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5-12-02 00:00
[논단]재외동포의 역할과 책임
 글쓴이 : minjok
조회 : 11,146  

정기열 박사는 최근 서울서 열린 제2회 재외동포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대회에서 6.15시대에 재조명해 보는 재외동포역사와 역할, 그리고 책임에 대해 기조발제문을 발표했다. 이날 정 교수는 재외운동의 방향에 대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정책에 담아내고 조화와 상생의 지혜를 발휘하여 조금 더디더라도 모두 함께 변화 받고 변화시키며 앞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전문을 싣는다.[민족통신/평화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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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발제문>

제 2회 재외동포 NGO 활동가 대회: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 일관되고 평등하게

“6.15시대에 재조명해보는 재외동포역사와 자주통일시대와 지구촌시대를 맞으면서
새롭게 제기되는 재외동포의 역할과 책임”


*정기열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종교철학)

들어가는 말

<##IMAGE##>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랄까? 작년 [제 1회 재외동포 NGO 활동가대회: 2004년 재외동포의 현실, 그리고 미래]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제 2회 재외동포 NGO 활동가 대회: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 일관되고 평등하게]는 아주 시기적절한 노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을사늑약 100년”이 되는 올해에도 우리민족은 아직도 식민의 잔재와 분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조국 땅에서와 같이 식민과 분단을 전후해서 시작되고 심화된 오욕과 고난의 재외동포역사 또한 100여 년을 훌쩍 넘겼다. 자료에 의하면 현재 174개국에 약 7백만 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이 살고 있다. 한/조선반도 주변의 4강 국가들(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에 집중해서 살고 있는 그들 700만 재외동포들은 문화, 언어, 인종, 역사, 정치, 경제, 종교적 배경이 서로 다른 이국(異國)의 낯 설은 삶의 현장들에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삶의 뿌리를 내려온 긍지 높은 역사를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식민잔재와 분단논리, 냉전사고,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주(主)를 이루고 근시안적이고 분열적이며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와 무지, 무관심, 단견, 편협 등이 뒤를 따랐던 과거의 부끄러웠던 “재외동포무책사”(在外同胞無策史)를 과감히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당장 눈 앞의 이해득실 차원에서가 아니라 향후 백년(百年)을 내다보는 말 그대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이번 [제 2차 재외동포 NGO 활동가대회]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해서 필자는 본 논고에서 이번 대회의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 일관되고 평등하게”라는 기존의 주제에 “하나의 겨레, 하나의 민족 그리고 세계인”(One People, One Korea, Global Korean)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주제를 더해 함께 생각하려고 한다. 바라기는 이번 대회에서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자주통일과 국제적인 관점”도 균등하게 함께 갖춘 열린 토론자리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본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재외동포정책과 관련하여 우리들이 갖고 있던/는 기존의 자세와 관점들 가운데 극복해야 할 한두 가지 문제점들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 재외동포문제를 다룰 때 많은 경우 그들 재외동포들을 국내동포들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단절적인 사고를 지적하려고 한다. 지난 반세기 조국의 분단모순에서 비롯된 온갖 정치사회적 문제들은 재외동포사회들에 그대로 이식(移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외동포들이 그들의 삶과 일의 현장들에서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은 많은 경우 그들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재외동포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적지 않은 문제들이 국내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서 비롯된 문제들일 수 있다. 달리 말해, 분단조국의 숱한 문제들이 재외동포들의 삶의 현장들에서 여러 다양한 형태들로 표출되었을 수 있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재외동포무책사” 문제도 결국 우리 모두의 부끄러웠던 과거와 주로 역대정권들에서 비롯되었다. 향후 재외동포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려는 열린 상생적 자세와 겸허함이 절실히 요구된다. 재외동포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그들만의 문제로 혹은 그들 개개인의 부족함과 잘못만으로 사고하는 근시안적이고 단절적이며 분열적인 관점과 자세, 사고행태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우리 정부가 향후 입안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6.15시대의 새로운 재외동포정책”은 남과 북의 전체동포들과 700만 재외동포들까지도 모두 포함(包含)하는 통전적(通/統全的) 민족의식과 관점에 기초한 재외동포정책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남북해외 칠천만 겨레를 “하나의 겨레로 하나의 민족으로” 인식하고 사고하는 새로운 관점과 자세에서 백년(百年) 앞을 내다보고 세워내는 재외동포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6.15시대의 재외동포정책에는 남(南)과 북(北)의 상이한 정치사회현실과 급변하고 요동치는 오늘의 국제사회현실을 충분히 반영하되 차이와 어려운 현실들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오히려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대안정책과 방안들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3. 그래서 6.15시대의 재외동포정책은 이전의 남북대결과 경쟁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남북상호협력과 존중,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근거하여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국내동포들과 재외동포들 사이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상호협력과 존중,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재외동포정책 수립의 근본에 자리할 때에야 비로서 “백년대계”로서의 재외동포정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가 바로 그 단초를 마련해보는 계기로 기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4. 따라서 이번 대회는 기존의 사대주의적이고 근시안적이며 분열적이고 단선적인 사고와 전망을 뛰어넘는 자리로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은 재외동포문제와 관련하여 언젠가 우리 모두를 멀리 내다보게 하고 자주적이고 통전적이며 상생적으로 사고하도록 도울 것이다. 또한 언젠가 이런 노력들은 우리 정부로 하여금 6.15시대에 요구되는 새롭고 통전적이며 포괄적인 백년대계로서의 재외동포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갈 수 있도록 건설적인 압력과 전문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I. 6. 15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우리(남북해외 칠천만 전체겨레)와 미국바로보기

