 먹겠다”는 집단위기감이 다수 미국인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노골적인 침략전쟁행위들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추락시킬 뿐만 아니라 이라크에서의 참패로 인해 미국의 권위가 급격하게 퇴락하고 있다는 집단위기의식이 공화당 일부 상층지도부와 전통적인 백인보수지배세력들에게도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에서 우리는 또한 오늘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냉전 기간 소위 “서구자유민주진영”의 중심국가로 그리고 9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구소련체제와 동구권 해체 이후 누렸던 소위 “세계유일최대강국”(the only global superpower)의 위상에서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번 중간선거 결과는 미국인 다수가 경험하는 일종의 ‘집단위기감’의 표현이다. 어떤 위기감일까? 이라크라는 어느 특정지역에 국한된 곳에서만 일어나는 미국의 추락에 대한 위기감일까? 아니면 범세계적 판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 국력의 급격한 쇠락에 대한 위기감일까?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이 자주 비유된다. 이는 다른 지역 문제들에서 미국의 대외협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음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다. 북과 이란, 베네수엘라 등을 대하는 과정에서 이미 ‘뒤로 밀리고 있는 미국의 모습’(?)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VI. 미국 외교안보분야의 네오콘 세력과 현실주의세력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세력 안에서 소위 "네오콘"(neocon)으로 대표되는 강경파와 “현실주의자”(realist)들로 불리는 협상파간의 줄다리기가 쉬지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중간선거 이후 강경파로 불리는 네오콘 세력의 약화를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퇴는 그 첫 출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럼스펠드의 뒤를 이어 국방성과 국무부 안의 네오콘 인사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물론 네오콘 세력이 만만하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신보수주의자들은 일정한 후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려 있다. 그래서 당분간이라도 자세를 바짝 낮출 것이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다시 기회를 엿볼 것이다.

아직 네오콘 세력의 대부 격인 딕 체니 부통령이 건재하다. 그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강력한 네오콘 세력이 아직 부시 행정부 안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이전만 하지 못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 안에서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은 무소불위였기에 그 누구도 감히 도전장을 못 내밀었다는 것이 워싱턴 내부를 아는 사람들의 중론이다. 보다 못한 아버지 부시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오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이라크연구반은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초당적 기구라는 그 조직에 아버지 부시의 핵심인맥들이 총동원됐다. 그들의 주된 작업은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 세력들에 대한 일종의 옥죄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부시가 “아들 일에 대해 일체 간여치 않겠다!”던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자신이 이끌던 외교안보분야에서의 현실주의자들을 외교안보라인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아버지의 핵심들이 아들 부시 행정부의 요직을 장악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짐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전면에 등장하고 로버트 게이츠 전 중앙정보부장의 국방장관 지명이 좋은 예다.

VII. 새로운 변화의 바람: 반제/반미/반패권운동의 전 세계적 확산

그런데 소위 “현실주의자”들은 북미관계와 미국-이란관계, 미국-시리아관계에서도 직접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왤까? 한 마디로 “현실적으로” 힘이 부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핵문제와 이란문제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는 미국에게 심히 불리한 전황(戰況)과 상황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서 이라크, 이란,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지에서 계속되는 불안한 정치군사적 상황들이 하루 앞을 예측키 어렵다. 그런데 미국에 불리한 상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차베스로 대표되는 중남미에서의 반란은 하루가 멀다고 중남미를 넘어 이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중남미 국가들에서 반미자주의 목소리가 아주 구체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찍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냉전시기 미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도미노현상”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16년 전 미국의 직간접 침략과 군사정치경제적 제제와 압박, 간섭에 의해 권력을 잃었던 산디니스타혁명정부마저 기적적으로 다시 회생했다. 다니엘 오르테가 전 대통령이 선거에 의해 재선된 것이다. 또한 12월 3일 21세기 반미자주독립운동의 새로운 기수로 떠 오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의 온갖 압력과 방해, 쿠테타, 암살시도 등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3선에 당선된 것이다.

