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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한반도 군사상황과 그 미래를 진단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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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11-30 00:00 조회12,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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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다시 읽는 한(조선)반도 군사상황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 뒤에 감춰진 또 하나의 정치적 의도

3. 군사력 평가에서 비교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4. 전쟁사가 입증한 군민합동작전체계의 위력

5. 군민합동작전체계로 본 조선인민군과 미국군

6. 미국군 실전능력의 허상과 실상이 드러난 이라크 침략전쟁

7.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

8. 글을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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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시작하며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2000년에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뒤 4년 동안 민족 내부의 교류와 협력이 추진되면서 남북 사이의 정치적 긴장은 일정하게 완화되었으나 군사적 대치상태는 여전하다. 한(조선)반도가 격렬한 전쟁의 발화점이 존재하는 위험지역이라는 사실은 한(조선)민족의 현실을 날카롭게 규정하고 있다.



한(조선)반도 군사상황의 본질은 미국의 전쟁위협에 맞서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민족적 자주성을 완성하려는 반제국주의 무력인 조선인민군과 사회주의를 말살하고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확장하려는 제국주의 무력인 미국군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나는 2000년 10월 9일에 작성한 글 「평양회담 이후 민족주체적 정세관과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문제」에서 처음으로 민족주체적 관점을 제기하였고, 지금까지 한(조선)반도 정세를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논하는 글을 써왔는데, 이 글에서는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분석하려 한다. 군사상황을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나로서는 이 글이 처음이다.



민족주체적 관점을 알지 못하는 정세연구자들은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병력과 전투장비 같은 객관적 요소들만 가지고 분석하려 들지만, 민족주체적 관점을 가진 정세연구자에게 객관적 요소를 분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체적 조건에 대한 인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체적 조건이란 한(조선)민족 내부에 형성되고 있는 통일전선을 뜻한다.



언뜻 생각하면, 군사상황과 통일전선이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군사상황과 통일전선이 밀접히 연관된다는 것이 이 글에서 전개하려는 내 생각의 요체이다.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다시 읽는다는 이 글의 제목에는 한(조선)민족 내부에 형성되고 있는 통일전선의 관점에서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과 통일전선이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사회주의 진영이 와해된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북(조선)은 반제투쟁에 대한 동맹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조건에서 단독으로 강대한 미국의 전쟁위협에 맞서 싸우며 사회주의 반제전선을 지켜왔다. 물론 반제자주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진보적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북(조선)의 반제자주화투쟁을 지지․연대하고 있으나, 그들의 지지와 연대만으로 강대한 미국의 전쟁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처럼 북(조선)은 국제사회로부터 동맹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나, 동맹국의 지원과는 비할 바 없이 소중한 힘을 민족 내부에서 얻었으니 그것은 남(한국)에서 반미자주의 기치를 들고 싸우는 민족민주세력의 투쟁력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남(한국)의 민족민주세력이 미국을 반대하는 남(한국) 민중의 거대한 힘을 자기가 지키는 민족민주전선에 힘있게 결집하는 동안, 사회주의 반제전선과 민족민주전선은 하나의 지향,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전열을 가다듬으며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완성해가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논한 글은 2001년 9월 18일에 작성한 「조․미 관계 10년을 통해 본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라는 글이다. 당시 나는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한(조선)반도 정세를 분석함으로써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 대 제국주의 미국의 대결구도로 확장․심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나는 그 대결구도에 관한 생각을 밀어 가는 과정에서 북(조선)의 사회주의 자주역량과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의 자주역량이 민족적 자주성이라는 동질을 확인․공유하면서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는 통일전선 대 제국주의의 대결구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미국과 대결하는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반제전선과 남(한국)의 민족민주전선이 만나 하나가 되는 전선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 반제전선과 남(한국)의 민족민주전선은 하나의 핏줄로 통하고, 하나의 언어와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통합되는 민족 내부의 통일전선이라는 점에서, 그 견고성과 역사성이 국제사회에서 형성되는 동맹이나 연대의 성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 의해서 규정․변화되는 것은, 사회주의 반제전선과 민족민주전선이 통합되는 가장 광범위한 통일전선이 민족 내부에 형성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표이다.



일제식민지시기에 사회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이 통합하여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였던 것처럼, 오늘 사회주의 반제전선과 민족민주전선이 통합하여 반미자주와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이 미국의 지배와 수탈로부터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운명은 물론, 진보적 인류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하는 가장 강력한 반제전선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는 인류의 행성 위에서 반제자주화운동을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거점이 되었으며, 한(조선)민족은 반제자주화운동을 최전선에서 떠밀고 가는 가장 전투적인 자주민족이 되었다.




2.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 뒤에 감춰진 또 하나의 정치적 의도




명백하게도, 한(조선)반도에서 날카로운 군사적 대치상태가 계속되는 주된 원인은 미국이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분석하면서, 북(조선)의 남침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결론을 끄집어내거나 남북 사이의 무력충돌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결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면 한(조선)반도 군사상황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오류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계속된다는 사실이, 북(조선)이 자기의 반제전쟁전략에 따라 군사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북(조선)의 군사행동 가능성에 관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할 위험이 임박한 경우, 다시 말해서 남(한국)에 머무는 미국 민간인들이 일본으로 긴급히 소개되고, 미국군 증원군이 남(한국)과 주변해역에 집결되는 경우, 북(조선)이 선제기습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조선인민군이 선제기습공격을 가하는 주공목표는 동족인 남(한국)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의 주적인 미국이 될 것이다. 1994년 6월 한(조선)반도가 전쟁 일보직전까지 밀려갔던 위기상황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공포에 떨게 한 것은, 미국이 미국군을 한(조선)반도에 증파하고 남(한국)에 있는 미국 민간인들을 일본으로 소개할 경우, 북(조선)이 선제기습공격을 가할 가능성이었다. (『연합뉴스』 1999년 10월 27일자) 한(조선)반도에 미국군 병력이 대규모로 증파될 시점이 임박한 경우, 조선인민군이 선제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미국 국가정보기관 관리도 지적한 바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3년 5월 27일자)