가. 700만 재외동포를 포함한 남북해외 칠천만 전체 우리겨레

앞에서 지적했듯 향후 입안되고 새롭게 만들어질 6.15시대의 재외동포정책은 남과 북을 “별개의 국가로, 경쟁상대로, 주적(主敵)”으로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자주통일국가를 이루어내야 하는 같은 겨레로, 같은 민족으로 보아야 하는 인식에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과거와 같이 적대관계와 경쟁상대로 남아있는 한 지난 반세기 강요/남발/계속되었던 역대정권들의 “재외동포무책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200만에 달하는 “재외프랑스인은 우리 조국의 행운이다. 이들은 프랑스 국익의 증진과 문화를 비롯한 언어의 전파뿐만 아니라 상거래의 발달과 프랑스의 경제적 위상제고를 위한 국경 밖에 있는 주요한 성공조건이기 때문이다” 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부끄러웠던 우리의 지난 모습과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700만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에 대한 우리의 근시안적이고 분열적이며 삐뚤어졌던 인식과 자세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해서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도 재외동포들에 대한 기본인식에 있어 프랑스 정부가 그들의 외무부 공식문건에 언급한 내용보다 오히려 한발 더 나간 내용, 즉 “재외동포들은 우리 ‘조국의 행운’이요 긍지이며 자랑이다”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 해본다.

새롭게 전변된 틀과 마음가짐, 패러다임으로 재외동포들 문제 앞에 겸허히 서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작년 [1회 재외동포NGO활동가대회]에서 발표된 글들과 토론들이 다루었던 다양한 재외동포사회문제들,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한국 내 재외동포 노동자의 실태와 개선점”이란 글에서 김해성 목사 가 온몸으로 고발한 “외국인 노동자들과 재외동포노동자들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 문제들도 바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김 목사가 온몸으로 절규하듯 고발하고 있는 문제들은 한국사회가 반세기를 넘기도록 안고 씨름하고 있는 분단(극심한 분열)문제와 친미사대주의문제, 자본주의적 이윤극대화 앞에 사람의 도리도 사회공동체의 윤리도 도덕도 다 팽개친 극단적인 반인륜적 개인주의문화들에서 비롯된 문제들에 다름 아니다.

나. 6.15시대 재외동포정책, 미국바로보기, 그리고 “남 따로 북 따로 해외 따로” 인식문제

새로운 6.15시대에 새롭고 올바른 재외동포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와 관련하여 우리 모두의 사고와 논리 근저에 먼저는 미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머지않은 장래에 구체적인 현실로 불쑥 다가올 미래통일국가로서의 우리(남북해외)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돌아보는 일이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 우리(남북해외)의 경우도 미국과의 관계가 근본문제이다.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에는 “남 따로 북 따로 해외 따로”가 없다. 19세기 후반 조선-미국관계의 첫 걸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남 따로 북 따로 해외 따로”의 결과가 없었음을 웅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오히려 “남 따로 북 따로 해외 따로”의 사고는 인류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주의/식민주의 침략세력들이 피(彼)식민 지배민중들에게 바랬던 “분열과 지배”(Divide and Conquer)의 논리이다. 소위 “북핵문제”를 “북(조선)과 미국과의 문제”라며 남북해외 칠천만 겨레전체의 생존문제에서 떼어 놓고 생각하는 사고와 논리가 바로 좋은 한 예(例)일 수 있다. 1945년 8월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미국과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전쟁의 참혹한 파괴와 대(大)살육으로 그리고 천만 이산가족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는 남북해외 전체 칠천만 겨레의 현실이 웅변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6.15시대의 재외동포정책은 700만 재외동포들을 전체 우리겨레에 포함한 통전적 관점에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해외의 동포들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분열적이고 단절적인 과거의 패러다임은 이제 6.15시대를 맞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 극복해야 할 과거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전체(민족) 속에서 부분(남, 북, 해외)을, 그리고 부분(남, 북, 해외)을 통해 전체(미래의 통일민족국가)를 볼 수 있는 “상호유기적 상관관계”(相互有機的 相關關係: organic relationship) 틀에서 재외동포들과 우리 모두를 “포함적”(包含的: inclusive)이고 “통전적”(通/統全的: holistic)으로 인식하는 일을 우선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 기초 위에서 미국과 전체 세계의 관계를 그리고 그 속에서 미국과 우리 즉 남북해외 전체겨레와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관점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한 몸의 여러 지체들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유기적 생명체로서 재외동포들을 인식하고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과거 역대정권의 “재외동포무책사”는 그 부끄러운 과거의 운명을 끝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내부에는 지극히 냉전적이고 근시안적이며 단선적이고 이분법적인 분단흑백사고와 논리가 팽배하다. 예를 한두 개 더 들어보자.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통일비용이 너무 크다”는 소위 “경제적 이유”를 들어 “통일을 기피하거나 불가능하다”는 사고가 있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심지어 “북녘에 대한 미국의 ‘핵(核)선제공격 군사전략’은 그 피해가 북녘에만 한정되는 일이기에 우리(남녘)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고까지 갖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남과 북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는 어려우니 그냥 현재 그대로가 낫다”는 식의 사고도 다수이다. 어른들의 부끄러웠던 과거가 배설한 오물(汚物)들, 즉 지극히 근시안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분열적인 이분법적 분단사고행태가 어떻게 우리자녀세대들에게까지 이식(移植)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좋은 예이다.