여러 세기(世紀)를 넘기도록 서구유럽과 미국에 의한 식민지쟁탈과 노예무역, 자원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해 끔찍한 고난과 시련, 수치를 겪던 아프리카 대륙의 50여개 나라 대통령, 총리, 국가지도자들이 지난 달 한꺼번에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중국-아프리카 정상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북경을 방문한 그들은 국빈대접을 받으며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친선, 우의, 협력, 발전, 평화를 주제로 모인 전대미문의 대규모 합동정상회담에서는 과거 수백 년에 걸쳐 아프리카에 강요된 식민지지배-피지배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폐막식에서 50여개 아프리카 국가지도자들을 대표해서 발언한 에디오피아 대통령의 말이다.

위의 모습들은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들 가운데 하나들이다. 이런 변화들은 이제 어느 특정지역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유일세계강국이라는 미국의 무소불위의 오만한 권위에 감히 도전하는 나라들이 지역과 피부색,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즉 범세계적 차원에서 반제, 반미, 반패권운동이 부활하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힘을 앞세워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제국적인 패권적 행태”를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실질적 지배세력들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 바로 그런 배경과 이유에서 급히 소위 “초당적 틀의 이라크연구반”이 탄생되었다는 분석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과연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이끄는 이라크연구반의 제안과 만약 그 제안을 부시행정부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라크라는 깊은 수렁에서 미국은 과연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은 부정적이다. 한마디로 “이라크문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명예로운 철군”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있다면 “불명예스러운 후퇴와 패퇴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체면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이미 놓쳤을 뿐만 아니라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이미 건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VIII. 이라크침략전쟁에서의 패배와 미제국(American Empire)의 쇠락

이라크에서의 패배는 미국으로 하여금 향후 최소 수 십 년을 후회케 할 것이다. 과거 미국이 세상에서 누렸던 지위와 위상은 다시 쉽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과거 베트남에서의 패배와 21세기 초엽 이라크에서의 패배는 차원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쩌면 과거의 지위와 위상을 다시 회복키 어려운 깊은 상처를 이미 입었는지 모른다. 한 세기 뒤의 양심적인 역사가와 정치사회비평가들은 오늘의 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일까? 궁굼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많은 양심적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오늘 미국의 쇠퇴가 역설적으로 향후 인류의 미래사회에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들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한다. 무소불위였던 미국의 오만한 권위와 위상에 중대한 변화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먼저 어쩌면 2008년 미국대선에서부터 찾아올지 모른다. 세상은 미국에서 어쩌면 첫 여성대통령의 탄생을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와 맞물려 있는 하나의 중요한 긍정적 변화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 우리 모두는 세상의 진정한 변화가 비로소 새로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교차로에 서 있는지 모른다.

“새벽이 오기 전의 어둠을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한다. 부시행정부로 대표되는 미국에 의한 주권국가들과 약소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군사침략과 무력위협, 파괴, 학살만행은 바로 그 “칠흑 같은 어둠”일 수 있다. 그들에 의해 온 세상의 진정한 인권과 민주와 자유가 박탈당하고 파괴당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온 세상을 상대로 마치 정신병자가 혼자 중얼거리듯 “인권과 민주, 자유“를 말하고 다닌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런 현실 또한 어쩌면 마치 새벽이 오기 전의 그 “칠흑 같은 어둠”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어둠이 바로 그 “칠 흙 같은 어둠”이기에 우리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도 실망과 좌절, 절망과 패배의식보다는 머지않은 장래에 보다 나은 인류사회건설과 통일된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역설적으로 꿈꾸는지 모른다.

마무리 말: 북미관계개선이 미국 위기의 돌파구?