미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북(조선)을 노리며 전쟁을 준비해온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기지들, 그리고 주일미국군기지들을 비롯한 태평양군사령부 산하 기지들에 대한 전략적 타격이 될 것이며, 사태가 더 심각해지는 경우 미국 본토에 대한 전략적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서 주적을 집중적으로 타격하는 것이나 기습공격으로 주적의 전략거점을 마비시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군사상식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임박한 전쟁에 대응하여 북(조선)이 선제기습공격을 가할 가능성은, 남(한국)을 공격하는 ‘남침 가능성’이 아니라 전시동원태세에 들어간 미국군에 대한 선제기습공격의 가능성이라는 점이다.



2) 미국이 한(조선)반도 전쟁을 도발하는 전시동원태세에 들어가지 않은 조건에서, 북(조선)이 먼저 미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한(조선)반도에서 일어나는 전면전은 그것이 어느 쪽에서 일으켰는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한(조선)민족 전체에게 재앙을 안겨줄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어느 쪽에도 그처럼 재앙적인 동족살상의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없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은 ‘잠재적인 적’에 대한 전쟁전략이 아니라 ‘현실적인 적’에 대한 전쟁전략이다. ‘잠재적인 적’과 ‘현실적인 적’을 구분하는 기준은 작전계획을 수립해놓고 그에 따른 전쟁연습을 실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로 설정되는데, 한(조선)반도를 노리는 미국군의 작전계획이 수립되고 전쟁연습이 실시된다는 것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이 ‘현실적인 적’에 대한 전쟁전략임을 입증한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북(조선)을 주권국가로 승인하지 않았으므로 적국이 아니라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고, 또한 남(한국) 민족민주세력 역시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명백하게도,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의 ‘현실적인 적’은 북(조선)과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인 것이다.



우선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에서 북(조선)을 ‘현실적인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의도에 관해서 논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이 북(조선)을 ‘현실적인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력을 동원․집중하여 북(조선) 사회주의를 말살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반미테러 말살정책과 달리 사회주의 말살정책과 결부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쟁전략이 반미테러 말살정책과 결부된 경우 이른바 반테러전쟁이 일어나는 데 비해, 그 전쟁전략이 사회주의 말살정책과 결부된 경우에는 대규모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은 중동지역 전쟁전략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재앙적이고 야만적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북(조선)과 전쟁을 벌여 북(조선) 사회주의를 말살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는 북(조선)의 전쟁억지력이 강화됨에 따라 차단된다.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들에서 논한 것처럼, 북(조선)의 전쟁억지력이 재래식 전력만이 아니라 대량보복(massive retaliation)이 가능한 핵억지력(nuclear deterrence)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강화된 것은 명백하다. 핵억지력이란 핵교전에 의한 대량보복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적국의 전쟁도발의사를 차단하는 가장 위력적인 전쟁억지력을 뜻한다.



『워싱턴포스트』 1995년 4월 13일자에 실린 장문의 기사 「미국의 정책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위협(New Threats Create Doubt in U.S. Policy)」은 1994년 5월 미국의 집권세력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들고 나와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극도로 긴장시켰을 때,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는 북(조선)이 2000년까지 1백기 이상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페리가 미국의 핵전력(nuclear force)이 북(조선)의 핵전력를 과연 억지(deter)할 수 있을지 믿지 못한다고 실토하였다는 그 기사내용은, 북(조선)이 미국의 핵전력에 맞서는 강력한 핵억지력을 가졌음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전쟁을 도발해서라도 북(조선) 사회주의를 말살하겠다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북(조선)의 전쟁억지력 강화로 차단된다는 말은, 미국이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포기했다는 뜻도 아니고 북(조선) 사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포기했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강제로 차단된다는 뜻이다. 미국이 제국주의국가로 존재하는 한,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하여 사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북(조선)의 전쟁억지력이 강화되어 미국이 북(조선) 사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차단됨에 따라 미국으로서는 전쟁도발에서 체제붕괴촉진으로 정책기조의 방향을 틀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은 대량보복능력을 가진 사회주의 군사강국과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끊임없이 긴장시켜 북(조선)의 국가자원을 군비에 소모하게 만듦으로써, 지난 냉전시기 소련을 무너뜨렸듯이 북(조선) 사회주의체제도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이다.



미국군의 ‘작전계획 2030(Operation Plan 2030)’이 북(조선) 사회주의의 붕괴를 촉진하기 위한 갖가지 군사적 위협으로 북(조선)을 자극하는 전쟁계획이라는 사실은, 미국 언론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 & World Report)』 2003년 7월 21일자 보도를 통해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요즈음 주한미국군의 정찰작전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1백10억달러를 투입하는 것이나, 미․일 동맹군의 합동작전능력을 증강하는 것, 대량파괴무기확산방지구상(PSI)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 동맹군을 동원하여 해상봉쇄작전훈련을 실시하는 것, 서태평양의 최서단에 있는 미국 영토인 괌(Guam)에 배치한 미국 공군력을 보강하는 것, 태평양군사령부의 작전능력을 ‘디지틀화(digitalize)’하여 보강하는 것, 그리고 북(조선)의 미사일전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사일방어체계(MD) 수립을 다그치는 것 등은 미국이 북(조선) 사회주의의 붕괴를 촉진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른 전쟁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세연구자들의 일반적인 판단에 따르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은 북(조선)에 대한 전쟁전략, 곧 조․미 전쟁전략으로만 규정된다. 물론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이 조․미 전쟁전략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명백하지만,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과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의 상관성이 새롭게 발견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노리는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의 대상에 사회주의국가인 북(조선)만이 아니라 남(한국) 민족민주세력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미국이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을 정치적 적대세력으로 규정하였음을 논해왔지만, 이 글에서는 미국이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을 정치적 적대세력에 포함시킨 것을 넘어서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의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기한다. 이 새로운 견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설명이 요구된다.