재외동포사회 어디를 가든 조국 땅 남녘의 한(恨)맺힌 남북분단현실은 그대로 재현(再現)되고 있다. 조국땅을 가로 질러 남북의 동포들을 반세기를 넘기도록 나누어 놓은 “원한의 삼팔선”과 뼈아픈 분단현실은 그대로, 아니 어쩌면 경우에 따라 더 심하게 재외동포사회들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북녘이야기만 나오면 예외 없이 분단논리와 극단적인 이분법적 흑백사고는 극(極)에 이른다. 논리도 이성도 합리성도 관용도 없다. 마치 악(惡)만 남은 사람들 사이에 극도의 감정만이 난무하는 모습들뿐이다. 오늘 남녘사회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이념적 양극화의 모습은 그대로 재외동포사회 속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만약 극복되지 못할 경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사회의 망국병(亡國病)이라고 하는 “분단논리와 지역사고”들이 끝없이 빚어내고 양산하고 있는 분열과 경쟁대결의식은 오늘도 그 날을 세우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사대주의와 지극히 근시안적이며 단선적/직선적이고 서구자본주의의 개인주의적인 가치관과 분열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판을 치는 분단현실을 시급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바로 이러한 논리와 사고들이 6.15시대에 부응하는 올바른 재외동포정책 입안과 미래의 자주통일국가건설에로 나아가는 길에서 분명하게 극복해야 할 논리와 사고들이다. 위의 서구식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분열적 사고들을 극복할 대안적 논리와 사고들로 제안코자 하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와 “통전적”(通/統全的)이며 상생적(相生的)인 시각과 관점이다.

700만 재외동포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 2200만 북녘동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 4200만 남녘의 우리들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스스로를 “21세기의 대제국”(Great Empire of the 21st Century)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갖추어야 할 자세와 시각이 바로 이 역지사지의 자세와 통전적이며 상생적인 관점과 시각이다. 남북해외 칠천만 겨레 전체를 바로 아는 일, 특별히 “세계유일강국”이라고 자처하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미국”을 바로 아는 일을 게을리하는 한 우리민족에게 밝은 미래는 없을 것이다. 우리(知己)와 미국(知彼)을 바로 알고 그에 바르게 대처하고 준비할 때 우리에게 비로소 자주통일국가의 미래도 있을 것이고 긍지 높고 자랑스러운 “조국의 행운”들인 700만 재외동포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700만 재외동포들의 행복과 안녕을 포함한 우리겨레 전체 칠천만 민족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미국을 바로 아는 일처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옛말을 굳이 거론치 않더라도 말이다.

다. 미국의 위기가 역설적으로 세상과 우리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

미국의 위기(危機)는 곧 세상의 많은 나라들과 우리 전체겨레에게 있어 기회(機會)가 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오늘 이 말은 진리(眞理)일 수 있다. 말을 바르게 하자면 세상의 적지 않은 나라들, 특별히 많은 제 3세계 나라들이 온갖 형태의 위협과 전쟁과 약탈과 착취를 통해 위기와 절망으로 내몰리고 있는 냉엄한 국제사회현실에서 미국은 많은 경우 일종의 큰(大)가해자 단위에 속한다. 따라서 미국에 위기가 오면 역설적으로 피(彼)가해자들인 해당 나라들, 특별히 남북해외 칠천만 전체 우리겨레에게는 상대적으로 평화와 안정과 독립과 자주적 발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좋은 예 중의 하나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소위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침공과 이라크문제, 그리고 최근의 카타리나 태풍피해까지 포함한 다양한 정치경제문제들로 수세에 몰려있는 부시 행정부의 위기가 북미간의 첨예한 이견들로 인해 마지막까지 회담전망을 어둡게 했던 지난 달의 “4차 6자회담”을 전격적으로 타결시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늘의 북미관계가 이를 잘 방증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란을 포함한 다른 제 3세계 나라들과의 관계에서도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연합을 비롯해서 중국, 러시아의 관계에서도 미국은 이전처럼 행세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부시 행정부가 수세에 몰리고 위기에로 내몰리고 있다는 또 다른 하나의 방증이다. 이전과 달리 지난 10월 60차 유엔총회에서 행해진 부시의 연설도 상대적으로 고분고분했다. 이전에 마치 “온 세상을 호령”하듯 했던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모습과 태도는 상대적으로 덜 나타났고 뒤로 숨었다.

뉴올리안즈 시를 비롯 남부의 여러 인근 주를 강타한 최근의 카타리나 태풍은 미국사회의 여러 가지 근본적인 본질적 문제들을 세상에 발가벗겨 놓았다. 적지 않은 수의 미래문명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미국(문명)은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위기”에로 내몰려있다. 카타리나 태풍위기 때 심지어 부시는 당시 초청해 놓았던 국빈이었던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조차도 뒤로 미루었을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미국 중심의 군수산업복합기업들과 주로 미국과 서방금융(투기)자본들의 소수이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세상에 심대한 정치사회경제적 타격을 입힌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우리나라를 비롯 세상의 많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에도 심각한 내적 위기를 초래했다. 이번 카타리나 태풍이 야기한 미국의 위기를 하버드 대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샌들교수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발생한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지난 20여 년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증명하며, 부시 정부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뉴올리언스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샌들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도 “정당성 없는 전쟁”이라며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그는 "9ㆍ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은 그 곳이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정당성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라크 침략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다 거짓이거나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라크 침략의 부당함을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대량 살상 무기를 전쟁의 이유로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둘째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에서 온 것도 아니고 사담 후세인이 그들을 지원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유도 설득력이 없다. 셋째 부시 행정부는 이슬람권 국가들의 서구식 민주화 역시 중요한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것은 그 정당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불합리한 이유와 비현실적 목적을 위해서 수 많은 생명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카타리나 태풍으로 발가벗겨진 오늘의 미국모습에서 세상은 언젠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을 파멸로 몰고 갈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보게 된다. 오늘 전체 미국문명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는 소위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달리 표현하여 “피나는데 반창고 붙이는 류”의 치료로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마치 “암(癌)을 진통제 알약 하나로 치료”하려는 시도와 같기 때문이다. 이번 부시 행정부가 카타리나 태풍피해에서 보여준 행태는 “암이 말기(末期)에 달한 사람에게 약 몇 봉투 지어주면서 됐다”고 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근본과 본질을 외면하고 놓치는 대처다. 파편적인 미국식/서구식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 이분법적 접근이 야기한 인류전체의 위기는 결코 미국식 기독교적 선악논리와 이분법적 흑백논리로는 치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안논리와 사고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필자가 본 논고에서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는 우리자신들과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의 이분법적 논리와 사고의 문제들은 이번 카나리나 태풍피해를 분석하여 특집으로 다룬 [한겨레 21 제 577호]가 제목으로 뽑은 “미개한 미국”에서 잘 지적되고 있다. 카타리나 태풍피해를 통해 드러난 오늘의 미국에서 세상은 역지사지의 자세와 통전적이며 상생적인 공동체적 관점이 결여된, 그래서 겸허한 자세와 유기적 상호관계의 시각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만난다. 이는 미국사람들뿐만 아니라 때로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自畵像)이기도 하며 세상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 서구식 자본주의적 개인주의문화와 서구기독교의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서구기독교가 선교(Mission)의 이름으로 세상 곳곳에 뻗어나간 것만큼이나 온 세상으로 확산된 지구적 차원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양심적인 전문가들과 진보적인 학자들은 인류가 오늘 직면하고 있는 이런 위기현상과 결과들을 앞에서 지적한 근시안적이고 단선적/직선적이며 분열적인 이분법적 논리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사회의 개인주의적 서구기독교 문화와 연결시켜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서방의 사고와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추종하려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 특별히 많은 기독교인들의 사고와 논리에서 우리는 바로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부시(Bush)의 카우보이(Cowboy)식 선악논리와 이분법적 흑백사고를 만난다. 지난 몇 세기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 논리와 사고들이 낳아 놓은 결과들은 전체 인류사회를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에로 몰아 넣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아직도 일종의 종속관계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정상이 유엔총회연설에서 근본문제로서의 하나인 제국주의문제를 “용감하고 지혜롭게” 지적했다.

