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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조미핵대결 최종 라운드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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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3-04-05 00:00 조회4,1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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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운명을 건 김 정일의 핵 대결, 조국통일에 대비하여 미국의 군사간섭 무력화가 그 목적.

사태가 어디로 굴러가도 북조선은 승리한다.

외교군사 평론가 김 명철

[ 우리가 핵을 가지고 미국의 군사간섭을 끝장내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자]
김 정일 1966년
[ 김 정일은 사태가 어떻게 되든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창출하려고 하고 있다]
여러 미국 전문가, 워싱톤 포스트 12/29/02
[ 이번에는 사태가 어떻게 되든 북한이 승리한다]
미 정부고관, 워싱톤 타임스 01/07/03
[ 북한의 Timing 선택은 완벽하다]
스코트 슈나이더, 뉴욕 타임즈 12/24/02

kmc03.jpg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 부시 정권과 강한 대결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가 어떤 승산도 없는 무모한 정책으로 국제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것은 옳을까. 혹은 경제난 때문에 군사적, 정치적으로 약체화된 김 정일 정권이 미국 정부를 위협, 경제원조와 체제유지를 보장받기 위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폭주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하지만 사태를 냉정하게 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부시 정권은 "대화는 하지만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핵 위협에는 굴복하지 않는다"면서 북의 정치공세에 끝까지 "버티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부시가 북에 대해서는 채찍도 사탕도 포기했으며 초강대국의 지위를 버렸다는 것, 즉 북미의 관계에서 북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 정권은 지금 뱀 앞에서 얼어버린 개구리와 같은 상태에 빠져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1월3일 자에 따르면 미 정부의 고위 관료도 "부시의 발언을 후회하고 있어 북한과의 교섭재개는 피할수없다." 고 말했다.

미국엔 그 동맹국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북한 신드롬" 혹은 "북한 콤플랙스" 가 있다. 미국은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을 물량으로 압도했지만 한국전쟁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에게 참패를 당했으며, 그 이후의 북미대결에서도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부시정권은 북한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군사.외교 정치 부문의 싸움에서도 북에 대한 "응전체제" 자체가 없다. 그리고 만일 전쟁이 터지면 미국 본토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93-94년 핵 대결과 다른 점

일부 전문가들은 북이 부시 정권에 대항해 강경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다음 목표는 북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인민군의 수는 많지만 병기는 구식이기 때문에 초강대국 미국의 하이테크 전쟁엔 무용지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들은 중대한 오류를 담고 있다. 현재의 북미 핵대결과 1993-1994년 핵위기때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 차이점 1

미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북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라크전이 마무리될 쯤엔 그 수가 더 늘어날 것" 이라고 한다. 실제로 북은 1980년대 중엽에 핵 개발을 완료했으며 수폭을 포함한 핵폭탄을 1백기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게다가 북은 1980년 말 다단계 미사일 개발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탄도미사일 배치가 완료되었다면 거기엔 핵탄두가 탑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북한이 파키스탄의 지원을 얻어 핵 개발을 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고 파키스탄이 북한의 협력을 얻어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한국전쟁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 공갈을 가해 왔는데 이제는 북한이 반대로 미국에 대해 핵 반격을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본 차이점 2

북한은 성능이 입증된 장거리 미사일을 적어도 수백기 보유하고 있다. CIA에 따르면 북의 대포동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 내 포착하고 있어 언제라도 발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북은 뉴욕, 워싱턴등 미 본토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즉 1950년- 1953년의 한국전 때와는 다르다. 이라크와도 다르다. 북은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뿐 아니라 미군에 협력하는 국가와 미 본토에 대해 괴멸적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다.