1)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바라볼 때, 그 전쟁전략은 미국의 무력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전개되는 전쟁전략이므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의 대상이 한(조선)민족으로 규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전쟁전략의 대상인 한(조선)민족이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이 한(조선)민족 내부에 형성되는 통일전선이라는 점이다. 한(조선)민족 내부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통일전선이 형성됨에 따라서 그 전쟁전략의 대상에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이 포함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2) 미국의 전쟁전략 대상에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미국의 정치적 의도를 분석할 때 더 뚜렷이 드러난다. 나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에 두 가지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의도이고 다른 하나는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의도이다. 드러내 보이는 의도는 위에서 논한 것처럼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북(조선) 사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정치적 의도이고, 감추고 있는 의도는 남(한국)에서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어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위태롭게 될 때 무력을 행사겠다는 정치적 의도이다.



제국주의국가인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배치한 무력인 주한미국군이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점은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들에서 논했으므로 다시 논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 새롭게 지적하는 것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이 그 지배체제의 붕괴를 방지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점이다. 만약 남(한국)에서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어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무너지는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이 가동될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는 무력으로 유지되는 체제이므로, 그 체제가 무너질 위기에 처할 때 무력이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를테면, 1979년 10월 부마민중항쟁과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붕괴위기에 몰아넣었을 때, 미국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한국군을 진압작전에 동원하여 항쟁에 나선 민중을 학살하면서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실제로 가동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지휘에 따라 진압작전에 동원된 한국군이 항쟁에 나선 민중을 학살하는 동안, 코럴씨호(USS Coral Sea)를 주축으로 하는 항공모함 전투단이 한(조선)반도 해역에 급파되었고,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Anderson Air Force Base)에서는 장거리 전략폭격기들이 한(조선)반도를 향하여 비상출격 대기상태에 들어갔던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의 공격목표는 전두환이 중심이 된 군부파쇼세력에 국한되었고 항쟁과정에서 반미구호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당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소수의 학생과 지식인들로 구성된 민족민주세력은 광주민중항쟁에 거의 참가하지 못하였는데도 미국은 주저 없이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가동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오늘 남(한국)에서는 이른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내걸고 국제독점체를 앞세운 미국의 경제수탈정책이 위험수위를 넘으면서 가중된 생계압박을 받게 된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들과 파산․몰락의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가들을 포함하는 대중 전체가 비록 반제자주의식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였으나 미국을 혐오․반대하는 대중적 정서와 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민족민주세력이 이끄는 반미자주화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반미자주화를 정강으로 삼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정치권에 등장하였다. 만약 이런 조건에서 경제난 폭동이나 민중항쟁이 일어나는 경우, 그것은 광주민중항쟁과는 달리 친미예속정권에게 치명타를 가하면서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급속히 무너뜨릴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이른바 ‘우발사태 대처계획(contingency plan)’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그 계획을 작성하고 집행하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부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에 포함된 이른바 ‘우발사태 대처계획’이란 친미예속정권의 통치체계가 경제난 폭동이나 민중항쟁으로 마비되면서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무너지는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저강도전쟁전략(strategy of low-intensity warfare)인 것이다. 저강도전쟁전략은 미국과 친미예속정권의 파쇼적 억압과 수탈이 가중되면서 극도의 혼란에 빠져드는 바람에 경제난 폭동과 민중항쟁이 일어났던 1980년대의 중남미 여러 나라들에서 연쇄적으로 가동된 바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지 『디펜스 뉴스』 2004년 5월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4년 5월 13일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의장 리처드 마이어스(Richard B. Myers)가 국방장관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에게 제출한 ‘2004년도 군사전략기획안’에는 무장폭동이나 내전에 의해서 미국의 동맹체제가 무너지는 우발사태에 대한 미국군의 대응태세를 평가한 대목이 들어있다고 한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가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을 무장폭동이나 내전을 일으킬 수 있는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우발사태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저강도전쟁전략을 세웠다는 점이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글들에서 요즈음 남(한국)의 경제난이 악화되는 추세가 자연발생적인 경제난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민족민주세력이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은, 자연발생적인 경제난 폭동이 일어나 남(한국)에서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붕괴위기에 빠졌을 때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인 ‘우발사태 대처계획’이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이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붕괴위기와 결부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군사력 평가에서 비교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정세연구자들이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인식할 때 중시하는 것은 조․미 두 나라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의 군사력과 미국군의 군사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거의 모든 정세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미국군의 군사력이 비할 바 없이 우세하다는, 마치 정해진 듯한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남(한국) 국방부가 해마다 펴내는 『국방백서』가 그런 ‘결론’을 내놓고 있으며, 한국국방연구원이 얼마 전에 펴낸 책 『2003-2004 동북아 군사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세연구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그 ‘결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하면서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만약 미국이 조․미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전세계에 배치한 자국의 모든 군사력을 한(조선)반도에 동원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미국의 전쟁계획에 따르면, 미국이 조․미 전쟁에 자기의 군사력을 최대로 동원한다고 해도 50% 정도의 군사력밖에 동원하지 못한다. 이라크 침략전쟁에는 20%의 군사력도 동원하지 않았다.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의 이라크 군대는 그만큼 약했다는 뜻이다.