유엔 창립 60주년을 맞아 유엔 역사상 170여명의 가장 많은 국가정상들이 참가한 유엔총회에서의 기조연설에서 (한국국내정치문제와 신자유주의문제를 비롯한 경제분야에서의 많은 문제와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내용은 이 글이 애써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의 하나를 아주 용감하고 지혜롭게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제국주의문제”를 지적하며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미국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중심의 제국주의적 사고와 지배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 근본문제들을 지양, 극복하기 위해 “평화공존과 상호존중과 협의에 기초한 민주성, 책임성, 효율성의 바탕 위에서 도덕적 권위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향후 세계가 나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대안이념과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하부 종속국 위치에 머물렀던 “대한민국”의 과거 위상을 고려할 때 상상키 어려운 발언이었다. “격세지감”이란 표현은 실로 이럴 때 써야 할 것이다.

라. 미국의 재정위기,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설법하는 위선과 거짓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로 치닫고 있다. 클린턴 8년 임기 동안 어렵게 정상으로 잡아 놓았다던 소위 쌍둥이 재정무역적자문제가 다시 천문학적 단위로 되돌아와 있다. 미국경제는 지금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격이다.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2300억($ 230 billion)달러에 달하는 잉여재정을 포함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재정상태를 물려받은 부시 행정부는 미국경제를 5년 사이에 79조($7.9 trillion)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올려 놓았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하루에 17억($1.7 billion)달러 규모로 늘어가고 있다.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침략전쟁비용으로 한 달에 40억($4 billion)달러에서 50억($5 billion)달러 씩 쏟아 붓고 있는 미국의 재정무역적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미국의 위기는 이러한 경제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라크 재건사업 수주에서처럼 부시 대통령과 체이니 부통령 측근 기업들은 카타리나태풍으로 피해를 본 지역들의 재건사업에서도 사업수주를 따냈다. 언론 앞에서 부산을 떨며 태풍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듯 하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던 부시의 모습은 거짓이고 위선이었다. 그 어떤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비판도 더 이상 기능하거나 먹혀 들지 않을 정도로 미국은 지금 총체적 도덕불감증의 사회로 급격히 전락하고 있다.

미국의 소위 “양당 민주주의 제도”는 어쩌면 일찍이 그 운명을 고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회와 세상의 근본문제들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민주적 양당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해야 옳을 것이다. 지난 5백 년에 걸쳐 7천만 명을 넘는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에 대한 대학살 (Native American Holocaust)과 수백여 년에 걸쳐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노예무역(Black Slave Trade) 과정에서 희생된 수천 수백만의 흑인들에게 있어 “복음주의적 기독교국가”라는 미국의 소위 양당 민주주의제도는 그 끔찍했던 인류범죄의 동조자요 방관자였다. 과거에는 물론이요 오늘도 계속 범하고 있는 온갖 형태의 인류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바로잡음이 없을 때 오늘과 내일의 세상에 진정한 정의와 화해, 발전, 민주주의, 평화, 인권회복은 있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세상 다수의 기대와 정반대이다. 오히려 미 국무부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매년 소위 “인권침해국가”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들 국가들에 대한 제제를 논하고 온갖 형태의 협박을 가한다.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치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사람 나무라는 격”이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카타리나 태풍이 만천하에 발가벗겨 놓은 미국의 진면목은 그들의 위선과 거짓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사회에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관타나모 미국해군기지 포로수용소와 이라크의 아부 가라이브 형무소에 억류된 “전쟁포로”들을 비롯한 무슬림 교도들에 대한 극심한 인권침해와 탄압을 다시 거론한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국제사회의 정당한 비판과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자세와 반응은 말 그대로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카타리나 태풍피해는 미국 사회내의 가난한 비(非)백인계층에 대한 미국 지배계층의 수백 년에 걸친 정치경제적 부정의와 심각한 인권침해문제를 극명하게 들어낸 사건에 불과하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논하고 비판한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부시는 그의 2기 취임식 연설에서 마치 온 세상을 협박하듯이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를 전 세계에 확산해서 인권침해가 심각한 독재국가들을 응징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래서 그는 온 세상에 소위 “미국식 삶의 방식”(American Way of Life)을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온 세상이 실소(失笑)했다.