근본 차이점 3

미 행정부의 고위급 관료는 북의 군사 공격으로부터 한일 양국을 방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즉 주한미군, 주일미군 배치에 따른 핵우산이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북이 대량 파괴공격을 가할 경유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쟁도발은 세계 제2경제대국인 일본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전엔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일본은 전장터가 되지 않았다. 또 미 행정부가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해외의 적대세력으로부터 본격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없는 미 본토가 북의 장거리 보복공격으로 불타 버릴 가능성이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국방비로 북의 300배 이상인 3000억불 4000억불을 사용한다해도 , 핵탄두 수만 발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북의 "변변치 않은" 핵 능력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력이 북의 수백 배라고 해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될 일이 있다. 93-94년 북미 핵 대결 때는 미국이 화려한 하이테크 전쟁 기술로 압승했다는 91년 항만전쟁을 끝낸 후에 발생하였는데도 결국 미국이 양보하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말하자면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압승하든 안 하든 그것은 북한의 대미 전략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지금까지 북미 대결의 역사를 봐도 북이 미국의 거대한 군사력 앞에서 변변한 공격도 못해보고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예측은 사리에 맞지 않다. 한국전 이후 4차례에 걸친 북미 대결에서도 언제나 예외 없이 미국은 가공할 만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었고 북은 고립무원이었다. 당시 구 소련과 중국도 북의 무모한 대미 대결자세를 비판한 적은 있었지만 지원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북이 사죄하고 무조건 항복했던가?

제1차 북미 대결은 1968년 1월의 푸에블르호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은 항공모함 세 척을 포함한 군사력을 한반도 해역에 집결시켰지만 결국 사죄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군사행동을 일으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1962년의 쿠바 위기에서 소련을 굴복시킨 미국의 민주당 정권이 북의 단호한 북의 단호한 군사적 대응 앞에서는 사죄하고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2차 북미 대결은 다음해인 1969년 4월의 미군 전자 정찰기 EC-121 격추사건이었다. 미군은 항공모함을 네 척을 비롯한 핵 공격 부대를 대대적으로 동원했지만 아무 것도 못하고 물러났다. 제 3차 북미대결은 1976년 8월 판문점 미루나무 벌채사건이었다. 북이 미 육군장교 2명을 살해하자 미국은 항공모함 미드웨이 한 척을 동원하는 한편 B-52 전략 폭격기를 띄웠다. 그러나 미군이 강행한 보복 군사행동이란 것은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것에 그쳤다.

여기까지의 북미 대결 3 라운드는 통상 무기만으로 무장한 북조선과 핵 무장한 초대국 미국과의 대결이었는데 물러난 것은 항상 미국이었다.

제4차 북미 대결은 1993-94년에 일어난 핵무장 혐의 국인 북과 핵 초강대국 미국간의 싸움이었다. 더욱이 이 핵 대결은 동구사회주의진영이 소멸하고 , 미국이 걸프만 전쟁에서 이라크를 패배시킨 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민주당 클린턴 정권은 말로는 대북 공격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전의 3차례에 걸친 북미 대결과는 다르게 새로운 군사력을 전개하지도 못했다. 미 행정부는 4회에 걸친 직접 교섭 끝에 제네바 핵 합의에 동의했다. 그 내용도 200년까지 북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해주고 그때까지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공급한다는 대사급 외교관계의 수립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고립무원이며 붕괴 직전 이라던 북을 핵 공갈 했다가 역으로 공갈 당하면서 군사력 과시조차 못한데다 제네바 합의에도 억지로 "동의당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북한 제 2 실력자 조명록 차수가 워싱톤을 방문 클린턴과 회담 북미공동 콤뮤니케를 발표했다. 또 올부라이트 국무장관은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북한을 방문하기로 되었었지만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술책에 넘어갈 가 겁이나 초(강)대국 답지도 않게 북한 방문을 그만 두었다.

그래서 미국 CIA는 김 정일을 "현명한 여우" 라고 부르며 외경의 뜻을 표명할 정도다. 일본 방위청도 김정일에 대해 " 대국을 가지고 노는 유례없는 군사전략가" 라고 불렀다.

김정일은 2003년을 전후해 일을 벌리면 된다고 판단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객관적 조건이 성숙하기를 기다려 미국이 파멸적 실책을 저지르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 가 부시 정권은 예견하든 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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