50% 정도의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쟁계획은 미국이 최강의 적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다. 미국이 최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야 조․미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북(조선)이 미국과 군사적으로 맞선 최강의 적들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명백하게도, 그 전쟁은 두 군사강국이 피차 국운을 걸고 맞붙는 가장 격렬한 전면전이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집권세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조선)전쟁처럼 격렬하게 전개되는 대규모 전면전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격렬한 전면전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의 집권세력이 한(조선)반도 군사상황을 극도로 긴장시켰던 위기국면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바 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문가들이 2004년 4월 28일에 펴낸 책 『제1차 북(조선)의 핵위기: 심각해지는 상황(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Going Critical)』은 1993년에 조성되었던 한(조선)반도 전쟁위기를 분석하였는데, 당시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이른바 ‘외과수술식 폭격’으로 파괴할 경우 가장 우려했던 것은 북(조선)이 전면적인 반격이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성원들은 거의 모두 북(조선)이 전면전으로 반격할 것으로 예상하였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1994년 가을, 핵전쟁전략을 담당한 미국의 고위급 군지휘관들은 미국 국방부와 전략사령부에서 한(조선)반도 전쟁을 상정한, ‘재빠른 춤꾼(Nimble Dancer)’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전쟁모의실험을 실시하였으나, 미국군이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지 못해 매우 곤혹스러워 하였다. 미국은 핵무장을 갖춘 적국의 전략목표들을 핵무기로 파괴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핵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식의 격렬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 북(조선)에게는 미국의 핵억지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1995년 4월 13일자) 그 언론보도에서 말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식의 격렬한 전면전이란 북(조선)이 미국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전개하는 사생결단의 핵전쟁을 뜻한다.



이러한 현실상황을 무시하고 조․미 두 나라의 군사력을 단순하게 비교․평가하면서 미국군의 군사력이 비할 바 없이 우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이며, 비현실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2) 조․미 두 나라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비교기준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다. 비교기준의 중심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문제는 작전체계와 전투장비 가운데 어떤 것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비교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전투장비를 중심으로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의 군사력을 비교하면 당연히 미국군이 비할 바 없이 우세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주한미국군의 전투장비에 대한 남(한국) 정부의 용역연구결과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지상군의 전투장비는 17억5백만달러, 주한미국군 공군의 전투장비는 84억8천5백만달러, 주한미국군 해군 및 해병대의 전투장비는 1천10억4천만달러로 총액이 1천1백12억5천만달러로 추산된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11일자) 주한미국군 전투장비가 그러하다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몰려올 미국군 증원병력 69만명의 전투장비는 상상을 뛰어넘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추산될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작전체계를 중심으로 조․미 두 나라 군사력을 비교하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작전체계라는 것은 미국군이 운용하는 전술지휘통제체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미국군의 전술지휘통제체계는 이른바 ‘씨(C)4아이(I)’라고 부르는 지휘, 통제, 컴퓨터, 통신, 정보(Command, Control, Computer, Communication, Intelligence)를 자동화한 통합전장관리체계를 뜻한다. 그와 다르게, 이 글에서 말하는 작전체계는 정규무력과 민간무력, 그리고 민간부문을 총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전시동원체계를 뜻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프러시아의 전쟁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년)의 개념을 빌려 표현하자면, 미국의 전술지휘통제체계는 전술적 무게중심(tactical center of gravity)이고, 북(조선)의 전시동원체계는 전략적 무게중심(strategic center of gravity)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작전체계를 중심으로 군사력을 비교하는 것이 전투장비를 중심으로 군사력을 비교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우선 전쟁관부터 다시 논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집단이 전투장비를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전쟁이라고 한다. 전쟁에서 조직화된 집단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전쟁에서는 힘과 힘이 폭력적으로 대결하게 되는데, 전쟁을 수행하는 힘의 구성성분은 매우 다양하다. 전쟁수행력의 다양한 구성성분을 전투로 집중시키는 것을 작전체계라고 부른다. 힘의 존재방식은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비체계적이고 분산된 힘은 막강하지 않다. 현실적인 힘은 체계의 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충돌하는 힘은 작전체계로 조직된 힘이다. 따라서 전쟁의 본질은 작전체계 대 작전체계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단지 전투장비 대 전투장비의 충돌로 보는 것은 전쟁의 현상만 보는 것이다. 첨단성능을 가진 전투장비도 작전체계에 따라 쓸모 있게 동원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전쟁수행력의 강약문제는 사회적 집단이 가진 다양한 역량을 작전체계로 결집․동원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전쟁수행력은 작전체계가 발휘하는 역량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병력으로 구성된 군대일지라도 작전체계로 결집․동원하지 못하면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전투장비가 아니라 작전체계다. 그런 뜻에서 전쟁은 작전체계의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쟁은 두 개의 사회적 집단을 작전체계로 결집하고 그 역량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는 것에 의해서 그 승패가 결정된다고 할 때, 작전체계로 결집하는 두 개의 사회적 집단이란 군대와 인민이다. 작전체계로 결집된 인민의 전쟁수행력은 민간무력만이 아니라 민간부문 전반에서 발휘되는 무궁무진한 전쟁수행력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군사강국이란 첨단성능의 전투장비를 보유한 나라가 아니라 군대와 인민을 하나의 작전체계로 결집한 나라다. 다시 말해서, 군민합동작전체계를 가진 나라가 진정으로 강한 군사강국인 것이다.