II. 재외동포통사(在外同胞通史)

가. 민족해방전사(民族解放全史)와 자주통일전사(自主統一全史)로서의 재외동포통사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야욕과 일제(日帝)의 군국주의가 해외침략의 기회를 높아갔던 시절, 조선의 국운이 급격히 기울어지며 시작된 “재외동포역사”는 주권을 뺏기고 나라를 잃은 채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 낯선 이국 땅에서 또 다른 식민과 노예의 한(恨)맺힌 삶들을 시작했던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식민지 조국의 안과 밖에서 모질고 모진 “나라 잃은 노예”의 삶을 인고(忍苦)하며 피를 흘렸던 것도 모자랐을까? 우리민족은 일제에게서 해방되었다는 꿈같은 현실을 뒤로 한 채 분단(分斷)과 전쟁이라는 더 엄중한 시련에 놓이며 또 다시 깊은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져갔던 시련을 맞아야 했었다. 그러나 300만이 넘는 인명피해와 삼천리금수강산이 초토화되었던 전쟁의 상흔도 딛고 이제 우리 모두는 7백만 재외동포들을 포함한 7천만 전체겨레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식민과 분단과 전쟁의 사슬에 놓였던 한 세기(世紀)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재외동포통사는 그러므로 곧 우리 겨레 모두의 “민족해방전사”(民族解放全史)요 “자주통일전사”(自主統一全史)이다. 우리에게 한편으로 끝 모를 시련과 도전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시련과 도전은 미래의 “위대한 자주통일민족의 웅지(雄志)를 준비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해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겨레에게 있어 이 연단과정은 겨레 전체의 정신적 뿌리요 본원(本源)인 (한인한웅)단군민족의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을 통해 “세상을 더욱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해석해서 크게 틀릴까?

역대정권들에서 이루어진 근시안적이고 분열적이며 반민족적인 과거의 “재외동포무책사”는 재외동포사회들에 기쁨과 보람과 긍지보다는 부끄러움과 수치와 아픔들을 대신 양산해왔다. 끔찍이도 아팠던 재외동포역사들 중에서 가장 어려웠고 힘들었던 동포역사는 바로 재일동포역사일 것이다. 최근 6.15시대를 맞으면서 지난 시기 참으로 어려웠던 재일동포사회에 적지 않은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거 한편에 남(한국) 군사독재정권의 분신으로 태어나 키워지고 유지되었던 재일거류민단(이하, 민단)조직과, 또 다른 한편에 북(조선)을 자신들의 조국으로 택하고 북한의 해외공민권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사회에서 온갖 불이익과 탄압과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재일조선인총연맹(이하, 총련)의 한(恨)맺힌 지난 역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민단에도 속하지 않고 총련에도 속하지 않은 채 제3의 또 다른 동포사회운동세력을 대표하는 한통련(韓統聯)조직이 겪었던 어려움 역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각종 차별들이 극심했던 일본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일반적인 어려움 외에 역대 군사정권에 저항하고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반국가단체”로 낙인 찍혀 조국과 고향 땅과 부모처자형제조차 찾지도 만나지도 못하고 오고 가지도 못한 채 40여 년 가까이 일본 땅에 갇혀 살아야 했던 한통련 관련 인사들의 한(恨)서린 아픔을 어찌 다 글로 옮길 수 있으랴! 재외동포통사에서 유례없이 혹독했던 재일동포역사로부터 우리 모두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분단의 아픈 상처들을 보듬은 채 어려운 과정을 이겨 헤쳐나가야 하는 재일동포사회의 현실을 깊이 감안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6.15시대의 협력과 상생, 통합정신이 머지 않은 장래에 재일동포사회에도 뿌리내려져 과거의 대결적 분단갈등구조가 극복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할 것이다.

미국과 카나다 그리고 유럽 등의 소위 서방권 재외동포들의 경우 역대권력의 시녀로 자처해 나섰던 과거의 많은 역대 재(在)OOO한인단체들의 슬픈 자화상 또한 분단이라는 근본문제에서 재일동포사회가 겪고 경험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편 재외동포사회들에는 지난 시기 암울했던 시절 역대 정치권력들의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고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을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했던 사람들에 의한 재외동포운동사가 있다.

나. 필자의 25년 개인운동사와 재외동포들의 자주통일운동사

재외동포들에 의한 재외동포운동을 크게 셋으로 나눌 때 먼저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던 60-80년대의 “민주화 지원운동”을 들 수 있겠다. 둘째, 80년 광주항쟁 이후 해외동포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일어났던 자주통일운동이 있다. 셋째, 90년대 이후 미국사회에 중요한 하나의 소수민족운동으로 뿌리를 내린 “소수민족권익옹호운동”도 큰 틀에서 해외동포운동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필자가 참가했던 미주동포운동사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기점으로 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과 8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을 포함(包含)한- 자주통일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필자가 주로 관계했던 해외동포운동은 후자인 80년대 이후의 자주통일운동이었다. 따라서 본 논고는 80년대 이후의 자주통일운동사에 국한해서 쓰여졌다. 그러나 본 논고는 미국과 일본지역운동 이외의 지역들에서 진행된 다른 동포사회통일운동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다. 특별히 이 글은 재외동포들의 다양한 운동들에서도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으로 불렸던 “자주통일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필자는 지난 25년 해외동포로서의 필자의 개인운동사(個人運動史)도 지난 시기 해외동포들에 의한 “자주통일운동사의 한 부분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980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나 2005년 5월 영구귀국하기까지 만 25년을 미주동포로 살며 해외에서 일하다 조국땅으로 다시 되돌아온 예외적인(?) 개인사를 갖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남북해외3자연대통일운동과 관련하여 지난 25년간 100여 차례가 넘는 서울방문과 40여 차례가 넘는 평양방문을 계속하였다. 또한 필자는 해외의 다른 많은 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화해와 조국통일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역대정권들로부터 두 번에 걸쳐 모두 10여 년을 입국금지 당하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1987년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면서 더욱 적극화된 필자의 해외통일운동은 카나다를 포함한 북미주동포운동을 비롯해서 일본, 유럽, 호주지역 동포운동단체들을 꾸준히 방문하는 과정에서 타 지역 동포사회와 운동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배움을 얻었던 배경과 세계 5대륙의 50여 개 나라들을 역시 꾸준히 방문하면서 배운 국제연대운동경험을 통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전기간을 활짝 꽃피웠던 “남북해외 3자연대통일운동”전반에 깊이 관계하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의 지난 25년 해외통일운동사는 곧 “한 미주동포의 해외동포통일운동사”라고 평가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 자주통일운동과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에 있어서 해외동포들의 역할과 공헌