<##IMAGE##> 필자는 앞에서 부시 행정부의 향후 대북정책에 일정한 긍정적 변화가 찾아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과 이유들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간선거 이후에도 부시 대통령이 변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지면을 채운다. 그렇다. 그는 변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못할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잘못된 것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그에 기초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용기 둘 다 결여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에게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변화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희망적인 전망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것은 다음의 이유들에서다. 거듭 밝히거니와 먼저는 미국이 이라크라는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문제다. 둘째, 미국은 북의 핵개발에 이어 그리도 반대하던 이란의 핵개발이 진척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셋째,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무력충돌과 국지전 재발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초긴장의 상황이다. 넷째, 시리아와의 갈등 또한 설상가상으로 풀리지 않고 있다. 다섯째, 이제는 자신들의 뒷마당이라 불리던 중남미에서조차 반미자주독립의 혁명적 열기가 거침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슬람세계 전체가 반미로 돌아서고 있으며,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움직임 또한 가시화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반관계가 강화되며, 중국과 인도의 관계회복과 정치경제군사협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중국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태평양, 중남미 그리고 비동맹국가들과의 관계가 날로 강화, 발전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제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달러외환보유고는 11월에 10조 달러(1 Trillion dollar)를 넘으며 1위로 올라섰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미국의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다. 이제는 맹방중의 맹방으로 “이라크침략전쟁의 공범“이었던 영국마저 이라크에서의 철군주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부분의 서방국가들마저 이미 철군했거나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 이제 얼마 안가서 이라크라는 수렁에 달랑 미국만 빠져 있게 될 처지가 현실화될 수 있다.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고조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상황과 조건들이 부시 행정부와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세력들로 하여금 오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안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오늘 도대체 무엇부터 먼저 풀어야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집단적(“초당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지배계급의 시각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쩌면 북핵문제가 상대적으로 풀기 쉬운 그래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키신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또한 북과의 관계개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며 더더욱 관계개선 자체가 크게 잃는 카드가 아닐 수 있다는 “현실주의적“인 판단과 계산이 지배세력 내부 한편에서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필자 또한 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부시 행정부에게 향후 작지 않은 압력으로 기능할 것이다. 북미관계개선이 부시 행정부가 직면한 위기에 하나의 돌파구로 인식되면서 어느 순간에 전격적으로 타결될 수 있다는 역설이 가능한 근거다.

그렇잖아도 오늘 부시 행정부에게 쏟아지는 주요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에 한/조선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정상화라는 근본문제해결에까지 가까이 다가갔던 북미관계가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곤두박질해 지난 6년을 허송세월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북의 핵무장화까지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제 북핵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임기 안에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로 됐다. 그는 더는 북핵문제를 회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한계점까지 밀려가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임기 안에 어떻게든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계점까지 몰려 가 있다. 결국 앞에서 지적했듯 시간에 쫒기고 몰리며 당황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장본인은 바로 부시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향후 북미관계는 부시 행정부 내부의 권력투쟁의 결과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즉 일관되게 대북강경책을 주장해 온 네오콘 세력이 일선에서 후퇴하는가 아니면 대화와 협상, 타협을 통해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풀려는 ‘현실주의자’들이 외교안보라인전면에 배치되는가에 따라 북미관계 개선의 향방이 크게 좌우될 것이다. 북핵문제가 곤경과 위기에 빠진 부시 행정부와 미국에게 역설적으로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판단과 인식이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세력 안에 다수를 점할 때 북미관계개선이 전격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해석은 물론 하나의 가설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밝혔듯 필자는 그 가정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갖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12월 18일 5차 6자회담 2단계의 재개가 북미관계가 궁극적으로 ‘북미관계정상화라는 종착역’에 가 닿기 전에 마지막 쉬었다 가는 말 그대로의 ’마지막 정거장’(Last Station)이 되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해본다.

2. 2007년의 한국 대선과 6.15공동선언의 향후 이행전망은 어떤가?