4. 전쟁사가 입증한 군민합동작전체계의 위력




군민합동작전체계를 가진 군사강국이 적국의 우세한 공격력을 꺾고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은 한(조선)민족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조선)민족의 고대사에 등장한 군사강국은 고구려다. 영양왕(590-618년 재위)이 지휘한 고구려군은 문제(541-604년)가 지휘한 수나라군의 침략전쟁이 임박하였음을 간파하고 수나라를 선제공격하였고 결국 수나라는 멸망하였다. 그 뿐 아니라, 고구려와 당나라가 피차 국운을 걸고 전쟁을 벌였던 20년 동안 연개소문(?-666년)이 지휘한 고구려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로 자처하던 당나라군에게 참패를 안겨주었다. 이처럼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계속적인 침략전쟁에 맞서 싸워 승리하고 사실상 최강의 군사강국으로 등장하였던 비결은, 고구려의 독특한 작전체계에 있었다. 평시에 경당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상무정신을 기른 고구려인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띠를 두른 무사집단인 조의선인(早衣仙人)과 좌식자(坐食者)라고 부르는 고구려군과 함께 고구려식 군민합동작전체계로 결집하여 싸웠던 것이다.



군민합동작전체계로 침략전쟁을 물리쳤던 사례는 이순신(1545-1598년)의 전쟁경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말에 일어났던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명장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은, 조선에 침략한 왜군함선 9백35척을 격침시키고 왜병 12만6천3백80명을 살상하였다. 당시 일본이 조선침략전쟁에 동원한 병력수는 1차 침공에 30만6천여명, 2차 침공에 14만1천여명으로서, 모두 44만7천여명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의 공격으로 살상당한 병력이 12만6천3백80명이었다. 반면,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입었던 피해는 함선 세 척, 사상자 1천22명이었다. 피해를 입은 함선 세 척 가운데 두 척은 웅포해전에서 안전사고로 좌초된 것이었고, 한 척은 노량해전에서 명나라 수군에게 빌려준 것이었다.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세계 해전사를 다시 쓰게 한 경이적인 전승을 이룩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가 구축하였던 군민합동작전체계의 위력이었다. 이순신이 군사지휘관으로서 남긴 뛰어난 업적은 그가 조선수군과 조선인민을 하나의 작전체계를 결집시키고 그 결집된 역량으로 우세한 왜적을 격파하였다는 데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태종실록』에 따르면,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백80년 전인 조선왕조 초기에 이미 존재하였다. 조선왕조의 봉건지배계급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북선 건조술은 1백80년 뒤에도 인민의 기억 속에 살아있었다. 영원히 사라져 버릴 뻔한 거북선 건조술을 이순신에게 전해준 것은 이름 없는 함선건조공의 후손들이었고, 이순신은 1백80년 전에 있었던 거북선의 성능을 개량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신형 거북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인민의 힘과 슬기로 재생․개량되었던 거북선은 그 설계도가 발견되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지만, 주목하는 것은 임진왜란에서 전투에 참가한 거북선은 겨우 세 척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 거북선이라는 첨단전투장비에 있지 않았고 군민합동작전체계에 있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2)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지휘한 군민합동작전에 참가한 조선인민은 훗날 민속놀이와 민요로 전해진 갖가지 군사작전용 집단행동을 창조하였다. 강강술래놀이는 임진왜란 당시 해안방어를 위한 조선수군의 야간작전에 부녀자들이 참가한 군민합동전술이었다. 조선수군은 왜군에 비해 수적으로 매우 열세였으므로 밤중에 부녀자들이 40-50명씩 무리를 지어 바닷가 곳곳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조선수군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였던 것이다. 봉건계급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 조선여성들이 조국의 해안선을 지키는 당당한 주체로 나선 것은 군민합동작전체계가 이룩한 위대한 승리였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우수영에서 불려진 강강수월래, 경상도 통영에서 불려진 쾌지나 칭칭 다네, 여수에서 불려진 어얼싸 덜이 덜롱 같은 민요들은 군민합동작전을 위하여 인민이 창조한 군가들이었다. 임진왜란 때부터 전해져오는 골목줄놀이와 용줄다리기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마을을 돌아다녀 모아온 새끼줄, 짚, 칡넝쿨 같은 것을 가지고 용의 모양을 한 두 개의 굵은 밧줄을 만들어 서로 걸어 당기며 집단적으로 힘을 겨루는 놀이였다. 이것은 원래 임진왜란 시기에 잠재되고 분산된 인민의 힘을 하나의 작전체계로 결집시켜 단결된 힘으로 전투에 나서기를 촉구하기 위하여 조선인민이 스스로 창조한 전시동원활동이었다.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에는 전투가 없는 날 장수들, 병졸들, 인민들이 한데 어울려 씨름판을 벌였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것은 군중씨름을 통하여 군대와 인민의 전투적 기질을 키우고, 군민합동작전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3) 임진왜란 때 남해를 지키던 조선수군이 수많은 섬들과 섬들, 섬들과 육지 사이에서 신속하게 연락하는 통신작전을 보장하는 것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사활적 문제였다. 조선인민이 전시통신작전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한 것이 연날리기다.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은 연을 띄워 작전지시를 받았고, 통신문제를 해결하였다. 연은 원래 고려시대에 군사작전에 이용된 적이 있었는데, 이순신은 그 전통을 군민합동작전체계에 받아들임으로써 작전능력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통신작전만이 아니라 전쟁수행에 요구되는 각종 물자를 보장하는 보급작전과 수송작전도 역시 인민들의 몫이었다.