필자가 미주에 체류하여 살기 시작했던 80년대 초부터 남북해외통일운동역사에 길이 남을 “남북해외 3자연대통일운동”이 시작되었다. “3자연대운동”은 말 그대로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들 3자가 힘과 지혜와 뜻을 모아 조국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해 함께 일했던 “연대운동”을 뜻한다. 필자는 인류사에 드문 어려운 도전이요 과제인 한/조선반도 분단문제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조국을 이루어내기 위해 700만 재외동포들과 남과 북의 조국동포들이 힘을 합쳐 혼신을 기울였던 통일운동을 “남북해외 3자연대통일운동”이라고 정의했다. 특별히 3자연대운동의 한 축이었던 해외통일운동을 논하며 재일동포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재일동포운동이 재외동포운동사에서도 역사와 연륜이 가장 길고 높을 뿐만 아니라 심히 어렵고 혹독한 조건과 처지에서도 멈춤이 없었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운동역사에 있어서 재일동포운동은 그래서 일종의 “큰형”(大兄) 격이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재일동포사회는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살아야 했던 식민과 분단시대의 제일 큰 피해자들인 셈이다. 일본사회의 극심한 차별정책과 불평등한 제도에 의한 고난뿐만 아니라 조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첨예한 남북대결구도에 처해 있었을 때 바로 그 대결과 상극의 패러다임이 재일동포사회에도 그대로 재현되었던, 해서 분단의 고통과 어두움이 깊게 얼룩진 또 다른 남북대결역사가 바로 재일동포역사이었기 때문이다.

분단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존재는 전체 해외동포 지역들 가운데 미국과 일본거주 동포운동의 정치적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80년대 이후의 해외동포통일운동에 있어서 미주동포운동과 재일동포운동이 차지했던 역할과 책임이 상대적으로 컸다. 60년대 시작해서 80년대와 90년대 내내 계속되었던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해외공관들과 해외공관에 파견된 정보요원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일종의 “거수기” 역할과 “시녀”(侍女)역을 자임했던 (북미주의 경우) “한인회”들과 (일본의 경우) “민단”을 통해 해당 지역동포사회들에 대한 일종의 “동포사회분열책동”과 해외통일운동인사들에 대한 온갖 비방과 중상모략, 방해와 협박, 입국금지와 강제퇴거조치, 지어는 “조작간첩사건”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통일운동은 국내운동이 그러했듯 멈춤이 없었고 꾸준히 성장,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90년대 내내 꾸준히 발전했던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였던 자주통일운동에 일(一)주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역사와 민족이 기대했던 역사적 과제와 책임들을 나름대로 훌륭히 감당했다. 필자는 향후 후대의 통일역사가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 6.15 이전까지의 해외통일운동사를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의 꽃을 활짝 피워내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기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려 최선을 다했던 역사로 기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간차원에서의 남과 북의 접촉과 왕래, 교류가 전무하고 극히 어려웠던 시절 해외에서 살며 체류하였던 조건과 처지를 십분 활용해 해외의 통일운동가들이 남과 북의 끊긴 혈맥을 이어내고 숨을 트이게 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남과 북의 “다리와 교통의 역할”을 자처해 맡아 나섰던 역사를 후대 통일역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자주통일운동사에서 남북해외3자연대운동이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역사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이후 “국제평화대행진”으로 통칭)으로 더 알려졌던 1989년 7월과 8월의 역사적 사건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인들에게 흔히 “임수경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민간인에 의한 “분단선 돌파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국제평화대행진에는 전대협대표였던 임수경 씨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 신부가 참가했다. 분단 이후 외세가 강제했던 “원한의 분단선”을 칠천만 겨레의 이름으로 자신을 희생해서 돌파해냈던 최초의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당시 “국제평화대행진”에는 해외동포 200여명과 33개국에서 참가한 100여명의 타민족대표들 그리고 남과 북에서 참가한 200여명 합해 모두 500여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참가해 최선을 다했던 “최초의 남북해외3자연대운동”사건이었으며 코리아분단문제에 30여 개국의 국제인사들이 합심해서 참가했던 “최초의 코리아국제연대운동사건”이었다. 1989년의 국제평화대행진사건은 향후 10여 년에 걸쳐 “남북해외 3자연대통일운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끝없는 탄압과 위협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 해외에서 계속되었던 자주적인 민간통일운동은 2000년 6월 15일 통일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탄생케 하는데 진보적인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일정한 자기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주통일운동은 80년대 90년대의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을 거치면서 남(한국)과 북(조선)정부 차원의 “화해교류협력의 6.15시대”를 열게 한 결정적인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크게 일조(一助)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차원의 통일운동”이라 평가될 수 있는 “6.15시대의 자주평화통일운동”인 “민족공조운동”의 문을 열어젖히는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제 80년대 90년대 꽃피웠던 “남북해외 3자연대운동”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이 요구하는 변화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더욱 성장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칠천만 겨레의 자주통일운동사는 앞에서 누차 강조했듯 전혀 새로운 차원의 6.15시대를 활짝 여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전체 남북해외 자주통일운동역사에서 재외동포들에 의한 자주통일운동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남북해외 칠천만 전체겨레(몸)의 한 부분(지체)이며 민족적 자랑이고 긍지이자 민족의 큰 자산들이기 때문이다.