지난 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하에서 초래된 한국사회의 혼란과 부정적 변화는 우리민족과 사회운동이 일찍이 예상치 못한 경험이다. 지난 반세기 피땀 흘려 쌓아 온 분단극복과 민족화해,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성과를 마치 180도 거꾸로 되돌려 놓은 것처럼 정치사회적으로 지극히 불행하고 반역사적인 광풍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실망과 좌절과 패배의식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일면 감당키 어려운 정치사회적 도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되살아나고 분단세력과 반민족, 반민주, 친미친일사대세력이 부활하고 있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열풍“이 이런 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지는 이미 오래고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10%이하를 맴돌고 있을 정도다. 반면 분단수구세력과 친미사대세력의 집합소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그 지지도가 50%에까지 육박하고 있다. 일찍이 상상키 어려운 지극히 불행한 반역사적인 정치사회적 광기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다 죽어 장사를 지낸 맥카시즘조차 부활하고 있다. 2000년 6.15이후 일정한 변화를 보이며 변해가던(?) 국정원 또한 과거에로 회귀하는 것 같은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려는 것 같다. 국정원은 최근 난데없는 ”조작(?)간첩” 카드를 다시 빼들었다.

한나라당과 조선동아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분단수구친미사대세력에서 빼어놓아서 안 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있다. 바로 보수적인 기독교세력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사회를 반세기가 넘도록 지배하고 있는 미국사회와 판에 박은 듯 닮았다. 오늘 한국사회는 불행스럽게도 미국과 정치종교문화적으로 닮은꼴이 되어가는 사회현상과 정치지형을 이루어가고 있다.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세력은 일찍이 분단수구반민족세력의 중요한 축으로 친미사대세력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감리교 장로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좋은 대표적 예다. 지난 몇 년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보수우익세력의 전반적인 퇴조는 보수 기독교세력의 전진을 불러왔다. 소위 “뉴라이트(신보수)운동”으로 불리는 한국판 네오콘 세력에서 기독교세력은 그 핵심에 있다. 대표적으로 김진홍 목사와 서경석 목사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들 신보수주의 세력, 즉 ‘한국판 네오콘 세력’의 뒤에 미국의 신보수주의 네오콘 세력이 버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은 소위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면 그들은 일종의 ‘주종관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의 민간기구와 재단들을 통해 지난 몇 년 수십 수백만 달러의 직접적인 재정지원이 반북단체들과 한국판 네오콘 세력인 뉴라이트 단체들과 인사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단체들이 미국정부가 뒤에 있는 재단과 단체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현주소가 어딘지를 잘 알게 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그들이 누구하고도 주종관계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듣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고 판단한다. 세상은 그들이 떳떳치 못한 돈을 받아 결과적으로 외세를 이롭게 하고 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지극히 불행하게 하는 만드는 결과를 보고 그들을 판단할 것이다. 미국과의 주종관계는 반세기를 넘기도록 기존의 분단수구세력들이 마치 그들의 종교처럼 유지해오고 있는 신주(神呪) 같은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세대의 신보수주의 분단세력 또한 그들의 선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일본과의 주종관계를 못 떠나는 것 같다. 나라와 사회 모두에게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들 모두는 그 틀을 좀처럼 벗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원치 않는 것일 수 있다. 과거 일제치하에서 친일인사들이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가 영원하기를 바랐던 것”과 같은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친미사대도 모자라 친일사대의 깃발을 다시 올린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라는 인물이 아마도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안 교수는 월간조선의 조갑제 씨와 더불어 뉴라이트운동에 정신적, 이론적으로 지주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그의 수제자라는 이영훈 서울대교수와 더불어 최근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다시 주창하고 나섰다. 안 교수는 최근 현대사왜곡사건으로 문제가 된 “교과서포럼”의 주동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산케이신문과의 대담에서도 “오늘 한국경제발전의 기초와 맹아가 일제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졌으며 식민지 지배를 빼고 오늘 한국사회의 제도와 발전을 논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할 정도로 물불을 안 가리는 인물이다. 물론 “일제 식민지 지배가 당시 조선에게 일정한 혜택도 주었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은 채 말이다. 그들은 도요타재단이 준 수백만 엔의 돈으로 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걸쳐 연구(?)한 성과에 기초해서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친일사대사상을 한국사회에 펼치고 있는 핵심인물들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친일사대인사들과 친미사대인사들과의 연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들은 분단수구세력 혹은 뉴라이트세력과 동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 일제 치하의 친일행사들에 조선총독부가 뒤에 있었듯 거의 모든 뉴라이트행사들과 반북반공기독교보수세력 집회들에 미국대사관과 미국 쪽과 한국 쪽의 신보수주의 인사들, 반북단체 대표들이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심지어 미국대사관은 이제 그들의 공개된 인터넷에서 조차 한국판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인사들이 뉴라이트집회들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도 물론 뉴라이트 행사들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조선동아를 비롯한 보수언론매체들이 뉴라이트세력과 그들의 활동, 행사들을 부풀려 알리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뜻에서 미국과 한나라당, 조선동아, 보수우익기독교세력들 모두는 일종의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뉴라이트운동에 수십 억대를 넘나드는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최근 서경석 목사가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제이유”로부터 수억 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언론보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검은 돈들이 소위 이 뉴라이트운동에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분단수구친미사대세력들이 뉴라이트운동에 보이는 기대와 열정은 적지 않은 것 같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그들의 역할이 더욱 궁굼해지는 이유다.