4) 임진왜란 때 당항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비화가 최근에 언론에 소개되었다. 조선의 사정을 정탐하기 위하여 전라도 고성에 위장․침투한 왜군 정찰병이 주막에서 잠이 들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일하던 월이라는 기생이 그 정찰병이 가슴에 품은 조선 남해안 지도를 몰래 꺼내 육지를 바다처럼 바꿔 그려 넣었다. 왜군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정찰병의 지도를 이용하여 당항포 앞바다에 쳐들어왔다가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의 매복공격에 걸려 참패를 당하고 섬멸되었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6일자) 당항포 주막의 기생 월이도 그 시대의 조선기생들이 그러했듯이 봉건지배계급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던 피압박계층의 한 구성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월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왜군의 정찰활동을 교란시킴으로써 조국방위를 위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에 당당한 주체로 나설 수 있었다. 월이의 경우에서처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적정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는 언제나 인민들이 제공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대의 해상작전에서도 그렇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해상작전에 미치는 자연지리적 영향은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도해로 이름이 높은 남해의 복잡한 해안선과 지세, 산세, 수심에 관한 정보, 바다물흐름, 바다바람, 바다안개 같은 해양변화에 관한 정보, 밀물과 썰물에 관한 정보, 해저지형과 암초에 관한 정보, 함선은폐지와 기습통로에 관한 정보, 함선과 무기와 항해기구의 건조, 제작, 수리에 쓰이는 각종 자연자원에 관한 정보, 군량미와 군포를 비롯한 군수자원에 관한 정보들은 모두 인민들에게서 나왔다. 이순신은 군민합동작전체계의 정보전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5)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 1592년 1월 16일자 기록에 따르면, 석수장이로 살다가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에 입대하여 병졸이 된 박몽세가 채석장에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잡아먹은 것을 두고 민폐를 끼쳤다고 엄하게 다스려 곤장 80대를 쳤다고 한다. 16세기 조선사회에서 개들은 임자 없는 동네개들이었고, 더욱이 마을이 아니라 채석장에서 떠도는 개를 잡아먹은 것은 당시의 사회적 관념으로는 민폐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가 인민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쳐 군대와 인민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군민합동작전체계를 무엇보다 중시한 군사지휘관 이순신의 탁월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왜장 고니시 유기나가(少西行長, 1558-1600년)가 지휘한 왜군부대가 1592년 6월 5일 동대문을 거쳐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서울인민들은 조선의 왕족과 양반을 비롯한 봉건지배계급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폭발하여 서울 장안 곳곳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장안은 불타버렸다.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남해에서 기적 같은 전승을 이어갈 때, 권율(1537-1599년)이 지휘한 조선육군이 연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순신 이외에 그 어떤 군사지휘관도 군대와 인민의 힘을 하나의 작전체계로 결집시키는 군민합동작전체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과 같은 중세기의 전쟁에서는 군민합동작전체계가 위력적이었을지 몰라도, 발달된 첨단무기가 동원되는 현대전에서는 전투장비가 전쟁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도 군민합동작전체계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1961년부터 미국군이 철군한 1973년까지 12년 동안 계속된 베트남 침략전쟁에서 미국은 이른바 ‘융단폭격(carpet bombing)’으로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떠들면서 연병력 3백만명, 최대병력 55만명, 전비 1천6백억달러, 그리고 가공할 첨단전투장비를 총동원하였다. 이른바 ‘천둥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이라는 야만적인 대공습작전은 1965년 3월부터 무려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미국군이 베트남인민의 머리에 퍼부은 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폭탄량의 네 배나 되는 약 8백만t이었다.



그러나 낡은 소총과 수류탄 같은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싸웠던 베트남의 반제자주역량이 구축한 군민합동작전체계의 위력 앞에 3천7백50대의 미국군 전투기와 군용기가 공중에서 격추되거나 지상에서 파괴되고, 미국공군 전사자가 8천명을 넘어서고, 4천8백65대의 미국군 무장헬기가 파괴되고, 미국군 5만7천9백39명이 전사하고 75만2천여명이 부상하고 나서 미국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베트남전쟁에서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싸웠던 베트남의 반제자주역량이 강대한 제국주의 침략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1960년 12월 남베트남에서 결성된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중심으로 군민합동작전체계가 가동되었다. 원래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1954년 사이공(당시 명칭)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결성되었으나, 1957년 이후 남베트남의 친미예속정권으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자 진보적 지식인들이 투쟁전면에서 후퇴하고 그 대신 사회주의세력이 주도하면서 질적으로 변화되었다.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동맹을 중심으로 하여 소자산계급과 민족자본가까지 포괄하는 정치적 연합체로 확대됨으로써 남베트남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1960년 12월 결성 당시 ‘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망라된 민간무력은 5천-6천명밖에 되지 않았다.