라. 훌륭한 (홍보, 경제무역, 문화예술, 정치외교) 민간대사로서의 재외동포들

우리나라가 머지 않은 장래에 자주통일국가로 제자리에 바로 서게 되고 그 결과의 하나로 “자주통일시대의 재외동포정책”이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게 될 때 재외동포들은 그들의 해당 거주국가들에서 자기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훌륭한 “민간대사”들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은 쓰임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제 나라와 국가를 세상에 올바르게 홍보하는 홍보일군에서부터, 경제를 돕는 일에서의 경제무역일군으로, 우리의 글과 유구한 문화예술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문화예술일군으로, 나아가서는 정치외교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민간홍보대사요, 민간경제무역대사요, 민간문화예술대사요, 민간정치외교대사들이 될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의 자랑이자 훌륭한 재부(財富)인 셈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입안, 추진되어야 할 우리나라의 향후 백년대계로서의 재외동포정책들은 700만 재외동포들 모두가 나라와 민족의 훌륭한 재보요 긍지요 자랑이라는 인식하에 그들에 대한 물심양면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 문민정부 시절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재외동포정책은 한마디로 “체제경쟁과 냉전분단이데올로기와 반공반북감정과 친미친일사대주의의 한 결과물”이었다. 옛말의 가르침처럼 정부(윗물)가 그러했으니 말단하부(아랫물) 행정단위야 오죽했을 것인가! 많은 경우 “민족도 주인의식도 긍지도 사상도 철학도 꿈도 미래도 없는 무책(無策)으로서의 정책 아닌 정책”이었던 당시의 재외동포정책들은 크게 “졸속행정과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 과거는 그렇다 치자.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명숙 의원이 2004년 그의 발제에서 지적했듯이, 오늘 “세계 각국은 적극적인 재외동포정책을 통해 세계무대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능동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탈냉전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에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옳은 지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이후 탈냉전적 사고와 분단극복의 지향이,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의식이 정부와 국가의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이후의 재외동포정책 또한 큰 틀에서의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갖고 관련자료들을 더 조사하고 참고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준비된 부족한 본 논고를 마치기 전에 한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재외동포들의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기리고 높이기 위한 장기적 차원의 “민족교육지원정책”에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물심양면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어디를 가건 예외 없이 일종의 “민족학교” 성격의 “한글학교” 혹은 “한인학교” 등을 세워 겨레의 얼과 혼이 담긴 우리말과 글과 문화예술의 전수와 교육에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이전의 군사독재정권 시절보다 상대적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국가차원의 재외동포들에 대한 지원은 한마디로 아직도 초보적이고 미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작년 제 1차 재외동포활동가대회 때 한명숙 의원이 자신의 발제에서 인용한 2002년 국무조정실 정책평가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재외동포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주요 부처들의 2003년 총 예산액이 약 5백억 원에 그치고 있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5천만 달러인 셈이다. 170여 개국에 분포해서 살고 있는 700만 재외동포들을 생각할 때 차마 한 나라의, 그것도 세계 경제규모 11위 12위의 위치에 있다는 국가의 전체예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우리나라 재외동포정책의 현주소이다.

나가는 말

머지않은 미래에 이루어낼 위대한 자주통일국가 건설의 길에서 세계인류에 공헌하는 우리의 또 다른 자신들: 700만 재외동포들!