오늘과 같은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에서 내년 대선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분단수구사대세력들은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내년 대선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개혁세력”으로 불리는 현 여권과 사회운동세력의 전선은 심히 분열되어 있다. 그 분열과 이전투구 양상의 도가 극한점에 다다른 듯 한국사회는 끝없는 정쟁으로 날 샌 줄 모르는 듯하다. 일반인들의 정치에 대한 식상함 또한 도를 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의 한국사회는 미래전망이 참으로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다. 물론 오늘의 한국정세가 만약 이대로 지속될 경우 향후의 “6.15공동선언 이행전망”은 당연히 어려워질 것이다. 오히려 향후 몇 년의 한국사회는 한편으로 더욱 심한 이념적, 계급적, 지역적 갈등과 대립을 경험할지 모른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외세들이 한국사회의 분열과 망국적 혼란을 부채질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만약 북미관계정상화와 북일관계정상화가 어느 순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 영향은 한국사회를 포함한 남북해외 전체민족 모두에게 그리고 동북아를 포함한 세계정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조선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정세와 국제정세에 크고 작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해서 감히 희망해본다. 끝없는 분열과 좌우, 신구, 영호남 등의 망국적인 대결구도에서 끝없는 정쟁과 불신, 다툼으로 온 나라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로 되어가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해가기 위해서도 6자회담 재개를 앞둔 오늘 북미관계가 개선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자,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오늘 한국사회의 참으로 부끄럽고 어려운 현실은 자주적인 평화통일의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삼고 일하는 모든 이들과, 세상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그리고 미래인류사회의 조화와 상생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어려운 도전과 무거운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오늘의 “칠흑 같은 어둠” 뒤에 찾아 올 새벽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보다 더 혹독하고 큰 난관과 고난, 시련을 이겨낸 우리의 선조들처럼 우리 앞에 놓인 장애와 난관을 꿋꿋이 뚫고 이겨가야 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좌절과 절망은 독약과 같다”는 가르침을 마음에 다시 새기면서.

(*본 원고는 2006년 12월 중순 [6.15공동위원회 일본지역본부]와 [한통련], [평통협] 공동초청으로 일본에서 열렸던 강연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의 분량을 대폭 줄이고 편집한 내용이다. 본 원고의 내용은 일본에서 보내 온 본래의 제목과 질문을 그대로 받아 답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또한 이 원고는 2007년 1월 14일 뉴욕에서 열렸던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학술발표회" 자료집에 전재한 내용이다.)

원고작성에 인용된 자료들의 출처들:

New York Times, Washington Post, LA Times, The New Yorker, The Nation, TruthOut.Org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중앙일보, 연합통신,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통일뉴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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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연 북 유엔대사 만창장에서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창립10돌 축하연설

[뉴욕]재미동포연합 창립10돌 행사 참관기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제11차 정기총회 갖고 결의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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