2) 1962년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지도하는 ‘인민혁명당’이 창당되었다. 남베트남의 인민혁명당은 호치민 주석(1890-1969년)이 이끌었던 북베트남의 베트남노동당과 형식적으로 분리되어 마치 베트남에 두 개의 혁명적 당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인민혁명당은 베트남노동당의 지역당으로서 지위를 갖고 역할을 수행하였다. 베트남노동당은 남베트남에 ‘남베트남 중앙사무국’을 설치하였으며, 베트남인민들은 베트남노동당 남베트남 중앙사무국과 인민혁명당을 ‘남부지역당’이라고 통칭하였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1975년 현재 인민혁명당 당원은 남베트남 인구의 1%인 20만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전체 당원의 47%만이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3) ‘인민혁명당’의 지도를 받은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불과 4년만에 남베트남 농촌지역 3분의 2를 장악하였다. 이것은 남베트남의 친미예속정권이 커다란 타격을 입고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붕괴위기에 빠지게 되었음을 뜻하였다. 미국의 침략전쟁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바로 그러한 정세의 변동에 따른 것이었다. 1964년 8월 5일 미국은 이른바 통킹만사건을 조작하고 전면전으로 나아갔으며,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석 달 뒤인 11월부터 미국군에 대한 직접 공격을 개시하였다. 미국 국방부의 추산에 따르면,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민간무력은 1961년에 1만5천명, 1964년 말에 상비군 3만5천명과 비상비군 8만명, 1965년에 상비군 4만5천명과 비상비군 10만명으로 증가하였고. 기동대대 60개, 일반대대 1백50개, 독립중대 1백50개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군민합동작전체계를 알지 못했던 미국 국방부는 ‘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함께 싸우는 베트남인민의 거대한 힘을 추산하지 못했다.



4) 1968년에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일시에 여러 지역에서 기습공세를 퍼부은 테트(음력설)대공세를 가하여 전세를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바꾸어놓았다. 테트대공세에서 호된 타격을 받고서야 미국의 집권세력은 베트남전쟁이 다른 전쟁과 달리 베트남의 군대와 인민이 결합된 군민합동작전체계와의 대결이며, 자기들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69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북베트남정부와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를 일방으로 하고 미국정부와 남베트남정부를 다른 일방으로 하는 4자회담이 시작되었다.



5) 1974년 12월 베트남의 반제자주역량은 군민합동작전체계를 총동원하여 미국군이 떠난 뒤에 고립무원상태에 빠진 남베트남군에게 총공세를 퍼부었고, 1975년 4월 26일 친미예속정권인 티우정권이 붕괴하자 그 뒤를 이은 두옹 반 민의 임시정부는 사이공이 함락된 4월 30일에 베트남임시혁명정부에게 무조건 항복하였다. 4월 30일 오전 11시 사이공시의 대통령궁(현재의 독립궁)의 정문을 부수며 북베트남군 전차가 돌진했다. 대통령궁 국기게양대에서 남베트남 국기가 내려지고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깃발이 올라갔다. 1955년 10월에 생겨난 이후 20년 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으며 명맥을 유지하였던 베트남공화국(Republic of Vietnam)은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베트남의 반제자주역량은 원시적인 무기밖에 갖지 못하였으나 군대와 인민을 하나의 작전체계로 결집시키고 그 결집된 역량을 반제군사전선에 최대한으로 동원함으로써 승리를 이룩하였다. 군민합동작전체계의 힘이 첨단전투장비의 힘을 이긴 것이다.

현대전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투장비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입증된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1999년 3월에 이른바 ‘연합군작전(Operation Allied Force)’라는 이름으로 78일 동안 계속되었던 침략전쟁에서 미국군은 세르비아와 코소보를 집중적으로 공습하였다. 미국은 공습으로 세르비아군 2만명이 전사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실제 전사자는 6백명이었고 민간인 피해자는 약 5백명이었다. 이것은 공군력의 우세만을 믿고 공습위주의 작전을 진행한 미국군에게 베트남전쟁 이후 두 번째로 사실상의 패배를 안겨준 사건이었다.



세계 전쟁사가 말해주는 것은, 전쟁을 수행하는 가장 강한 힘은 군민합동작전체계라는 점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은 상호결합된 군대와 인민이다.




5. 군민합동작전체계로 본 조선인민군과 미국군




한(조선)반도의 군사상황을 논하면서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이 수립한 군민합동작전체계다. 군민합동작전이라는 개념을 북(조선) 식으로 표현하면 ‘일심단결의 힘’의 군사적 전개라고 말할 수 있다. 북(조선)의 군민합동작전체계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조선인민군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전의 경험과 전통을 자기의 군사전략에서 기본으로 삼았다. 명백하게도, 모든 형태의 유격전은 군대와 인민이 하나의 작전체계로 일체화된 전투력을 형성하는 군민합동작전의 전형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전투장비와 병력수에서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대하였던 일제 관동군과 맞서 싸운 항일유격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시 만주에 사는 조선인민의 힘을 조직․동원하는 사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8.15 해방 후, 조선인민군은 그러한 항일유격전의 경험과 전통을 기본으로 하여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북(조선)은 적어도 1천만명의 군민합동무력을 동원․결집하는 세계 최강의 군민합동작전을 수행하는 군사강국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인민군은 1백8만2천명으로 알려졌고, 민간무력인 교도대,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의 병력은 7백71만명이다.



군민합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서반구의 유일한 사회주의나라인 쿠바밖에 없는데, 쿠바군 현역은 4만6천명, 예비역은 3만9천명밖에 되지 않으며 인구가 1천1백3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참고로 살펴보면, 미국군 현역은 1백42만7천명이며, 예비역은 1백23만7천7백명이다. 1백만명 이상의 현역이 있는 나라는 중국(2백25만명), 미국, 인도(1백32만5천명), 북(조선) 순인데, 러시아군은 96만6백명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의 군민무력 1천만명이라는 병력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시에 1천만명의 군대와 인민을 지휘․통제하는 군민합동작전체계를 세워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군민합동작전체계를 세워놓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병력도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군대와 인민이 하나의 작전체계로 동원․결집되어 전쟁을 수행하는 독특한 체계는 항일유격전의 경험과 전통을 기본으로 하여 발전시킨 북(조선)의 군사전략체계다.