700만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살며 일하고 있는 지역들이 한반도를 떠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바로 우리들의 또 다른 분신들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남북에 있는 동포들뿐만 아니라 700만 재외동포들까지 포함하는 6.15시대의 재외동포정책을 적극 개발하고 그것들을 적극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 재외동포들은 일종의 민간대사들인 셈이다. 정부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조국과 민족의 훌륭한 민간대사들로 세상에 우뚝 서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서 살며 무엇을 하건 제 민족과 나라에 대한 드높은 긍지와 자랑과 뿌리의식과 소속감을 갖고 떳떳하게 살며 일해 자신들이 속해 살고 있는 나라와 국가들에도 공헌하고 나아가서는 세계인류에 공헌하는 자랑스러운 “세계 속의 코리안”(Global Korean)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제 친자식처럼 적극 품어 안고 돕는 향후의 “새로운 6.15시대 재외동포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재외동포들은 또한 분단조국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주통일국가를 세워가는 일에 있어서도 방관자가 아니라 자주통일사역의 일(一)주체들이다. 한반도 조국 땅의 안과 밖이라는 차이 이외에 재외동포들과 국내의 동포들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없다. 바로 이런 인식과 판단에 기초하여 자주통일국가를 앞당겨 오는 일에 있어서도 재외동포들이 재외동포들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안내해야 할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재외동포들은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옹글게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분단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한 일에 자신들의 온 생을 바쳐 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앞으로도 적극 분단의 멍에를 벗고 통일과 자주의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가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역할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적지 않은 수의 2세 3세 자녀들이 미국사회와 일본사회, 그리고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지역들에서 국가와 사회의 지도적 위치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와 모습들은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 비율이 높아갈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 2세 3세 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사회의 경우 한국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인식자체에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다. 주류사회에로의 진출에서 눈에 띄는 예들은 교수나 과학자, 변호사, 의사들 같은 전문직에서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업들과 문화예술, 대중운동(스포츠), 특별히 위성미 양 같은 천재골퍼로 인해 더욱 위상이 높아지는 여성골프의 경우이다.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굴지의 골프대회들에서 한국 낭자들의 선전(善戰)소식은 더 이상 이제 낭보가 아니다. 분단조국의 암울하고 고난에 찼던 지난 50년의 부끄러웠던 역사를 가슴에 품은 채 타향에서 고난과 역경과 외로움을 딛고 우뚝 일어서 주류사회에로의 눈에 띠는 진입과 성공신화들을 일구어가고 있는 오늘의 재외동포역사는 과거의 재외동포역사를 돌아볼 때 남다른 감회요 긍지요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해서 새로운 시대인 6.15시대의 재외동포정책은 이제 더 이상 그 기조와 시각과 관점에 있어서 남과 북을 별개의 국가로, 주적(主敵)관계로 혹은 경쟁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하나가 될 “하나의 겨레, 하나의 민족”으로 그리고 세계에 우뚝 서는 세계 속의 “글로벌 코리안(Global Korean)”이라는 통전적 시각과 상생적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개발되고 입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겨레는 2000년 6월 15일에 지난 반세기를 지배했던 “대결과 경쟁과 상멸”의 이데올로기 대신 “화해와 협력과 상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온 세상에 공포했다. 그 이후 우리는 아직도 어렵고 많은 도전과 걸림돌들이 상존하고 있는 조건과 처지에도 불구하고 [6.15 시대의 새로운 화해협력상생패러다임]을 뿌리기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오늘의 세계와 우리의 6.15시대는 이제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분단논리와 반공, 반북대결의 수구적 냉전논리가 상수(常數)였던 시대를 거부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대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고 남북해외 칠천만 겨레가 모두 더불어 함께 살며 끝없이 크게 융성, 발전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가져온 변화는 실로 분단 이후 최대의 변화이다. 그 변화는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 모두를 어제와 오늘의 분단논리와 대결구도를 넘어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상호검증과 상호존중의 과정을 거쳐 점차 하나의 “연합제” 혹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의 자주통일국가에로 성큼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과거의 행태와 논리에 젖어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아직도 과거의 냉전적 사고와 반공반북 대결의식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부둥켜 안고 씨름하며 극복해가야 할 분단현실의 현주소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무시해서도 또한 폄하해서도 안될 것이다. 해서 향후의 재외동포정책들은 오늘의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반영한 지혜롭고 슬기로운 대안방안들을 정책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화와 상생의 미래를 향해 더디더라도 함께 변화 받고 변화시키며 더불어 앞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옛말을 새겨들을 수 있어야 한다.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원칙과 도리를 지켜가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갈 때 우리는 머지 않은 장래에 “결코 오르지 못하리라”던 높고 높은 “자주민주평화통일의 상상봉”에 우리모두 함께 올라가 있게 될 것이다!

조국의 남과 북에 있는 동포들에게 700만 재외동포들이 “조국의 행운”이요 겨레의 자랑이요 재보이듯이 해외에 있는 700만 재외동포들에게도 조국 땅 남과 북의 동포들 또한 높은 긍지요 자랑이며 정신적 힘의 원천이다.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 서로서로 어깨동무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 겨레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2005년 10월 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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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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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1회 재외동포 NGO 활동가대회: -2004년 재외동포의 현실, 그리고 미래- 자료집, 8쪽
[2] 제 1회 재외동포 NGO 활동가대회 때 발표되었던 “21세기 동북아 시대와 한민족 발전전략 구상”에서 저자인 임진철 교수는 “과거 군사정권시절에는 재외동포를 체제안보와 정권안보의 시각에서 감시관리대상으로 접근[해왔으며] 이후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시절에는 이러한 접근방식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렇다 할 독자적인 재외동포정책과 전략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외교통상부의 외교정책과 전략의 하위개념에서 관리되어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위의 자료집, 32쪽
[4] 김해성 목사는 기독교장로교 소속 목사로 현재 “외국인노동자의 집과 중국동포의 집”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해성 소장은 그의 글에서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유린문제, 불법체류자문제, 임금체불문제, 심각한 산업재해문제, 사각지대로 불리는 노동자들에 대한 진료문제, 폭행 및 사기문제, 온갖 형태의 차별문제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국내동포들과 악덕기업주들의 악덕행위들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들의 생각과 자세를 포함한 국가차원의 제도적 변화가 없이는 김 목사가 고발하고 있는 재외동포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현실을 계속될 것이다.
[5] 샌들 교수는 최근 태풍피해를 통해 드러난 미국사회의 문제를 지난 20여 년 가까이 미국 정부가 추진해 오고 있는 신자유주의에서 그 주요 원인을 찾았다. 더 인용해보자. “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의 재앙이 곧 인간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인간의 재앙의 직접적인 계기는 허리케인이었지만 그 근원에는 하층 계급 특히 흑인 계층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부시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속해서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하기 위해서는 교육, 의료, 복지 서비스 등 삶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계층, 인종을 초월해서 평등하게 제공돼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들,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것들까지 제공받지 못한다면 연대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삶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빈부,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급되는 사회였다면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샌들 교수는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교육, 의료, 복지 분야에서 정부의 책임을 감소하고 시장에게 모든 것을 맡겨 왔으며 그 결과 이번 비극이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이 연대하기 위한 미국 사회의 토대가 근본부터 무너졌고 그것이 이번 뉴올리언스의 비극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6] 그러나 샌들 교수는 이번 사태가 “미국문명의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카타리나가 덮친 뒤 뉴올리언스의 무정부 상태를 염두에 두고 "이것이 "미국 문명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는 지적에 대해 샌들 교수는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해석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샌들 교수는 "미국 내에서는 행정부가 늑장 대응을 했고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면서 흑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뉴올리언스의 하층 계층이 큰 피해를 입고 있어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큰 피해를 입은 희생자가 가난한 흑인에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재난 피해자 중에는 부유층을 포함한 중산층 이상도 많기 때문에 행정부가 인종 차별 같은 이유로 의도적으로 늑장 대응을 했다는 것은 무리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지역의 어느 특정한 일부분 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종차별문제는 미국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백인문화가 집단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적 질병(“social disease”)의 문제이다. 미국 백인문화와 사회생활 전반에 깊이 뿌리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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