그에 비하여, 미국군은 전술지휘통제체제를 최첨단으로 발전시켰으나 군민합동작전체계에서는 조선인민군에게 매우 뒤져있다. 미국군의 군민합동작전체계가 조선인민군에게 매우 뒤져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1) 미국군은 전시에 명령불복종으로 내분을 일으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2004년 10월 13일 이라크 탈릴에 주둔하는 미국군 제343보급중대 대원들이 이라크 저항세력의 매복공격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면서 연료수송작전을 거부한 사건이 일어났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16일자) 이라크에서 발생한 명령불복종사건은 특수한 사건이 아니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전선에 내몰린 제국주의 군대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2) 주한미국군의 자살율과 범죄율이 높은 것은, 미국군의 정신상태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주한미국군 제2사단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병사들이 외상후 압박감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정신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있어서 병영에 정신질환상담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또한 2003년 한 해 동안 주한미국군 병사 30명이 자살을 기도하여 세 명이 죽었고 자해사건도 22건이나 일어나는 바람에 모든 병사를 대상으로 해마다 두 차례씩 자살방지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성조지(The Stars and Stripes)』 2004년 4월 12일자)



1967년부터 2002년까지 36년 동안 주한미국군 범죄자는 모두 5만9천83명이었으며, 5만1천9백98건에 이르는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이것을 평균하면, 날마다 미국군 병사 4.5명이 네 건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한겨레』 2003년 6월 3일자)

주한미국군만이 아니라 한국군의 정신상태도 엉망이기는 마찬가지다. 2002년에 한국군 장성 18명이 군기문란이나 비리로 처벌을 받거나 전역되었으며(『연합뉴스』 2003년 9월 30일자), 2002년 한 해 동안 한국군 자살자는 79명이었으며(『연합뉴스』 2003년 9월 12일자),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무장탈영사건은 41건에 42명으로 나타나 1년에 평균 6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2003년 9월 12일자)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군 병사의 15.4%가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8일자)



3) 9.11사태가 일어났던 날,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 디씨에서 민간항공기를 이용한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전체가 대혼란에 빠졌다. 미국의 정부기관, 군부, 민간단체들은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 무방비상태에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다음으로, 군민합동작전체계만이 아니라 전투장비를 기준으로 하여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경우에도 군사평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군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니다.



북(조선)은 거의 모든 전투장비를 자기의 작전체계와 전술운용에 맞게 독자적으로 개발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전투장비를 도입하는 경우에도, 자기의 작전체계와 전술운용에 맞는 전투장비만 도입하였다.

어떤 특정한 전투에 모든 종류의 전투장비가 요구되지 않는다. 시가전, 산악전, 사막전, 해상전, 공중전, 상륙전 같은 전투의 조건과 특성에 맞는 전투장비가 따로 있는 법이다. 제아무리 첨단성능을 자랑하는 전투장비도 전투의 조건과 특성에 맞게 사용하여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군은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전세계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위하여 존재하므로, 모든 형태의 전쟁에 동원하는 매우 다양한 전투장비를 개발․보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군의 전투장비는 이를테면 백화점식 전투장비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조선인민군의 전투장비는 맞춤식 전투장비라고 할 수 있다.



미국군이 자랑하는 전투장비의 첨단화는, 어떤 특정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군수독점자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개발경쟁의 산물이다. 미국 군수독점자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발경쟁은 모든 전투장비를 신식과 구식이라는 이분법으로 분류하고, 구식은 개량하거나 자동적으로 폐기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전투장비가 어떤 특성을 가진 전쟁에 동원되는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 전투장비 개발사업이 전쟁의 요구가 아니라 자본의 요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에게 군수품을 공급하는 미국의 계약업체들은 약 1만5천9백개나 되는데, 미국군의 전투장비 개발사업이 자본의 요구에 따라서 추진되다가 개발비만 낭비하고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1983년부터 80억달러를 쏟아 부으면서 추진되었던 3백80억달러 규모의 알에이에이취(RAH)-66 코만치 공격헬기 개발사업이나, 1백55mm 크루세이더 자주곡사포 개발사업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4일자)



요즈음 미국군의 새로운 전투장비를 개발하기 위하여 벌어지는 자본의 경쟁은 전투장비를 전자화하기 위한 경쟁이다. 미국군 전투장비의 특성은 디지틀식 자동화(digital automation)라는 데 있다. 그에 비하여 조선인민군의 전투장비의 특성은 애널록식 수동화(analog manualization)라고 할 수 있다. 애널록식으로 수동화된 전투장비보다 디지틀식으로 자동화된 전투장비가 더 발달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조선)반도 전쟁의 조건과 특성에 어떤 전투장비가 더 적합한가 하는 문제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산악전이나 시가전에서 미국군의 디지틀식 전투장비의 성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코소보에서 벌어진 산악전이나 이라크 반미저항세력과 맞붙은 시가전에서 미국군이 뼈저리게 경험한 바다.



디지틀식 전투장비는 전자연계망(electronic networking)의 발달로 속도와 정밀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성능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적국이 전문해커부대를 동원하여 그 연계망을 교란하는 경우 지휘통신체계와 전투장비의 전자연계망이 마비되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애널록식(analog) 전투장비는 비록 속도와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그러한 위험성은 없다.



만일 조선인민군이 미국군의 전자연계망을 뚫어버리거나 마비시키는 전술을 개발하였다면, 한(조선)반도의 전쟁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1991년 걸프전 직후 미국군 군사작전에 관한 각종 자료를 영관급 이상 장교들에게 제공하여 대응전술을 연구하였으며, 1999년 코소보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군사고문단을 현지에 파견하여 대응전술을 연구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20일자) 미국 국가정보기관 관리도 조선인민군이 미국군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연구하여 자기들의 강점을 유지하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3년 5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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